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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포장’ 정부 개입 성공 못한다”

경제민주화 반대하는 자유주의 경제학파

  •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민주화 포장’ 정부 개입 성공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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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대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1993년 경제학 학술지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발표한 논문 제목이다. 그가 말하는 기적이란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룩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일컫는다.

한국이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재벌 위주의 성장 정책을 펼친 결과 오늘의 경제적 번영을 달성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경제학자는 드물다. 루카스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의 기적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기적 만들기’ 이후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경제민주화 논쟁에서는 바로 그다음부터 의견이 갈린다. 경제민주화 찬성론자들은 과거의 성장 전략이 경제 규모와 구조가 변한 지금도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창의와 혁신이 더 중요해진 만큼 동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 정립이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민주화 반대론자들은 우리 경제의 단점만 부각해선 안 되며, 눈부신 성장 과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맞선다.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해 이만큼 성장했으니 체제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도 한다. 아울러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우리만 겪는 어려움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관도 다르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우리 기업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혁신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려면 현재와 같은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권위적인 기업문화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우리 기업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경제민주화 반대론자들은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 기업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벌 때문에 시장경제를 제대로 못하고 정경유착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쪽만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우리 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찬반론자 모두 자유시장과 시장경제체제를 얘기하지만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시장을 말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시장이 다 다르다고 해야 할까. 필요에 따라 시장이나 시장경제를 얘기하지만 그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대표적 경제민주화론자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시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시장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 대부분이 시장의 기능이 무엇이며, 이러한 시장 기능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장에 대한 오해와 이해

“시장경제체제란 시장 거래가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보호받는 체제를 말한다. 맥밀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원활한 정보 유통 △잘 보호된 재산권 △개인들 사이의 약속에 대한 신뢰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삼자에 대한 부작용의 최소화 △경쟁의 활성화 등 5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의 경우 시장경제체제의 필요조건인 사유재산권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유재산권은 자신보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도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가령 부당 내부거래는 이익을 보는 총수 일가가 손해를 보는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현재의 시장을 재벌 기업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세계적 혁신 기업이 탄생할 수 없는 배경이라는 것. 상속 부자보다 자수성가형 창업 부자의 비율이 훨씬 높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상속 부자 비율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라는 시각이다.

반면 경제민주화 반대론자들이 바라보는 시장은 ‘현실 순응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시장이란 원래 불완전한 것인데,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할수록 부작용만 생긴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를 자처하는 김영용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이란 완전경쟁시장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정보 비용이나 자원 이동 비용이 없는 물리적인 진공 상태나 마찬가지라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다. 결국 현실에서 존재하는 시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여기에 개입해서 완전한 시장으로 만든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민주화 찬성론자들은 대체로 ‘미래’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미래 성장을 담보하려면 현재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올바른 시장경제체제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 반면 반대론자들은 ‘과거’에 중점을 둔 듯한 논리를 편다. 이들은 과거의 눈부신 성장에 자부심을 가질 만한데도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를 부정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경제학자를 대별하자면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쪽이 다수다. 그중에서도 목소리가 큰 그룹으로 자유주의 경제학자를 꼽을 수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에 참여한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바른사회는 경제민주화 폐해 및 포퓰리즘 경제악법 저지 등을 주요 활동으로 내세운다.  



참여연대에 맞선 바른사회

바른사회는 경제학자들만의 모임은 아니다. 정치학, 법학, 사회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학자 및 전문가들이 참여한 비정부기구(NGO)다. 당연히 경제 분야 외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바른사회에 참여한 교수들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3년 국회가 경제민주화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의실에 있어야 할 교수들이 길거리 시위에 나선 것은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란 미명하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 입법을 무더기로 쏟아낸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들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재계 등 보수층을 기반으로 집권한 새누리당마저 강경한 경제민주화 입법을 강행하려 한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바른사회의 이런 태도는 출범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다. 1994년 설립된 시민단체 참여연대 대항마로 설립됐기 때문. 참여연대가 1997년 제일은행 주주대표소송 이후 재벌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소액주주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이에 맞서 우파적 가치를 중시하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2002년 3월 창립했다.

