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오만방자함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나
천박하고 저열한 공격이 가능한 플랫폼
아무리 미쳐 돌아가는 시절이었다지만…
수입은 1주일에 1000만 원, 年 5억 원 추정
무당형 팬덤정치의 민낯 어찌 부정하랴
TBS는 스스로의 정체를 유튜브로 착각했나
‘떠오른 태양’ 김어준, ‘지는 태양’ 유시민
“애초에 의도된 허위라서 교정 안 돼”
증오에 눈이 멀면 궤변도 반론이라 여겨
진보는 ‘보수의 김어준’ 용인할 수 있나
방송인 김어준 씨. [동아DB, Gettyimage]
상대 정당을 상종할 가치조차 없는 집단으로 욕한 셈인데, 이게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정치인의 정상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름 없는 유튜브 채널이 아닌, 언론이 주목하는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천박하고 저열한 공격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김어준은 한국 정치를 천박하고 저열하게 만드는 데 톡톡히 기여한 셈이었다.
진중권·손석춘·최승호의 김어준 비판
5월 26일 김어준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배후설’을 주장한 사건은 어떤가. 그런 음모론을 뒷받침할 이렇다 할 근거는 없었다.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이 할머니가 쓴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냄새가 난다”는 수준이었다. 김어준에게 중요한 건 전날 이용수가 당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윤미향을 비판했다는 사실이었을 게다.이에 진중권은 “김어준 씨는 걸어 다니는 음모론이고 원래 음모론자들은 발언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면서 “냄새 좋아하니 방송 그만두고 인천공항에서 마약 탐지견으로 근무하면 참 좋겠다”고 했다. 이어 “(음모론자들은) 사실이 아니라 상상의 왕국에 거주하는 자들”이라며 “상상력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저 그 황당한 판타지를 진지하게 믿어주는 바보들이 안됐다”라면서 “방송사에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돈, 청취율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6월 10일 한 언론 세미나에서 “저널리즘을 바로잡겠다는 KBS의 ‘저널리즘토크쇼J’가 보여주듯 KBS·MBC·교통방송(TBS) 시사 프로그램은 친정부 편향 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며 “김어준 시사 프로그램은 노골적인 진영 방송이다. 그 결과 저널리즘은 쇼가 되거나, 희화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 사장으로 있다가 뉴스타파 PD로 복귀한 최승호는 7월 4일 그간 김어준이 주장해 온 ‘세월호 고의침몰설’과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 등의 음모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반박하기 위해 뉴스타파가 만든 ‘그들에게만 보인 유령선… 세월호 참사일 제주VTS 항적 조작설 검증’ 영상을 소개하면서 이 같은 비판을 했다.
최승호는 “김어준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견되면 ‘취재’하기보다 상상·추론하고 음모론을 펼치다가도 반박이 나오면 무시한다”면서 “자신의 위상만큼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은 김어준의 이런 행동 방식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그는 사실이 아닌 위험한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 같다”고도 했다.
누가 그를 의병장이라 칭하는가
2021년 6월 16일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맨 왼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방송하는 TBS 감사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 바이러스와 싸우는 추미애 법무장관을 돕는 것도 의병장의 역할이었다. 추미애 아들의 군 휴가 의혹이 불거지자, 김어준은 9월 8일 방송에서 “언론이 확대재생산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누구와 싸우건 문 정권 편을 드는 일엔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9월 21~22일 해양수산부 산하 공무원 A씨가 연평도 인근 선상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에 의해 바다 위에서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다. 김어준은 9월 25일 방송에서 A씨 상황을 ‘자진 월북(越北)’으로 규정했으며, 북한군이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불태운 행위를 “화장(火葬)”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문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미쳐 돌아가고 있던 시절이었다지만, 이런 망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중권은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인도적 범죄”라며 “이 친구의 헛소리,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아울러 “청취율 장사도 좋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란 게 있다”며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가”라고 개탄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자체가 그런 ‘청취율 장사’에 도움이 되게끔 구조화돼 있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과 여의도연구원이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김어준의 뉴스공장’ 189회를 전수 분석한 결과, 민주당원 패널이 출연한 횟수는 238차례였던 반면 국민의힘 소속 패널은 총 71회로 세 번 방송하면 한 번 나오는 수준이었다. 뉴스공장이 진보 성향 패널을 부른 횟수는 341차례로 보수 성향 75차례의 4.5배였다. 권영세는 “뉴스공장이 좌파를 먹여 살리는 화수분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통방송은 “238차례가 아니라 179차례”라며 “이 가운데 94차례는 코로나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 민주당 당내 선거 후보들, 코로나와 부동산 등 현안 설명을 위해 민주당 출신 장관들이 출연한 것으로 이는 여야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주제들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주장에 다소 부풀려진 점도 있긴 했겠지만, 사실 그런 기계적 균형 못지않게 중요한 건 “왜 출연자들은 김어준 앞에만 서면 과격해지거나 궤변도 불사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김어준이 조성하는 분위기에 ‘케미’를 맞추려는 동조 현상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앞서 거론한 추미애 아들의 ‘황제 복무’ 의혹이 터졌을 때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보인 활약상을 잠시 감상해 보자. 정청래는 9월 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추미애 측 보좌관이 군에 ‘청탁 전화’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 “아들과 보좌관이 친하니까, 엄마가 아니라 보좌관 형한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라며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 시킨 것을 빨리 달라고 하면 이게 청탁이냐, 민원이냐”고 했다. 그는 추미애가 청탁 전화 의혹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 게 거짓말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지엽적이고 아주 곁가지 일”이라고 했다.
