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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퍼스트레이디가 선택한 ‘오스카 드 라 렌타’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美 퍼스트레이디가 선택한 ‘오스카 드 라 렌타’

  • 세계 저명인사들을 고객으로 둔 패션 브랜드 ‘오스카 드 라 렌타’.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 브랜드는 퍼스트레이디 룩과 웨딩드레스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퍼스트레이디의 선택이 있었다.
2018년 메트 갈라에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 하는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된 케이트 보스워스. [Gettyimage]

2018년 메트 갈라에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 하는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어 화제가 된 케이트 보스워스. [Gettyimage]

퍼스트레이디 룩은 많은 사람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유행을 뛰어넘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퍼스트레이디 룩의 시작은 1940년대 영화배우에서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다. 이후에는 1960년대 패션 스타일을 주도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의 재키 룩과 1980년 패션 아이콘인 영국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의 다이애나 룩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도 이 퍼스트레이디들의 패션 스타일은 많은 여성 사이에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0년대에는 제44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마바의 아내 미셸 오바마와 제23대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와 결혼한 슈퍼모델이자 가수인 칼라 브루니 사르코지가 뛰어난 패션 감각의 퍼스트레이디 룩을 선도했다. 미셸의 패션 스타일은 패션잡지 ‘보그’ 미국판 2009년 3월호, 2013년 4월호, 2016년 12월호 3번이나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특히 미셸이 착용한 중저가 브랜드의 의상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브루니 사르코지는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패션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회색 코트에 필박스 해트(hat)를 착용했다. 이는 1962년 영국을 방문했던 재클린 케네디의 의상을 연상시키는 패션에 비견되며 화제가 됐다.

2021년 ‘보그’ 표지에 실린 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드레스를 착용했다. [보그 홈페이지]

2021년 ‘보그’ 표지에 실린 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드레스를 착용했다. [보그 홈페이지]

그렇다면 퍼스트레이디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무엇일까. 바로 재키 룩 유행에 일조한 ‘오스카 드 라 렌타’다. 오스카 드 라 렌타는 힐러리 클린턴과 로라 부시가 남편 취임식 때 선택한 디자이너다. 그는 백악관의 비(非)공식 디자이너로 불린다. 2021년 패션잡지 ‘보그’ 미국판 8월호 표지에는 70세인 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이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드레스를 착용하고 백악관 트루먼 발코니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 실렸다.

이처럼 미국 퍼스트레이디들의 사랑을 받은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을 중요시하는 디자인으로 인정받았고, 오늘날까지 가장 특별한 날을 위한 드레스를 만든 패션디자이너로 칭송받고 있다.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 디자인 맡은 첫 미국인

2015 S/S 컬렉션 무대를 마친 오스카 드 라 렌타. [Gettyimage]

2015 S/S 컬렉션 무대를 마친 오스카 드 라 렌타. [Gettyimage]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는 1932년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인 산토도밍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도미니카공화국 국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산 페르난도 왕립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보험 사업을 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가길 바랐으나 정작 드 라 렌타는 사업에 관심이 없고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지지했던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오스카는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패션디자이너들의 일러스트 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패션디자인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당시 스페인 최고의 디자이너인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부티크에서 세계 각국의 고객들에게 보낼 카탈로그용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1956년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본 스페인 주재 미국 대사 부인은 딸 베아트리체 로지가 사교계에 데뷔할 때 착용할 드레스 디자인을 오스카에게 의뢰했다. 그가 처음 디자인한 풍성한 화이트 컬러 드레스는 큰 호응을 얻어 ‘Life(라이프)’ 잡지 표지에까지 실렸다.

이후 드 라 렌타는 1963년 미국 출장을 통해 알게 된 미국의 유명 화장품 및 패션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Elizabeth Arden·화장품으로 시작해 1943년부터 패션까지 사업을 확장함)에서 디자이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아덴 바이 오스카 드 라 렌타’라는 이름으로 상류층 여성의 다양한 상황에 맞는 맞춤복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드 라 렌타는 1965년 제인 더비(Jane Derby Company)로 직장을 옮겼고 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더비를 대신해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그는 1965년 자신의 브랜드를 미국에서 론칭하고 1960년대 후반 코티상을 두 번 수상했다. 1967년 프랑스 ‘보그’ 편집장이던 프랑수아즈 드 랑글라드와 결혼하고, 드 라 렌타의 회사는 1969년에 리치턴(Richton)사에 매입돼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회사가 된다.

