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사바나

사주·운세에 안달하는 2030, 왜?

취업·연애·결혼… “모든 것이 막막해서”

  • 윤혜진 자유기고가

    imyunhj@naver.com

    입력2019-12-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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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입니다. '사바나'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에 속합니다. 커보니 ‘취업이 바늘구멍’이 돼버린 경제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우리 때만큼 노력 안 한 탓’이라는 윗세대의 ‘꼰대질’도 감내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아 윗세대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합니다.

    지난 8월 ‘청년들의 멘토’로 각광받는 김태원 구글코리아 상무의 특강이 있었다. 주제는 ‘4차 산업 시대에 창의적 인재로 살아가는 법’.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픈 청년들로 강연장은 꽉 찼다. 어떤 형태이건 ‘미래’를 알려준다는 곳에는 늘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젊은이에게 패기와 열정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경기 불황, 취업난으로 힘겨운 청춘은 미래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오늘도 이곳으로 향한다. 바로 점(占)집이다. 

    최근 점을 보는 20·30대가 늘고 있다. 특히 연말이 가까울수록 신년 운세에 관심이 높아진다. 선택의 기로에 선 2030 청춘들은 학업운, 취업운, 연애운, 결혼운을 알고 싶어 점집을 기웃거린다. 전통 토정비결로 취업운을 가늠해보고, 타로점으로 소개팅 성공 여부를 가리기도 한다. 20·30대들이 주로 찾는 사주·타로카페는 서울 홍대 앞 일대나 종로, 강남역 등지에 몰려 있다. 기존 점집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이곳에서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몰려와 점을 보는 것은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다.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10~30대 회원 1608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9.2%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미혼 여성의 82%, 미혼 남성의 57%가 자신의 연애·결혼운을 알아보기 위해 한 번 이상 사주나 타로 점을 봤다는 통계도 눈에 띈다.

    알바 잘리고 점 보러 오는 2030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근처 사주·타로카페.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근처 사주·타로카페.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2030세대가 점을 보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SNS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명 점집, 사주·타로카페, 철학관의 문을 두드렸다. 신점, 타로점, 사주풀이 등 운세를 보는 형태는 다르지만 이곳을 찾는 2030이 털어놓은 고민은 비슷했다. 연애, 다이어트와 같은 소소한 문제부터 취업, 이직, 결혼, 재테크 등 다소 무거운 고민거리도 상담 목록에 오른다. 



    서울 종각역 근처에 있는 D사주·타로카페는 광화문 일대에서 터줏대감으로 꼽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30년 내공의 역술인이 자리를 안내했다. 마침 이곳에서는 30대 여성 두 명이 타로 마스터에게 타로점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해외에 나갈 운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려왔다. 

    사주풀이 전문인 이 역술가는 “대부분 여자 손님인데, 애정운과 진로, 취업에 대해 주로 묻는다”며 “20대는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말까’ ‘헤어진 남자친구와 다시 잘될 수 있을까’ ‘나한테 맞는 직업군은 무엇일까’ 등을 주로 묻고, 30대는 남자친구와 결혼 궁합이 맞는지, 언제쯤 결혼할 수 있을지, 이직을 해도 괜찮을지 등을 묻는다”고 덧붙였다. 

    예전과 비교해 20·30대 방문이 어느 정도 늘었느냐는 질문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전체로 따졌을 때 20·30대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절대적 수치는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와 2030 비율이 더 높아졌다는 게 최씨의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 등으로 있던 일자리마저 줄어들면서 2030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최씨는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막막해하는 젊은이를 많이 볼 수 있다”고 덗붙였다. 이어지는 최씨의 말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속이 답답한 사람들이 점집으로 몰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처럼 정말 힘들 때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바빠 물어볼 여유도 없어요. 점 보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할 테고요.” 

    점집 후기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신점으로 입소문난 무속인 B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10년째 활동 중인 B씨는 최근 서울에 이어 부산에도 새로 신당을 열었다. 그는 “2~3년 전보다 확실히 20대와 30대 상담이 늘었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목표도 없고, 삶이 막막해 보여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B씨의 말이다. 

