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건 진보건 그놈이 그놈이지요”
SNS 통한 직접 호소와 피포위의식
절박한 과거에서 비롯한 안면몰수 화법
“6·1 보궐선거 당선 뒤 김종인에게 전화”
성남라인 중용, 여전한 아웃사이더 기질
7인회 김영진과 멀어져? “뗄 수 없는 관계”
“필요하다 생각하면 설훈에게도 손 내밀 것”
“親文, 이재명 사법 리스크 낙마 기다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8·2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59) 후보는 77.77%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됐다. 2위를 한 박용진(51) 후보는 22.23%를 얻는 데 그쳤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85일 만에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73일 만에 169석 거야(巨野)의 사령탑이 됐다. 임기는 2024년 8월까지다. 대표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같은 해 4월 열리는 22대 총선 공천권도 행사한다.
아직 이르지만 야권의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도 독주 체제를 갖췄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9월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면접조사를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 물은 결과 범야권에선 이 대표가 33.6%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15%, 김동연 경기지사 5%, 박용진 민주당 의원 3.3% 순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으로 좁히면 이 대표는 69.7%로 10.7%에 그친 이낙연 전 대표를 7배 가까운 격차로 앞섰다. 성별, 연령별 기준 등 모든 유권자 층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응답률은 14.8%.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지금은 윤석열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재명의 시간이기도 하다.
여의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공존한다. 스스로 주류라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주류에 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국의 유권자는 대개 후자에게 홀린다. 여론은 핍박받는 자의 편이다. 화려한 고(高)스펙을 가진 이들이 대권 문턱에서 번번이 고꾸라진 건 그런 분위기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 이전까지 한국 학벌의 정점인 서울대 법대 출신 대통령은 1명도 없었다.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대권 9부 능선에서 무너졌다. ‘귀족 이회창 vs 서민 노무현’은 어떤 식으로도 이회창이 이기기 어려운 구도다. 주류 중 주류인 윤 대통령은 권력과 대립각을 세우며 정치적 에너지를 획득한 뒤에야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두 종류의 정치인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은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요소를 고루 갖춘 사람이다. 널리 알려진 드라마틱한 성장담을 몇 덩어리로 요약하면 이렇다. 가난 탓에 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소년 노동자로 일했다. 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가명을 썼다. 산업재해로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이재명은 숱한 위기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내달려 온 신화적 인물이다. ‘이재명 스토리’는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는 ‘신동아’ 2020년 7월호 인터뷰에서 ‘소년공이 정치가를 꿈꾼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치가를 꿈꾼 적은 없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산재도 당하고, 장애인도 되고, 폭력도 많이 당하고, 돈도 많이 떼였다. 그게 제 운명인 줄 알았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개인의 운명이거나 본인이 부족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불공정의 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좀 바른 세상,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인권변호사가 됐고, 시민운동도 했고, 도지사가 됐다.”
약 반년 뒤 진행된 ‘신동아’ 2021년 3월호 인터뷰에서는 ‘어려서 겪은 불공정에 대한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내놨다.
“머리로 배운 지식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삶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다. 저 스스로 또는 저의 가족들과 이웃이 현장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 지금도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을 만들거나 특별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2020년 6월 12일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가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스스로를 “조직, 정치적 유산, 학연, 지연, 혈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혈혈단신”이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여기에는 변호사로 일하다 40대 중반부터 직업 정치에 뛰어든 자신도 주류에 속한다는 인식은 없어 보인다. 1998년부터 분당의 ‘대장주’ 아파트라는 수내동 양지마을 1단지 금호아파트 164.25㎡(50평형)에 살아왔는데도 그 이전의 빈곤 경험에서만 정치적 자양분을 찾는다. 60년 가까운 인생에서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보다는 용으로 살아온 인생이 분명 길진대, 여태 가붕개의 망탈리테(mentalité·정신구조)를 과시한다.
그러니 그가 가진 인식의 자장 안에서 대척점에 놓인 건 조직과 정치적 유산, 각종 연줄로 얽힌 ‘주류’ 세력이다. 고로 이재명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세상을 주류와 비주류의 아수라장으로만 볼 수는 없을 텐데, 일단은 자신이 상층부라고 규정한 세력과 싸우는 걸 소명이라고 여긴다.