드 라 렌타는 재투자를 통해 1973년 회사의 핵심 결정권을 되찾고 1973년부터 3년간, 1987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의 회장을 역임했다. 1974년에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보이 스카우트 유니폼을 디자인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는 장난감 회사인 마텔사의 의뢰로 바비 인형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1983년 첫 번째 부인인 프랑수아즈 드 랑글라드와 사별하고, 1989년 사교계 인사이자 오랜 친구인 아네트 리드와 재혼했다.

프랑스의 시크한 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 발망은 1982년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이 유명을 달리하자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오스카 드 라 렌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랜드를 이끌었다. 그는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의 디자인을 맡은 최초의 미국인으로 기록됐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는데 주로 내국인에게만 수여하는 이 훈장을 외국인인 그가 받았다는 점에서 드 라 렌타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드 라 렌타는 10여 년간의 오랜 암 투병 끝에 82세 나이로 2014년 10월 20일 코네티컷주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선보인 ‘2015 S/S 컬렉션’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마지막 컬렉션이 됐다. 드 라 렌타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니나리치(Nina Ricc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터 코핑을 자신의 브랜드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고 브랜드를 이어나가 줄 것을 당부했다.

힐러리의 이미지 변신 성공시킨 디자이너

힐러리 클린턴(왼쪽)과 로라 부시.  [오스카 드 라 렌타 홈페이지]

힐러리 클린턴(왼쪽)과 로라 부시. [오스카 드 라 렌타 홈페이지]

1960년대 재클린 케네디부터 낸시 레이건, 힐러리 클린턴, 로라 부시까지 모두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옷을 애용했다. 로라 부시에 이어 딸 제나 부시도 오스카 드 라 렌타를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꼽았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과 드 라 렌타는 자택을 오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드 라 렌타의 도움으로 검은색 의상의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화사하며 여성스러운 색채와 소재를 이용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 다시 검은색 의상을 착용하고 참석해 드 라 렌타를 화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미셸 오바마는 이전의 퍼스트레이디와는 달리 비교적 저렴한 신진 디자이너의 의상이나 제이크루와 같은 대중적 상표의 의상을 애용하곤 했다. 이를 두고 드 라 렌타는 퍼스트레이디가 미국 패션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고가의 디자이너 작품을 착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가 영국 버킹엄 궁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났을 때 카디건을 착용한 것을 크게 비난했다가, 반대로 대중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미셸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시 미국의 패션업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미셸은 만찬에 14년 만에 국빈 방문한 중국 지도자에 대한 환대를 드러내는 붉은색 실크 오간자 드레스를 착용했다. 그러나 그 드레스가 영국 출신 고(故) 알렉산더 매퀸(Alexander McQueen)의 작품으로 알려지며 구설에 올랐다. 경제회복을 위해 중국에 극진한 대접을 하는 상황에서 퍼스트레이디가 과연 미국인의 고용을 생각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드 라 렌타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패션산업은 매우 큰 산업이다. 우리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원한다. 미셸은 미국의 패션산업에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며 신중한 선택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후에 미셸 오바마가 드 라 렌타의 아들인 모이세스의 의상을 착용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모이세스는 2004년 오스카 드 라 렌타 컬렉션을 위해 티셔츠를 디자인한 이래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다가 2009년 MDLR(Moises de la Renta)이라는 캐주얼 브랜드를 론칭해 패션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편 드 라 렌타는 자선사업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82년 무료로 보육원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각종 교육사업을 하고 있는 라 카사 델 니뇨(La Casa Del Niño)의 건립과 운영을 위해 상당 액수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부인인 프랑수아즈의 죽음으로 외롭게 지내던 그는 이곳을 통해 아들 모이세스도 입양했다. 또한 그는 마미 앤드 미 드레스 라인을 출시해 엄마와 어린 딸이 같은 디자인의 옷을 구매할 경우 어린이 드레스 각 아이템당 100달러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자동 기부되도록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메트 갈라의 진짜 주인공

