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고위층 방한에 숨겨진 속내
사실상 안보주권 포기한 文
韓, 美·中 갈등 완충지 돼야
당당함이 신뢰 구축 비결
[Gettyimage]
8월 4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다. [뉴스1]
9월 15일 중국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스1]
미·중 갈등 속에서 양국이 구사하는 외교 병법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반중(反中) 대결 정책’에 동참하길 바란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를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진행된 미·중 갈등 구도에서 진행된 한중미 외교 각축전을 중국 고대 병법 용어로 치환하면 미국의 ‘조호이산(調虎離山·호랑이를 유인해 산을 떠나게 하다)’ 중국의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림)’, 한국의 ‘조지양익(鳥之兩翼·새의 양 날개)’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조기에 한중 정상회담을 열어 한중관계에 낀 냉각의 안개를 걷어내는 외교를 시작해야 한다. 첫 번째 장애물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3가지를 하지 않고, 사드를 제한적 운용한다는 ‘사드 3불(不)1한(限)’이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의 그릇된 약속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의 요구라 할지라도 “NO”라고 할 수 있는 당당한 외교를 통해 미·중 갈등 완화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
調虎離山 vs 脣亡齒寒
‘조호이산’이란 호랑이를 사냥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호랑이를 ‘안방’인 산에서 끌어낸 후 노리는 병법이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켜 중국 스스로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의지를 포기하도록 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전부터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경계해 왔다. 덩샤오핑은 냉전체제 말기에 클린턴 정부가 취한 ‘관여 및 관여확대 정책(engagement and enlargement policy)’을 평화적 방법으로 중국 체제를 해체하는 전략, 즉 화평연변(和平演變)으로 규정했다.시진핑 체제가 구축하고 있는 난공불락 요새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정치적 요새다. 3기 시진핑 체제와 그 이후 체제에서 중국의 정치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둘째는 뛰어난 경제력이다. 중국의 경제력은 규모 면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뿐 아니라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00년 이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3.1%에 이르는 반면 미국은 3.9%에 불과하다. 중국이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2040년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공산주의 체제라는 정치 요새와, 드높아진 국가경쟁력이라는 경제 요새에서 끌어내야 미국이 이끌고 있는 현 국제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정치 요새를 허물기 위한 무기는 중국 내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대만에 안보우산을 제공해 ‘하나의 중국 이데올로기’를 흔들어놓는 전략이다. 그래서 미국은 틈만 나면 티베트·홍콩 인권을 강조하며 대만의 정체성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주변국이 반중 정책을 취하면 자국 안전이 위태롭다고 여긴다. 고대 중국에서 현재의 시진핑 체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순망치한’ 안보 인식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것이나, 6·25전쟁 시 참전한 것엔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미국의 조호이산 정책에 대응하는 중국의 안보정책은 분명하다.
첫째는 어떠한 국내외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 서구의 어떠한 정치적 비판에도 인권 문제 등에선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둘째, 주변국의 반중 정책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외교자원을 총동원해 막으려 할 것이다. 중국이 한국 정부에 보내는 공식, 비공식 신호는 순망치한을 고려한 안보정책과 관련돼 있다.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전략도 순망치한 인식에서 비롯한 체제 유지 안보정책이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지난해 기준 140여 국가 및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압록강 하류에 있는 단둥시 잉화산에 ‘항미원조기념관’을 설치했다. 1958년 중국이 항미원조기념관 위치를 정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한반도가 가장 잘 조망되는 지역’이다. 중국은 6·25전쟁에서 희생한 중국군 19만7653명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중국 후세 지도자는 물론 남북한 지도자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드 3불1한의 내용이 모호하다. 진실은 있지만 이와 관련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설명은 명료하지 않다. 사드 3불1한이 추진된 배경과 내용은 2017년 11월 23일자 ‘환구시보’ 보도에 다음과 같이 명확히 담겨 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2017년 11월 22일 중국을 방문한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달(12월 14일) 중국을 국빈 방문하기 때문에 강경화 장관의 중국 방문은 이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왕이는 회담 중에 중국과 한국이 ‘사드’ 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한 공통 인식과 한국 측이 제시한 ‘3불1한’의 입장 표명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국 당국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고, 실제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드 관련 입장 조정은 중국과 한국의 공통 이익과 문재인 대통령의 임박한 중국 방문에 부합하고 또 의심의 여지없이 양국에 좋은 일이다. 3불1한은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는 것, 한·미·일 안보협력이 발전해 3각 군사동맹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는 것, 이미 설치된 사드 사용에 제한을 둬 그것이 중국의 전략적 안전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0월 말 한국이 중국에 약속한 것이다”
THAAD 3不1限의 진실