사석에서의 이재명
이재명은 언론이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말할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그의 측근이나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 꺼내 놓는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이런 일화들을 통해서도 이재명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재명과 만난 경험이 있되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에게서 들을 말도 있을 것이다.그즈음 떠올린 인물이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신평 변호사다. 2년여 전쯤 신 변호사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과거 이재명 성남시장과 있었던 일화를 말한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3기로 18기인 이재명의 5기수 선배다. 과거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기득권자의 탐욕에 의한 사회구조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었다. 이런 이재명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순수한 진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신 변호사는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지금은 이재명과의 접촉면이 없는 터라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할 수 있다고 봤다. 그와 나눈 문답이다.
과거 이재명 성남시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 기억이 나는데.
“이종배 사법시험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 대표(현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가 2017년 (서울 양화대교에서) 고공시위를 한 적이 있다. 사시 존치를 주장하면서 (다리에)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어쨌든 사람 목숨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싶어 이종배 대표를 설득할 만한 사람을 물색했다. 아무래도 이재명 시장이 가장 낫겠다 싶어서 급히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가서 설득을 좀 해달라고.”
그랬더니 뭐라던가.
“급히 처리할 일이 있었던지 밤 9시나 10시쯤 돼서야 내 문자를 읽은 모양이더라. 그리고 ‘지금 바로 가겠다’는 답장이 왔다. 이 시장이 출발하려는 찰나에 마침 농성이 풀렸다고 해서 내가 다시 ‘가시지 않아도 되겠다’고 연락했다. 여하튼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 바쁜 와중에도 성남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가겠다고 한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주 훌륭하게 봤다. 그가 가진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고.”
성남시장실에서도 만난 적이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 초기였는데, 시장실로 가서 이 시장과 잠깐 환담을 했다. 이 시장을 만난 김에 ‘우리가 촛불혁명이라고 했는데,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사회 개혁 의지도 없이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니 답답하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됐는데 왜 우리 사회에는 변화가 없을까’라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이 시장에게서 ‘그놈이 그놈이지요. 보수건 진보건 번갈아가면서 다 해먹은 게 현실 아닙니까’라는 말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왔다. 그 말은 준비해서 꺼낸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그대로 나온 거다. 그때 이 사람이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시정 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경기지사도 됐고 대통령도 될 뻔했다. 지금은 야당 대표다. 신분이 바뀌었는데 기득권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신분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든지, ‘주한미군이 철수해도 충분히 자주국방 할 수 있다’든지, ‘돈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찍어내서 풀 수 있다’든지 하는 식의 주장을 보면 못마땅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대표가 가진 기득권에 대한 반감과 사회개혁 의지를 조금도 의심하지는 않는다.”
시대 조류와 맞아떨어진 포지셔닝 전략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된 경기 성남시 대장동 아파트 단지. [동아DB]
그는 9월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정쟁 또는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너무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말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서의 정적은 스스로를 지칭한 단어로 풀이된다. 그가 자신을 겨냥한 검·경 수사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비판적 발언을 내놓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자신이 시장일 당시 벌어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이 연합해 적반하장으로 연일 가짜뉴스를 남발하며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2021년 9월 26일)는 논리를 폈다. 두 달여 뒤인 같은 해 11월 6일에는 여기에 한 집단을 추가해 “국민의힘, 부패 토건세력, 보수언론이 삼위일체로 ‘이재명 죽이기’에 올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의 지지자들에게도 ‘기득권에 맞서야 한다’는 시그널로 작동한다. 그가 보이는 특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직접 소통’도 온라인상에서 ‘아웃사이더 투사들’을 만드는 통로다. 그는 전당대회 기간 중 온라인 플랫폼을 열어 “(당원들이)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었지만 “언론이 게이트 역할을 해 자기들이 필요한 것만 통과시키다 보니, 국민들이 당과 소통할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직접 소통을 주장했다.
아웃사이더 이재명과 아웃사이더 투사들인 그의 팬덤을 결속하는 고리는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이다. 적대 세력에 포위돼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셈이다. 피포위의식을 갖춘 사람 사이에는 내부 결속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격받는다는 공통의 정서가 ‘우리 편’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거다.
