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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국군포로, 중국에서 체포 후 한달째 억류중

상봉… 체포… 억류… 그리고 한 달 “우리 오빠를 돌려주세요”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ky3203@donga.com

70대 국군포로, 중국에서 체포 후 한달째 억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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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이게 웬일이야? 내일이면 서울로 함께 갈 줄 알았는데… 아무도 우리 오빠한테 손 못대. 놓으란 말이야!”

1월9일 밤,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옌지시에 있는 공안국 청사 6층 조사실. 국군포로 김기종씨의 막내동생 김말숙(60·대구 거주)씨는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와 고개를 떨구고 선 오빠 김기종씨를 보는 순간 ‘설마, 설마’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쪼글쪼글하고 파리해진 손목에 수갑을 걸고 서있는 오빠 기종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말숙씨가 주저앉아 통곡을 하는 사이 말숙씨의 언니 정숙씨(68·경기 안산 거주)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아예 실신한 채 쓰러져버렸다. 순간 공안국 청사는 온통 울음바다로 뒤바뀌어 버렸다.

52년 만에 피붙이를 만난 상봉의 기쁨도 한순간. 그날 밤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옌볜 공안국으로 압송돼 온 국군포로 김기종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대로 북한에 가면 죽는데… 죽는데…”라는 말만 힘없이 뇌까리고 있었다.

정숙씨와 말숙씨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옌지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북중 국경의 한 도시에서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오빠 기종씨를 52년 만에 만나 ‘이제는 모두 살았다’며 ‘한국으로 건너가 오순도순 살자’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그러나 이들 남매가 다시 만나기까지 기다려왔던 52년의 시간은 단 한 시간 만에 산산조각나 버렸다. 예상치 못한 중국 공안의 습격으로 현장에서 가족 모두 체포되면서 상봉의 기쁨은 가슴 저미는 초조한 기다림으로 바뀌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장면 2 “니 와 이렇게 폭삭 늙었노?”



이보다 하루 전인 1월8일 오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시. 눈빛이 선하고 총명하던 스물두 살의 청년은 5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빨이 뭉텅 빠지고 머리는 백발로 뒤덮인 보잘것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노인은 어려서 전쟁이 갈라놓은 동생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바심치며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52년 만에 오빠를 찾아나선 누이동생들도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행한 안내인으로부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두리번거리지 말고 각자 거리를 둔 채 미리 지정해둔 집으로 들어가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은 터였다. 그러나 옌지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려 ××시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두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발걸음을 어떻게 떼놓는지도 모른 채 뛰어들 듯이 허름한 민가의 문을 열어젖혔다.

“맞네, 맞네.” 

“오빠 맞다! 우리 오빠 맞다!”

숨어 있던 노인을 보자마자 두 여동생의 입에서는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일곱 살 때 봤던 우리 오빠 맞네. 내 어릴 때 봤던 우리 오빠 맞다.”

“아버지 얼굴 그대로다!”

두 여동생은 펄쩍펄쩍 뛰며 폭삭 늙어버린 오빠한테 매달렸다.

“네가 기종이가? 니 와 이렇게 됐노, 날 알아보겠나?”

맏형 김기상(76)씨는 자신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네살 아래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더 확인하고 말 것도 없었다. 갸름한 턱선과 서글서글한 눈매를 보자마자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3남매는 ‘와락’ 얼싸안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끝도없이 비벼댔다.

아버지는 아들 기종씨가 전쟁에서 죽은 줄로만 안 채 70년대 중반 이미 세상을 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둘째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 사실을 통보받고 나서 피를 한 대야쯤 토하고 몸져 누웠다. 어머니가 세상을 등진 지도 올해로 20년이다. 4남2녀나 되는 남매들 중에서도 이미 두 사람이 세상을 떴다.

그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70줄에 들어선 4남매의 기억력은 전쟁과 생활고의 가혹한 세월 앞에서도 녹슬지 않았다.

“소대 전체가 전투에 나갔다가 중공군에 포위가 돼버린기라. 사방에서 수류탄이 막 터지는데 다른 동료들은 다 죽고, 나만 운전석에 있었던 바람에 살아남았지 뭐냐.”

“나는 또 젊을 때 오빠가 하도 날래놔서 ‘빵’하고 터지면 혼자 뛰어 달아나다가 총맞은 줄 알았다카이.”

“오빠가 없어지고 나서 어머니가 온통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다 찾아다니면서 3년 동안이나 점을 봤다 아이가?”

“그래, 그래. 난 지금까지 어머니 모습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50년 세월을 뛰어넘은 대화가 1시간이나 이어졌을까. 집주인이 저녁식사를 차려 나왔다. 52년 만에 피붙이를 만난 기상씨와 두 여동생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도무지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일흔이 다 된 정숙씨는 오빠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줄곧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오빠를 만났지만 눈물에 비빈 밥은 여전히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오빠의 총명함과 젊음을 송두리째 나꿔챈 세월이 야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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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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