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 건축 기법으로 못할 게 없겠지만 문제는 돈. 만약 임대 면적을 늘릴 욕심에 내 주장대로 지하를 넓게 설계했다면 정말로 큰돈이 들 뻔했다. 선견지명이 있던 건지, 설계 당시엔 차선이라 생각한 남편의 대안(1층을 넓게 하고 지하를 최소한으로 줄여 설계한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이 됐다.
방수 공사

물 막을 방법을 정한 후 5월 말이 돼서야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단 집이 놓일 자리에 붉은 실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위치를 잡았다. 지하 공간이 될 곳도 붉은 실로 표시하고, 대형 포클레인과 대형 드릴을 동원해 구멍을 깊게 뚫고 H빔 파이프를 박아 넣었다. 대형 드릴이 땅을 파고 올라올 때 주차장이 될 쪽에선 물기 많은 진흙이, 반대쪽에선 조금 보슬보슬한 흙이 드릴에 묻어나왔다. H빔이 박힌 구멍 아래쪽을 바라보니 얼마 안 지나 구멍 저만치 아래에서 물이 졸졸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H빔이 박힌 곳 안쪽, 즉 지하가 될 부분의 땅을 포클레인이 파내기 시작했다. 깊숙이 파인 땅은 축축한 진흙 바닥이지만, 수중 펌프 덕분에 물이 많이 고이진 않았다.
다음 날은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에 나무 판을 박아 넣어가며 벽을 쌓았다. 경험이 꽤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진흙탕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망치로 박아 넣어가며 벽을 쌓았다.
이 모든 과정이 하루 이틀이 아닌, 한 과정 한 과정마다 이틀 이상씩 소요됐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빨리 진행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제대로 시공하며 나아가는 것이리라.
“내가 왔으니 걱정 마세요. 이 정도 물은 물도 아녜요.” 넉살 좋은 아저씨가 날 위로하려는 듯, 왕년에 잠실에서 물이 그득한 땅도 이렇게 해서 빌딩을 세웠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으셨다. 지금까지 그 빌딩은 끄떡없다면서.
그분처럼 경험이 많은 이들을 만나면 맘이 놓인다. 어느 정도 허풍이 낀 이야기라 해도 경험이 바탕이 된 삶의 증거이기에 나의 의심과 불안을 잠재우기엔 충분했다.
물은 어디에서 오나

우선 상수도나 하수도가 터진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에 연락해 조사를 요청했다. 구도심은 배관 새는 곳이 많다고 하니,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모든 기계의 엔진 소리며 심지어 펌프 소리도 끄고 쥐죽은 듯 조용한 상태에서 진행했는데, 조사 결과는 상수도 배관 이상 무!
“저희도 누수를 확인해야 일을 할 수 있어서 저 위쪽 골목부터 저 안쪽까지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조사를 마쳤다기에 혹시 빠진 곳은 없는지 물어보자, 자신들도 서울시에서 외주로 작업하는 업체인데 비용을 받고 일을 하려면 누수가 되는 곳을 찾아야 하는 처지라면서 빠짐없이 살펴봤노라고 했다.
‘차라리 상수도가 터져 생긴 물로 확인됐다면 좋았을 것을!’ 냄새도 없는 맑은 물이 나오니 하수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예전부터 물길이 있던 자리는 아닌지 확인하고자 옛 지도와 마을 관련 자료도 찾아봤다. 옛 물길은 우리 집에서 한 블록 아래쪽 혜화초등학교 옆 큰길에서 아남아파트 3차 사이 골목길로 빠져나갔다고 하니 물길도 아니다. 단지 지하 수위가 높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난 문화재 조사 때 아무 문제없던 흙을 기억하며 그건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 물 좋은 나라가 물 부족 국가가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온통 콘크리트로 덮인 곳엔 하늘에서 떨어진 물이 하수도로 직행한다. 흙으로 스며들어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나무를 키우거나 증발하며 여름 한낮 기온을 떨어뜨릴 틈도 없다. 어찌 보면 도시에서 먹고 마시는 물은 도시에서 재생되는 물이라기보다 이웃에게서 빌어먹는 물이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빗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운다. 집이 완공되고 나면 빗물 저금통을 신청해 마당 청소나 꽃을 키우는 물로 활용해야겠다.
기도하는 마음

지하에 공구리 치는(‘콘크리트 타설’을 공사 현장에선 ‘공구리 친다’라고 한다) 날, 둘째 아이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레미콘 트럭이 콘크리트 시멘트를 쏴~ 하고 쏟아내면 가제트 팔 같은 콘크리트 펌프카가 받아 관절을 굽혀가며 넣어야 할 곳을 찾아 콘크리트를 채워 넣는다. 지하 바닥과 벽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으니 인부들이 밑으로 들어가 빈 곳이 없도록 평평하게 밀고 다닌다.
집을 짓는 과정엔 책에서 본 중장비 기계, 예를 들어 대·중·소 포클레인, 대형 드릴, 레미콘 트럭, 콘크리트 펌프카, 일반 트럭 등이 동원된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팔방미인은 포클레인이다.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들어와 포클레인 삽을 무게중심 삼아 몸통을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고릴라가 주먹 쥔 팔을 이용해 육중한 몸을 움직이는 듯해 나도 모르게 박수나 함성이 나오기도 했다. 지하에서 일하던 인부를 삽에 태워 꺼내주기도 하고 모양이 다른 도구를 장갑인 양 뺐다 끼우기를 자유자재로 할 땐 중장비 기사 아저씨가 대단해 보인다.
‘내가 자동차와 조금만 더 친하다면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딸 텐데….’ 진짜 멋지다며 나도 그런 일 하고 싶다니까, 손사래를 치시며 아예 생각도 말란다. 험한 일이라고.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단다. 하긴 우리 집처럼 좁은 땅에서 어느 한쪽 땅이 무너져 육중한 포클레인이 기우뚱하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할 텐데 경험이 많지 않고선 진땀깨나 뺄 것 같다.
이제 발 뻗고 자자!

