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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사람에게 버림받고 사람 위해 사는 犬生

경기도 도우미견나눔센터

  • 김지은 객원기자 | likepoolggot@empal.com

사람에게 버림받고 사람 위해 사는 犬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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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한 해 국내에서 발생한 유기동물은 8만2100여 마리. 그 절반 이상이 안락사의 운명을 맞는다. 주인을 찾거나 재입양되는 숫자는 그보다 적다. 사람에게서 버려져 기본적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주는 곳이 있다.
경기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 407. 경기도 도우미견나눔센터(이하 나눔센터)는 경기도가 추진 중인 미래형 농축산관광단지 ‘에코팜랜드’ 사업의 하나로 2013년 3월 설립된 유기견 훈련시설이다. 센터가 자리한 화옹간척지 일대의 지형도는 에코팜랜드 사업 때문에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속도보다 빨리 변한다. 서울에서 넉넉잡아 2시간이라던 인터넷 정보도 출근시간대 러시아워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지형도를 제대로 예측하진 못했다.

결국 예상 도착 시각보다 30분가량 지체되고서야 나눔센터 앞마당에 차를 댈 수 있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경기도 도우미견나눔센터’라고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순간 얼마 전에 본 TV 뉴스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휘젓고 지나갔다. 휴가철만 되면 피서지 인근에 버려지는 유기견 수가 급증한다, 유기견의 2·3세대들이 야생 들개로 변한다, 그들이 시민을 위협하는 바람에 포획 후 안락사시킨다…. 피서지에 버려지는 유기견의 상당수도 정해진 수순처럼 안락사의 운명에 처한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유기동물을 보호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새 주인을 만나 분양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1초 만에 ‘무장해제’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해 보호·관리된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에 7일 이상 공고한 후에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키거나 일반에 분양할 수 있는 법적 효력을 지닌다는 뜻이다. 유기견 분양률은 매년 20%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왈왈왈!” “컹컹!” “앙앙!”



나눔센터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푸들부터 진돗개까지 온갖 종류의 개들이 몰려와 껑충껑충 뛰면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진풍경. 손을 내밀자 머리를 들이밀고 혀를 날름거리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엄청난 ‘환영식’ 덕분에 만난 지 1초 만에, 긴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라도 된 양 울컥해졌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환영 퍼레이드를 펼치던 10여 마리의 개는 취재진이 움직일 때마다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녔다. 몇 마리는 발에 밟힐까 걱정될 정도로 적극적이었지만, 위협적이거나 감당 못할 만큼 부담스럽진 않았다. 아웅다웅 싸우는 개들도 없었다. 마치 어릴 적부터 받아온 최상의 예절교육이 몸에 밴 듯한 매너였다. 타고난 외모도 하나같이 훌륭했지만, 방금 목욕과 드라이를 마치고 나온 듯 보송보송한 털이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커팅으로 마무리돼 ‘미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 언뜻 봐도 노련하고 정성스러운 ‘솜씨’가 느껴졌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던, 좁은 철망에 갇혀 병들고 불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의 행색과는 사뭇 달랐다. 이 밝고 사랑스러운 개들이, 사람을 이토록 따르고 좋아하는 개들이 인간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런 개들을 내다버리는 마음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죽이는 일→살리는 일

올해로 4년차를 맞은 나눔센터는 유기견 보호소 겸 훈련소다. 이곳 유기견은 2년여에 걸친 장기 훈련을 거쳐 장애인 도우미견, 동물치료 매개견으로 활동하거나 약 한 달간의 훈련을 마치고 일반 가정에 입양된다. 장애인 도우미견은 기본 선정 조건부터 까다로운 데다 훈련기간이 길고 엄격해 훈련 6개월차쯤 시행되는 1차 테스트 과정에서 70%가 탈락한다.

장애인 도우미견으로 선정되지 못한 개들은 일반 가정에 반려견으로 무상 분양된다. 도우미견으로선 탈락이지만 가정에선 최고의 반려견으로 손색없을 훈련과정을 거친 터라 분양 후 파양되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분양 후 약 한 달간은 훈련사들이 전화 상담 등을 통해 자신이 훈련시킨 개들이 입양 가정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파양할 경우에도 나눔센터로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등 사후관리가 철저하다.



나눔센터엔 2명의 수의사와 3명의 훈련사가 일한다. 10월엔 한 명의 훈련사가 더 투입될 예정. 센터 설립의 일등공신은 운영 전반을 책임진 여운창(55) 팀장이다. 수의사 출신인 그는 설립 기획안을 제출한 2009년부터 실제 설립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나눔센터의 뼈대를 세웠다. 이곳에 오기 전엔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 방역담당 공무원으로 일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등이 발생할 때마다 해당 지역 동물을 살처분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2008년 무렵은 유기견이 사회문제로 대두한 시점인 데다 마침 경기도에서 화옹간척지 일대에 232만 평에 달하는 에코팜랜드 조성 계획을 추진 중이어서 기회가 좋았습니다. 수의사로서, 이젠 동물을 죽이는 일보다 살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었거든요. 개소 첫해인 2013년에만 12마리의 도우미견을 분양할 수 있었으니 성과가 꽤 좋았죠. 올해는 200마리 정도 분양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현재 나눔센터에서 훈련과정을 이수 중인 개는 40여 마리. 훈련받은 개가 새 주인을 찾게 돼 빈자리가 생기지 않는 한, 그 이상의 숫자를 수용하는 건 무리다. 새 식구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나면 여 팀장은 경기도 내 유기견 목록이 등록된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에 접속해 도우미견 조건에 부합하는 개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소형 견종 선호

요즘은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 몰티즈, 시추, 푸들 같은 소형 견종이 선호된다. 그래서 훈련소에 입소하는 유기견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몸이 작고 영리하며, 털이 덜 빠지는 견종이다.