참여연대가 재벌 개혁이나 경제민주화를 오랫동안 주장해온 만큼 바른사회가 이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바른사회가 정의하는 ‘바른 사회’란 확고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실현된 사회를 말한다. 2004년 바른사회 사무총장을 지낸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장 겸임)는 “아무래도 시민단체이다 보니 학문적 성취보다는 현실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자유주의

또 다른 경제민주화 반대 그룹으로는 1999년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를 결성해 자유주의 사상 전파에 앞장선 이들을 꼽을 수 있다. 초대 회장을 맡은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해 김영용(전남대), 안재욱(경희대), 배진영(인제대) 교수 등이 주도해왔다. 현 회장은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매월 한 차례씩 열리는 토론회에는 회원 60여 명 중 20명 안팎이 참여한다.  

이 학회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진행한 기업 및 금융 구조 개혁을 목표로 설립됐다. 민경국 명예교수는 “당시 정부 정책은 반시장적이고 좌편향적인 데다 국민 정서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싫어하는 면이 있어 자유주의 철학을 전파하고 연구할 목적의 학술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자유주의란 자유시장, 제한된 정부, 법치를 기반으로 한다. 학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사상적 지주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지적 라이벌이던 하이에크는 1970년대 들어 케인스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 정책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각광받았고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하이에크는 질서를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인공적 질서와 스스로 성장한 자생적 질서로 구분하고 자생적 질서의 유지·보호를 강조했다. 사회주의 같은 인공적 질서와 달리 시장경제와 같은 자생적 질서가 인류의 번영을 약속하는 지식의 분업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해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들이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오랫동안 발전해온 자생적 질서인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반시장적일 뿐 아니라, 간섭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규제를 통해 재분배하겠다는 것은 약자 보호 차원에서 앞서가는 사람 발목을 잡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자유주의 vs 보수주의

이들은 학문의 영역에서 ‘소수파’를 자처한다. 미국 유학파가 다수인 경제학계에서 자신들은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 김영용 교수는 “경제학계는 미국 유학파가 많아서인지 케인스 학파와 시카고 학파 출신이 압도적이고,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소수”라면서 “특히 젊은 학자들의 참여율이 낮아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사실이다. 민경국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하이에크도 논문 ‘왜 내가 보수주의자가 아닌가’를 썼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싫어하는 반면 자유주의는 변화와 진보에 대해 낙관한다. 아울러 자유주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려면 국가권력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현명하고 도덕적인 엘리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한 경우에는 그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게 보수주의 철학이다.”

최근 자유주의자 내부에서도 분화가 일어나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계기는 박근혜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이다. 민경국 명예교수는 “이념 시장에서 떳떳하게 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국가 의지로 국정화를 통해 자유주의가 승리하도록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가 국정화에 찬성한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그동안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온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두고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다. 민경국 명예교수는 “2014년 3월 취임한 현진권 원장이 국정화에 찬성하는 등 자유경제원을 보수주의 기관으로 변질시켰다”고 비난했다. 현진권 원장은 “해석은 그분의 자유”라고 응수했다.

그간 자유경제원은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에 큰 힘이 돼왔다. 임직원들이 학회 회원으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공동으로 자유주의 사상 전파를 위한 행사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자유경제원 스스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려고 애쓰는 많은 전문가의 사랑방 구실을 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만큼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친재벌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재벌 이익을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는 자유경제원과 이념적 지향이 같을 뿐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것만 봐도 ‘초록은 동색’ 아니냐는 것이다. 현진권 원장은 “자유경제원은 기업들이 출연한 비영리 재단법인이 운영하는 독립적 연구기관으로 경제적 자유 신장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전파를 위해 노력해왔을 뿐, 재벌 옹호와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시장이 재벌 판단하게”

민경국 명예교수는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재벌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것은 치명적 자만이다. 시장이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했다. 다만 자유주의자들이 ‘재벌 때리기’를 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재벌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부 개입이 부작용만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 시장의 자율적인 경쟁에 맡기라는 얘기다.

이 학회 회원들이 경제민주화론자들과 의견 일치를 보이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물론 비판하는 내용은 서로 다르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고 비난한다. 반면 학회 회원들은 “철학이 없다”고 비판한다. 다음은 김영용 교수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으로는 재정 조기 투입, 금리 인하 압박 등만 떠오른다. 철학적 배경이 좌든 우든 한쪽을 선택했으면 일관되게 밀고 가야 하는데, 무슨 철학적 배경으로 어디로 가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정치적 수사(修辭)에만 매달린 느낌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녹색성장을 강조하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장한다. 금융기관에서는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듯 녹색금융 창조금융을 떠들어대는데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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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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