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박근혜 언론大戰

보수언론에 朴정권은 ‘통제 벗어난 자식’

‘대못질’ 노무현 정권과 판박이?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6-09-22 16: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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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박근혜 정권을 좋아하는 언론매체는 일부 인터넷 우파 매체와 ‘일베’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진보 성향 언론은 원래 싫어했고 보수 성향 언론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피로감을 자주 느낀다.
    “하필이면 또 세상에 KBS를 오늘 봤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유행시킨 말이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인 2014년 4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이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필, 세상에, 오늘’, KBS의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 비판 보도를 보고 진노했다는 뜻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말 우연히 ‘하필, 세상에, 오늘’ KBS 보도를 본 것일까.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잠자는 시간 빼고는 100%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이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주로 관저에서 휴식하거나 업무를 보느냐”고 질문하자 “휴식이란 말씀엔 동의할 수 없다”며 내놓은 말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여름휴가도 관저에서 보냈다. 2014년 여름휴가도, 2015년 여름휴가도 마찬가지다.  

    종합해 보면 이렇다. 평상시 관저에서도 주로 업무를 본다. 여름휴가도 곁들인다. 퇴근할 때 서류뭉치를 들고 관저로 향한다는 말이 정말인 모양이다. 관저에서 TV도 보고 인터넷으로 기사도 검색할까.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에겐 이 역시 업무의 연장일 수 있다. 한때 방송가에선 ‘박 대통령이 자막의 오탈자도 찾아낼 정도로 열심히 TV를 본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러면 어김없이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풍문’에 불과하지만, 깨알 지시를 내리는 박 대통령의 평소 자세로 볼 때 그럴 법도 하단 생각이다.





    TV조선 자막 사건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 첫 대통령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말미에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고 말했다. 그 순간 TV조선이 “퇴임사는 발로 쓴다”는 자막을 내보냈다. 자막은 보통 작가들이 입력한다. 너무 길면 줄여서 입력하곤 하는데, 기계적으로 또는 순간적으로 입력하다 보니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방송계에 따르면, 청와대 쪽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방송사는 해명과 더불어 관계자에 대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박 대통령이 연설 중이던 까닭에 ‘하필, 세상에, 오늘’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언론인이 적지 않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하필, 세상에, 오늘’ 그 보도를 접하면, 리얼타임으로 전화를 받는 시절인지 모른다.

    그나마 전화로 끝나면 다행이다. 박근혜 정권은 언론을 상대로 법적 대응도 자주 한다. 2014년 4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비서관’은 ‘시사저널’을 상대로 8000만 원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다. 3인방과 박지만 씨가 갈등을 빚고 있다고 보도한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기춘 전 실장과 청와대 관계자 4명은 ‘한겨레’를 상대로 8000만 원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세월호 사건 다음 날 박 대통령이 진도 사고 현장을 방문해 생존자 권모 양을 만난 것을 두고 섭외해 연출한 게 아니냐고 보도한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CBS를 상대로도 같은 금액으로 소송을 냈다. 사안도 비슷한 ‘세월호 참사 조문 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라는 기사 때문이다.

    2014년 말 ‘세계일보’가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을 때도 문고리 3인방 등은 이 신문사의 사장, 편집국장, 사회부장,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고소했다. 박 대통령은 이 기사와 관련해 ‘찌라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비슷한 시기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의 교체설에 대한 조사를 직접 지시했다는 기사를 문제 삼아 ‘동아일보’ 기자를 고소했다.

    보수단체의 고소를 검찰이 수용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기소한 사건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가 쓴 기사는 박 대통령과 정윤회 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풍문을 소개한 내용이다. 법원은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근혜 정부의 고소는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인데, 서울에 주재하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은 이를 매우 언짢게 여긴다. 여러 해외 언론이 이 고소 건을 두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언론자유 안드로메다 갔다”

    최근 언론계에선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과 통화한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이 단연 화제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게, 박근혜 정권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이다. 더구나 이 기자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한 기자다. “피의자도 아닌데 기자의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들여다본다? 언론자유, 취재원 보호는 안드로메다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일보 소속 기자라고 해도 보기가 딱했던지 진보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조차 “통화 상대인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마당에 왜 취재기자의 휴대전화까지 들여다봐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도 “참고인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애먼 언론자유를 옥죄고 있다”고 거들고 나섰다.

