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경고! 가계부실 위험 카드대란·외환위기 이후 최대

  •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연구원 kuwoo.kim@lgeri.com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slee@lgeri.com

    입력2012-03-20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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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가계 부문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중 주택 관련 대출과 자영업자 대출의 비중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나 내수 경기가 침체될 때 부실화할 위험성이 높다. 변동금리부 대출과 단기·일시상환대출 비중이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최근에는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생활자금 성격의 대출이 증가하면서 대출의 질도 악화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3월 초 발행한 보고서 ‘가계부실지수로 본 가계부채’는 2011년 3분기 가계부실지수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라고 경고했다. <편집자 주>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가계부채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가계 부실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 경제의 더블딥과 관련된 우려는 완화됐으나 이란 사태에 따른 유가불안 등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글로벌 경제 부진이 우리 수출을 위축시키고 국내 경제 성장세를 둔화시키거나 부동산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경우, 그간 누적된 가계부채 부실이 현실화할 수 있다.

    경제활동 기초가 되는 가계 부문의 부실은 개인의 경제적 시련뿐 아니라 가계대출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저해할 수 있다. 가계부채의 부실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북유럽 3국의 금융위기 등 과거 주요국의 사례에서처럼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2011년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912조9000억 원(가계신용 기준)에 달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말(213조 원)에 비하면 12년 동안 700조 원가량 늘어났다. 1999년 말~2011년 말 동안 가계부채의 연평균 증가율은 12.9%에 달해 명목 경제성장률 7.1%를 크게 웃돌았다. 경상 GDP 대비 가계부채는 1999년 말 38.8%에서 2011년 말 73.3%로 상승했고, 같은 기간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61.3%에서 78.0%p 증가해 135.9%로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의 가계부채 수준과 비교해보면, 2010년 말 경제 규모(경상 GDP) 대비 가계부채(개인금융부채 기준)는 OECD 평균(79.3%)을 약간 웃도는 85%이다.



    실질 가계부채 세계 최고 수준

    그러나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서 크게 높은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조세부담률로 인해서 가처분소득의 규모가 작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북구 복지국가를 제외하면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실질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등 이전까지 부채가 급증했던 국가들의 가계 부문이 디레버리징(자산 매각으로 부채 절감)에 접어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위기 이후에도 조정되지 않은 결과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상당부분은 은행(예금은행)이 취급한 주택 관련 대출의 형태로, 수도권에 집중됐다. 2011년 말 전체 가계대출 858조 원(판매신용 제외)의 75%인 643조 원은 예금취급기관으로부터 공급됐고, 25%인 215조 원은 여신전문기관(신용카드, 캐피탈 등), 보험, 연기금 등 기타 금융기관에 의해서 공급됐다.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중 제1금융권에 해당하는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71%로 456조 원에 달한다. 나머지 29%에 해당하는 187조 원은 저축은행, 상호금융기관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서민금융기관)을 통해서 대출됐다.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중 지역별로는 전체의 64%가 수도권에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출용도별로는 전체의 61%가 주택 관련 대출이다( 참조).

    가계대출 중 주택 관련 대출 외에도 사업자금 조달을 위한 대출의 비중도 제법 높다.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전체 담보대출 중 거주주택 및 부동산 구입(57%) 외에도 사업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이 28.4%다. 신용대출의 경우에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이 전체의 33%로 가장 높다.

    자영업 가구의 경우 사업자금 마련이 대출용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해 3분기 말 예금은행 중소기업대출 잔액 중 개인사업자대출이 34%인 154조2000억 원에 달한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에도 이러한 성격의 대출 비중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30%가량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택 관련 대출과 사업자금 조달 목적의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만큼 우리나라 가계의 재무건전성은 부동산 경기나 내수 경기가 침체될 때 악화될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

