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지식의 개방·확산
축약 통한 조어력이 한문 매력
좋은 번역=신(信)·달(達)·아(雅)
한문 등한시, ‘심심한 사과’ 논란 초래
한국만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8월 30일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신승운 원장은 “한국 고전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신승운(71)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은 한국 고전 번역계의 거목(巨木)이다. 1974년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 민족문화추진회(민추) 산하 국역연수원 1기로 입학한 이래 민추 국역연구부 전문위원, 성균관대 교수(문헌학·한문번역학)와 동아시아학술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약 50년간 ‘국역 외길 인생’을 걸었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 역사상 처음으로 원장에 연임(2017, 2020)된 인물이기도 하다. 출범 당시엔 설립준비위원으로서 ‘산파’ 역할을 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1965년 학술·문화·예술계 원로 50인이 주도해 설립한 민추에서 비롯해 2007년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으로 재출범했다. 원전(原典)정리, 고전 문헌 및 역사 문헌 번역, 한국학 연구 등이 주요 사업이다. 대표적 결과물로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2000여 권의 번역본을 비롯해 ‘계원필경집’ ‘매천집’ 등 1259종의 역대 한국 문집을 종합 정리·번역한 ‘한국문집총간’이 있다. 이러한 성과를 전자 데이터화한 ‘한국고전종합DB’로 구축해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고전종합DB 이용자는 240만 명, 조회수는 3400만에 이른다. 2018년부터는 ‘동현주의’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문집 이외의 한국 고전을 정리한 ‘한국고전총간’ 편찬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역사 문헌 번역이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사진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정종실록’. [한국고전번역원]
세상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역사를 함께했습니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자면 어떻습니까.“세종대왕 시절 한글이 창제됐다고 해도 문자 생활은 쭉 한문으로 했습니다. 한글만 쓴 지가 채 100년이 안 됐어요. 한국 역사에서 모든 중요 기록은 전부 한자로 돼 있어 소수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헌을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해 낸 것이 한국고전번역원의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고전 창고의 개방이자 확산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한국고전종합DB가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혹시 보완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까.
“과거엔 책으로 지식을 접했지만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어요. 이젠 전자 데이터베이스화하지 않으면 이용이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학자, 연구원은 물론 일반인까지 한국 고전을 접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부 한국고전종합DB를 이용하죠. 더 많은 고전이 추가됐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미수록된 것이 많습니다. 이 점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고전 번역을 하는 목적은 결국 한국 지식의 총량을 증가시키기 위함이니까요.”
한국고전번역원이 간행한 ‘한국문집총간’은 1259종의 역대 한국 문집을 종합 정리·번역한 작품이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가 약 50년 동안 고전 번역 분야에서 일하며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이미 약 240년 전에 ‘사고전서’라고 해서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긴 문헌을 집대성한 총서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런 것이 없었죠. ‘우리도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 말까지의 문집을 모두 모은 총서를 만들자’는 생각에 민추 시절부터 사업을 추진했고, 그 결과물이 ‘한국문집총간’입니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면 모두 볼 수 있죠. 아마 국내외 한국학 관련 학자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제 해외의 주요 대학 동양학 자료실에 가면 사고전서 옆에 한국문집총간이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70대입니다. 하루로 치면 저녁 무렵인데, 어떤 것보다 보람 있는 일로 느껴져요.”
신승운 원장의 ‘고전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 원장은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다른 건 몰라도 한문 공부는 참 좋아했고, 잘했다. 한문 공부를 일로 삼아 평생을 지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상상도 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됐지만 한문 공부에 대한 열정은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한학자 고(故) 임창순 선생이 설립한 태동고전연구소로 가 공부했고, 이것이 민추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한문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어의 80%는 한자에서 비롯된 조어입니다. 한자를 몰라도 한자어는 말하게 되죠. 한글의 역사가 600년이 안 됐기도 하고, 한자의 우수한 축약성 때문입니다. 축약을 통한 조어력이야말로 한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한평생을 고전과 함께했습니다. 고전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전이라는 글자 자체가 ‘옛 고(古)’에 ‘책 전(典)’이죠. 오래된 책. 뜻 자체는 고서(古書)와 같은데, 고서 가운데 모범이 될 만한 것을 고전이라고 합니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와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내면 타인의 선생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물론 옛것만 익히면 지루하고, 딱딱하고 의미가 없죠. 하지만 고전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내면 달라요. 과거 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약성서에도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잖아요. 현재의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은 과거의 ‘데자뷔’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의 것을 다시 씹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의미를 알아낸다면 고전은 전혀 ‘낡은 것’이 아니에요. 고전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찾아 적용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다만 고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고전을 통해 미래를 예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금고일반(今古一般)이죠. 지금과 옛날은 같거든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죠. ‘예전엔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지금과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느냐’고요. 물론 물질은 변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 본질은 같아요. 즉, 인류는 도구를 발전시켜 왔지만 ‘인간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거죠. 어떤 사람을 알려고 할 때 그 사람이 지나온 과거를 알지 못하면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죠. 오늘은 어제와 연관되고, 내일은 오늘과 연결돼 어제와 내일이 같은 것입니다. 사람만 바뀔 뿐 이러한 원리는 변하지 않을 테고요.”
