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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념 깬 맛,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통념 깬 맛,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뻔하지 않은 ‘의외’의 범주에 있는 것들은 신선한 충격 내지 감동을 안긴다.
맛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기후온난화로 대구 사과, 제주 감귤 같은 공식이 깨진 지 오래고, 긴 시간 동안 다져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지역과 음식의 조합이 생겨났다. 식재료의 색다른 궁합 또한 흥미롭다. 게다가 맛까지 좋아 찾는 이가 많다. 그래서 준비한 이달의 주제는 바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다. <편집자 주>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해 과일의 산지가 북상하고 있다. 무화과는 충북 충주, 복숭아는 경기 파주까지 올라왔다. [Gettyimage]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해 과일의 산지가 북상하고 있다. 무화과는 충북 충주, 복숭아는 경기 파주까지 올라왔다. [Gettyimage]

구구단처럼 자리 잡은 금산 인삼, 경산 대추, 공주 밤, 가평 잣 같은 목록을 재정리할 때다. 특히 과일 재배지가 변화무쌍해졌다. 감귤은 제주도를 벗어나 대한민국 서해의 북쪽 끄트머리인 인천까지, 바나나는 경기 안성까지 올라왔다. 여름 끝물에 반짝 나오던 전남 영암 무화과는 충북 충주에서도 생산된다. 포도 역시 강원 영월까지 재배지를 넓혔다. 과일은 아니지만 보성의 녹차가 고성에서도 재배되며, 금산과 풍기에 펼쳐져 있던 드넓은 인삼 재배지가 인천에도 생겨나고 있다.

재배지가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기후변화다. 기온이 1℃ 올라가면, 기존의 생장 온도를 맞추기 위해 작물의 재배한계선이 81㎞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고도 역시 154m 높아진다. 섭씨 1도가 일으키는 나비효과다.

재배지가 이동한 것 중에 수입 과일의 ‘이주’도 빼놓을 수 없다. 모양은 영락없이 ‘외국산’인데 원산지가 ‘국산’인 것이 부쩍 늘었다. 뜨겁고 습한 동남아 여행지의 기억을 새콤새콤 산뜻하게 각인해 준 패션프루트가 우리 엄마 고향 근처인 경북 김천에서 자라고 있다. 통조림에 든 것보다 10배는 더 맛있지만 손질하기 까다로운 파인애플이 전남 해남에 있다. 참외와 닮았는데 과육이 부드럽고 먹을 게 한참 더 많은 멜론은 전남 곡성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다가 시래기가 유명한 강원 양구에도 뿌리를 내렸다. 하도 비싸서 쉽게 맛볼 수는 없지만 용과(드래곤프루트)는 해남과 경남 진주에서, 애플망고는 제주와 경북 경주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나 같은 소비자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맛의 기회가 넓어지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 물론 우리 땅으로 이주해 오는 과일이 있다면 떠나야 하는 무언가도 생길 것 같은 걱정스러움도 남는다. 봄과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모두가 몸으로 느끼는 변화이니까.

내일이 기대되는 경주 맛집 ‘성동시장’

경북 경주의 재래시장 ‘성동시장’에는 한식 뷔페처럼 갖가지 반찬 가게가 즐비하다. [경주시청]

