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국력’

  • 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입력2008-08-01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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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최근 ‘서울대 선호도서 100선’과 ‘하버드대 선호도서 100선’을 발표했다. 서울대의 경우 최근 1년 대출빈도 누적통계를 보면 10위 안에 소설이 9권, 에세이가 1편 들어있다. 고전은 물론 인문·사회·자연과학 서적도 없다. 일본의 코믹소설 ‘공중그네’가 1위로 10위 안에 현대 일본소설이 네 편이나 포함돼 있으며 김훈의 ‘남한산성’이 2위를 기록했다.

    하버드대의 경우 도서관 수가 워낙 많아 전체 통계를 잡을 수 없어 대학 내에 있는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목록을 바탕으로 선호 도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서점 측은 “꾸준히 잘 팔리는(steady) 목록”이라며 순위를 명시한 자료를 전달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 보는 책 100선’의 상위권은 고전으로 채워져 있었다.

    1위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 2위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빌러비드(Beloved)’, 3위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4위는 하워드 진(Howard Zinn)의 ‘미국 민중(民衆)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5위는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y)의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이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고전(古典) 읽기 같은 진지한 독서를 외면하는 대신 하버드대 학생들은 피라미드처럼 밑변을 넓혀 기초를 충실히 하는 독서 성향을 나타냈다. 이 가운데 ‘1984’를 살펴보자. 우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줄거리를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발췌했다.

    Winston Smith is a fictional character and the protagonist of George Orwell′s 1949 novel Nineteen Eighty-Four. Winston Smith works as a clerk for the Ministry of Truth which is one of the four ministries that govern Oceania, where his job is to rewrite historical documents so they match the constantly changing current party line. This involves revising newspaper articles and doctoring photographs ? mostly to remove ‘unpersons’, people who have fallen foul of the party. Because of his proximity to the mechanics of rewriting history, Winston Smith nurses doubts about the Party and its monopoly on truth.



    (허구인물인 윈스턴 스미스는 조지 오웰의 1949년 소설 ‘1984’의 주인공이다. 그는 오세아니아(Oceania·소설 속의 가상 국가)를 통치하는 진리(眞理)부의 서기로 일한다. 거기에서 그는 역사기록을 고쳐 쓰는 일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당의 현행 노선과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신문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을 조작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주로 ‘unpersons(당에서 축출된 실각(失脚)자들)’을 빼버리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역사를 고쳐 쓰는 못된 짓을 가까이 하다 보니 당에 대해, 그리고 당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한다.)

    왜 하필 1984년인가

    Winston Smith, lured into joining a secret organization whose aim is to undermine the dictatorship of ‘Big Brother’, is actually being set up by O′Brien, a government agent. Captured and tortured, he eventually betrays his accomplice and lover, Julia. His freedom is finally and completely stripped when he accepts the assertion 2+2=5, a phrase that has entered the lexicon to represent obedience to ideology over rational truth or fact.

    (윈스턴 스미스는 꼬임에 넘어가 대형(大兄·Big Brother: 독재국가권력의 의인화)의 독재를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알고 보니 정부 끄나풀인 오브라이언(O′Brien)이 부추긴 일이다. 체포되어 고문을 받자 그는 결국 공범이면서 연인인 줄리아(Julia)를 배반한다. 그는 2+2=5라는 주장-합리적 진실이나 사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을 나타낼 때 쓰는 유명한 문구의 하나-을 받아들인다. 이때 그의 자유는 마침내 완전히 박탈된다.)

    조지 오웰은 1903년 6월25일 태어났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가 태어난 지 47년 후인 1950년 6월25일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오웰은 6·25전쟁이 일어난 그해 6월21일 46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의 소설 ‘1984’(1949년 6월8일 발간)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20세기의 묵시록’으로 여겨졌던 반공 문학작품이다. 소설의 가상 무대는 디스토피아(distopia), 즉 유토피아(Utopia)의 반대개념으로 개인의 공간이 소멸된 역(逆)유토피아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유럽의 마지막 인간(The Last Man in Europe)’이었다. 그러나 런던의 출판사 세커 앤드 와버그(Secker & Warburg)의 발행인인 와버그(Fredric John Warburg·1898~1981)가 ‘잘 팔릴 수 있는 제목(marketable title)’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소설의 제목이 어떻게 ‘1984’로 정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첫째, 1884년에 설립된 ‘페이비언 사회주의협회(the socialist Fabian Society)’ 100주년(周年)을 기념하는 뜻이 담겼다는 설이 있다. 둘째, 미국 작가 잭 런던(Jack London·1876~1916)의 1908년 소설 ‘강철군화(The Iron Heel)’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이 소설의 정치적 절정기가 1984년이다. 셋째,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이자 아마추어 시인 아일린 오쇼네시(Eileen O′Shaughnessy·1905~ 1945)의 시(詩) ‘20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또한 펭귄 모던 클래식 시리즈(Penguin Modern Classics)판 서문에 따르면 오웰은 원래 이 소설의 시기를 1980년으로 잡았으나 병으로 인해 집필이 연기돼 1982년으로 했다가 다시 1984년으로 바꿨다고 한다. 저술을 1948년(발간은 1949년)에 시작했기 때문에 뒷자리 숫자를 거꾸로 뒤집어 84로 하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있다.

