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골 親明’ 7인방, 李 결사옹위
당권 잃은 ‘친문’의 굴욕
非明 낙인찍히면 총선 공천 비명횡사?
8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黨’으로 탈바꿈한 민주당
대선과 지방선거, 전당대회를 거치는 동안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親明·친이재명)’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됐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친명’ 당권 장악의 서막이었다면 8·28 전당대회는 친명의 당권 장악을 과시하는 선포식이었다.당분간 민주당에서 이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밀 인사는 없어 보인다. 대선 이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이낙연 전 총리가 내년 상반기 귀국, 호남을 기반으로 PK(부산·경남) 출신 ‘친문’ 인사까지 아울러 이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 영어(囹圄)의 몸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출소 뒤 친문 인사를 이끌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기 전에 민주당은 이재명 직할 체제로 ‘완벽하게’ 전환될 공산이 크다.
핵심 친명으로 꼽히는 ‘7인회’ 인사 중 김병욱 의원이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문진석 의원이 전략기획위원장, 김남국 의원이 미래부총장에 임명됐다(위부터). [동아DB]
이렇듯 이재명 캠프 핵심 인사들이 주요 당직에 포진하면서 민주당이 사실상 ‘이재명의 사당(私黨)’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재명 대표는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주도한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가장 강력한 야당 당수(黨首)”라고 평가했다. 엄 소장은 “이 대표가 6·1 재보선 때 인천 계양을에서 당선한 초선 국회의원이지만 3·9 대선에서 1600만 표 넘게 득표한 차점 낙선 후보이고, 169석의 거대 야당을 이끄는 제1야당 대표라는 점에서 대통령에 밀리지 않을 만큼의 막강한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대장동과 백현동 개발사업, 성남FC, 변호사비 대납 등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재임 시절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다.
이재명 대표는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함으로써 ‘불체포특권’이란 보호막을 확보했으며 거대 야당 대표에 오름으로써 검찰에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더라도 무력화할 당권을 쥐고 있다. 또한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활로를 뚫어놨다. 이렇듯 3중 방어막 구축에 성공한 이 대표의 임기는 2024년 8월까지다. 이대로라면 내후년 4월 치러질 22대 총선 공천권을 이 대표가 행사한다는 얘기다.
검찰의 칼날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전국을 돌며 ‘민생 투어’에 나섰다. 9월 2일에는 광주를 찾아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양동시장에서 상인회 관계자와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7일에는 경북 포항시를 찾아 태풍 힌남노 피해 현황을 점검했다. 추석 연휴 직후인 13일에는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후 ‘민생’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 글을 통해서도 “물가와 금리, 실업 등 국민의 고통이 너무 크다”며 민생을 강조했다.
이 대표의 민생 행보에는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인사 외에도 민생 현장 관련 상임위 위원들이 동행하고 있다. 당대표의 지역 순방에 지도부가 동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각 상임위 소속 의원까지 동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 민생 탐방 때 상임위 위원이 동행하는 것은 현장에서 파악한 문제점을 입법으로 보완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정진상 실장 얘기=이재명 대표 지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2022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 상임고문에 임명된 고민정, 전해철, 설훈 의원(위부터). [동아DB]
이 같은 인사를 두고 민주당 안팎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권에서 진행되는 검경 수사가 주로 문재인 정권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이전 정부에서 요직에 있던 친문 인사가 중심이 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첫째 이유다. 다른 하나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친명으로 전향하라는 묵시적 압력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검경 수사가 문재인 정권 때의 일을 겨냥할 뿐 아니라 이 대표와 주변 인사들에게도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다. ‘정치탄압대책위’라고 간판을 내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대표를 겨냥한 검경 수사를 방어해야 할 일이 많을 수 있다. 인사권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친문 인사들은 윤석열 정권이 선보일 전방위적 검경 수사를 최선두에서 방어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게 됐다.
대표적 친문 인사로 여겨지는 홍영표 의원을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하고, 문재인 정부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황희 의원을 국제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계파 안배이자 상징적인 통합 행보로 여겨진다.