경북 경주의 재래시장 ‘성동시장’에는 한식 뷔페처럼 갖가지 반찬 가게가 즐비하다. [경주시청]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이런 과일이나 식재료만이 아니다. 음식이나 맛집도 그러하다. 찬바람 부는 내내 과메기 생산에 여념이 없는 바닷가 마을 구룡포에 가면 황태덕장처럼 생선 말리는 모습을 지천에서 볼 수 있다. 도시로 나가는 공장형 상품보다는 집집마다 두고 먹을 것을 장만하는 경우가 더 잦다. 마른 생선들 사이에 철규분식이 있다. 분식 하면 떡볶이나 쫄면 등이 있을 것 같지만 여긴 단팥죽과 찐빵을 판다. 손을 타서 반들반들해진 작은 나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노라면 내 아버지의 어린 시절 가까이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풍기 하면 인삼과 인견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의외로 유명한 것이 찹쌀로 빚은 도넛이다. 인삼, 사과, 생강 등의 풍미를 담은 풍기 도넛은 택배로 맛봐야 할 지역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풍기의 평양냉면 맛을 더 쳐주고 싶다. 쉬이 끊어지는 메밀면발에 무심함과 깊이를 동시에 갖춘 육수를 맛볼 수 있다. ‘인싸’들이 가기에는 다소 먼 것이 단점인데 그 한적함이 여행자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1년에 서너 번씩 꼬박꼬박 경주에 가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나에게 ‘경주 맛집’을 꼽으라면 단연 ‘성동시장’이다. 처음에는 맛집을 검색하고 주변에 물어보며 불고기, 평양냉면, 국수와 만둣국 등을 찾아 먹곤 했다. 여행자로서는 맛 좋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정기 방문하는 나와 같은 입장이 되면 두세 번씩 반복하고 싶은 체험은 아니다. 예상이 가능한, 단조로운 경험은 더는 설레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엘 간다. 성동시장에 들어서면 언제 가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재래시장은 계절과 사람의 옷을 매일 갈아입기에 날마다 새롭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기대된다. 의외성이 넘치는 시장에 가면 10여 가지 반찬을 줄줄이 늘어놓고 파는 한식 뷔페집이 여럿 있다. 말이 뷔페지 거대한 반찬 가게에서 밥을 먹는 모양새다. 갖가지 반찬에는 사장님마다의 손맛, 경주의 지역색 그리고 제철이 담겨 있다. 경주 특유의 정갈한 한정식 집의 단아함, 기품, 편안함은 없지만 펄떡이는 시장의 생기와 분주함이 더해진 생경하고도 따뜻한 한 끼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여행 중에 기대하는 것에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반도의 영토 곳곳에는 제각기 손꼽히는 맛이 있다. 목포의 홍어와 탁주, 나주의 곰탕, 전주의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남원의 추어탕, 언양과 광양의 비슷한 듯 다른 불고기, 진주의 냉면, 마산의 아귀찜, 안동의 찜닭, 금산의 어죽, 서산의 어리굴젓, 병천의 순대, 춘천의 닭갈비, 삼척의 곰칫국…. 눈 깜빡할 새 떠올려 봐도 한반도 지도가 맛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전주가 고향인 친구는 비빔밥을 사 먹어본 적이 없고, 영산포 사는 선배는 홍어를 집에서 먹어야지 왜 식당서 먹느냐고 한다. 내가 평생토록 한강유람선 탈 생각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인가 싶다.

중국집 가면 야키우동, 분식집 가면 상추튀김 먹어야지

대구는 막창과 ‘뭉티기’가 유명하다. ‘대구 막창’이라고 이름 붙인 식당은 전국에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소의 네 번째 위(홍창, 주름 위)를 구워, 특이한 막장에 찍어 먹는다. 뭉티기는 육회인데 달걀노른자와 배, 잣을 섞어 달콤 짭조름하게 양념한 것이 아니라 기름기 없는 소고기 부위를 얇게 한입 크기로 저며 썬 것이다. 고춧가루, 굵게 다진 마늘이 들어간 독특한 기름장에 푹 찍어 먹는다. 두 가지 모두 여행 중의 저녁거리로 즐기기 좋다.

그럼 낮에는 뭘 먹을까. 바로 ‘야키우동’과 납작만두다. 대구 중국집에 가면 ‘야키우동’이라는 메뉴가 있다. 일본식 볶음 우동, 서울식 볶음 짬뽕과도 다른 훈훈한 불맛이 일품. 뾰족뾰족 매운맛 대신 얼큰한 맛이 묵직하게 밀고 들어와 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솟는다.

납작만두는 끼니와 끼니 사이에 간식으로 챙겨 먹을 만하다. 대구에 있는 여러 재래시장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다. 종잇장 같은 게 무슨 맛이 있겠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납작하다. 묽은 밀 반죽에 당면과 부추 따위를 슬쩍 넣어 반달 모양으로 빚은 것을 기름에 지져 노릇하게 익힌다. 한 접시 주문하면 납작만두 대여섯 개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고운 고춧가루, 가늘게 썬 대파와 양파, 간장을 흩뿌려 준다. 넓적한 만두 한 개를 양념과 함께 야무지게 접어서 한입에 먹는다. 보드라우면서도 쫄깃하고 고소하면서 짭짤한 맛이라니. 단조로워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다채로운 묘미를 갖추었다.

광주는 육전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아롱사태, 홍두깨살처럼 기름기가 적은 소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 밀가루, 달걀물을 입혀 바로 부쳐 먹는다. 온기와 촉촉함을 머금고 있는 갓 부친 육전은 거피들깨가루에 콕 찍어 대파 무침 조금 올려 함께 먹는다. 돼지고기 육전, 낙지 탕탕이 부침도 있다. 한편, 대구에 납작만두가 있다면 광주에는 상추튀김이 있다. 상추를 튀겨 먹는 게 아니라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다. 오징어, 당근, 양파, 대파 등을 작게 썰어 밀가루, 달걀물과 섞어 완자처럼 둥글게 빚어 튀긴다. 오징어가 든 튀김이 상추튀김의 주인공이다. 물론 다른 튀김도 상추에 싸 먹을 수 있다. 양파와 고추를 썰어 넣은 간장을 곁들인다.