    가계대출, 변동금리·만기 짧아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변동금리부 대출의 비중이 높고 만기가 짧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즉 금융시장의 사정에 따라 가계대출의 금리 리스크나 차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90.7%에 달한다. 또한 금리변동주기도 선진국에 비해 짧아 금리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대출만기도 짧은 편이다. 10년 이상의 장기대출 비중이 2010년 말 기준으로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만기가 짧은 변동금리부 대출 비중이 높은 것은, 일차적으로 금리 리스크나 차환 리스크에 대한 차입자의 인식 부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 여건이 좋은 상황에서는 변동금리가 고정금리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기존 대출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신규대출을 통해서 원금을 상환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단기대출을 선호하게 된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금융시장의 장기자금 조달여건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조기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고 금리리스크도 차주에게 넘길 수 있는 단기 변동금리부 대출이 유리하다. 그러나 저금리, 풍부한 시중 유동성 등 차입자에게 유리한 금융시장 여건이 반전될 경우 기존의 이점들은 모두 차입자의 부담이 돼, 가계 부실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형태도 대외 충격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말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일시상환형 대출비중이 41.3%로 나타난다. 2004년 말 76.8%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 같은 기간 분할상환형 대출은 23.2%에서 58.7%로 늘어났다. 일시상환형 대출 잔액이 100조 원을 조금 넘은 수준에서 별 변화가 없으면서 분할상환형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그러나 분할상환형 대출의 88.5%가 거치기간 연장을 통해 사실상 일시상환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더욱이 2005년 이후 취급됐던 거치식 분할상환형 대출의 거치기간 종료가 본격화하고 있다. 향후 원리금 상환부담에 노출된 가구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비은행권, 생활자금 대출 급증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최근에는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생활자금 성격의 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대출의 질이 악화되는 추세다. 2010년 이후 가계대출 중 신용대출의 증가율이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을 초과하고 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중에서도 주택구입 이외 목적의 대출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상호금융을 중심으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은행 이상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가운데 여신전문기관, 대부업체의 대출증가세도 높다.

    예금취급기관 중에서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비중이 2007년 이전까지 20%대 초반에 머물렀으나 2011년 말에는 29%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중 비은행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도 40%에서 47%까지 상승했다. 생활자금 성격의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현상은 저신용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체 대출이용 목적의 변화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 2009년 상반기 대부업체 신규대출의 28.2%가 생활비 충당 목적이었는데, 2011년 상반기에는 41.4%까지 높아졌다. 최근 들어 경상지출을 위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물가가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생계비 지출이 증가한데다, 전월세 가격 급등으로 가계 지출의 중요부분을 차지하는 주거비용이 꾸준히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비은행권 신용대출의 증가는 가계의 이자지급부담 증가와 다중채무자 확대라는 측면에서 가계대출 부실화라는 악영향을 미친다. 비은행권 대출은 은행권 대출에 비해서, 신용대출은 담보대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가계의 이자지급부담은 커진다. 또한 비은행권 대출은 금리수준이 낮은 은행권 대출을 우선적으로 받은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대출도 용이한 편이다. 따라서 비은행권 대출의 증가는 다수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동시에 차입한 다중채무자의 발생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다중채무자의 비중이 높아질 경우 특정업권의 부실이 타 부문으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

    가계부채의 부실은 현재의 빚을 미래의 현금 흐름으로 갚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다. 첫째,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가계 구성원이 예상치 못한 실업을 당해 소득의 원천이 사라졌을 때 발생한다. 둘째, 가계가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지출해 부채 지급여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졌을 때다. 셋째, 금리 급등이나 원금 증가로 가계의 지급능력을 초과하는 원리금 상환부담이 발생할 때다. 넷째, 가계가 대출로 조달한 자금으로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에 투자한 상황에서 자산가격이 급락할 경우다.

    가계 부실 가능성은 가계부채 부실화 과정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즉 가계부문의 소득여건, 지급여력, 이자부담 정도, 원금상환능력 등 차주(가계)의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 이를 위해 가계 부실의 다양한 측면을 대변하는 네 가지 지표를 사용해 가계부실지수를 산출했다. 지수의 시계열을 통해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 시 가계 부문의 부실 정도와 비교해볼 수 있다. 지수의 변화에 대한 구성지표의 기여도를 살펴봄으로써 가계 부실의 성격을 구분할 수도 있다.

