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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4.0’ 목표는 친문 대권후보 추대… 계파 생명 연장술

‘계파 정치’ 논란 속 민주주의 4.0 출범

  • 박동원 ㈜폴리컴 대표 epolicom@hanmail.net

‘민주주의 4.0’ 목표는 친문 대권후보 추대… 계파 생명 연장술

  • ●한비자의 세(勢)-법(法)-술(術)… 권력 첫 수순 ‘세력 만들기’
    ●조국‧김경수 內傷 속 현역 모임, ‘제3후보 추대’ 4가지 이유
    ●정당은 ‘민주주의 문지기’, 팬덤과 특정 계파가 위협
    ●대중 기반 없이 인물로 승부하는 한국 정당 역사의 산물
    ●정권 재창출 위해 민주주의 무너뜨려서야… 적폐청산 왜 안하나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춘추전국시대 한비자는 통치 원리로 법(法), 술(術), 세(勢)를 설파했다. 법치를 엄격히 세운 다음 상벌로서 신하를 부리며, 권세로서 통치의 령을 세우는 것이다. ‘법-술-세’가 권력의 통치술이라면, 권력 창출은 세-법-술의 경로를 거친다. 맨 먼저 세력(勢)을 만들고 명분(法)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술수(術)로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다. 권력 만들기의 첫 번째 수순은 세력 만들기다. 

더불어민주당 내 친문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11월 22일 출범했다. ‘친문 계파정치’라는 비판을 받고 2018년 해체된 ‘부엉이모임’ 멤버가 주축이 되고 당내 친문 인사 56명이 참여했다. 모임 핵심 멤버 전해철 의원은 “정치적인 어떤 행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모임을 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으며 대권 창출을 위한 ‘정책 비전’ 모색을 앞세웠다. 그러나 차기 대권 후보를 만들기 위한 세력 규합임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민주주의 4.0이 ‘제3 후보’ 추대 모임인 이유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연구원 이사장 겸 연구원장을 맡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연구원 이사장 겸 연구원장을 맡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선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가입 의사를 묻지 않았다. 통상 국회나 당내의 연구모임을 만들 땐 광범위하게 의원들에게 의사를 묻는다. 범 친문계로 분류된 한 재선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4.0) 가입 의사를 묻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참여 멤버를 구별해 고른 것이다. 또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캠프 구성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가 ‘내상’을 입어 마땅한 친문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56명이나 되는 막강한 의원 모임이 조직된 점도 시기나 정황상 충분히 오해 받을 만하다. 

대권 재창출을 위한 모임인데 현재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빠졌다. 외연 확장과 당내 지지에 한계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받는 후보 둘이 빠졌다는 건 새로운 ‘제3의 후보’를 모색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모임에 가입한 56명 면면 또한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의원들이다. 

이 4가지 이유만으로도 민주주의 4.0은 ‘제3 후보’ 추대를 위한 모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치인에게 이유 없는 행위란 없다. 정치인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 ‘정치적’이란 정치권력 획득을 의미한다. 친문 핵심 홍영표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상황 변화가 온다면 제2, 제3, 제4의 (대선) 후보들이 등장해서 경쟁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대통령이 돼서 이 나라를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을 분명히 가진 분들이 있다면 서로 경쟁에 참여해 대선판을 좀 풍부하게 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정세균 국무총리, 최문순 강원지사, 김두관‧이광재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제3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기획 대통령’ 만드는 비법… 모바일 투표와 강력한 팬덤

친문세력은 이미 ‘기획 대통령’을 만든 경험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권 후보를 만들 수 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모바일 투표’와 ‘강력한 팬덤 지지층’이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며 상승효과를 가진다. 문재인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대권 후보로 만든 결정적 도구이던 모바일 투표는 지지 팬덤을 투표에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표방하지만 일반 국민 신청자 및 당원‧대의원에 의한 투표소 투표 및 ARS 투표다. 강고한 지지층을 가진 후보가 무조건 유리한 룰이다. 올해 6월 민주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반영해 오프라인 투표를 폐지하고 온라인 투표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오히려 모바일 투표가 강화됐다. 

4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강고한 친노‧친문 팬덤이 민주당 당내 경선을 좌지우지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개악을 비판한 소위 ‘커밍아웃 검사’들의 사표를 받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45만 명 정도가 동의를 했다. 대략 이 숫자가 극렬지지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원 없는 한국 정치의 특성상 40만 명이면 얼마든지 대권후보를 만들 수 있는 숫자다. ARS 투표와 강력한 팬덤은 친문 대권후보의 ‘전가의 보도’다.

