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 1년 만에 평가 뒤바뀌어
주가 9만 원대→2만 원대,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
이자수익은 늘었으나 플랫폼 사업 수익은 줄어
예대마진 의존하는 기존 은행과 차이 없어
[앱스토어 캡처]
“주가 하락 과정에서 상장 초기의 버블이 해소된 측면이 있다.”(SK증권)
지난해 8월 코스피에 상장한 카카오뱅크가 1년여 만에 다시 금융권 안팎의 관심을 받고 있다. 1년 전 카카오뱅크가 은행업계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에는 시장의 실망감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상장 당시 카카오뱅크의 기세는 대단했다. 출범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은행의 몸값이 국내 1위 금융 그룹인 KB금융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기존 은행권에서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 카카오뱅크는 상장 첫날 시가총액 33조 원을 넘기며 단숨에 ‘금융 대장주’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KB금융의 시가총액은 22조 원 정도였다. “넘버원 리테일 뱅크이자 금융 플랫폼이 되겠다”던 카카오뱅크의 목표가 현실화하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KB, 카뱅 블록딜로 4200억 원 회수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이제는 카카오뱅크의 기대와는 다르게 흐르고 있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올해 8월 들어 잇따라 최저가를 기록하는 등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9월 5일 기준 카카오뱅크의 주식 종가는 2만5600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8월 고점(9만2000원)과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카카오뱅크의 주가가 가라앉는 배경으로는 우선 대외 요인들이 꼽힌다. 먼저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내 주식시장 역시 전반적으로 약세를 나타내는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카카오뱅크는 상장 당시 기존의 전통 은행주와는 달리 미래 성장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이른바 ‘성장주’로 여겨진 바 있다. 올해 들어 이런 성장주들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서 카카오뱅크도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 카카오뱅크의 주주이자 초기 투자자인 KB금융이 카카오뱅크 지분을 대량 매도하면서 금융권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KB금융은 카카오뱅크 출범을 도운 업체라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 KB금융은 카카오뱅크의 주요 주주로 핵심 인력을 파견했는데, 일부 직원은 KB금융에 복귀하지 않고 카카오뱅크에 남기도 했다.
KB금융은 일단 재무 건전성 개선 차원에서 지분을 팔았다는 대답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KB국민은행은 8월 18일 장 마감 후 그간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뱅크 주식 3800만 주 가운데 38.8%인 1476만 주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도했다. 가격은 주당 2만8704원으로 이날 종가 3만1200원보다 8% 낮은 수준이다. 이를 통해 국민은행이 회수한 자금은 4200억 원가량이다.
통상 블록딜이 이뤄질 때 7~8%가량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주식매매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 가격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장의 관심은 KB금융이 이 시점에 왜 지분을 대량 매각했는지에 쏠렸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부 자본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매각했다”는 원론적인 설명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자본 건전성은 당장 4000억 원가량의 현금이 필요할 만큼 나쁜 수준이 아니다. 올해 2분기 기준 KB국민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은 17.4%다. 전 분기(17.7%)보다 0.3%포인트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BIS비율 최소 권고치(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국내 은행들의 BIS비율 평균 15.52%보다도 높다.
KB국민은행의 실적도 지속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누적 순익은 1조726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4226억 원보다 21% 늘었다. 급하게 자본 건전성을 높일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KB국민은행은 블록딜을 한 지 4일 만인 8월 22일 티맵모빌리티와 전략적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해 20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다. 당장 ‘돈’이 급했다기보다는 투자 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래 두고 물음표 늘어
시장에서는 KB금융이 카카오뱅크 지분을 가지고 있어봤자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카카오뱅크 주가가 지속해 하락하고 있는 데다 증권가에서도 향후 성장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고서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카카오뱅크가 최근 내놓은 실적 역시 뚜렷한 성장성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카카오뱅크는 올해 상반기 순이익 1238억 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만 보면 전년보다 6.7%가량 증가한, 역대 최대치다. 하지만 2분기만 놓고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이다. 2분기 기준 당기순이익은 57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7% 감소했다.
2분기 실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카카오뱅크의 주 수입원인 이자수익은 늘고 있다. 전체 영업수익 중 이자수익은 지난해 2분기 1792억 원에서 올해 2분기 2929억 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카카오뱅크가 그간 강조해 온 ‘플랫폼’ 사업 수익은 같은 기간 222억 원에서 216억 원으로 되레 줄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뱅크가 가계대출 예대마진에 의존하는 기존 은행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KB금융의 지분 매각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실제 증권가에서도 이런 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들이 나왔다. DS투자증권은 8월 말 ‘플랫폼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나민욱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의 여신 포트폴리오는 가계 부문에 편중돼 있어 현재와 같은 가계 금융 침체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며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으로서의 증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용카드 사업 직접 진출 가능성과 내년 상반기 펀드 판매 목표를 밝혔으나 플랫폼 수익이 가시화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밖에 KB증권과 한화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SK증권 등이 카카오뱅크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낮춰 잡기도 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가계대출 시장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하면서, 카카오뱅크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약화하는 추세”라며 “상장 초기 수급 요인 때문에 형성됐던 버블이 해소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카카오뱅크의 목표 주가를 기존 5만4000원에서 3만6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뱅크가 내세우는 높은 월간활성화사용자수(MAU)를 되레 단점으로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이미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2가량을 끌어모았는데도 차별화한 수익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희소성’은 앞으로도 높게 평가받을 듯
물론 이런 판단은 다소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카카오뱅크가 점차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 성패를 단언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지적도 있다. 결국 카카오뱅크가 이런 비우호적 흐름 속에서 다시금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구경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카카오뱅크의 장점, 즉 초대형 플랫폼 계열사로서의 메리트와 무점포 수익모델의 우위 등은 증시 환경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장기간 지속될 이슈”라며 “국내 은행 중 카카오뱅크처럼 산업의 변화를 이끌 만한 기업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희소성’은 앞으로도 높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