    “삶에서 어느 정도 일군 게 있는 중장년층은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물을 게 있는데, 젊은 친구들은 ‘일이 언제 잘 풀릴까요?’처럼 막연한 질문만 해요. 이러면 점을 봐주는 게 아니라 상담이 돼버리죠. 점을 보다가 그냥 젊은 친구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점 보면 마음 편해져

    최근에는 대인관계를 고민하는 젊은이도 많다고 한다. B씨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사람 대하는 게 어렵다고 토로하는 젊은이가 많다”며 “아예 다 털고 해외에 나가 살면 어떻겠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점괘에 외국과 인연이 있다’고 하면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벌이가 안정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연애나 결혼에 대한 고민도 따르게 마련이다. 50년 경력의 철학인 C씨는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3포세대’의 현실이 점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점집을 찾는 이들의 공통점은 위안과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년간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는 최모(24) 씨는 최근 친구 소개로 찾은 사주카페에서 ‘총을 차는 직업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9급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최씨는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해 별 고민 없이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고민이 있었다. 

    최씨는 “사주카페에서 ‘경찰’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공부한 게 좀 아깝긴 하지만, 나중에 더 큰 후회를 하느니,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IT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28) 씨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을 잡은 성공한 사례다. 그는 자신의 행운에는 부적의 역할이 컸다고 믿는다. 원래 김씨는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점을 보고 왔는데, 바다 건너가서 살면 단명한다고 하니 유학을 다시 고민해보라”며 점쟁이가 써준 부적을 건넸다고 한다. 

    김씨는 “마침 그 무렵 맹장이 터져 수술했는데, 한번 크게 아프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도 느껴지고, 특히 ‘바다 건너가면 위험하다’는 점쟁이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아 큰 기대 없이 취업 시험을 봤는데 한 번에 덜컥 붙었다”며 웃었다. 유학보다 취업을 택하길 잘했다고 믿는 김씨는 요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다니는 점집을 찾는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36) 씨는 소개팅을 앞두고 점집을 종종 찾는다. 결혼해도 좋은 상대인지 알고 싶어서다. 사실 박씨는 지난해 대학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신혼집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양가 상견례까지 마쳤지만, 여자친구가 신혼집을 계속 탐탁지 않게 여겨 결국 헤어졌다”며 “그 일로 자신감을 많이 잃었고,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무탈하게 살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털어놓았다.

    ‘스낵컬처’로 자리 잡은 점(占)

    점(占)을 대하는 2030의 특징 중 하나는 점 보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놀이이자 힐링의 순간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SNS 등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점을 접하는 채널 또한 다양해졌다. 입사 3년차 때부터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모(28) 씨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스마트폰에서 사주풀이 앱을 연다. 김씨는 “나의 기질이나 특징을 신기하게도 잘 맞힌다. 나보다 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아서 은근히 의지가 되고, 점괘를 보는 순간에는 머리가 가벼워져서 좋다”고 말했다. 

    때로는 점집이 ‘결정 장애’를 가진 이의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주부 홍모(여·37) 씨는 점집에서 종종 재테크 상담을 받는다. 최근에는 몇 년 전 사둔 아파트를 팔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다 점쟁이를 찾아갔다. 홍씨는 “아이 교육을 생각해서 학군 좋은 곳으로 옮기려면 집을 팔아야 하는데, 과연 잘하는 짓일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점을 봤다”며 “큰일을 결정할 때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점집 문을 두드린다”며 웃었다. 

    SNS로 점집 정보를 공유하는 이도 많다. ‘인스타그램’에서 ‘#점집’ ‘#타로’ 등으로 검색하면 젊은 무속인의 소소한 일상 글부터 타로카페 데이트 사진, 점집 후기, 업체 홍보까지 다양한 게시물이 보인다. 특히 ‘운세를 봐준다’는 영업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통해 바로 상담 일정을 잡는 형식이라, 역술인(무술인) 처지에서는 무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개중에는 점을 자주 보다가 관심이 생겨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전향한 이들도 있다. 

