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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②

스포츠 민족주의의 탄생

조선의 작은 고추 양키를 물리치다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icnunc@nate.com

스포츠 민족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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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보아라 안창남, 내려다보니 엄복동”의 주인공인 사이클 선수 엄복동이 유달리 1920~30년대 조선인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그가 이런 숙명을 잘 헤쳐나갔기 때문이었다. 1920년 5월3일 만화방창한 봄날, 경복궁 마당에서 ‘경성 시민 대운동회’가 열렸다. 종목은 단 두 개, 마라톤과 사이클이었다. 일제시기에 이 두 종목은 축구나 권투처럼 양편으로 나뉘어 바로 맞장 뜨는 경기가 아니라도 관중들이 피아(彼我)를 나누어 싸우고, 결국 열렬한 스포츠 민족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엄복동과 손기정이 그 대표적 아이콘이다. 아무튼 전해인 1919년 봄에는 3·1 만세운동의 여파로 창경원 벚꽃놀이도 야시장도, 이런 운동회도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시내는 구경 나온 남녀노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단축 마라톤에는 100여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모두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가벼운 속옷’만 입은 채 아직은 공기가 맑았던 서울 시내 한가운데를 뛰었다. 종로통에서 출발, 남산공원을 올랐다가 서대문으로 돌아와서 광화문 오른편 첫 번째 해태 상 옆으로 골인하는 7마일(11.263km)짜리였다. 이 경기에서 스물네 살 먹은 한 청년이 36분53초 만에 1등으로 골인했다. 그 청년은 조선인 인력거꾼 최원기였다. ‘동아일보’는 이 사실을 뚜렷이 기록하고 있다. 원래 우리에게 마라톤을 가르쳐준 것은 조상들이 아니라, 일본인이나 서양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즐거운 잔치를 중단시킨 불상사는 이틀째 사이클 경기에서 벌어졌다.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았던 엄복동이 출전한 시합이었는데. 8명이 한 조가 되어 트랙을 돌다 선수들끼리 부딪쳐 2명을 빼고 다 넘어졌다. 영웅 엄복동과 일본인 선수 1명이 남아 트랙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엄복동이 일본 선수보다 몇 바퀴나 앞서 있었기에 관중들은 여유 있는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갑자기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키고 경기 무효를 선언했다.

마치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과 오노의 쇼트트랙 결승경기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열혈청년 엄복동의 난투극



그러나 엄복동은 혈기가 넘치는 청년이었던 데다 김동성보다 성격도 훨씬 급했던 모양이다. 경기가 중단되자마자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본부석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꼭 협잡으로 나를 1등을 아니 주려고 하는 교활한 수단이라” 부르짖으며.

그러고는 앞뒤 안 가리고 우승기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가서는 “이까짓 우승기를 두었다 무엇 하느냐”며 깃대를 잡아 꺾어버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일본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제히 달려들어 엄복동을 집단 구타했고 마침내 엄복동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럴 때 만약 독자께서 그 자리에 계셨다면 어찌하셨겠는지?

조선인 관중들도 앞뒤 가리지 않았다. “엄복동이가 맞아 죽는다”는 외침이 퍼지자 그들은 운동장 안으로 물결같이 달려들었다. “욕하는 자, 돌 던지는 자, 꾸짖는 자, 형형색색 분개한 자들 때문에” 사태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단한 규모의 난투극이 벌어질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경관의 진력으로” 군중은 해산했고 대회는 중단되고 말았다. 사태에 대한 ‘동아일보’ 보도는 여기까지라 경기장 소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상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기자는 “자세한 말은 추후 보도하겠으나 우선 이것만 보도하노라”며 기사를 서둘러 마무리해 뭔가 중대한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동서고금과 경기 종목을 막론하고 경기장에서 패싸움을 벌이거나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결코 잘 배우고 많이 가진 자들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경기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관중 소동은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민중의 심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억눌려 있던 감정은 경기장에서 터져나온다. 눌린 것이 많고 다른 데서 풀 기회가 없을수록 감정 분출은 느닷없고 강도가 높다. 경기장 안에서 뜻밖의 패싸움이나 소요가 벌어질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억압된 감정은 상대 선수(때로 우리 선수)나 심판을 욕함으로써 우회로를 찾아 해소되는데, 어느 순간 배관이 막히거나 흐르는 양이 너무 많으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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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icnunc@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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