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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들고 한국 왔다 미국으로 투자이민

벤츠 모는 탈북 간부 vs 임대아파트 망명 간부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100억 들고 한국 왔다 미국으로 투자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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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돈을 갖고 튀어라’가 트렌드
  • ● “돈이 최고야” vs “한국 정부 옹졸해”
  • ● 北, 탈북 간부 상대로 ‘脫南入北’ 공작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대사관 공사는 테니스와 골프를 즐겼다. 스티브 에번스 BBC 서울·평양주재 특파원은 “영국의 중산층 같았다”고 그를 기억한다. 태 전 공사의 큰아들은 영국 해머스미스 보건대에서 공중보건학 학위를 딴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아들은 가을 학기부터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ICL)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태 전 공사의 탈북이 ‘교육이민형’이라는 분석이 나온 까닭이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 김명철(현지 사용 이름)도 6월 4000억 원가량을 챙겨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4000억 원은 현금은 아니고 계좌에 든 자금이라고 한다. 김 총국장은 현지에서 20년 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김 총국장의 아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5월 현지 언론에 자신이 시작한 금융 관련 벤처기업을 홍보하는 인터뷰도 했다(‘동아일보’ 8월 19일자 참조).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망명 동기와 행태가 변하고 있다. 과거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망명하거나 비위(非違) 등으로 신분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탈북한 예가 많았다면,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경제적 이유나 자녀교육 등 미래에 대한 고려로 탈출하는 예가 늘고 있다. 거액의 비자금을 들고 탈북해 한국이나 미국, 유럽에 정착하는 경우도 늘었다.



최고급 수입차 굴려

노동당에서 권력 핵심의 자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지목된 부서에서 일하던 A씨는 2014년 말 한국에 들어왔다. A씨의 이름은 L○○인데, 현재는 다른 이름을 쓴다. 아내,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를 만난 복수의 인사는 “가져온 돈이 엄청나게 많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전했다. 그가 북한에서 담당하던 일은 자금 세탁과 본국 송금. 들고 온 정확한 자금 규모는 본인만 알겠으나 노동당 간부 출신 인사들 사이에선 1000만 달러(약 109억 원)가량을 챙겨온 것으로 회자된다.



A씨 가족의 서울 생활은 여러모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가의 아파트에 거주했으며 최고급 수입차를 탔다.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한 터라 ‘강남 스타일’이 딱히 불편하거나 특이할 것도 없었다. A씨의 삶은 과거에 망명한 북한 간부 출신 인사의 상당수가 국가정보원 산하기관 등에 적(籍)을 두고 급여를 받으며 생활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당국에서 “얘기할 게 있다”며 찾는데 무시한 적도 있다고 한다. A씨의 망명 사실은 그가 서울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북한 금융기관의 동유럽 국가 한 지점 책임자로 일하다 지난해 초 한국에 들어온 B씨는 혁명자금 500만 달러를 갖고 탈북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에서 사용하던 이름은 Y○○인데, A씨보다 북한에서의 직급은 낮다. B씨 또한 한국에서 고가의 승용차를 굴리면서 부유하게 산다고 한다. 낚시 등 취미활동에도 열심이다. 한 탈북 인사는 “강남에 아파트 사고, 자동차 굴리고, 아이들 교육 제대로 시키려면 B씨가 가져온 액수가 한국에서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강남에선 50억이 큰돈 아냐”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일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으로 망명한 C씨는 300만 달러가량을 갖고 서울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탈출한 D씨도 6월 서울에 들어왔는데, 간부 출신 탈북 인사 사이에서는 D씨도 돈을 챙겨왔는지 궁금해한다. D씨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조사·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

탈북 인사 중 가장 많은 돈을 갖고 한국으로 망명한 A씨 가족에게는 한국 생활이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A씨 가족은 올해 한국을 떠났다. 미국으로의 투자 이민을 선택한 것. 영주권을 주는 투자 이민은 해외 자금의 투자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미국의 이민 제도다. 최소 투자금액은 50만 달러로 주마다 규정과 절차가 다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최근 3년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북한의 해외 주재관이 4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3년 8명, 2014년 18명, 지난해 10월까지 20명”으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2009년 한 해 3000명에 육박했다가 2014년 1200명 수준으로 떨어진 전체 탈북자 수의 감소 추세와는 정반대다.

최근 탈북한 노동당 출신 망명 인사 중 한국 언론에 얼굴이 공개된 경우는 태영호 전 공사가 유일하다. 무엇보다도 망명 간부들이 탈북 사실이 북한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에 남은 가족이나 친지의 안위를 염려해서다. 국정원이 태 전 공사의 망명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 “국내 정치용으로 당사자 신변 보호를 뒷전에 뒀다”는 뒷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또 다른 변화는 정부 당국이 중간 간부 이상 북한 관료 출신에게 알선해온 연구기관 등의 일자리를 마다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거액을 들고 망명한 이들은 공개된 탈북자 모임 등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도 없다. 다음은 한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 인사의 설명이다.



‘조국은 당신을 믿고 있다’

“해외 주재원이 망명하는 이유는 경제 문제, 자녀교육 등 제각각이다. 과업을 완수하지 못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온 경우도 있고, 북한에 돌아가 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콱 막혀서 왔다는 사람도 있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나. 또한 북한 경제가 개선되면서 만지는 돈의 크기가 달라진 것도 다른 마음을 품게 하는 원인이다.”

또 다른 탈북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으로의 귀순 사실이 확정되지 않으면 행방불명자로 처리돼 가족, 친치가 처벌받지 않는다. 북한을 비난하는 등의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한국에서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방식으로 부양도 할 수 있다. 브로커를 통해 서울에서 평양으로 돈을 보내면 50%의 수수료를 떼고 전달된다.”

사전 계획과 치밀한 준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A, B, C씨처럼 고액을 챙기지는 않았더라도 호구 수단을 갖추고 한국행을 선택한 이들이 생겨난 반면, 상당수 탈북 인사는  여전히 서울 주변부나 외곽의 임대아파트에서 정착을 시도한다.

정착지원금, 격려금 등을 다 합쳐 봐야 3000만~4000만 원이다. 정보 당국에 북한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포상금도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부 대접이 옹졸하기 짝이 없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탈북 간부도 적지 않다. 한국 생활이 기대에 못 미치는 까닭이다.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탈북자를 대상으로 입북 공작을 벌이고 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생계형 탈북자 중 실제로 탈남입북(脫南入北)에 나선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평양은 노동당 간부 출신 망명 인사들에게도 손을 뻗친다. 한 인사가 북한 당국이 보내온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준 일이 있다. ‘조국은 아직도 당신을 믿고 있으니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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