    가계부실지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높은 수준 지속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가계대출의 연체율,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수, 신용불량자 수 등 특정 지표를 통해서 가계부채의 부실을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지표들은 부실의 원인보다는 결과를 반영하는 측면이 강하다. 연체율은 대출증가 속도가 빠를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며, 금융기관이 부실자산 대손상각, 부실자산 유동화, 리볼빙서비스, 대환대출 등의 금융수단을 통해서 연체율을 일정 부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신용불량자 수나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수도 금융당국의 정책 변경에 따라서 지표의 기준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가계 부문의 부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계부실지수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 가계 부실의 원인을 보다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1990년 1분기부터 2011년 4분기까지의 가계부실지수를 산출했다. 2003년의 카드사태 이후 하향안정세를 보이던 가계부실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높아져 평균 1.22를 전후한 수준에서 등락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1.76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1.68)는 물론 신용카드 사태 여파가 불었던 2004년 1분기(1.06)보다 높은 것. 지난해 4분기 말에는 가계부실지수가 0.77로 떨어져 3분기에 비해 크게 개선됐으나, 위기 이전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계 부실화의 위험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높은 수준의 가계부실지수가 지속된 것은 실업률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구성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가계의 원금상환능력, 지급여력, 이자부담수준이 모두 악화된 것. 이러한 특징은 2010년 2분기 이후 계속되고 있으며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의 가계부실지수 성격과는 다른 양상이다.

    부채자산비율 주식시장에 따라 변동

    외환위기 당시에는 실업률, 이자상환비율, 흑자율이 가계부실지수 악화에 영향을 미친 반면, 부채자산비율은 개선되는 모습이었다. 고강도의 구조조정과 고금리 정책, 소득의 급격한 감소가 가계부실요인이 된 반면, 금융기관의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가계대출이 회수되면서 부채자산비율은 개선됐다. 카드사태 때는 이자율 하락으로 이자지급부담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자율이 악화되고 부채 급증에 따른 부채자산비율이 상승해 가계부실지수가 높아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식가격 폭락으로 인해 부채자산비율이 악화됐다.

    최근 부채자산비율은 주식시장에 따라 변동한다.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당시 부채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부채자산비율이 변동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카드사태 이후 부채증가율이 이전에 비해 안정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가계자산 중 주식 관련 상품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최근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3분기 가계부실지수가 급등한 데에는 부채자산비율의 악화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11년 3분기 개인금융자산은 전 분기보다 41조 원 감소했는데, 이는 리먼 쇼크로 주가가 폭락했던 2008년 4분기 26조 원을 능가하는 사상 최대 폭의 감소 규모다. 지난해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개인들의 자산 중 주식의 가치가 전 분기 456조 6000억 원에서 403조 원으로 11.7% 감소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인금융부채는 증가세가 지속되어 20조6000억 원 증가하면서 순금융자산의 감소 폭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급상승하면서 가계부실지수 상승에 기여했다.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이자상환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지속적으로 경신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준에 머물던 이자상환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저수준의 금리가 유지되는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10년 7월을 시작으로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5차례에 걸쳐 1.25%p 인상됐으나 가계대출금리는 여전히 2000년대 중반 저금리 시기보다 낮은 수준이다. 2009년 이후 평균 가계대출금리(잔액기준) 5.47%는 금융위기 이전에 기록한 최저금리인 6.05%(2005년 9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처분소득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자비용이 증가하면서 이자상환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가계대출금리가 안정적인 가운데 이자부담이 증가한 것은 두 가지 측면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가계부채 누적으로 원금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이자비용이 늘어났고,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 증가율이 높았다.