팬덤에 휘둘리는 민주당… 정당 역할은 무엇인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일컫는 정당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은 ‘민주주의의 문지기’다. 대중 민주주의는 국민의 감성을 건드리는 극단적 선동가나 무능한 포퓰리스트, 사적 신념에 경도된 리더가 언제든 집권 가능한 체제다. 정보 부족으로 판단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선동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는 게 엘리트 집단인 정당의 역할이다. 당내 선거 과정을 통해 후보의 자질과 역량을 검증한다. 이 ‘가드레일’이 인위적으로 붕괴되면 선동가나 자질과 역량이 미비한 후보가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정당의 문지기 역할을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강고한 팬덤, 또 하나는 특정 계파와 세력의 정당 장악이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나 조응천 의원 같은 소신파 의원의 쓴 소리가 극단적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는 것처럼, 민주당은 지속적으로 강고한 팬덤에 휘둘리고 있다. 이로 인해 주류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특정 계파와 세력이 당을 장악하면 후보 간 자유로운 경쟁은 불가능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게 사유화된 권력의 생리다. 특정 계파가 주도하는 후보 선출은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보다는 청와대의 뜻과 패거리 문화, 공천을 보장해주는 지근거리가 우선한다.
 
고질적인 패거리·계파 정치는 우리 정치를 망가뜨려온 적폐 중 적폐다. 강고한 계파 정치는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기형적 정당 내부 상황을 만든다. 그로 인해 공당이 붕괴 위기에 몰려 여야 균형이 무너지면 정치도 왜곡된다. 지금 벌어지는 추미애-윤석열 공방이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수사,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에서 나타난 집권 여당의 국기 문란과 법치 훼손도 근본 원인은 계파 정치로 인한 균형의 붕괴가 원인이다.

인물 중심 한국 정당 정치의 기원

이 대목에서 고질적 계파 정치가 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 정치에서 기인한다는 그 역사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물 중심 정당 정치 구조는 우리 정당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박찬표 목포대 교수는 공저 ‘어떤 민주주의인가’에서 우리 정당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사‧구조적 요인으로 분단과 반공 체제, 국가주도의 산업화, 권위주의 정권을 꼽았다. 

해방 이후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요구가 분출했고,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맹아가 싹텄다. 좌우의 정당, 엘리트 중심의 사회단체는 이들과 연대하거나 당의 대중적 기반을 확장시키려 했지만 분단과 냉전 상황 속에서 좌파 이념 정당은 불법화 됐고, 대중 조직은 와해됐다. 분단은 정당을 좁은 이념적 틀 속에 가둬버렸다.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는 계급적 존재로서 노동을 비롯한 계급·계층의 이해와 요구가 기반이 된 대중 정치 조직화를 거세시켰다. 정당도 국가의 대의를 위해 복무하는 체제 내 조직이 됐다. 시민의 자발성보다 권력의 목적에 따라 동원되고 표를 위해 조직된 정당 체제였다. 야당도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기 위해 권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단의 역사적 현실과 국가 발전 수행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과정이었지만, 어쨌든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과정에서 대중 정당은 서구처럼 시민혁명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계급·계층의 이해가 기반이 된 대중 정당을 발전시켜오지 못했다. 대중적 기반이 없다보니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인물을 앞세워 정권을 획득하는 인물 중심 정당 정치 체제로 발전해온 것이다. ‘당원 없는 정당’과 강력한 팬덤 기반 인물 중심 선거는 우리 정당 정치 역사의 산물이다.

정당은 지지층 동원, 대통령은 자의적 국정운영

인물 중심의 정당 체제에서 확실한 대권주자를 확보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정치적 생명을 보장받는 경로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정당 투표가 이뤄지는 국회의원 선거도 사실은 강력한 인물을 가진 정당에 대한 투표다. 한국정치의 상수 중 하나인 지역주의도 인물이 만들어낸 결과다. 1963년 5대 대선에서 박정희의 호남 득표율은 무려 49.3%였다. 4년 뒤 6대 대선에서도 41.1%였다. 호남 지역에서 대표성을 가진 김대중이 출마한 1971년 7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58.6% 박정희 32.8%를 기록했다. 이때부터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 정당들이 10년을 못 넘기고 정당 이름을 바꾸는 것도 인물 중심 정당정치에서 기인한다.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신한국당 김영삼, 한나라당 이회창과 이명박, 열린우리당 노무현, 새누리당 박근혜, 국민의당 안철수, 민주노동당 권영길처럼 정당 명칭은 유력 정치인과 맥을 같이했다. 박근혜의 새누리당 이후 보수정당이 3년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세 번이나 당명을 바꾼 건 확실한 대권후보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역사가 만든 뿌리 깊은 정치 구조를 일거에 바꿔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정당이 강고한 지지층을 동원하고 대통령이 계파의 힘을 기반으로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자의적 국정운영을 이어가면 이런 구조는 조금도 바꿔지지 않는다. 좋은 정치 문화는 시민 의식도 높아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인의 자발적 노력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집권 여당은 스스로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촛불정부’라고 자임한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여당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계파의 권력 재창출을 위해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적폐적 행위’에 앞장서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친문후보 추대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권력화되는 권력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사적 이해관계로 뭉쳐진 권력이 권력화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보수정당도 그래서 무너졌다. 어차피 단기간에 극복되지 않을 인물 중심 정치 체제이지만 적어도 정당이 정책과 역량 경쟁을 실천하며 좋은 리더를 키워내는 ‘민주주의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내팽개쳐선 안 될 일이다.



신동아 2020년 12월호

박동원 ㈜폴리컴 대표 epolic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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