    울산에 거주하는 대학생 오모(21) 씨는 SNS를 통해 사주풀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평소 어머니가 유료 사주풀이를 보는 데 돈 쓰는 걸 보고 오씨 본인이 아예 ‘만세력’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오씨는 “요즘은 무료 앱이나 커뮤니티 등에 참고할 자료가 많아 원리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비결을 밝혔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상대로 연애운이나 자격증 시험 합격운 등을 알려주다가 ‘족집게’라는 얘기도 들었다. 오씨가 지금까지 사주풀이를 해준 사람만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 달 평균 수입도 40만 원 정도 된다. 오씨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사주명리학을 독학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모바일 앱으로 점 보며 놀아요”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점술 시장 규모는 37억 달러(한화 4조1569억 원)에 달한다. 특히 온라인 운세 서비스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운세 앱 규모는 5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커졌다. 2030이 즐겨 쓰는 ‘점신’ ‘헬로우봇’ 등은 ‘구글플레이 베스트 오브 2018’ 시상식에서 ‘올해를 빛낸 엔터테인먼트 앱’에 선정되기도 했다. 

    ‘헬로우봇’은 12개 캐릭터 챗봇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타로, 사주, 심리진단 등을 즐길 수 있다. 일부 유료 서비스 비용이 저렴한 점도 매력이다. 오프라인 타로카페는 보통 한 셔플(타로카드를 섞고 한 번 펼치는 것)당 비용이 5000~1만 원인 데 반해 온라인 앱은 상담 하나당 비용이 1000~5000원대 사이로 저렴하다. 

    2014년 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넘은 ‘점신’은 오늘의 운세와 시간대별로 풀이되는 운세를 알림으로 받아볼 수 있고,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하면 이를 인식해 관상을 봐준다. 

    간편한 전화나 문자 상담 업체도 인기다. ‘사주신궁’ ‘운세7’ ‘홍까페’ ‘타로문’ 등 각 업체 홈페이지나 블로그, SNS로 상담가 리스트와 후기를 살펴보고 원하는 사람과 시간을 정해 상담하면 된다. 전화 상담은 대략 15분에 3만 원 안팎으로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통화가 끊기거나 미리 돈을 충전한 만큼 상담을 받는 방식과 정보이용료를 전화요금에 합산하는 060 유료 전화 방식도 있다. 전화나 채팅 상담은 질문이 치밀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이와 마주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이처럼 날로 간편하고 저렴해지는 운세 서비스는 어느덧 2030 사이에서 ‘스낵컬처(Snack Culture·스낵을 즐기는 것처럼 가벼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오늘도 이들은 수화기 너머로, 모바일 앱으로 점을 보며 웃고 견딘다.

    “멘토가 필요해”

    [GettyImage]

    [GettyImage]

    개인 맞춤형 조언이라는 면에서 점(占)은 일종의 카운슬러와 같다. 직장인 이모(26) 씨는 “몇 월에는 뭘 조심하고, 어떤 물건을 지니면 행운이 온다는 식으로 짚어주니까 ‘손해 볼 건 없다’는 심정으로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권모(33) 씨는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행운에 기대려는 이가 많다”며 “특히 이들은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안모(남·32) 씨도 “지난해 로또 판매액이 신기록을 세웠다는데, 어디라도 기대고 싶다는 면에서 점과 로또가 비슷한 것 같다”고 밝혔다. 

    2030들이 정신적으로 의지할만한 ‘멘토’가 많지 않다는 것도 이들이 점에 의존하는 이유다. 부모나 직장 선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얘기는 뻔하다. “우리 때는 말이야” “힘든 건 금방 지나간다” “그 땐 다 그래” 등의 훈계가 듣는 이의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무속인 C씨는 “자식 문제로 점을 보러 온 부모들을 보면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다. 세상이 바뀐 만큼 자식을 보는 눈높이도 달라져야 하는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안달복달하는 이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자신의 인생을 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곤란하다. 전문가들은 운세 서비스의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점괘를 맹신하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과 문턱은 여전히 높은 반면 점에 대한 부담감은 현저히 적다”며 “점을 보는 행위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겠으나, 불안감이 증폭될 때는 먼저 자신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가’ ‘그것이 내게 어울리는 모습인가?’를 질문해보라”고 조언했다.

    '신동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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