    가계의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흑자율은 지난해 4분기에 이례적으로 급등하며 가계부실지수 개선에 기여했다. 지난해 4분기 흑자율은 25.8%(도시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수준을 보여주었다. 명목기준으로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으나 소비지출은 2.9% 증가에 그치면서 흑자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고용사정의 개선과 연말 성과급 지급이 반영된 측면이 있으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실제 성과는 반감됐다. 실질기준으로 소득은 3.8%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였으나 소비지출은 -1.1%로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소득증가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소비지출의 위축은 위기를 전후해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해왔기에 긍정적 신호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흑자율이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는 낮은 상황에서 가계의 지급여력 확대가 추세적 현상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흑자율의 변화에는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꾸준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던 흑자율은 외환위기 직후 급락한 이래 좀처럼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평균 27.1%였던 흑자율은 이후 평균 22.1%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흑자율 평균이 5%p 하락했는데, 소득 5분위를 제외한 전 소득계층의 흑자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흑자율의 하락이 장기화됨에 따라 적자가구 비중도 외환위기 이후 체계적으로 증가했으며, 소득분위별 악화 폭은 저소득층일수록 크다.

    가계소득 대부 지출부담이 증가, 원인은 교육비

    흑자율의 구조적 하락은 크게 소득 측면과 지출 측면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소득 측면에서 살펴보면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이전보다 둔화된 가운데 교역조건의 악화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GNI 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하회하는 시기가 잦아졌다. 제도 부문별로 보면 비금융법인(21.0%), 금융법인(14.8%) 등 기업 부문의 순처분가능소득의 증가율은 높았던 반면, 개인의 순처분가능소득(명목) 증가율은 평균 5.3%에 그치면서 전체소득증가율 6.3%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 결과 순처분가능소득(NDI) 중 기업의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 평균 5%에서 최근 14%까지 증가한 반면,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4%에서 63%로 급락했다. 거시적으로 경제성장에 비해 소득성장이 정체하는 가운데, 순처분가능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몫의 비중도 감소하면서 가계가 체감하는 소득 정체가 심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극화 심화로 소득계층 간 분배도 악화됨에 따라 최상위 소득계층을 제외한 전 소득계층의 흑자율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흑자율 악화는 소득 측면뿐만 아니라 지출 측면에서도 작용했다. 1990년대 평균 가계지출과 2000년대 이후 평균 사이의 변화를 살펴보면, 소득의 증가율보다 지출의 증가율이 높았다. 가계지출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 항목은 교육비였다. 지출항목별 증가율 측면에서는 통신(154.9%), 연금(137%), 사회보험(91.1%) 등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가계지출 증가에 대한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반면에 교육은 93.9%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계지출 증가에 대한 기여도가 17.2%p로 가장 높았다.

    연령별 가계지출 비중(2011년 기준)에서 40대 가구주의 교육비 지출 증가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40대 가구주 가구의 흑자율은 19.6%로 23.8~29.0%를 나타내는 여타 연령대에 비해서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후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40대의 저축여력이 가장 낮은 것은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교육비가 가계수지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가계의 소득여건을 나타내는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가계부실지수 개선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서비스업 부문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완전고용수준으로 실업률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실업률 하락의 이면에는 은퇴 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영업을 선택한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트타임 직종이 부쩍 늘면서 고용의 양적 성장에 비해 실질적인 고용량은 정체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고용지표의 개선이 가계의 실질적인 소득여건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 이러한 특징은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낮은 가계 연체율, 최근 반등 기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높은 수준을 지속해온 가계부실지수에 비해서 연체율은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해왔다.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해온 것은 금융시장 여건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만기연장률이 약 90%를 나타내고, 주택담보대출 중 이자만 내는 대출(일시상환대출 및 거치기간 중인 분할상환대출)의 비중이 80% 가까이에 달하면서 가계의 원리금 상환압력이 낮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은행권이 막대한 이자수익을 바탕으로 부실채권을 지속적으로 정리해온 것도 연체율 안정에 기여했다. 신용카드사의 경우 카드사태 이후 부실의 원인이었던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대출성 자산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연체위험이 낮은 일시불, 할부 등 신용판매자산을 늘려왔다.