한국고전번역원의 한 축이 ‘고전’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번역’이다. 신승운 원장은 “번역은 번역자의 역량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며 “중국, 일본도 국가기관을 통해 번역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 세계화, 번역에 달려 있어
한국 고전을 번역함에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습니까.“한국 고전은 대부분이 한문으로 쓰였습니다. 한문을 쓰는 나라가 중국, 일본, 베트남까지 있으니 그 나라들의 고전과 한국의 그것이 같을 거라고 생각되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고전을 중국인은 번역하지 못해요. 왜냐면 한국인이, 한국식 한문으로 썼거든요. 우리 고전은 우리가 번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번역’이라 함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중국 번역가 ‘엄복’의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엄복은 좋은 번역이란 3가지 조건, ‘신(信), 달(達), 아(雅)’를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번역된 내용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즉, 번역 전과 후가 등치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전달 능력입니다. 소통이 안 되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론 우아한 문체로 쓰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도 한참 동안 번역을 했고, 후배들 역시 힘쓰고 있지만 늘 괴로워하는 문제입니다.”
신승운 원장은 이 대목에서 “번역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한류가 대표적 예”라고 말했다.
번역이 한류를 창출한다?
“다들 드라마 ‘대장금’을 알고 있을 거예요. 대장금은 ‘중종실록’에 이름 몇 번 등장할 뿐 구체적 기술(記述)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전 번역을 통해 드라마의 소재로 삼을 수 있었죠. 또 영화 ‘왕의 남자’도 예로 들 수 있어요. ‘연산군일기’에 공길이라는 사람이 연산군에게 한 몇 마디 간언을 했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번역되면서 영화산업을 키운 거죠. 번역이 많이 이뤄질수록 한류도 커질 수 있습니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은 한류로 이어지고 있지만 고전과 같은 문학은 한류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번역된 고전’ 자체의 힘은 아직 약하다고 볼 수 있죠. 고전이라고 일컫는 것들이 대개 대중화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대형’인 상태로 놓여 있죠. ‘조선왕조실록’이 약 400권이고 ‘퇴계집’만 해도 10권이 넘으니까요. 번역을 해도 많은 사람이 읽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정수만 재편집해 학생, 일반인, 학자 등 대상에 맞춰 재가공한다면 문학도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甚深한 사과 논란 또 나오지 않으려면…
2017년 11월 22일 신승운 원장이 한국고전번역원 10주년 기념식 및 국제학술대회에서 단상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1965년 결성된 민족문화추진회가 전신이며 2007년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으로 지정됐다. [한국고전번역원]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분명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조선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나라였기에 공자의 학문, 경전을 숭상했고 이를 발전시킨 사람을 최고의 인물로 여겼죠. 따라서 유교 경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현실의 정치권력과도 이어지곤 했습니다. 지식이 권력이고, 돈이고, 벼슬인 때였죠.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도 과거엔 그랬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번역하는 것이 지식 권력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현재는 다릅니다. 살아 있는 제도, 권력이 아니라 지나간 그것들을 번역하고 있죠. 중국·일본의 근대화 시절 행해졌던 번역의 의미와 같게 바라봐선 안 됩니다. 번역이 중요한 점은 사실 다른 부분에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번역, 특히 고전 번역을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근원’을 파악함에 있습니다. 개인으로 보면 조상이고, 국가로 치면 역사죠. 현재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과정입니다.”
신승운 원장의 강조가 무색할 만큼 고전 번역 사업의 현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심화된 인문학 등한시 현상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갈수록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한문 교육과 줄어들고 있는 한국인의 한문 활용 및 독해 능력도 어려움을 더한다. 신승운 원장은 단적인 예로 8월 발생한 ‘심심(甚深)한 사과 논란’을 들며 “한문을 보호 학문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논란은 8월 20일 서울의 한 카페가 트위터를 통해 예정돼 있던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며 올린 사과문에서 비롯했다. 이 글에 누리꾼들이 “심심한 사과? 너희 대응이 아주 재밌다” “심심하다는 표현 때문에 더 화난다. 꼭 ‘심심하다’라고 적었어야 했나” “사과문에 ‘심심하다’라는 단어를 집어넣다니” 등의 댓글을 달며 한국인의 문해력 문제가 불거졌다.