이에 진중권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평소에 식당에서 김치찌개 시켜먹듯 청탁을 하나 보다”라고 했다. 그는 “하여튼 잘못해 놓고도 절대 인정을 안 한다. 대신 잘못이 잘못이 아니게 낱말을 새로 정의하려 든다”며 “청탁이 재촉이 됐으니, 재촉은 청탁이 돼야겠죠. 가령 ‘가을을 청탁하는 비’”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자들은 먼저 언어부터 혼란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뉴스공장’ 사회자가 라디오와 TV에 동시 방송을 하면서 출연료를 중복 수령하고, 출연료가 라디오 150만 원, TV 50만 원으로 하루 200만 원이라는 제보가 있다”며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어준 수입은 1주일에 1000만 원, 연간 5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김어준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나라가 궁금하면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기 바란다. 진중권이 왜 김어준을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했는지 이해될 것이다. 국내 문제는 팩트와 상관없이 거의 김어준 말대로 전개된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가 커지자 지명수배 중 출국한 이혁진을 등장시켜 ‘과거에 여권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권력형 게이트로 뒤집어씌우고 있다 주장하시는 거죠?’ 확인해 주는 식이다.”2020년 10월 29일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가 ‘美 바이든 당선 걱정하는 김어준과 집권세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물론 외교 문제도 다를 게 없었다. 김순덕은 “문 정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북-미 회담을 위해 미 대선 전 북한 김여정의 방미를 추진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가 코로나19에 딱 걸리는 바람에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불발됐다. 이 정권이 그토록 절실하게 트럼프 재선을 원한다는 건 모두가 알게 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 지지율이 바이든보다 뜨지 않자 김어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을 해야 한다’ ‘바이든이 뭘 특별히 인상적인 걸 남긴 기억이 없다’며 수도권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오바마 3기가 되는 것인데 오바마 시절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은 한국 입장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북한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순덕은 한 여당 의원이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김어준, 유시민 방송대로 질의하더라”며 개탄했다는 걸 소개하면서, “김어준이 아무리 정신적 대통령이라 해도 집권 세력의 싱크탱크는 아니다. 일국의 장관, 대통령을 내다보는 정치인이 라디오 하나 달랑 듣고 국회에서 질의 응답했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나라꼴이 말이 아니어서 그리 말했겠지만, 그게 바로 무당형 팬덤 정치의 민낯인 걸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김어준의 권력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의 머릿 수와 더불어 그들의 열정에서 나오는 것인지라 문재인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진짜 대통령은 사법부를 비난하거나 모욕할 수 없지만, 정신적 대통령은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팬덤의 화끈한 지지를 더 누리기 마련이다. 2020년 11월 김어준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당시 경남지사 김경수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맹비난했다. 그것도 선고 후 이틀 연속 “억지 (판결)” “야비하다” 등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방송에서 써가며 비난했으니, 이런 방송을 내보낸 교통방송은 스스로의 정체를 유튜브로 착각한 건 아니었을까.
진보적 사회비평가 박권일은 2020년 12월 11일 ‘한겨레’에 기고한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코로나19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나온 ‘마스크 거부 운동’을 비판하면서 김어준을 소환했다. 박권일은 “설마 그런 주장들이 무슨 영향이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이들에게 “고개를 들어 김어준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K값’ 운운하는 대선 개표 조작설을 제기해 공론장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놓고, 또 수많은 음모론이 대부분 오류로 드러난 후에도 일말의 사과 없이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맹활약 중이다. 이후 김어준을 벤치마킹해 개표 조작설을 제기하는 극우 세력을 보면서, 우리는 ‘김어준이라는 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생생히 목격했다. 특히 유튜브 전성시대가 도래하며 수많은 ‘김어준들’이 원본의 존재감을 위협할 기세로 증식하고 있다. 이제 김어준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다.”