    그런데 최근 이전까지 하향안정세를 보이던 연체율이 반등하고 있다. 이자지급 부담이 높아지는 가운데 만기가 도래하거나 거치기간이 만료된 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의 원리금상환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부동산시장 회복도 지체되면서 금융기관의 대출태도가 강화되고, 만기연장률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부채상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 최근 들어 신용카드사들이 카드론 및 리볼빙 서비스에 영업역량을 집중하면서 연체위험이 높은 대출성 자산의 증가세가 높다. 신용카드사의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은행권 신용카드 부문 분사와 신규 진출로 인해 신용카드 회사 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향후 가계 부실에 대한 부정적 요인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한계상황에 처한 가계의 부실화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가계부실지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계 유동자산의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는 자산 구성에서 실물자산의 비중이 높고, 부채를 통해 주택을 구입한 가구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유동자산으로서 원리금 상환압력에 대한 완충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완충판이 또 다른 자산시장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것은 가계의 유동성 사정이 대외 충격에 취약함을 시사한다.

    가계 리스크 누적, 장기 과제 필요

    둘째, 최근 들어 이자상환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가계대출 원금의 규모가 꾸준히 증가한데다 비은행권의 고금리 대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중심으로 대출 수요가 지속되고, 거치기간이 종료되는 대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큰 폭의 금리인하는 힘든 상황이다. 향후 가계의 이자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이자율이 안정된 상황에서도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부실이 가시화될 수 있다.

    셋째, 가계의 지급여력과 소득여건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적으로 악화돼왔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구조의 변화로 가계소득이 정체한 가운데 교육비, 교통비, 주거비 등의 부담은 크게 증가하면서 가계수지를 악화시켜온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상대적으로 양호한 지표 수준과는 달리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질적인 측면이 악화되면서 소득여건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제결제은행(BIS) 앤드루 크로킷(Andrew Crockett) 전 총재는 2000년 9월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금융감독 콘퍼런스에서 “흔히 리스크는 불황기에 올라가고 호황기에 낮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호황기에 축적된 리스크가 불황기 때 실현된다”고 말했다. 가계부실지수가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가운데 가계부채 규모가 경제 규모나 소득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가계 부문에 대한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높은 부동산 가격, 포화상태의 자영업, 고질적인 적자가구 등으로 축적된 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 가계부채 부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행했던 대출 만기, 거치기간 연장과 대환대출 지원 등의 대책은 리스크 실현의 시점을 연기할 수 있지만 리스크 자체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상환능력과 적극적으로 연계해 안정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디레버리징의 과정을 유도해야 한다. 단기간의 인위적인 충격보다는 장기적인 과제로 해결해야 하는 것. 부채 축소 과정이 주택가격 급락이나 대외충격 등으로 인해 강요될 경우 경제 주체의 동시다발적인 위험기피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누적된 리스크가 급속도로 실현되면 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은 상당히 클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해 과거 디레버리징을 경험했던 국가의 경우, 디레버리징으로 인한 내수의 공백을 수출을 통해 메워 장기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지만, 현재는 글로벌 경제가 부진하기 때문에 이 역시 제한적이다.

    비은행권 중심 생활자금, 자영업 대출 급증
    금융기관 전반 건전성 개선은 다행

    다행인 점은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전반적인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자금조달 측면에서 양도성 예금증서(CD), 금융채 등 시장성 자금조달과 단기외채 등을 통한 자금조달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에 가계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 예측된 위험은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인 것.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과 시스템을 갖췄다는 미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가 전체 가계대출의 일부에 불과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금융시스템 측면에서 가계대출의 위험요인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상대적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비은행권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리스크 해소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을 통해 가계 부실화에 대응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물가안정을 통해 가계 부담을 덜고, 경기 위축에 대한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가격 안정화 기조를 유지하되 DTI, LTV 등 주택대출 건전성 관련 규제를 부동산 경기 조절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 가계수지 적자에 노출된 저소득 가구에 대해서는 금융지원을 통해 부채를 늘리게 하는 것보다 사회보험이나 공적 이전지출,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한 소득보전 차원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노후대비가 부족한 은퇴 가구가 자영업에 쏠리는 것을 막고, 과도한 자영업 부문을 안정적으로 구조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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