고전 번역 사업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모든 일은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오랜 기간, 꾸준히 하려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야 하죠. 고전 번역 사업도 당연히 그렇고요. 한 때는 한문교육과·한문학과가 없는 대학이 없었고, 학생도 많았어요. 근래 들어 차츰 수가 줄어들고, 학과 이름도 다른 학문과 연결해 모호하게 바뀌고 있어요. 이는 학문이 시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니까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종’으로 지정하듯 한문 교육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특별 대책이 필요한데…. 상황은 열악합니다.”
열악하다는 것은….
“매년 국정감사 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곤 하지만 딱히 효과는 없어 보여요. 국회의원이 여럿 있지만 다른 사안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한국고전번역원)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을 때도 있어요.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앉아 있으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 마디 해라’ 하는 정도죠. 한문 교육 분야를 지원하지 않으면 향후 고전 번역이 이뤄지지 않으리란 점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심한 사과 논란과 같은 문제도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요. 현재 학계·교육계 상황을 보면 이러한 논란이 불거진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한자를 등한시한 기간이 제법 오래됐습니다. 십수 년은 된 듯해요. 성균관대 교수 시절 편입생들의 성적을 보면 영어는 기껏해야 1, 2점 차이밖에 나지 않더군요. 변별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자는 다릅니다.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심심한 사과 논란이 근래 드러났을 뿐,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겁니다. 한국 인문학에서 한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영어의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한국의 역사·문화·풍속에 관한 자료가 모두 한문을 쓰던 시절 형성됐어요. 자료는 그대로인데, 사람은 변하고 있으니 ‘남의 나라’가 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고기만 먹고 살 수 있나
인문계열 학문이 ‘찬밥’ 취급을 당하면서 ‘이과 쏠림’ 현상은 더 팽배해지고 있다. 5월 종로학원이 초등학생·중학생 학부모 2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1%가 “이과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90.2%가 이과 진학을 희망했다. 이른바 이과의 ‘문과 침공’ 현상도 두드러져 인문계열의 영역은 더 좁아지고 있다. 7월 유웨이닷컴이 456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과생 응답자의 54.9%가 ‘정시모집에서 인문계 모집단위에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년 동기 조사 당시 응답률 31.3%보다 23.6%포인트 대폭 늘어난 수치다.취업난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문계열 전공자의 취업률은 50.6%로 모든 전공 중 가장 낮았으며, 월평균 초임은 220만 원으로 전체 평균(250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근래 대학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반도체학과 신설’ 열풍과 7월 29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나타난 ‘외고 폐지’ 방침도 인문계열 외면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 신승운 원장은 “대학의 정원은 정해져 있는데, 반도체학과를 신설한다는 것은 결국 인문계열 학과 정원을 희생하겠다는 뜻”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고전 번역은 물론 인문학 자체를 ‘쓸모없는 학문’으로 여기는 현상이 심화된 듯합니다.
“말씀드렸듯 인문학은 우리 스스로를 알기 위한 학문입니다. 무언가를 알려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답답한 실정입니다. 대학은 생산성에 맞춰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사람이 고기만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며칠만 살아보면 그럴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마치 한쪽 발로만 걷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두 발 중 한쪽이 유독 튼튼해도 나머지 한쪽이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해요.”
해결책이 있을까요.
신승운 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국가 차원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년에 약 200억 원에서 250억 원의 예산을 받습니다. 직원이 약 150명에 번역을 맡아 하는 외부 인원도 또 160명쯤 있습니다. 그런데 예산은 올려주지 않으면서도 출판비는 계속 깎고 있어요. 번역을 마쳐도 출판을 할 수 없어 간행되지 못한 책이 300권은 됩니다. 제 임기가 6개월쯤 남았는데, 한국고전번역원의 미래가 걱정이에요. 국가 방침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한글로 쓰인 ‘우리의 글’이 얼마 없다고, 번역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면 제대로 해야죠. 제가 20대 시절 주변에서 자주 하던 말이 ‘한강 다리 하나 놓는 돈이면 한국 고전 전부를 번역한다’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문화 분야 예산의 1%만 있어도…’라는 말이 나온 지가 벌써 오래전부터의 일입니다. 학술 예산은 더 짜요. 200억 원은 이공계 분야에선 대학의 작은 프로젝트 수준의 예산이거든요. ‘한국의 것’은 한국이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문명국가, 예컨대 중국이라면 자국이 하지 않아도 타국이 하겠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하니까요. 한국의 고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꼭 필요합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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