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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분석

한국군 최강 해병대와 특전사

적의 심장부 노리는 절정의 고수들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한국군 최강 해병대와 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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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1사단은 ‘해룡(海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롱해롱’ 하는 해롱으로 들릴 수 있다고 하여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즐겨 사용하는 별칭이 ‘상륙사단’. 1사단은 국내 유일의 상륙군 부대로서 부대 마크에 ‘상륙’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놓고 있다. 1965년 이 상륙사단은 예하의 2연대를 차출해 월남 파병부대로 선정했는데, 이 2연대가 2여단이란 이름으로 베트남에 갔다가 돌아와 2사단(청룡사단)으로 발전했다.

유일한 국가 기동군

한미연합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몰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던 1950년 8월17일 한 개 대대에 불과했던 한국 해병대는 경남 통영으로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해 인민군이 장악한 통영지역을 탈환했다. 이때 ‘뉴욕 타임스’의 마거릿 히킨즈 기자가 종군했는데, 그는 기사에 ‘그들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는 문장을 남겼다. 여기서 나온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인데, 이 전통을 이어온 것이 바로 1사단이다.

2사단은 전선을 맡고 있어 대대별로 부대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1사단은 상륙만을 목적으로 하기에 포항시 도구동·일월동·청림동·오천읍 일대에 밀집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육군은 이곳에 일본열도로 진격해오는 연합군을 공격하기 위해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를 띄울 비행장을 건설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채 항복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 육군 부대가 진주하며 군정(軍政)을 펼쳤고, 6·25전쟁 때는 미 해병대 제1항공비행단이 주둔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1항공비행단이 철수한 1959년 경기도 금촌에 있던 해병대 제1상륙사단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상륙작전을 펼치려면 전선을 맡고 있지 않아야 하는데 1상륙사단은 포항으로 옮겨옴으로써 명실상부한 상륙작전용 부대로 재편될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 전쟁지도부는 적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는 작전을 세워 전세 역전을 꾀한다. 적의 중허리를 자르고 들어가 제2전선을 만드는 강력한 ‘국가 기동군’이 바로 해병대 1사단이다. 해병대 1사단은 하루나 늦어도 이틀 만에 전 사단을 기동시킬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신속대응군이다.

신속대응군은 보병은 물론이고 포병·기갑·공병 등 여러 병과의 부대가 한데 모여 있어야 한다. 1사단은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 그리고 수색대대·해안개척대대·상륙장갑차대대·전차대대·공병대대 등을 사령부 주변에 빽빽이 포진시켰다.

전통적으로 해병대를 상징하는 빛깔은 진홍색이다. 해병대는 이름표도 붉고, 티셔츠와 트레이닝복도 붉으며, 깃발도 붉은 색 일색이다. 원색인 적색을 많이 쓰면 ‘촌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붉은색 일색의 거대 군중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조점호와 일석점호 때 각 해병 중대에서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구릿빛 사내들이 몰려나와 깃발을 들고 줄지어 뛰기 시작한다.

1만여명이 넘는 1사단 요원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마리 붉은 용이 뒤엉켜 돌아가는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이 내뱉는 함성과 땀내가 후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시커멓고 붉은 ‘적룡(赤龍)’의 기운. ‘무섭다’ ‘이것이 진짜 군대구나’. 사람에 따라 표현은 다르겠지만 그들이 만드는 기세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웅혼(雄渾)함이 밀려나온다.

웅혼한 赤龍의 기운

상륙사단은 ‘뒤에는 물, 앞에는 적을 둔’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싸우는 부대다. 이렇게 위험한 작전을 펼치는 데도 용감함에 매료된 젊은이들은 앞 다투어 자원(自願)한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15일 단위로 신병을 입소시키는데 이때 입대 경쟁률이 최하 3대 1이다. 각급 학교의 학년이 바뀌는 겨울이 되면 경쟁률은 10대 1 이상으로 올라간다. ‘한 집안 한 아들’이 보편화된 시대에 이렇게 많은 ‘아들’들이 훈련이 고된 해병대에 자원하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병(兵) 964기로 교육훈련단에 입소한 김민호(20)군은 여섯 번 떨어지고 일곱 번째에 ‘간신히’ 합격했다. 해병대가 싸움 잘하는 사람을 뽑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체력 좋은 청년은 넘쳐나기 때문에 실력이 좋거나 행실이 방정하다는 기록이 있어야 해병대에 합격할 수 있다. 김군이 6전(顚)7기(起) 한 것은 바로 출석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공고 출신인데 취업을 나가느라 고3 때의 출석부가 엉망이었다. 그렇게 해병대 입소시험에 떨어지며 반년을 허비하다 보니 육군으로 입대하라는 영장이 날아올 시기가 닥쳐왔다. ‘죽어도 해병을’ 고집한 그는 해병대사령부의 모병 담당 장교를 찾아갔다. 그는 “고3 때 취업 때문에 출결이 나빴지, 품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도 해병대에 가고 싶다”고 읍소했다. 김군은 그 후에야 비로소 붉은 명찰을 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민 간 사람은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된다. 필리핀 이민자의 아들인 이충돈(20)군은 입대를 만류하는 어머니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김군과 동기가 되었다. 그는 왜 해병대에 왔느냐는 질문에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는 문구로 대답을 대신했다. 배수진을 마다하지 않고 상륙을 감행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해병대의 용감성은 대원들의 이러한 저돌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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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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