메트 갈라에 등장한 세라 제시카 파커(왼쪽)와 에이미 애덤스. [Gettyimage]

메트 갈라에 등장한 세라 제시카 파커(왼쪽)와 에이미 애덤스. [Gettyimage]

오스카 드 라 렌타는 퍼스트레이디뿐만 아니라 세계의 저명인사들을 고객으로 둔 패션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 가수 비욘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국 앤드루 왕자의 전 부인인 세라 퍼거슨, 스웨덴의 마들렌 공주 등의 왕족들이 오스카 드 라 렌타의 고객이다. 배우 에이미 애덤스의 역대 시상식 드레스 중 최고라는 호평을 받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 드레스도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드레스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의 자금 조달을 위해 열리는 자선 파티인 메트 갈라(MET Gala)는 매년 패션계를 들썩하게 만든다. 메트 갈라에서 2014년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는 클래식하면서도 반전 있는 뒤태의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착용해 시선을 끌었다. 2018년 배우 케이트 보스워스는 성모 마리아를 연상케 하는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와 헤드 피스로 2018년 메트 갈라의 테마인 ‘천체: 패션과 가톨릭의 상상력’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2020년 메트 갈라에서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매릴린 먼로’와 ‘그레이스 켈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우아한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착용했다. 채식주의자이며 동물 권리를 주장하는 그는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디자이너에게 “앞으로 모피 사용을 전면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오스카 드 라 렌타는 모피를 사용한 제품을 판매해 왔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페르난도 가르시아와 로라 킴은 빌리의 요청에 모피 사용 및 기존 모피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가장 특별한 날을 위한 웨딩드레스

태양 민효린(왼쪽), 박신혜 최태준. [뉴스1, 솔트엔터테인먼트]

태양 민효린(왼쪽), 박신혜 최태준. [뉴스1, 솔트엔터테인먼트]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이 가장 선호한 디자이너이며 스타들이 사랑하는 오스카 드 라 렌타가 한국에 이름을 알리게 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2011년 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이었다. 고소영은 튜브톱 스타일의 드레스 하단이 풍성한 레이스로 장식된 A 라인의 오스카 드 라 렌타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 고소영이 착용한 웨딩드레스는 오스카 드 라렌타 웨딩 컬렉션 중 2010년 봄 제품으로 당시 드레스의 가격은 2000만 원대로 알려졌다.

결혼식에 앞서 고소영의 사진을 e메일로 접한 드 라 렌타는 “대단히 아름답다”며 “내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어줘서 영광”이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그는 “한국의 브란젤리나 커플이라더니 명성 그대로다. 우아한 신부와 핸섬한 신랑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이후 2013년 축구선수 기성용과 배우 한혜진, 2018년 가수 태양과 배우 민효린의 결혼식에서 신부들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웨딩드레스를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2년 결혼한 배우 박신혜 역시 가슴에 꽃무늬로 포인트를 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2022년 봄 컬렉션 드레스를 착용했다.

그는 8년간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배우 조지 클루니와 결혼한 영국 인권변호사 아말 알라무딘의 웨딩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했다. 조지 클루니의 아내 아말 클루니가 결혼식에서 착용한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는 한화로 약 4억1000만 원이다. 살림살이를 비즈니스와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의 잡지 ‘마사 스튜어트 웨딩’ 미국판 2014년 겨울 표지를 장식한 배우 케이트 보스워스도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 2021년 힐튼 호텔의 상속녀로도 유명한 페리스 힐튼은 결혼식 당일 웨딩드레스를 4번이나 바꿔 입었다. 그의 메인 드레스는 장인 8명이 1400시간이나 수를 놓아 만든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웨딩드레스였다.

패션은 여성이 입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그의 말처럼 자신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을 선사한 오스카 드 라 렌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레스메이커다.



신동아 2022년 5월호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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