파니니는 치아바타에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든 이탈리아 샌드위치다. [Gettyimage]
치아바타의 표면은 단단해 보이나, 구멍이 송송 뚫린 촉촉한 속살과 함께 베어 물어보면 바삭하게 부서지는 대신 쫄깃쫄깃 구겨지며 기분 좋은 발효 향과 구수한 맛을 선사한다. 무심하지만 고유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치아바타에서 맛의 나라 이탈리아의 전통이 절로 느껴진다. 아니다. 한 가지는 바로 잡아야 한다. 치아바타는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이탈리아 빵은 맞으나 거기에 ‘전통’을 붙이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2080년 정도는 돼야 할까 싶다가도 유럽의 웬만한 전통 아이템을 떠올려보면 2980년 정도는 돼야 ‘전통’이라는 근사한 꾸밈말을 붙일 수 있지 싶다.
프렌치 바게트에 밀리지 않는 1982년생 식사빵
치아바타라는 이름은 빵 모양을 닮은 납작한 신발(슬리퍼)에서 따온 것이다.[Gettyimage]
치아바타의 레시피를 처음 확립한 사람은 이탈리아 베네토 주, 쉽게 말하면 베니스 근처의 아드리아(Adria)라는 도시에서 제분소와 빵집을 운영하던 아르날도 카발라리(Arnaldo Cavallari)다. 그는 프렌치 바게트에 잠식당한 이탈리아 빵 업계를 구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우고 밤낮 없이 레시피 실험을 거듭했다. 집에서 구운 것 같은, 오래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고, 화학적 공정과 맛을 배제한 진정한 식사빵을 만들고자 했다. 꽤나 오랜 노력 끝에 신선하고 깨끗한 강력분, 물, 소금, 천연 발효제를 섞고 발효해 아주 질척한 반죽의 치아바타를 완성했다. 그는 이 빵에 지명을 붙여 치아바타 폴레시네(Polesine)라고 불렀다.
그는 빵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알리고 판매했다. 영국 수퍼마켓 체인을 통해 이 빵의 레시피를 수출하고, 미국에는 제빵사들을 보내 빵을 알렸다. 1989년에는 ‘치아바타 이탈리아나’라는 이름과 레시피를 특허로 등록했고, 1999년에 치아바타 레시피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11개국에 부여했다.
현재는 그가 부여한 라이선스가 없어도 누구나 이 빵을 구울 수 있다. 저마다의 비결을 더해 통밀로 만드는 이도 있고, 우유나 감자를 넣어 더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며, 오일과 허브를 넣어 향과 촉촉함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결국 프렌치 바게트의 아성에 버금가는 빵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불완전함의 완벽한 조화
일부에서는 이 빵을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가 구웠겠지만 전해지는 레시피가 없고, 이름조차 없었다. 결국 제빵사 카발라리가 레시피를 기록했고, 치아바타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먹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폴레시네의 아드리아 마을에 가면 여전히 ‘이곳에서 치아바타가 태어났다’라든가 ‘치아바타 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치아바타 보호 협회도 그곳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아바타의 고향다운 ‘빵의 마을’ 같은 분위기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작고 오래된 소박한 마을일 뿐이다.마치 고유한 전통을 지녔을 것 같은 치아바타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맛좋은 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먹어도 본연의 맛이 살아 있고, 어느 나라의 토착 재료와 곁들여도 잘 어울리며 좋은 맛을 낸다. 모든 걸 수용하는 불완전함이 만들어내는 완벽함 덕에 나처럼 빵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도 이 빵만은 입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무엇보다 먹어보면 역시 맛있고, 자꾸만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어질 만큼 힘이 느껴지는 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