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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북한

北 빨치산 혁명 가문의 추락

다른 ‘혁명 정통’ 거세 김정은만 남겨 ‘일원화’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北 빨치산 혁명 가문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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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혁명동지’ 중에서도 김책을 특히 아낀 것으로 보인다. ‘세기와 더불어’ 23장 3절의 제목이 ‘혁명가 김책’이다. 김책만을 위한 별도의 절을 서술한 것. 김책은 김일성 회고록에 249회 등장한다. 김책시, 김책공업종합대학은 6·25전쟁 때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딴 것이다.   

김책의 사망 탓인지 김책가(家)는 권력은 누렸으되 중심에 있진 않았다. 노동당 검열위원장을 지낸 김책의 장남 김국태는 2013년 사망했다. 차남 김정태는 1968년 청와대 습격을 위해 한국에 침투한 1·21 무장공비사건의 장본인(당시 민족보위성 정찰국장)으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1980년대 김정일의 배려로 중앙에 복귀했다가 사망했다.  

최룡해의 아버지는 최현이다. 최현은 김책과 마찬가지로 ‘백전로장 최현’이라는 별도 절(11장 52절)을 통해 ‘세기와 더불어’에 서술돼 있다. 김일성이 회고록에서 최현을 언급한 것은 321회에 달해 항일 빨치산 중 가장 많다. 역사 기록을 검토해보면 항일 빨치산으로서의 공적 또한 최현이 김일성보다 더 많다. 김일성은 ‘세기와 더불어’에서 최현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가 나에 대해 경어를 사용한 것은 다만 공식석상에서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우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예의와 격식을 제쳐놓고 오히려 그 우정에 진실성과 참신성을 부각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룡해는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때 북한군 총정치국장으로 권력의 핵심인 듯 보였으나 이후 부침을 겪었다.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됐다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다시 오르는 등 직위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최현의 동지 이을설의 장의위원 명단에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과 마찬가지로 포함되지 못했으며, 2015년 11월부터 3개월가량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은 장성택이 실세(失勢)한 후 숙청되기 직전까지 맡은 직책이다.



김씨(김일성), 오씨, 최씨, 김씨(김책)를 비롯한 항일 빨치산 가문은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면서 항일 빨치산 세력의 단일 대오를 통해 남로당계, 소련계, 연안계, 갑산계 등을 숙청하고 북한을 유일 영도체계로 탈바꿈시켰다. 이들은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수상, 부수상, 민족보위상 등 권력을 나눠 가지며 북한을 건설해 나갔다.  



테크노크라트의 浮上

요컨대 북한의 70년 역사는 권력이 축소되는 형태로 전개됐다. 남로당계, 소련계, 연안계, 갑산계가 숙청되면서 항일 빨치산 세력만 남았고, 김정일 때까지 건재하던 항일 빨치산 가문이 추락하면서 다른 ‘혁명 정통’이 모두 거세되고 김정은만 남는 ‘일원화’가 일어났다.

빨치산 가계를 대신한 것은 조직지도부 중심의 테크노크라트 그룹으로 ‘혁명 정통’과는 무관하다. 김정은이 테크노크라트들을 활용해 유일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인지, 테크노크라트들이 김정은을 이용해 혁명 가계를 밀어낸 것인지는 해석의 다툼이 있다. 북한의 새로운 파워 엘리트들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신동아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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