이것은 시대 조류와 잘 맞아떨어진 포지셔닝 전략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당 일체감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나 버니 샌더스가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서 “2022년 윤석열이나 이재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전통적인 정당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아웃사이더나 포퓰리스트가 각광받게 된 데는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진 탓이 크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말대로라면 오늘날은 주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정치인이 커가기 좋은 토양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은 트럼프가 그렇듯 양극화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진보성향 지식인이 본 李
이와 관련해 이재명이 아직은 민주당 내 2~3위권 대권주자이던 시절 발표된 논문이 한 편 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가 2019년에 쓴 ‘포퓰리즘의 이해와 이재명 현상에 대한 시론적 논의’(사회과학논집 제50권 제1호)다. 채 교수는 과거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을 지낸 진보성향 지식인이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스트는 정당정치의 위기 해결 능력 부족 등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기존 엘리트와 기득권을 공격하고 ‘인민’에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민의를 실현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상화한다.채 교수가 보기에 이재명은 좌파 포퓰리스트다. ①적과 우리의 이분법으로서 법 위의 사회주의 성향의 급진 정책을 추구해 왔다는 점 ②대의정치와 정당보다는 국민직접정치와 SNS 매개로 인민 호소를 추구해 왔다는 점 ③숙의와 토론보다는 선동을 통한 단순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 ④주류 정치에 반대해 온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적 성향이 있다는 점이 근거다. 채 교수와 추가로 통화해 나눈 문답이다.
이 대표가 대의정치와 정당보다는 국민직접정치와 SNS 매개로 인민 호소를 추구해 왔다고 썼는데, 지금은 당대표가 됐으니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당 대표라 해도 당의 절차보다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가신(家臣)들을 중심으로 일처리하는 방식은 똑같은 것 같다. 정치가보다는 행정가 스타일이다. 자수성가형이라 자기 철학도 분명하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친위대(親衛隊)를 동원해 일을 일사불란하게 집행한다. ‘김건희 특검법’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였다. 또 자기 계파와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지지자가 철통 방어를 펴나가는 모양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로 일할 때와 똑같다.”
거대 야당 대표가 돼서도 아웃사이더 기질이 나타나는….
“그렇다.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적 성향, 자수성가형 리더십이 섞인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또 믿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논문에서 사회주의 성향의 급진 정책을 추구하는 점을 들어 좌파 포퓰리스트라 규정했던데.
“(이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나 재벌 해체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서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자기가 하면 가능하다고 항상 주장한다. 현행 질서, 특히 여의도 정당정치 질서를 인정하면 감히 그런 얘기를 못 한다. 이 대표는 국민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국민도 있지만 정당도 있어야 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존 정당정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기득권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정치에서 희귀한 사례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유형으로 보겠다.
“그렇다. 과거에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유사한 스타일이 있기는 했지만 유의미한 대권후보가 됐다거나 당대표 자리에까지 간 적은 없다.”
‘변방장수’와 ‘성남라인’
채 교수의 말에서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가신’과 ‘친위대’다. 먼저 가신 그룹. 이 대표에게는 오랜 시절 손발을 맞춰온 소수의 측근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성남라인’으로 불리는데, 최근 잇달아 주요 보직에 전면 배치됐다. 이재명의 정치 인생은 국회의원 경력 없이 기초단체장부터 시작했다. 그 탓에 주변 인사들 역시 ‘비주류’ 출신이 많다. 지금은 주류 중에서도 요직에 기용할 만한 인재풀을 확보했으나, ‘변방장수’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측근들을 계속해서 중용한다. 이것도 아웃사이더 기질의 표출이다.의원실 4급 보좌관으로는 김남준·김현지 보좌관이 일하고 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김남준 보좌관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일 때 언론비서관을 지냈다. 대선과 보궐선거 때 이 대표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김현지 보좌관은 이 대표와 시민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교유했다. 이 중 9월 8일 김남준 보좌관에게 전화도 걸고 “이 대표 인물탐구 기사를 쓰면서 몇 가지 여쭙고 싶다”고 문자도 남겼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응답은 오지 않았다.
당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에는 정진상 전 경기도청 정책실장이 임명됐다. 정 실장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재임 당시 성남시와 경기도청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대선 때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정 실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한 수사선상에 올라 이른바 ‘대장동 키맨’으로 불린다. 대장동 인허가 관련 결재 문서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검찰은 올해 1월 정 실장을 비공개 소환해 대장동 개발사업의 배임 혐의에 가담했는지 등을 조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정 실장을 요직에 기용하자 민주당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게 나왔다.
