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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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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 위해 퇴사하기도

물론 고소득자는 별 5개짜리 호텔에 머물고, 통장 잔고가 넉넉지 않은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최저가 호텔을 찾아내는 수고를 들이거나 저렴한 유스호스텔에서 묵는 차이가 있을 순 있다. 하지만 스위스인들이 기본적으로 휴가에 큰 가치를 두는 건 연령이나 직업, 소득에 따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애타게 원한다면 일을 일시적으로 그만두고서라도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일탈이나 방황으로 보지 않는다.

친지인 프레니 아주머니네 식당의 단골손님 브루노만 봐도 그렇다. 40대 후반의 독신남 브루노의 직업은 목수. 매일같이 작업복을 입고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브루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프레니 아주머니가 말하길, 그가 일하던 목공소를 그만두고 6개월간 유럽을 도는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브루노가 덴마크에서 보낸 엽서 한 장이 식당에 도착했다. 그가 자전거 여행을 아주 만족스럽게 하고 있고, 이제 덴마크를 지나고 있으며, 곧 건강한 모습으로 식당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른 목공소에 취직해 더욱 건강해진 모습으로 묵묵히 목수의 길을 이어갈 것이다.

내 친구 카린은 20대 후반의 초등학교 교사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지만,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남미 여행을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6개월간의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카린을 얼마 전 만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잘 쉬어야 일 잘한다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조깅 인구가 많은 스위스에선 크고 작은 달리기 대회가 자주 열린다.

“통장 잔고는 얼마 안 되고 다시 구직을 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 천혜의 자연에서 떠올린 많은 생각들, 낯선 여행지에서 본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이제 곧 30대를 시작할 내 삶에 큰 에너지가 돼줄 것 같아.”

스위스인들이 이토록 휴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잘 쉬어야 일 잘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휴식 없는 고된 노동은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삶에 대한 불만족을 불러일으킬 뿐이고, 이런 상황에선 행복한 가정이 유지되기도 어렵다. 직장에서 일의 효율이 떨어지게 되는 건 자명한 이치. 스위스는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이뤄져 있다. 이 나라에서 일과 삶의 균형은 휴가뿐 아니라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스위스의 노동시간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긴 편이다. 사무직, 기술직 종사자나 점원 등 대다수의 직업군은 주당 최장 45시간까지 일할 수 있고 일부 직업군은 주당 최장 50시간까지만 일하게 돼 있다. 평균적으로는 주당 38.5~42.5시간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2014년 스위스의 주당 노동시간은 43.6시간으로 유럽에서 터키(50.3시간)에 이어 2위였다. 핀란드(38.4시간), 노르웨이(38.8시간), 스웨덴(39.2시간) 등 북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이 가장 짧았다.

남편만 봐도 근무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아침 7시 반에 사무실에 도착해 늦으면 오후 6시 반, 이르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8시간 반에서 10시간쯤 일하는 셈이다. 치과 방문이나 경조사 참석 같은 사정이 있으면 유연하게 한두 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오후 4시에도 퇴근한다. 다만 근무시간에는 휴대전화도 보지 않고 업무에만 효율적으로 집중한다. 그래서 나도 점심시간이 아니면 남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대신 야근이나 주말근무는 전혀 없다. 남편이 퇴근 후나 휴가기간에 상사나 직장 동료의 전화를 받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독일에서 일하는 아일랜드인 친구가 어느 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 대기업의 독일지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와 퇴근 후 맥주를 한잔 하고 있는데, 한국인 친구가 한국인 상사에게서 업무 관련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상사가 퇴근 후에까지 전화를 할 수 있느냐며 진정 놀라워했다. 일과 사생활이 엄격하게 분리된 유럽에선 충분히 놀랄 수 있는 장면이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

점심시간도 개인의 사생활로 이해되기 때문에 많은 스위스 직장인은 눈치 보지 않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 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남편은 예전에 장크트갈렌의 은행에서 근무할 때, 날씨 좋은 여름이면 점심시간에 근처 연못에 가서 수영을 했다고 한다.

스위스에선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대신 ‘칼퇴근’을 하고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모든 상점과 슈퍼마켓이 문을 닫기에 도심과 쇼핑가는 썰렁하다. 점원들도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도 대체로 오후 5시면 많은 상점이 문을 닫는다.

그럼 평일에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 쇼핑하라고? 토요일 낮에 하면 된다. 나도 처음엔 일요일에 식료품을 살 수 없는 게 불편했지만, 점차 이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소비자의 쇼핑 편의만큼이나 점원들의 쉴 권리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저녁과 주말에 자유로운 스위스인들은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긴다. 지역마다 다양한 동호회가 발달해 있으며 그 전통도 깊다. 내가 사는 곳은 인구 1만8000명의 소도시인데 시청 홈페이지에 등록된 지역 동호회만 184개에 달한다. 체조, 테니스, 축구, 승마, 볼링 같은 스포츠 동호회는 물론이고 음악, 미술, 여성, 종교 등 수많은 분야가 있는데 주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한다. 취미와 여가를 일 못지않게 중요시하기에 아무리 직장 일이 바빠도 정해진 취미 스케줄을 희생하면서까지 일만 하지는 않는다.

남편은 취미로 아마추어 금관악기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을 연주한다. 근처 마을의 동호회 오케스트라인데 1833년에 창단됐다. 평범한 회사원부터 플로리스트, 농부, 대형마트 계산원, 가구점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 60명이 활동한다. 남편은 매주 수요일 저녁 퇴근 후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나가서 8시부터 2시간 동안 동호회에서 연습하고, 연습을 마친 뒤 회원들과 간단히 한잔 하고 집에 온다. 매년 마을의 체육관과 교회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열고,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참여해 연주로 재능기부를 한다. 스위스 각 지역 오케스트라들과 실력을 겨루는 대회 준비까지 하느라 은근히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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