친문 인사들에게 다소 험한(?) 일을 맡긴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믿을맨’을 핵심 포스트에 포진해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이재명 복심’으로 통하는 정진상 씨를 정무조정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성남시 정책실장과 경기도 정책실장을 지내고 대선 때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을 맡아 ‘이재명 핵심 측근’으로 인식된 정 실장이 정무조정실장으로 당대표 비서실에 입성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공천권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정무조정’ 직책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민주당 의원 개개인의 협조 정도와 활동 역량 등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무총장이 의원들의 의정 활동과 지역구 활동 등에 대한 공식 평가 창구라면, 정무조정실장은 평소 의원들의 당무 협조도와 역량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와 의원을 잇는 가교라고 할 수 있다.특히 정무조정실장은 대표를 대신해 의원들에게 업무를 전달하거나 협조를 요청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만약 정 실장이 아닌 다른 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면 이른바 ‘비명(非明·비이재명)’ 의원들이 탐탁해하지 않거나 흔쾌히 협조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의 복심’으로 알려진 정 실장이 정무조정실장을 맡게 됨으로써 ‘정 실장 얘기=이 대표 지시’로 여겨져 효율적이고 일사불란한 활동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 대표 핵심 측근으로는 대선 경선 때부터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7인회가 있다. 신라 골품제에 비유하면 7인회는 ‘성골 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선 경선 캠프에 참여해 승리에 일조하고 대선 때 선대본에 참여한 이들은 ‘진골 친명’으로 통한다. 대선 때 배우자실장으로 이 대표 부인 김혜경 씨를 보좌하고 최근 조직사무부총장에 임명된 이해식 의원이 대표적 진골 친명 인사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 때 비중 있는 역할을 해 ‘친문’ 인사로 분류됐지만 대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친명 진영에 합류한 이들의 경우 ‘육두품 친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선 경선 때는 물론 전당대회에서도 이 대표에 맞선 박용진 의원 등은 자연스레 ‘비명’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대선 경선 때부터 시작된 민주당 내 세력 교체는 대선과 지방선거, 전당대회를 거치며 외견상 친문에서 친명으로 주도 세력이 교체됐다. 그러나 더 완벽한 세력 교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다. 2024년 총선이다.
원내 절반이 넘는 169석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정치적 뿌리를 따져보면 여전히 친문 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전당대회 이후 친문에서 친명으로 말을 갈아탄 인사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대변인으로 ‘문재인의 입’ 구실을 했다가 이 대표 선출 이후 ‘대변인’에 임명돼 ‘이재명의 입’ 역할을 하게 된 김의겸 의원이 대표적이다.
대선 경선과 전당대회 때 친명으로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이 대표 취임 이후 당 사무처와 정책위 등 주요 당직에 이름을 올린 의원의 경우 ‘팀 이재명’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내후년 총선에서 ‘공천 배제 대상자’에 속하는 ‘불이익’은 면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대표는 최근 정책위원회 정책조정위원장으로 기동민(제1정조), 김병주(제2정조), 신동근(제3정조), 김한정(제4정조), 최인호(제5정조), 강훈식(제6정조), 김영호(제7정조) 의원을 임명했다.
임명직은 아니지만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함으로써 이재명 대표 체제 지도부 일원이 된 고민정 최고위원의 경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친명 독주를 막는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비명 인사’로 여겨지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육두품 친명’이란 꼬리표가 달릴 수 있다.
친문에서 친명으로 넘어간 이들을 제외한 친문 인사 대부분은 대체로 ‘비명’ 인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비명’으로 자리매김하려 하지 않는다. 벌써부터 ‘비명’으로 낙인찍힐 경우 내후년 총선 공천 때 주홍글씨로 작용해 ‘낙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고3이 ‘대학 입시’, 대학 졸업반이 ‘취업’에 모든 관심을 쏟는 것처럼 총선을 1년 7개월 앞둔 민주당 의원들의 관심은 정치 생명을 연장할 1차 관문인 ‘공천’에 온통 쏠려 있다.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돼 이 대표가 궐위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한 총선 공천은 이 대표가 주도할 공산이 크다. 대선 패배 두 달여 만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그로부터 두 달여 만에 다시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대표에 오르는 과정을 민주당 다수 의원이 침묵 속에 지켜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바른 소리 잘못했다가 ‘비명’ 인사로 찍혀 내후년 총선에 ‘비명횡사’하는 운명을 피하려는 보신(保身) 심리가 암암리에 작용한 것이다.
생존 보장받기 위한 ‘친명’ 스며들기
이 대표가 자신과 주변을 향해 날아오는 사정 당국의 칼날을 막아내며 정치적 생존을 넘어 차기 대권에서 부활을 노리고 있다면 민주당 인사들은 차기 총선에서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친명’ 스며들기에 나선 모습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했던가. 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칼날을 피해 내후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만약 이 대표가 공천을 주도한다면 친문 인사들은 과연 몇이나 ‘생존’할 수 있을까. 2022년 9월 16일 현재 최소한 민주당 안에서는 이재명 천하가 활짝 열렸다.신동아 10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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