부대찌개 한 그릇 제대로 먹겠다고 평택 송탄까지 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송탄은 부대찌개가 유명하다. 여기서 시야를 넓혀 송탄의 맛을 찾아보면 ‘미스진 버거’를 만날 수 있다. 햄버거 빵 사이에 달걀프라이, 피클 조각, 얇은 고기 패티 그리고 버거의 모든 부피를 차지하는 엄청난 양의 양배추 채를 넣어준다. 넉넉하게 뿌린 토마토케첩과 마요네즈가 가장자리로 삐져나온다. 우적우적 요란하게 먹게 되는 햄버거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옛날 맛’, 누군가에게는 ‘군부대 맛’ 어린 친구들에게는 ‘레트로 버거’ 같은 다채로운 표현이 쏟아지는 음식이다.

여름 오이지가 울고 간 밥도둑 ‘콩잎’

지역에서 반복된 오랜 식습관은 개성 있는 맛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소금이 아닌 막장에 찍어 먹는 순대, 아기자기한 난전에 쪼그려 앉아 먹어야 제 맛이 나는 비빔당면, 하얀 어묵인 줄 알았는데 치즈처럼 쫀쫀하게 익은 물떡꼬치 등이 대표적이다.

재료나 조리법은 통념에서 한 뼘만 벗어나도 낯설고 놀랍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콩잎 귀신’이었다. 콩잎은 여물고 질겨 깻잎처럼 날것 그대로는 잘 먹지 않는다. 소금이나 양념에 절여 장아찌나 김치로 만든다. 내가 귀신처럼 좋아하는 건 삭힌 콩잎이다. 밭에서 누르스름하게 익은 콩잎을 따서 소금물에 담가 삭힌다. 절여지는 시간을 거쳐 콤콤하게 삭는다. 콩잎은 두꺼운 비닐처럼 미끄덩거리고, 색은 더 누래진다. 여기에 깻잎처럼 매콤짭짤한 양념을 묻혀 재워두고 먹는다. 여름 오이지가 울고 갈 만큼 무시무시한 밥도둑이다.

대구머리찜. [대구시청]

대구머리찜. [대구시청]

대구는 살이 깨끗하고 비린내가 적으며, 내장부터 살집까지 골고루 먹고,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다. 그런데 머리(대가리)는 신선할 때 통째로 굽거나 탕에 넣어 함께 끓이는 정도로만 쓰인다. 그런데 아가미와 눈 등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씻은 대구 머리를 바닷가에 걸어 말려 먹는 경우가 간혹 있다. 꾸덕꾸덕 말리는 게 아니라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린다. 마른 재료는 대체로 본래의 맛이 응집되어 우러난다. 대구 머리도 마찬가지인데 생물일 때 배어나는 시원함이 온통 감칠맛으로 바뀌어 다디달다. 마른 대구 머리는 맹물에 담가 부드럽게 불려 마늘·고추 숭덩숭덩 썰어 넣고 간장에 조리거나, 무·대파 같은 채소 넣고 고춧가루 양념에 자박자박 지져 먹는다. 뼈 사이사이 숨겨진 쫄깃한 살집도 꽤 많고, 백미는 역시 우러난 국물이다. 몸통 한 조각 없음이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진한 생선의 맛이 모두 깃들어 있다.

해남에는 닭 한 마리로 코스 요리를 만들어주는 식당촌이 있다. 토종닭 한 마리로 주물럭, 구이, 백숙, 죽 등을 만들어 줄줄이 먹을 수 있다. 그중에 으뜸은 회다. 닭회라고 하면 흠칫 겁먹는 이들이 있겠지만 막상 닭회 접시가 상에 오르면 윤기 좋은 생선회 못지않게 먹음직스러운 모양에 한 번 놀라고, 이취가 없음에 또 한 번 놀란다. 얇게 저민 모래집 회는 소금과 후춧가루 살짝, 통깨 조금 뿌려 한입에 넣고 씹는다.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난다. 참기름에 살짝 적셔 먹어도 좋다. 닭발을 아주 곱게 다져주는 곳도 있다. 생선 뼈다짐과 비슷한데 양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입안에서 부드러움을 선사할 만큼 기름지면서 고소한 맛이 아주 진하다. 기름기 없는 가슴살이나 안심을 회로 내는 곳도 있다. 무척 말랑하고 부드러워 ‘닭’이라는 사실만 숨기면 누구라도 즐겁게 먹을 맛이 분명하다. 간혹 불쾌하게 여겨지는 고기 비린내는 대체로 살과 뼈에 배어 있는 피, 지방질에서 많이 생겨난다. 티 없이 잘 손질한 닭고기는 육회, 생선회와 다름없이 신선하고, 산뜻하며, 정갈한 맛이 좋은 음식이다.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로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포켓몬빵’이다. 안 그래도 20~30대 사이에서 ‘내돈내산’ 추억의 빵 수집 열풍이 분다고는 들었는데 그 바람이 초·중학생들에게도 번져갔나 보다. 그 덕분에 40~60대 엄마들이 그 빵을 구하고 싶어 다시금 들썩인다. 그 맛이 어른에게는 추억이 재생되는 자극이요,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판타지 세계와 같은 것이다.

