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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밥상 살찌우는 쌀의 향연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밥상 살찌우는 쌀의 향연

우리는 양가 엄마를 함께 모시고 종종 여행을 간다. 어쩌다보니 두 분 모두 또래에 비해 일찍 혼자 되셨기에 자연스럽게 넷이 다니게 됐다. 아들이자 사위, 딸이자 며느리인 우리는 엄마들이 즐거워하길 바라며 아늑하고 깔끔한 숙소, 여행지의 맛집, 기억에 남을 관광지 등을 꼼꼼히 찾는 편이다. 대체로 순조로운 우리의 여행 중 걸림돌이 되는 걸 꼽으라면 바로 밥과 떡이다. 식당 사장님이 애써 차려 놓은 고기나 생선 요리를 조금 드시고서는 밥 먹어야 하니 그만 먹겠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재래시장에라도 들르면 떡집 앞에 멈춰 서서 검은 비닐봉지에 떡을 가득 채워 담는다. 그러고는 “오늘 저녁은 맛좋은 떡이다”라며 서로 마주 보고 좋아하신다. 아들과 딸은 떡으로 끼니를 대신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건 잘 안 보이시나보다. 이처럼 엄마들의 떡과 밥 사랑에 막혀 주저앉은 지역의 명물 맛들이 꽤 많다.

쌀알 살아있는 리조토, 재료 푸짐한 파에야

스페인 쌀 요리 파에야는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Gettyimage]

스페인 쌀 요리 파에야는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Gettyimage]

나는 쌀이 풍요로운 시절에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다. 내게 쌀은 곧 매일 먹는 밥이었기에 전혀 애착이 가는 식품이 아니었다. 당연한 밥보다는 특별한 빵에 끌렸다. 문득 살 뺄 결심이라도 하면 밥 한 숟가락보다는 빵 한 조각에 열량을 내어주고 싶었다. 익숙하다고 밀어내던 쌀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쌀이 밥이 아닌 다른 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다음부터다.

편견을 맨 먼저 깨준 것은 이태리식 볶음 쌀요리인 리조토(risotto)다. 쌀을 씻은 다음 살짝 불렸다가 기름에 볶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가며 천천히 익혀 먹는 요리다. 되직하되 부드럽게 엉켜 있는 리조토는 신기하게도 쌀알 하나하나가 동글동글 살아있다. 리조토는 접시에 납작하게 펼쳐 담고 포크로 자르듯이 똑똑 분리해 한 입 한 입 먹는다. 심심한 담음새이지만 맛을 보면 숨겨진 묘미에 웃음이 난다. 살아있는 쌀알이 쫀득하게 뭉개지며 머금고 있던 육즙과 재료의 풍미를 퍼뜨린다. 고소하고 풍요로운 맛이 깊다. 리조토의 맛을 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굵직한 건더기는 되도록 쓰지 않고, 육수, 와인 또는 풍미와 색을 내는 향신료 등을 활용해 쌀에 천천히 맛을 들이며 익힌다.

리조토와 비슷하지만 다양한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가는 스페인의 파에야(paella)가 있다. 채소를 기름에 볶고, 해물과 토마토소스를 넣어 한소끔 끓인 다음 쌀을 넣고 뭉근히 조리한다. 중간에 조개류만 모아 따로 끓인 다음 그 육수를 부어가며 쌀을 완전히 익히고, 잘 익은 조개들을 얹어 장식한다. 파에야 역시 여러 가지로 맛을 낼 수 있는데 건더기가 꽤 푸짐하게 올라가는 편이다. 대체로 콩류는 꼭 들어가고, 다양한 고기, 초리소나 햄, 여러 종류의 채소로 화려하게 만든다. 재료가 여러 가지인 만큼 씹는 맛이나 풍미도 다채로워 재밌다. 두 쌀 요리의 핵심은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게 쌀을 익혀 완성하는 것이다. 직접 만들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만 무척 맛있다.

같은 백미도 쌀에 따라 맛 천차만별

종일 보온밥통에 두더라도 쌀의 질감이 보드랍고 촉촉하다는 보드라미. [농촌진흥청 제공]

종일 보온밥통에 두더라도 쌀의 질감이 보드랍고 촉촉하다는 보드라미. [농촌진흥청 제공]

수향미(왼쪽). 철원 오대쌀. [남양농협 제공, 철원농협 제공]

수향미(왼쪽). 철원 오대쌀. [남양농협 제공, 철원농협 제공]

요즘에는 조리의 번거로움을 벗어던져도 될 만큼 개성으로 무장한 쌀이 다양하다. 똑같은 백미라고 해도 같은 밥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마치 누룽지처럼 구수한 향이 나서 씹을수록 풍미가 좋다는 수향미, 지은 밥의 노화가 느려 식었을 때도 맛이 좋다는 철원 오대쌀, 명품 쌀로 꼽히는 명성에 누구보다 찰지고 부드럽다는 삼광쌀, 윤기가 유난히 좋아 보는 것에서부터 입맛을 돋운다는 백진주, 돌솥밥을 지을 때 최적이라는 영호진미, 하루 종일 보온밥통에 두더라도 뻣뻣함이 없이 보드랍고 촉촉하다는 보드라미를 비롯해 300가지의 백미가 생산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기능과 색을 입은 쌀도 있다. 몸에 좋은 유효성분을 추출해 쌀에 코팅하거나 흡수시켜 만든 동충하초쌀, 인삼쌀이 있고, 영지버섯, 상황버섯 같은 건강식품으로 인정받는 버섯의 균사체를 배양한 쌀도 있다. 칼슘, 키토산, 마그네슘, DHA 등을 첨가한 영양쌀도 있으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필수 아미노산이 함유된 쌀이 따로 있다. 당뇨와 비만의 걱정을 덜어주는 도담쌀, 쌀눈이 3배로 커서 영양은 높고 열량은 낮은 눈큰흑찰, 색이 곱고 찰지며 백미에 부족한 영양을 함유한 찰녹미, 찰홍미도 있다. 쌀 색도 흰 것부터 누르스름한 것, 녹색인 것, 붉은 것부터 검은 것까지 다양하다.



동충하초쌀. [뉴시스]

동충하초쌀. [뉴시스]

쌀의 범주가 이토록 넓어질 수 있는지 감탄스러운 한편 한 종류씩 구해다가 밥을 지어 오롯이 먹어 보고 싶은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다. 쌀을 살 때는 도정 날짜(보름 내의 것), 쌀 수확 시기(올해 적어도 작년 것), 단일품종 여부(혼합미는 품질이 떨어진다), 쌀의 등급(집밥이라면 특, 상, 보통까지를 선택)이 표기돼 있으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혹시 쌀알을 볼 수 있다면 부서지거나 갈라지지 않고 온전한 것으로 고르자.

더불어 한 가지 더! 맛좋은 쌀이 따로 있다는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했던 고시히카리와 아끼바레(추청)는 국산 종자가 아니므로 2023년부터 종자 보급이 중단된다. 그전에 이들을 대신할, 각자 입에 맞는 쌀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신동아 2022년 10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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