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KDB산업은행은 26일 “대우조선해양과 한화그룹은 2조 원의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안을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제조업계에 있는 모든 대기업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고 한화가 응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한화는 대우조선 지분의 49.3%를 확보해 산업은행(28.2%)을 제치고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유상증자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1조 원), 한화시스템(5000억 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4000억 원), 한화에너지 자회사 3곳(1000억 원) 등이 참여한다.
한화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상무기·우주항공 등 기존 방위산업 역량에 대우조선을 더해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메이저 방산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했다. 또 “지정학적 위기로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주요국의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방산 기술 역량과 글로벌 수출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그룹 주력인 방산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에 더해 지주사인 ㈜한화 전략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에너지와 방산 등 그룹의 주력 사업을 총괄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공인받은 셈이다.
한화 관계자는 “대우조선 인수 참여는 회사의 절차에 따라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라면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과 우주항공, 한화솔루션은 신재생 에너지와 케미칼 사업에 집중한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되면 방산과 그린 에너지 분야에서 시너지가 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김 부회장이 전략부문 대표이사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5월 2일 경기 가평군 한화 인재경영원에서 열린 한화그룹 핵심가치 선포식에서 김승연 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김동관 당시 ㈜한화 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그룹 임직원들이 대형 현수막을 내리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한화그룹]
최근에는 대외 행보에도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usiness Roundtable)에도 아버지인 김 회장 대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같은 달 26일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에 참석했는데,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이 파견한 ‘다보스 특사단’에 포함됐다.
존재감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좋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룹 내부의 절차를 따라 인수전에 참여키로 했지만, 향후 대우조선의 성패가 곧 김 부회장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요소로 쓰일 개연성이 크다. ‘한국형 록히드 마틴’의 등장이 가시화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신중론도 등장한 상황이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의 경우) 영구채 2조3000억 원으로 채권단이 자본잠식을 막아주고 있던 상황이고 우발채무 등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있으며 그동안 저가 수주, 원재료 부담으로 실적 턴어라운드가 수년간 지연돼온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방산으로 사업 재편을 하면서 재평가 기대감이 높았으나 대우조선 실적이 연결로 반영되는 내년부터 실적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한화는 2008년에도 대우조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자금 조달 문제와 대우조선 노조 반대에 가로막혀 결국 인수를 포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우조선 노조는 27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 매각은 밀실에서 추진하지 말고 이해당사자와 충분히 협의하며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간 김 부회장이 이와 같은 대외 리스크를 겪은 경험이 없는 터라 앞으로 어떤 행보를 펼지도 미지수다. 한화 관계자는 “아직 인수자로 선정된 것도 아니고 여러 절차가 남아 있어 노조와의 접촉 문제는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김 부회장이 직접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