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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호르몬의 마법…성장과정, 양육 환경 더 큰 영향

  • 난임전문의 조정현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모성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GettyImage]

모성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GettyImage]

‘모성은 본능’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자식에 대한 무관심, 방치, 영아유기 등)을 기사로 접할 때마다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의 모습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필자는 모성애의 위대함을 절절히 느끼면서 살아온 세대다. 자녀의 몸이 어머니 난자의 세포질로부터 세포가 분열돼 만들어진 것이고, 자녀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는 난자의 미토콘드리아와 100% 동일하다는 생물학적 기전을 떠올리면 어머니와 자녀는 하나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어머니가 자녀에게 갖는 모성 본능은 자연스러운 애착이다. 국어사전도 모성애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모성애가 본능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육아전쟁을 치르며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 “모성애가 본능이라면 나는 왜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참아내지 못하는 걸까?”라고 의아해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여성의 행동이나 성격, 정서는 호르몬의 절대적 지배를 받는다. 자녀가 한없이 사랑스러우면서도 호르몬 변화로 갑자기 육아에 짜증이 날 수 있다. 심한 경우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처럼 여성의 감정 기복이 심한 건 모성애가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성’이라서 그렇다. 어머니들이 자녀를 안고 비비는 스킨십만으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감정을 추스르고 안정 모드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여성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부탁하려면 배란 이전에

조언컨대, 아내에게 뭔가를 청해야 한다면 배란 이전에 말하라. 농담이 아니라 의학적 팩트다. 여성은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배란 전에는 한없이 착하고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그러나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배란 이후에는 현실적이고 계산적으로 바뀔 수 있다. 또 생리기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의학적 기전은 이러하다. 배란이 되면 난소에서 분비하는 프로게스테론이 혈관을 타고 간으로 간다. 이때 프로게스테론의 일부가 신경스테로이드인 알로프레그나놀론(이하 알로)으로 바뀌게 된다. 일반적으로 알로는 감정을 지배하는 사령부인 뇌의 바닥 쪽 편도체에서 GABA(신경전달물질, 이하 가바)-A 수용체와 결합한다. 이 스테로이드 구조 화합물은 가바의 기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가바는 뇌에서 몸을 안정화·평온화하고 항불안·항경련 작용을 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이다. 즉 가바의 농도가 높아야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잘 참아낼 수 있다.

알로가 가바-A 수용체의 모양을 바꿔 가바-A 수용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면 불안, 신경과민, 기분 불안정 같은 증상을 동반하는 ‘월경 전 불쾌장애(PMDD)’가 나타난다. 특히 알로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여성에서 ‘월경 전 증후군(PMS)’과 PMDD 증세가 두드러진다. PMS와 PMDD의 시발점이 프로게스테론인 것이다. 이처럼 프로게스테론은 수정체 착상과 임신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신인 동시에 여성의 마음을 뒤흔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많은 여성이 PMS를 겪을 때 가수 최백호의 노래 제목처럼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상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아픈 데 그치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는 행동을 보인다든지 스트레스, 불안, 불면, 두통, 무력감, 감정조절장애, 변비, 설사의 반복, 여드름 같은 증상까지 복합적으로 나타나면 PMDD로 봐야 한다. PMDD는 전문의와의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아내가 생리 전후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면 PMS나 PMDD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가족, 특히 남편의 이해와 배려가 절실하다.

에너지 넘치는 42세 미혼여성이 필자를 찾아왔다. 야무진 일 처리로 빈틈을 보이기 싫어하는 완벽주의자였다. 생리 중에는 부하 직원에게 야단치는 수위가 높아지고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진다고 고백했다.

“생리를 시작하기 10여 일 전부터 몸이 붓고 아랫배가 부어올라 정장 스커트가 더 조이는 느낌을 받아요. 전신이 아프고 무력감에 빠져 유방에 조금이라도 무엇이 스쳐도 까슬까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예요. 생리를 할 땐 식탐이 강해져 평소보다 폭식, 폭음을 하게 돼요.”

‘기른 모정’과 ‘낳은 모정’

전형적인 PMS와 PMDD 증상이다. 필자의 눈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당사자는 심각했다. ‘이토록 신경질적인데 앞으로 임신할 수 있을까, 모성애가 있을까’라는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아무렴, 임신할 수 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다만, 뇌 안의 많은 양의 정신 신경회로를 쉬게 해줘야 PMS와 PMDD가 치료된다. 하던 일을 멈추고 햇볕을 쬐며 걷는다든지 몸을 움직이되 뇌를 잠깐이라도 비워두기를 실천한다면 날아갈 것 같은 개운한 몸으로 거듭나 성격까지 부드러워질 수 있다.

모성도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과학은 모성을 호르몬의 마법으로 풀이한지 오래다. 출산한 여성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균형을 이뤄야 아기에게 더 애착을 갖는다. 모성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하는 옥시토신(oxytocin)이다. 옥시토신은 뇌의 사상하부에서 만들어져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된다.

옥시토신의 역할은 다양하다. 분만할 때 농도가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급속히 올라가고, 출산 후에는 프로락틴(유즙분비호르몬)을 분비시켜 모유가 잘 나오게 한다. 또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릴 때도 분비돼 자궁 수축까지 돕는다. 여성은 자식을 품에 안았을 때 체내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고 옥시토신도 다량 분비된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자식이 밥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이유도 옥시토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모성은 출산 후 프로락틴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겨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모성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암컷 생쥐의 뇌에서 프로락틴 수용체를 제거하자 정상적으로 임신하고 새끼를 낳았지만 24시간 안에 새끼들을 내팽개쳤다는 연구 결과(뉴질랜드 오타고대학 연구팀)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미와 새끼가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프로락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동물학자들은 “어미의 뇌에서 프로락틴 전달 능력에 혼란이 생기면 새끼를 버린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식에게 무관심하거나 방치를 일삼는 비정한 모정이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분비에 문제가 생긴 탓일까. 아직 관련 연구가 진행되거나 임상경험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사회학자들은 아기와 엄마와의 애착이 양육 과정에서 구체화된다고 결론지었다. ‘기른 모정’이 ‘낳은 모정’을 이기는 이유일 것이다.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따로 있을까

요즘 가임부부들은 별의별 걱정을 다 한다. 부모의 성격적 결함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유전되는지,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따로 있는지도 궁금해한다. 범죄 심리 전문가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의 뇌는 일반인의 뇌와 다르다. 유전적 요인보다 모성애가 부재한 성장과정과 양육환경 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유전의 영향도 없진 않다. 세로토닌 분비 이상과 폭력유발(MAO-A) 유전자의 발현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형성된다. 이때 MAO-A 유전자는 X염색체를 통해 전해진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사이코패스 70명의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더 폭력적이고 다혈질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XX)은 X염색체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물려받지만, 남성(XY)은 어머니에게서만 X염색체를 물려받아서였다. 그래서 신(神)이 자식을 잘 키워내는 숙제를 여성에게 더 많이 안긴 것일까. 어쨌거나 어머니의 사랑(母性)은 자녀의 일생에 영향을 끼치는 숭고한 힘인 것만은 분명하다.

#모성애 #사이코패스 #신동아


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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