포켓몬빵이 깨운 ‘미각 간질이는’ 판타지 맛

앙버터로 고소함을 더한 호두과자. [김민경]

앙버터로 고소함을 더한 호두과자. [김민경]

‘앙버터’가 언제부턴가 인기다. 차가운 버터를 두툼하게 조각내 달콤하게 삶아 조린 팥소와 조합한 것을 말한다. 이를 소금빵, 프레첼, 크루아상, 브리오슈 등 다양한 빵 사이에 끼워 만드는 ‘앙버터 샌드’가 있다. 실온에 두면 살짝 녹으면서 크림처럼 부드러워지는 버터의 구수한 풍미와 달콤하고 진득할 정도로 조밀한 팥소가 이루는 맛의 균형은 어느 빵에 끼워도 그 맛이 도드라진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만 먹어보고 그치기에는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다. 다행히 유행한 지 오래라 새로울 것이 없고,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앙버터’가 호두과자와 만났다. 동글동글 앙증맞은 호두과자가 입을 쫙 벌리고 앙버터를 꽉 물고 있는 모양새다. 귀여움과 기발함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온라인에서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호두과자에 버터를 곁들인 맛이다. 두툼한 버터가 부담스러워 앙버터를 멀리했던 이들도 한 번 도전해 볼 만큼 반갑다.

잣샌드. [김민경]

잣샌드. [김민경]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 가평휴게소에도 미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명물이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개발한 ‘잣과자’다. 산뜻한 우유크림과 솔티트캐러멜, 잣을 버터가 듬뿍 들어간 과자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귀여운 과자 표면에는 잣방울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실은 이 잣과자 전에 제주의 ‘우도땅콩과자’가 먼저다. 우도 형상이 그려진 과자는 제주공항 명물 자리에 금세 올랐다. 두 과자 모두 맛은 평범하고 무난하다. 기름지고 고소한 과자와 크림, 짭조름하고 달콤한 캐러멜 사이에서 땅콩과 잣은 생각만큼 빛을 발하지 못한다. 제주공항과 가평휴게소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한정된 수량만 구매할 수 있다는 악조건이 오히려 궁금함, 기대감 등을 자극해 우리 마음을 끌어당긴다.

제맛을 내기 어려울수록 제맛이 나는 걸 찾아 먹고 싶어진다. 그중에 ‘카늘레’가 포함된다. 카늘레는 프랑스 보르도 태생의 단과자다. 와인 필터링에 달걀흰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는 달걀노른자를 가지고 만들기 시작한 과자가 카늘레다. 주루룩 흐르는 묽은 반죽을 홈이 파진 모양의 틀에 부어 굽는다. 굽게 전에 틀에 천연 밀랍을 넣어 코팅하는 것 역시 카늘레가 갖춰야 하는 특별함 중 하나다. 흑설탕 색의 겉은 단단하고, 속은 노랗고 촉촉하며 진한 향이 나는 카늘레는 ‘작고 소중한’ 미식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정성과 기술, 시간이 어린 과자이니만큼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카늘레 아이스크림도 나타났다. 앙증맞은 카늘레 모양의 초콜릿 안에 풍미가 진한 이탈리아 젤라토를 꽉 채워 넣었다.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난 고추장이 있다. 차진 느낌과 입자, 새빨간 색과 향은 영락없이 고추장인데 주인공은 토마토다. 그렇다고 고추장에서 토마토의 맛이 물씬 나지는 않는다. 그저 메줏가루의 구수한 풍미와 매콤함이 살아 있을 뿐이다. 비밀은 토마토 발효청에 있다. 수년 동안 발효를 거친 토마토청은 싱그럽고 풋풋한 맛은 가시지만 농익은 과일의 풍미가 깃들며 진득한 점도까지 생긴다. 이를 메줏가루, 고춧가루와 섞어 고추장을 만든다. 토마토청이 단맛과 풍미를 충분히 제공하기에 발효 시 단맛을 내기 위해 넣었던 찹쌀가루 같은 전분 재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단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넣었던 소금의 양도 줄이고, 전분을 넣지 않으니 나트륨과 탄수화물 함량이 쭉 내려갔다.



신동아 2022년 5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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