리스트가 작성되면 훈련사들이 보호소를 돌며 장애인 도우미견이나 동물치료 매개견으로 적합한 개를 선별한다.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개는 대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게다가 낯설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이들을 더 예민하고 소심하게, 혹은 난폭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택 기준은 지나치게 사람을 경계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그리고 훈련을 잘 따라올 수 있을 만큼의 감각을 지닌 개들로 한정된다. 귀를 다쳤거나 소리에 둔감한 개는 장애인 도우미견 훈련을 받을 수 없다.



나눔센터 여건상 더 많은 개를 데려올 수 없는 현실은 여 팀장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수의사 남영희 주무관, 송민수·경지윤·이현우 훈련사에게도 적잖은 고통이다. 자신의 노력과 재능이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인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과연 이 상황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인간에게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맞아야 하는 개들의 삶을 매일처럼 목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눔센터의 하루는 아침 9시에 견사의 변을 치우는 일로 시작된다. 쓰레받기로 변을 걷어내고 물로 견사를 말끔히 청소하고 나면 훈련이 시작된다. 훈련사에겐 각기 돌봐야 할 개들이 정해져 있어 자신에게 배당된 개의 견사 관리에서부터 먹이 주기, 배변 및 식사예절 교육 같은 기본적인 훈련을 도맡는다. 장애인 도우미견 훈련은 도우미견 전문인 송민수 훈련사가 담당한다.


나쁜 개는 없다

최근 2년 넘게 청각장애인 보조 훈련을 마친 장애인 도우미견 ‘가을이’는 초인종 소리나 휴대전화 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송민수 훈련사가 초인종 소리를 내는 버튼을 누르자 가을이는 송 훈련사의 다리를 긁어 초인종이 울리고 있음을 알렸다. 송 훈련사가 검지를 흔들며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야?’라는 뜻으로 묻자, 가을이는 잽싸게 문 쪽으로 달려가 그를 쳐다봤다. 송 훈련사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니 가을이는 다시 그에게 달려가 벨 소리가 난다고 알렸다. 검지를 흔들어 보이자 가을이는 휴대전화를 올려둔 책상 쪽으로 달려가 휴대전화와 송 훈련사를 번갈아 쳐다본다. 

“지체장애인 보조견은 문을 열어주거나 신문과 휴대전화를 갖다주고 냉장고 문을 열어주는 등 신체활동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유기견들이 처음부터 능숙하게 이런 일을 해내는 건 아니다. 입소 초기엔 기본적인 배변 훈련조차 안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입소한 개는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엉킨 털을 정리하고, 기본적인 건강진단을 거쳐 홍역, 간염, 렙토스피라, 파보바이러스 장염, 파라인플루엔자 등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는다. 집단생활을 하기에 한 마리만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다른 개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어 철저한 건강관리는 필수다. 훈련사들이 24시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다.

그래도 방학이나 주말엔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 덕분에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나눔센터에서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반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곳의 유기견 관리 시스템을 반려견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운창 팀장은 나눔센터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던 청소년 대상 반려견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기견 근절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게 견주 교육입니다. 반려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은 100% 견주에게 있기 때문이죠. 단순히 책임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도 반려견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반드시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게 있어요. 기본적인 배변 관리, 식사 챙기는 법, 반려견과 교감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법 등을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면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왜 ‘동물복지’인가

2019년 건립 예정인 ‘도우미견 에듀파크’는 아동과 청소년이 반려견과 함께 나눔센터 탐방을 비롯해 다양한 훈련 체험과 놀이, 캠핑 등을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테마파크다. 시설이 완공되면 나눔센터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던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다양한 반려동물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혹자는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동물복지냐’고 하죠. 그러나 동물복지는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겁니다.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는 청소년에게 생명존중 사상을 갖게 하고, 감성 계발과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됩니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사람에게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어요. 동물매개 치료견은 폭력적인 문화에 노출돼 정신적인 문제를 지닌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여운창 팀장)

취재를 마치고 나오다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문에 붙여놓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삶은 인간만큼이나 말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하다.

-달라이 라마


문을 열고 나오자 화장실까지 따라온 시추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색했다. 시간을 더 지체하다간 그사이에 든 정을 뿌리치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차에 올랐다. 부디 이번엔 좋은 주인을 만나 남은 견생(犬生)이나마 행복하게 보내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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