    청와대 측은 조선일보를 겨냥해 ‘부패 기득권세력’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 직후 친박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출처 미상의 자료를 근거로 이 신문사 송희영 전 주필이 대우해양조선으로부터 전세기·요트 여행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보수 성향 언론사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그 신문사를 부패 기득권세력이라 하면서, 박근혜 정권은 보수 성향 언론과도 사실상 결별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이 “기자실에 대못을 박겠다”며 임기 말 우군인 진보 성향 언론과도 갈등을 빚던 상황과 판박이 같다.

    진보 성향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후보 시절 ‘인혁당 두 개의 판결’ 발언을 할 때 이미 박 대통령과는 마음의 담을 쌓았다. 다만, 보수 성향 언론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보수의 재집권 차원에서 환영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보수 성향 언론과 박근혜 정권의 관계는 껄끄러워졌다. 인수위의 언론 경시가 원인으로 거론됐다.

    3년 반이 지난 지금 보수 성향 언론의 정부 비판은 더 날카로워졌다. 범위도 확산되는 추세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재난 대처뿐만 아니라 일상적 국정으로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임기 초엔 불통(不通)인사 정도에만 비판이 집중됐다. 지금은 한진해운 구조조정 결정에 따른 물류대란에 대해서도, 거제도에서 발생한 콜레라에 대한 초동 대응 실패에 대해서도, 스폰서 검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처에 대해서도 보수 언론의 비판이 매섭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정도 비판 수위면 무시해도 괜찮을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어차피 ‘불통’이라는 비난을 받을 바엔 확실하게 밟고 가겠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우병우 민정수석 경질 요구에 대해서도 태도가 분명해 보인다. 보수 성향 언론이 거의 ‘만장일치’로 경질을 요구했고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도 요구가 빗발치지만, 반응이 없다.



    ‘기적’ 바라는 언론은 없다

    보수 성향 언론은 왜 박근혜 정권을 강하게 비판할까. 몇몇 언론인의 설명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이 해도 해도 너무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정부가 한진해운 문제를 다루면서 수출과 무역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 언론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들은 창조경제니 뭐니 하며 박 정권이 벌여놓은 일들이 기대에 턱없이 미달한다고 평가한다.

    보수 진영 언론이 박 대통령에게 당초 원한 것은 제2의 한강의 기적 같은 것이었다. ‘보수는 유능하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기 말로 접어드는 요즘 박근혜 정부에 이런 기적 같은 걸 바라는 언론은 없다.

    ‘초이노믹스’의 최경환(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유일호(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안종범(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이들의 눈엔 별로 유능해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사람 보는 안목이 이 정도인가” “왜 널리 인재를 구해 쓰지 않는가”라는 실망이 나온다. 대신, 보수 정권 재창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가득하다. 이들이 염려하는 것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의 여론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보수 정권은 이미 손을 떠난 정권이다. ‘통제를 벗어난 자식’인 셈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면 보수 진영 언론도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파와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파가 그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은 후자다. 박근혜 정권이 이를 자초하는지 모른다.

    보수 성향 언론,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조선일보와 갈등을 빚었다면 이야기는 끝났다. 나머지 중도 성향 언론이나 진보 성향 언론과의 소통은 더 어렵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소통 부재 수준을 넘어 언론자유 수준의 속절없는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가 4월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80개 국가 중 70위다. 이 단체가 2002년 처음으로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을 때는 39위였다. 2006년엔 31위까지 올라간 순위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로 거듭 하락한 끝에, 이젠 하위권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지난해 국민총생산 기준 11위 경제대국의 언론자유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기자의 휴대전화도 압수수색할 정도니 내년에 발표될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더 떨어질지 모른다. 최근 보수 성향 언론의 내부 분위기를 보면, 거의 ‘포기 상태’ 같다. 외쳐도 변하지 않으니 알아서 하라는 냉소적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박 대통령은 미디어를 통한 국민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것으로 비친다. 기자회견도 뜸하거니와 그나마 질문 내용도 사전에 조율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자주 나서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매주 인터넷·라디오 연설을 하지도 않는다. 언론은 그런 대통령과 정부를 일상적으로 비판한다.



    “편파적으로 과도하게 매도”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점을 강조한다. 언론보다 상위에 있는 국민의 3분의 1이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같은 자리에서 많은 말을 하며 이러한 말을 통해 여론과 소통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도 ‘열린 해석’을 요구한다. “오류를 범하는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언론인지 모른다” “언론이 박근혜 정부를 편파적으로 과도하게 매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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