사드 3불1한의 진실은 위 문건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첫째, 내용은 3불이 아니라 3불‘1한’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까진 3불만 모호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둘째, 2017년 1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졸속으로 합의됐다. 당시 문 대통령의 방문은 ‘혼밥 논란’이 일 정도로 3박 4일간 중국인사와 단 두 차례의 만남만 있었다. 셋째, 2017년 10월 말에 한국이 중국에 먼저 제안하고 약속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 안보실장이 방안을 만들고 중국의 왕이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다. 넷째, 문 전 대통령과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의제가 됐거나, 사안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인지됐다.‘환구시보’ 보도대로 문재인 정부가 중국 국빈 방문 성사를 위해 사드 3불1한을 먼저 제안하고 약속했다면 ‘역대급 안보 직무 유기’라는 평가를 감당해야 한다. 사실상 안보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내용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중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대외 군사정책 방향을 제약하고 방어용 무기 운영까지 제한하는 약속을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성주 사드기지 정상화에 문재인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이유가 ‘중국과의 약속 이행 차원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은 청에 굴욕적으로 항복하며 10가지 약속을 했다. 그중 9번째가 ‘조선은 청을 향한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않는다’였다. 참혹한 패전의 대가로 조선은 방어용 진지마저 구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사드 3불1한 약속은 안보 문란 행위다.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3불1한은 대중(對中) 정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시진핑은 한국을 찾지 않았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방한하지 않은 정부는 처음이다. 오히려 한국 대통령이 방중 기간 ‘혼밥 외교’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조롱받아야 했다. 개발에만 100억 달러(약 13조9520억 원)나 든 사드가 성주에서 정상 운영되지 않은 사실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사드 3불1한 약속은 미·중 갈등을 서울에서 확산시켰다. 한국의 안보에 지뢰가 된 셈이다.
韓, 소신 세울 땐 세워야
8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방한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냉전 해체 직후인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수교했다. 당시 미국 클린턴 정부는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과 관여정책 중 후자를 선택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지원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갈등 없이도 중국과 경제협력을 했다. 미국의 안보 날개, 중국의 경협 날개를 펴면서 조지양익 번영 정책을 조화롭게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초반부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전개하면서 미·중 갈등 구조에서 외교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충돌에 적극으로 답을 제시한 지도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미·중 갈등에서 세력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하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동북아 균형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갈등에서 영국이 취한 균형자 역할은 갈등 당사자와 버금가거나 압도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노 전 대통령은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 안보 전문가를 초청해 직접 2시간 정도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필자도 포함됐기에 생생히 기억한다. 간담회장에서 노 전 대통령은 “내가 균형자 역할을 잘못 이해한 채 사용했다. 균형자 역할 대신에 평화 촉진자가 한국이 할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동북아 평화 촉진자(facilitator)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역대 모든 지도자는 이처럼 전략 선택을 고민해야 했다.
한중관계의 최종 상태(Endstate)는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양국 관계를 의미하지만 동북아 질서, 세계 질서의 주요 추동력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안보 및 군사 차원에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북한이 중국을 믿고 한국에 군사도발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만들어가야 한다. 북한 비핵화, 전쟁 재발 방지, 통일 준비 과정에서 중국과 신뢰를 만들어가야 한다.
韓中 조기 정상회담으로 신뢰 구축해야
윤석열 정부는 중국과 조기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한중수교 이후 40회 가까운 한중 정상회담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7회, 이명박 정부 11회, 박근혜 정부 8회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고작 3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도 문재인 정부 기간에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외교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취임 5개월 만에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사실을 고려하면 외교적 상호주의에 맞지 않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시 주석의 방한을 전제한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있어야 일어선다”는 말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지도자 간 신뢰를 축적해 국가 간 신뢰, 국민 간 호감도를 키워야 한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선 당당함이 필요하다. 당당하게 문재인 정부의 3불1한 약속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철회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 않음)’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일치를 추구하되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두는 것)’ 정신이 한중 정상회담 분위기를 이끌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문제 등 의제에 양국 지도자의 생각이 녹아들기 바란다. 서울이 미·중 갈등의 격전지가 아니라, 미·중 갈등을 ‘쿨 다운’시키는 외교요충지가 되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의 한중 정상회담을 기대해 본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신동아 10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