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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압수 400여건, 정간 4차례, 폐간압력 시달린 東亞

  • 글: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 ·언론학

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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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민간지 발행을 일절 금한 1910년대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다. 당시 한국어 신문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유일했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합방 직후 조선인이 발행한 신문을 모두 폐간시키고 일본어 신문을 ‘경성일보’로 통합하는 ‘신문통일정책’을 추진했다. 이같은 정책의 실무를 담당한 인물은 경무총감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는 한국어 신문 폐간을 강행하면서 합방 직전 통감부가 매수했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제호에서 ‘대한’이란 단어를 없애고 총독부의 어용지로 만들었다.

둘째, 이른바 문화정치 시대인 1920년대 ‘민간지 허용기’이다. 이때 동아·조선·시대일보(후에 중외일보→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로 제호가 바뀌었다) 등 단 3개의 민간지 발행만이 허용되었다. 일제의 언론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발행 허가제를 실시해 신문 발행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허가된 신문에 대해서도 엄격한 검열 통제를 가하였다. 그럼에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1924년 시인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 등 3개 민간지가 가장 활발하게 항일 언론을 펼칠 수 있었던 때가 바로 이 기간이었다.

언론인들은 일제 탄압에 저항해 언론집회압박탄핵회(1924), 전조선기자대회(1925) 등 일련의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총독부는 번번이 항일적 기사와 논설에 대해 삭제와 압수를 자행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이라 할 수 있는 정간(停刊)과 언론인 투옥 등 필화(筆禍) 사건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1931년 만주사변 이후의 ‘친일강요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적극적 친일을 강요하였기에 신문의 항일 논조는 점차 약화됐다. 그리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 태평양전쟁 직전까지 민간지의 논조는 친일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총독부는 제목 크기를 비롯해 편집의 미세한 부분까지 문제삼아 시비를 걸었다. 총독부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 경우라도 침략전쟁 수행과 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극적 불온’으로 규정, 탄압을 가했다.

만주사변 이후 전쟁이 점차 확대되자 총독부는 ‘언론은 전쟁에 협조하는 것이 의무이자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란 논리로 언론의 열성적 협조를 강요했다. 이와 같이 언론탄압을 강화하다 1940년에 이르러 마침내 동아·조선의 폐간을 강요했다. 그로부터 5년 후 광복될 때까지 민간 신문은 완전히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 통치 방침 비난이 유일한 本務”

일제 치하에서 동아·조선은 각각 4차례의 정간을 당했다. 두 번째 정간은 1926년 3월5일 소련 국제농민운동본부에서 우리나라 농민들에게 보내온 전보문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전보문은 3·1운동 7주년을 기념해 동아일보에 보내온 것인데, 다음은 총독부가 문제삼은 부분이다.

이 위대한 날의 기념은 영원히 조선 농민에게 그들의 역사적인 국민적 의무를 일깨울 것을 믿으며, 자유를 위하여 죽은 이에게 영원한 영광이 있을지어다. 현재 재감(在監)한 여러 동지에게 형제적인 사랑의 문안을 드리노라.

아무리 혹독한 언론통제 시기라 하더라도 정간까지 시킬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도 총독부는 이 글이 실린 3월5일자 신문에 대해 발매 금지 처분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문제가 된 이 부분을 삭제한 다음 5일과 6일 신문 대신 ‘호외’를 발행했다.

그러나 6일 오후 4시40분경 ‘발행정지(정간)’ 처분이 떨어졌다. 이와 함께 주필 송진우(宋鎭禹)와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金鐵中)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송진우에겐 징역 8개월, 김철중에겐 금고(禁錮) 4개월의 실형이 언도되었다. 정간 처분은 44일 만인 1926년 4월19일에 해제됐다. 당시 총독부가 동아일보를 어떻게 간주했는지 매일신보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매일신보는 4월22자 1면 머릿기사에서 동아·조선 시대 등 3대 민간지를 싸잡아 비난했다.

모든 감정상 문제로 냉정한 이성을 결(缺)하기 쉬운 환경에 있는 우리 조선 신문은 발매금지처분을 받음으로써 유일한 영업정책으로 역용(逆用)하고, 발행정지 처분을 당함으로써 무상(無上)한 우세지사(憂世志士)로 자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과도기의 오상(誤想)을 가지고 세인(世人)을 현혹케 하는 자칭 왈 이천만 민중의 표현기관이라는 동업 동아일보가 발행정지를 당한 지 44일간, 또다시 해금(解禁)이라는 은명하(恩命下)에 21일부터 계속 발행하게 되었다. (매일신보 1926년 4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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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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