김어준과 ‘부족 동맹’ 맺은 민주당
2021년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2021년도 국정감사에서 이강택 TBS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다음 날 법무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중징계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자 김어준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본인의 검찰총장 임기를 내가 보장해 줄게’ 이렇게 한 것”이라며 “검찰과 사법이 하나가 되어 법적 쿠데타를 만들어낸 것 아니냐”고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런 오만방자함을 인내했어야 했던 걸까. 시사평론가 유창선은 같은 해 12월 2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방송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며 “세금 낼 거 다 내고 배제되는 65%의 시민들은 도대체 무슨 꼴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는 TBS 개혁과 김어준 퇴출을 공약으로 내세워 주기 바란다”라고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당시 야권의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교통방송에 교통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개 방송인’이 정치적 망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의 교통방송 지원금 중단과 김어준 방송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2020년 12월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서울교통방송 뉴스공장 김어준의 문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어준이 “너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며 “특히 우리 사회에서 힘든 처지에 있는 분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나선 미투 운동에 대해 초기부터 음모론을 제기해 피해자에게 고통을 줬다”는 것,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 “기자회견 문서도 직접 쓴 게 아닌 것이 명백해 보인다. 냄새가 난다”고 한 것 등 여러 사례를 제시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김어준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와 교통방송, 그리고 바로 민주당이 문제였다. 이들은 김어준과 부족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던바, 결국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었다. 금태섭에 따르면, “여당 중진 의원들도 그 방송에 출연하려고 줄을 서서 그가 지휘하는 방향에 맞춰 앵무새 노릇을 하고 그의 눈에 들면 뜨고 눈에 나면 죽는 것이 현 여당의 현실이다.”
금태섭의 글에 대해 즉각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민주당 의원 우상호가 페이스북 반론에 나섰다. 그는 “금태섭 전 의원이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을 문제 삼았다”면서 “서울시장이 되려는 사람의 목표가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아니라, 고작 김어준 퇴출이었다니 어안이 벙벙하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또 그는 “김어준의 성향과 스타일이 일반적 저널리스트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라며 “그는 성향은 드러내되 사실관계에 기초한다는 철학이 분명한 방송인”이라고 평가했다.
금태섭의 진단이 옳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주려고 했던 걸까. “김어준은 성향은 드러내되 사실관계에 기초한다는 철학이 분명한 방송인”이라는 말은 김어준조차 동의하지 않을 궤변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주장에 대해 진중권은 “법원의 판결로 보도가 허위로 밝혀져도 그는 정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우 의원 말대로 그가 ‘방송인’이라면 진즉에 퇴출당했을 게다. 그 짓을 하고도 여전히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은 이 정권에서 그의 위상이 단순한 ‘방송인’ 이상임을 뜻한다. 한마디로 그는 정권을 지탱하는 대표적 프로파간디스트다”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김어준이 한 것은 ‘오보’가 아니다. 오보는 의도되지 않은 허위다. 오보에는 ‘정정’이 따르고, 청취자는 머릿속으로 그릇된 정보를 지우기 마련이다. 프로파간다는 다르다. 애초에 의도된 허위이기에 절대 교정되지 않는다. (…) 권력은 김어준·유시민 같은 선동가들이 ‘콘크리트 지지층’의 창출과 유지에 필요한 존재임을 잘 안다. 게다가 40%에 이르는 그 콘크리트는 동시에 시청률을 떠받치는 열광적인 청취자이기도 하다. 결국 권력과 자본의 공통 이해가 이들 선동가의 활약에 이중의 보호막을 제공하는 셈이다.”
정청래는 누구에게 어필하고 싶었나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공식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추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러자 정청래는 다음 날 페이스북에 김어준을 향해 “뭐, 뉴스공장을 폐지한다고? 방송 탄압을 진압하겠어”라며 “쫄지 마, 계속해”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는 안 될걸”이라며 “왜? 정청래 형아가 있잖아”라고 했다.
보기에 따라선 참으로 아름다운 브로맨스가 아닐 수 없었지만, 김어준이 쫄 거라고 본 건 정청래의 착각이었다. 아니 정청래로선 김어준의 팬덤에 어필하고 싶었을 뿐, 김어준이 자신보다 훨씬 센 권력의 소유자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게다. 김어준은 정신적 대통령 자리를 유시민과 분점하고 있긴 했지만, 둘의 위상은 ‘떠오른 태양’과 ‘지는 태양’의 차이와 같았다. 게다가 김어준은 민주당의 실세 중의 실세라 할 이해찬까지 사로잡은 인물이 아니었던가.
