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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서로 사랑하자”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 65년 만의 만남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제발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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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순간의 ‘사람 이야기’

절박한 순간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여성 빨치산을 사랑한 토벌대 장교도 있고, 인민군에 끌려가던 동네 동생을 몰래 도망치게 해서 살려준 인민군도 있다. 먹을 것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온 빨치산에게 양식을 있는 대로 퍼준 사람도 있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징비록’에서 ‘전장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는 아군과 적군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사람의 이야기는 피어난다’라고 회고했다. 광복군 출신 토벌대장 차일혁 경무관은 빨치산 총수 이현상이 사살된 뒤 누구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자 그의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섬진강에 뿌려줬다. 차 경무관은 이런 글을 남겼다.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지리산에서 싸우다 죽은 군경과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민주주의를 위해,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 바쳤다고 할 자가 몇이나 있었겠는가.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서 집단최면에 빠진 부질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을….”

지난해 ‘만남’에 참석했던 빨치산 출신 송송학 씨는 올해 4월 세상을 떠났다. 이이화 씨는 “역사의 증인인 어르신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어, 이들이 생존해 있을 때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모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빨치산과 토벌대는 15분씩 자기소개 형식의 발언을 요청받았다. 짧게 마무리하는 이도 있었고,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도 있었다.

토벌대 출신 임명근 씨는 전후 함양향교 전교, 함양시조협회장 등을 지낸 한학자다. 현재 참전군인용사회장으로 있으면서 향토방위특공대 대원을 국가유공자로 정하는 데 기여했고, 마천 향토수호전적비 비문을 썼다. 비문엔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들(여순사건 김지회·홍순석 부대,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혀 월북하지 못한 인민군, 빨치산 이현상 부대)은 백무동 일대에 근거를 두고 밤이면 각 기관을 습격하고 그네들에게 비협조한 주민들을 반동이라 이름 붙여 납치 살해하고 식량은 모조리 약탈해가니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의분을 참지 못한 면내 20대 젊은이들 250여 명이 자진 봉기했다. (…) 밤이면 고지 근무 외에 마을에 잠복근무 나가 싸우고 낮에는 정보 수집하는 대로 아지트를 찾아가 싸웠다 (…) 지리산 공비 2000여 명이 몰려와 3일 전투를 했는데 적의 피해는 100여 명이고 아군도 48명이나 전사했다….’





짚신 신은 향토방위대

향토방위특공대원은 염색한 광목으로 군복을 대신했고, 군화 대신 짚신과 고무신을 신었으며, 일본군이 버리고 간 낡은 소총으로 무장했다. 전사한 대원 14명의 장례를 직접 치른 임씨는 죽어간 동료들을 잊지 못했다.

“인생의 맛도 못 보고 젊은 나이에 죽은 이들이다. 그 젊은 영령들은 분단 조국의 한을 안은 채 구천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가족이 없어 혼을 달랠 제사도 못 지내고 있다. 우리 면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는데…. 마천면에서는 현충일에 기관장들이 충혼비 앞에 국화꽃 놓고 절하는 정도로 그들을 기린다. 국가적으로, 아니면 함양군 차원에서라도 위령제 정도는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다.”

김기태 씨는 형님이 빨치산의 총에 맞아 숨지고 이튿날 마을에 폭탄이 터지는 등 살벌한 분위기에서 토벌대에 자원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군인용사회 마천지회장을 지냈다. 그는 “마천면의 24개 마을 중 14곳이 소개(疏開)되는 등 힘든 세상이었다. 정말 그때 어떻게 살아냈는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참전군인용사회 마천지회 회원인 문창권 씨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한다.

“남원 일대 수리조합 쪽에서 토벌대가 많이 죽었다. 나는 다행히 귀만 다쳐 지금껏 안 죽고 살아 있다. 무슨 명이 이리 긴지 모르겠다. 이승만 대통령이 빨치산 토벌대 2개 사단을 투입해 작전을 편 게 기억난다. 하동 화개면 태성골로 빨치산 부대를 몰아넣고 큰 전과를 올렸는데 아군은 희생이 크지 않았다. 그 후 빨치산 숫자가 크게 줄었고 자수자도 늘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빨치산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난 4월 출간된 최정범 씨의 책 ‘지리산 달궁 비트’를 구술정리한 강동원 전 의원(전북 남원·순창)의 생각에 귀 기울여보자. 그는 이 책 ‘엮은이의 글’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빨치산은 금기의 영역이자 그저 ‘빨갱이’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재조명할 때가 됐다. 언제까지 조국 분단의 아픔이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져야 하겠는가”라고 적었다.



목숨 바쳐 이루려 한 세상

“제발 서로 사랑하자”

1953년 5월 1일 전북 남원에서 발족돼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을 소탕한 서남지구전투경찰대. [동아일보]

최씨는 더 이상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주변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최씨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요즘도 가끔 내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공산주의자였나?”

그러면 나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그렇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 북한체제를 지지한다는 말이냐?”

나는 다시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니, 절대 아니다.”

(…) 내가 목숨을 바쳐 이루려고 했던 세상과 지금의 북한체제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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