그의 친위대 격인 7인회(정성호·김영진·김병욱·임종성·문진석·김남국 의원과 이규민 전 의원) 역시 이런저런 사적 인연으로 묶여 있다. 이 중 김영진·문진석·김남국 의원이 이재명과 같은 중앙대 출신이다. 중앙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진 의원의 경우 이 대표의 계양을 출마와 전당대회 도전에 반대해 거리가 멀어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다만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이 대표의 출마에 반대한 건 맞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에도 둘 사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비유하자면 친인척 관계와 유사하다. 보통 그런 사이에서 내 생각과 다른 길을 가면 쓴소리를 할 수는 있어도 아예 연을 끊지는 않지 않나. 아직 끈끈한 관계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7인회 중 상대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는 인물들이 정말로 이 대표와 가까운데, 문진석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서는 두 가지가 느껴진다. 하나는 이재명이 한번 맺은 측근과의 인연은 쉽게 끊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미디어 노출도가 높은 사람보다는 묵묵히 일하는 스타일의 인물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가신 그룹에 속하는 정진상·김남준·김현지 중 대변인 업무를 했던 김남준 보좌관 빼고는 대외 접촉 빈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생존주의자의 덕목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한 사람은 생존에 사활을 건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하고 누구의 손도 잡아야 한다고 여긴다. 흔히 이재명에 대해 논할 때 거론되는 단어인 ‘순발력’과 ‘실용주의’도 결국 아웃사이더 기질에서 잉태한 것이다.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하면서 주목받은 데는 속도전이라고 불릴 만큼 빠른 그의 집행 능력이 있다. 애당초 대선 슬로건도 “이재명은 합니다”가 아니었던가. 비문계이자 비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중진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정반대 유형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뭘 얘기하면 한 시간 후에 답이 오는데, 이 대표는 과장하자면 0.1초 만에 답이 온다”면서 “정치권에서 가장 반응이 빠르고 순발력 좋은 사람이 이재명”이라고 말했다.
대개 순발력이 좋은 사람은 가치나 명분을 따지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띠게 된다. 밑바닥 삶의 기억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연료를 찾는 사람은 관념성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업가에게는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하겠으나, 공직자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도 될 만한 덕목이다.
진보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신동아’ 2022년 2월호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이상적인 민주화의 가치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배고픈 사람이었다. 1980년대 이후 진보 진영에서 이런 캐릭터는 예외적”이라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왔다”고 평했다. 안 교수의 말대로라면 이재명의 실용주의는 생존주의로부터 벼려진 것이다.
다만 안 교수는 “가치가 약한 실용주의는 그의 한계”라고 전제를 달았다. 많은 언론이 지적했듯이 이 한계로 인해 나타나는 행태가 ‘말 바꾸기’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재명 말 바꾸기’라고 검색하면 언론사 성향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사와 칼럼이 등장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안면몰수 화법’이라 불렀다. 이 역시 이재명이 가진 절박하고 처절했던 과거의 버릇에서 비롯했다는 게 강 교수의 판단이다.
실용주의자가 정치적 관계를 맺는 데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살기 위해서다. 세력이 없이 생존하려면 사람과 벽을 치지 않아야 한다. 앞선 민주당 중진은 “이 대표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라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 대표를 강력히 비판하는) 설훈 의원에게도 손을 내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에게는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황희 의원에게는 국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겼다.
2016년 8월 15일 당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기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이재명은 지난 대선을 한 달여 앞둔 2월 6일에도 김 전 위원장의 개인 사무실을 찾아 약 1시간 20분간 회동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3주 뒤에는 김 전 위원장에게 선대위 공동 국가비전위원장을 제안했다. 보기에 따라 기민한 정무 감각으로 보일 만한 행보다.