꺾이거나 바닥 높이가 달라지거나 일반적인 집 형태가 아닐 때 이처럼 공정이 늘어나면서 시간과 노동력이 더해진다. 즉 비용이 늘어난다. 공정마다 콘크리트에 붙어 있던 거푸집을 떼어내는 작업과 철근 배근, 그리고 콘크리트 붓기 작업이 반복된다. 빠르면 열흘이면 한 공정씩 마무리할 수 있지만 공정당 보통 2주, 비가 오거나 한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3주도 그냥 지나간다.
앞으로 이렇게 네댓 번 공구리를 치고 나면 집의 겉모습이 완성되겠지? 아직은 내부가 어떻게 나올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단 시작했다는 안도감에 두발 뻗고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건축 설계와 시공 절차, 짧게는 4~6개월, 길면 1년 넘게 걸려
집 짓기는 설계와 시공의 두 단계로 나뉘며 짧게는 4~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립니다. 이를 단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건축 심의
건축 허가 전에 이뤄지며, 자신이 하려는 건축행위가 심의 대상인지 여부는 해당 구청 건축과에 문의하면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서울 서대문구의 경우는 2층 주택의 수평 증축도 심의 대상이며, 종로구의 경우는 3층 이상의 모든 신축이 심의(자문) 대상이 됩니다. 심의는 건축법에 정해진 사항 이외에도 자치구마다 별도로 시행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 지역마다 특수성에 맞는 기준이 있으니 반드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2 건축 허가
심의가 완료된 후 진행하는데, 허가를 받는 주체는 건축주이고 건축사가 대행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허가기간은 지역에 따라 다르며 짧게는 열흘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허가를 받은 이후 규모나 층수 등이 바뀌는 경우엔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충분히 계획한 후 진행하는 것이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3 문화재 조사
종로구나 성북구, 송파구 등 일부 지역은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착공 신고 이전에 ‘문화재발굴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구청이나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은 지하층을 만들지 않는 경우 문화재발굴조사를 면제하기도 합니다.
조사는 문화재청에 등록된 기관에서 진행하고 시간과 비용도 기관에 따라 다릅니다. 소규모 발굴조사(대지면적 792㎡ 이하)는 국가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래도 순서대로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등록업체에 조사를 의뢰하면 먼저 문화재청의 발굴허가를 받고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1차 조사에서 유물이나 집터가 발견되면 2차 조사인 전면발굴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비용은 땅의 크기 및 상황에 따라 다르며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듭니다. 전체 기간은 최소 3개월 이상 걸립니다.
*문화재청 www.cha.go.kr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 gis-heritage.go.kr/indexMain.do
*문화재협업포털 www.e-minwon.go.kr:8443/webs/main.jsp
4 지질조사와 측량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완료되면 지질조사와 측량을 하게 되는데, 지질 조사는 땅의 지내력(지반의 허용 내력)과 토질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법적으로 꼭 필요한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층 개발 시엔 반드시 필요합니다. 측량은 자기 땅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구시가지에선 주변 집들과의 분쟁을 사전에 막기 위해 인접한 토지주들의 입회하에 시행하는 게 좋습니다.
5 착공 신고
건축 허가와 문화재조사가 완료되고 설계도서에 따라 시공업체가 결정되면 착공신고를 해야 합니다. 660㎡ 미만 주택은 시공사 없이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 때에도 실제 시공사와 반드시 도면과 공사 내역을 첨부해 계약해야 합니다. 도면과 내역서를 부실하게 만들 경우 건축주가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6 건축 감리
공사 착수 시에 감리자도 선정해야 합니다. 공사 감리자는 보통 설계자가 맡는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설계도서와 법에 맞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감독하는 일을 합니다. 법적인 사항만으로 시공사와 의사소통이 부족할 경우 ‘디자인 감리’ 또는 ‘설계 사후관리’를 별도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7 사용 승인
사용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건물이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고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이후 등기를 해야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지요. 공사 완료 시점에 시공사로부터 통신, 전기, 정화조 등의 필증을 받고 감리자의 승인을 거쳐 사용승인을 신청하게 됩니다. 사용승인에도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가드너’로 불리고 싶은 전직 출판편집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20년 동안 해오다 2014년 가을 퇴직했다. 요즘 정원 일의 즐거움에 푹 빠져 ‘시민정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놀이터 같은 집’을 모토로 삼는 건축가. 재미있는 공간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이자 한국목조건축협회에서 시행하는 5-star 품질인증위원으로 활동한다. 2004년 신인건축가상, 2008년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프라자 리모델링으로 서울시건축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