이와 관련, 금태섭이 2021년 1월 하순 SBS 논설위원 윤춘호와 인터뷰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탈당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이해찬 대표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죠. 언젠가 이해찬 대표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나는 눈이 나빠서 책을 못 봐’ 이러시는 거예요. 대신 유튜브를 본다면서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다면서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 정말 실망했습니다. 사실은 그때 탈당할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 김어준을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생각하는 당대표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안에서 고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느낌이 그때 확 들었거든요.”
이거 참으로 기가 막힌 일 아닌가. 오죽하면 진중권이 서구 사회에서 ‘엽기적 간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라스푸틴이란 이름까지 소환했을까.
“당대표가 책 대신에 그의 유튜브를 보고, 의원들이 중요한 일을 그와 상의한다. 마치 제정러시아 말기 황제 부처가 괴승 라스푸틴에게 국정을 자문하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김어준이 ‘무학의 통찰’로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 것처럼, 무학의 승려도 혈우병 황태자의 피를 멈추는 ‘영빨’로 궁정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즈음 유시민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1월 22일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한 사과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진정성을 갖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건 나중에 드러나지만, 어찌 됐건 그는 사과를 하긴 했다. 이 점에선 김어준과는 달랐다. 진중권은 그 이유를 “애초에 하는 게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어준은 토론이나 논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가 하는 것은 진위를 가리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역할은 교주의 그것과 비슷하다. 사이비 교단 안에서 교주는 신의 노릇을 한다. 신이 어디 인간과 논쟁하던가. 신이 ‘빛이 있으라’고 하면 빛이 생기듯이 김어준이 ‘냄새가 난다’고 하면 정말 음모가 존재하게 된다.”
언론학자로서 공영방송 퇴행에 분노한 탓
서울시장 선거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서초구청장 조은희는 2월 15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 공장장(김어준)은 이용수 할머니 때는 배후가 있다, 미투 때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공작이다, 정경심 교수 재판 때는 법복을 입고 정치를 한다, 윤석열 때는 일개 판사가 쿠데타한다고 했다”면서 편파 방송 사례를 제시했다. 그러자 김어준이 대뜸 꺼낸 말이 걸작이었다.김어준은 “TV조선을 너무 많이 보신 것 아닌가”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김어준식 편가르기의 정수(精髓)다. 그의 추종자들이 상대편의 주장을 반박할 때 즐겨 쓰는 레토릭이기도 했다. TV조선과 조선일보는 그들에게 ‘악마’와 같은 언론이기 때문에 이 매체들에서 나온 이야기는 굳이 반론의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무슨 조선일보(TV조선)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라는 한마디로 족하다. 말도 안되는 궤변의 극치임에도 증오에 눈이 멀면 스스로 그게 꽤 그럴듯한 반론이라고 여기는 심리 상태가 조성된다.
그게 바로 유시민이 말한 ‘악마화’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김어준 역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악마화’는 늘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대립하는 상대방은 온갖 부정적인 특성을 다 갖고 있을망정 결코 악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어준이 현재 누리는 위상과 자리는 끊임없이 적과 악마를 만들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게다.
공영방송에서 정파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두 개로 찢어놓으면서 무책임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를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방송 진행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행태가 반복된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대상은 진행자가 아니라 PD들, 담당 간부들, 방송사 대표, 방송 규제 기관들이다. 그들에게 프로그램 통제권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열성 지지자가 많아 청취율 1위의 ‘효자상품’인 데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권 실세들이 사랑한 진행자인지라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따져 물었어야 했다.
김어준 이야기는 앞으로 더 연재해야 할 것 같다. 이건 대한민국의 작동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어준 옹호자들이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나 ‘방송의 자유’를 들고나와 그를 옹호하는 건 역겹기조차 하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건 독선이다. 죄송하다. 언론학자로서 공영방송의 퇴행에 대해 분노한 탓이다.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아무리 편을 갈라 진영 전쟁을 벌인다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는 법이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선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당신이 진보라면 ‘보수의 김어준’을 옹호하거나 용인할 수 있는지 말이다. 물론 ‘진보의 김어준’이 진보를 망쳤듯이, ‘보수의 김어준’도 보수를 망치겠지만, 우리가 서로 망하자고 정치를 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잖은가.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10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