그렇다 해서 그가 탕평 인사를 하고 있다고 보면 곤란하다. 자세히 보면 그의 인사에는 어떤 질서가 보인다. 실무 권한이 있는 보직에는 가신과 친위대 그룹을 앉히고, 대외용 보직 인사에서는 다양성을 꾀한다. 믿을 만한 사람만 쓴다는 원칙은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첫 당직인선이 발표된 직후 당 안팎에서는 “친정 체제”라든지 “일해 본 사람만 재기용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친명당?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가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신임 당대표가 최고위원 당선자들과 함께 손을 들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박찬대·고민정 의원, 이 대표, 정청래·서영교 의원. [사진공동취재단]
모양새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이재명당’이 된 것처럼 보인다. 8·2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을 친명계가 차지했다. 이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에 각각 임명한 임선숙 변호사와 서은숙 부산시당 위원장도 친명계다. 친명계 김병기 의원이 수석사무부총장을 맡았고, 역시 친명계로 꼽히는 김성환 의원이 정책위의장에 유임됐다. 7인회 중에서도 김병욱 의원은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김남국 의원은 정책위원회 미래사무부총장, 문진석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있다.
‘주류 교체’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나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당이 똘똘 뭉친 모습이 연출됐지만, 친명계 내에는 또렷한 공통 가치가 없어 보인다. 지금이야 윤석열 정부에 맞서야 해서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을 뿐,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면 계파 갈등의 전선이 곳곳에서 드러나리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당대표 이재명’이 직면한 사법 리스크는 여의도의 거대한 화약고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역시 세간에 널리 퍼진 ‘민주당 주류 교체’라는 분석에 선을 긋는다. 그와 나눈 문답이다.
이 대표의 대권가도는 어떻게 될까.
“대선에서 아깝게 패한 후보가 당대표로 복귀한 사례가 몇 번 있다. 지금 (이 대표의 행보는) 대선 패배 후 8개월 만에 복귀한 이회창 전 총재의 그것과 유사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대선에서 패한 뒤 전당대회 출마까지 약간의 텀을 뒀으니 다른 사례다. 그런데 이회창과 문재인은 대선 출마 전부터 당내 주류였다. 주류가 아닌데 당을 바꾼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 경우는 기존 새천년민주당 대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원래 주류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도 못 된 사람이 당을 자기 당으로 바꿀 수 있느냐’다. 나는 어렵다고 본다.”
전당대회를 통해 이 대표뿐 아니라 친명계가 최고위원단을 차지하지 않았나.
“지금 친문재인계는 이 대표의 사법처리가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기다리는 거지. 어차피 (대선까지)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 대표가 민주당을 ‘친명당’으로 바꾸려면 사법 리스크를 다 넘어야 하는데, 한두 건이 아니다. 하나씩 기소가 이뤄지고 있고 내년이면 1심 재판 결과가 나오는 사건도 있을 텐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이 나오면 다음 대선에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재명이라는 분이 김대중이나 노무현처럼 가치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친문계는 이 대표가 무너지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간다고 보기 때문에 공동운명체로 사법 리스크에 대응할 뿐이지, 민주당이 갑자기 친명당이 됐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친문은 사라지고 친명이 대세가 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 민주당의 한쪽에는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은 호남 세력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친노친문 세력이 있다. 두 세력 외에 현실적으로 (민주당에는) 세력이 없다.”
그렇다면 전당대회 당시 호남 투표율이 낮았던 현상도 설명이 된다.
“나는 호남이 사보타주(sabotage·의도적 태업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본다. 또 친문은 이 대표가 허들을 넘기 힘들다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성남FC 의혹에 대응하는 민주당 측 논리도 이상하잖나. 이 대표가 돈 한 푼이라도 받은 게 있느냐고 하는데, 미르재단에서 최순실이 받은 돈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공여가 적용됐다. 과거에 어느 공직자가 자기가 다니는 사찰에 10억 원을 시주하게 한 것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신평 변호사 역시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보인다”면서 “대선 출마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원히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
‘기소된 당대표’의 존재가 향후 정국에 미칠 파장은 초미의 관심사다. 극적으로 재판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바로 꽃길이 열리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22대 총선에서 지면 임기와 상관없이 그는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대권 행보는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는 승부가 연이어 이어진다.이재명은 ‘신동아’ 2021년 3월호 인터뷰에서 “우리가 언젠가 도달할 최종 목표가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결론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삶이고, 사회인 것이지 궁극적인 최종 종착지는 없다”고 했다. ‘고쳐야 할 것이 왜 이렇게 많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나,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추(反芻)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도중에는 내릴 수 없는 인생. 이것이 이재명이 감당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