    ※페이비언 협회: 1884년 1월 4일 런던에서 설립된 단체로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방법으로 영국에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Fabian’이란 말은 쿵크타토르(Cunctator·the Delayer 지연전술을 쓴 자)라는 별칭(epithet)으로 불린 로마 정치가·장군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BC 280~BC 203)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침입에 맞서 전면전을 피하면서 지구전으로 적의 자멸을 기다리는 작전을 펼쳐 자신보다 세력이 큰 군대를 이긴 전략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Fabian’이 ‘지구(持久)적인’ ‘점진적인’이란 의미를 갖게 됐다(fabian tactics: 지구전법). 회원으로는 버나드 쇼(Bernard Shaw), 시드니 웨브(Sidney Webb),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등이 있었으며,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이나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도 회원이었다. 1900년 영국 노동당의 창립에 수많은 협회회원이 참여했다.

    ※강철군화(The Iron Heel): 미국 작가 잭 런던(Jack London 1876~1916)이 1908년 펴낸 소설로 그의 사회주의 혁명소설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iron heel’은 ‘쇠로 된 구두[장화] 뒤축’이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됐다. “우리는 너희들 같은 혁명가들을 우리의 구두 뒤축(iron heel)으로 짓뭉갤 것이고, 자네들의 얼굴 위를 짓밟고 다닐 것이다”에서 보듯 ‘구두 뒤축(iron heel)’은 나치 독일의 ‘돌격대’같이 혁명세력을 진압하는 기득권 세력의 무력집단을 상징한다.

    원제는 ‘유럽의 마지막 인간’

    ‘유럽의 마지막 인간(The Last Man in Europe)’에서의 ‘유럽’이란 오세아니아(Oceania·소설 속의 가상 국가)의 주(主)무대인 유럽을 말한다. ‘마지막 인간’이란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가 ‘대형을 타도하기 원한 마지막 인간’이란 의미로 이해된다.

    이 소설 3장(Chapter 3)은 심리적 고문(psychological torture)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the last man’이란 말은 이 부분에서 세 번 나온다. 처음 나오는 부분만을 간추려본다. 오브라이언과 윈스턴의 대화다.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영국 집권 노동당 대표인 고든 브라운(왼쪽)과 블레어 전 총리. 영국 노동당의 뿌리는 페이비언 사회주의협회다.

    ‘We control life, Winston, at all its levels. You are imagining that there is something called human nature which will be outraged by what we do and will turn against us. But we create human nature. Men are infinitely malleable. Or perhaps you have returned to your old idea that the proletarians or the slaves will arise and overthrow us. Put it out of your mind. They are helpless, like the animals. Humanity is the Party. The others are outside - irrelevant.’

    (윈스턴, 우리는 삶을 완전히 지배해. 자네는 우리가 하는 짓이 소위 ‘인간성(human nature)’이라는 것을 격분시키게 될 것이며 그 인간성이 우리에게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우린 인간성을 창조한단 말일세. 인간이란 무한한 순응성(順應性 malleability)이 있어. 자네는 무산계급이나 노예가 들고 일어나 우리를 넘어뜨릴 거란 과거의 생각을 다시 할지 몰라. 그런 생각일랑 머리에서 지워버리게. 그들은 짐승처럼 힘이 없어. 인간다운 것은 당이야. 그 외는 껍데기야 - 당치도 않아.)

    ‘I don′t care. In the end they will beat you. Sooner or later they will see you for what you are, and then they will tear you to pieces.’

    (상관없어요. 결국 그들은 당신네들을 쳐부술 거예요. 조만간 그들은 당신네들이 어떻다는 것을 깨닫고 당신네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

    ‘Do you see any evidence that is happening? Or any reason why it should?’

    (그런 일이 일어날 증거라도 있나? 아니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나?)

    ‘No. I believe it. I know that you will fail. There is something in the universe - I don′t know, some spirit, some principle - that you will never overcome.’

    (없지만 그러리라 믿어요. 당신네들은 망할 거예요. 이 세상에는 당신네들이 결코 이겨낼 수 없는 그 무엇 - 뭐랄까, 어떤 정신 같은 것, 어떤 원칙 같은 것이 있어요.)

    ‘Do you believe in God, Winston?’

    (윈스턴, 자네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나?)

    ‘No.’

    (아니요.)

    ‘Then what is it, this principle that will defeat us?’

    (그러면 우리를 패배시킬 것이라는 그 원칙은 무엇인가?)

    ‘I don′t know. The spirit of Man.’

    (모르긴 해도 인간의 정신이 아닐까요.)

    ‘And do you consider yourself a man?’

    (자네는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하나?)

    ‘Yes.’

    (그렇습니다.)

    ‘If you are a man, Winston, you are the last man. Your kind is extinct; we are the inheritors. Do you understand that you are alone? You are outside history, you are non-existent.’

    (윈스턴,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이야. 자네와 같은 인간은 이미 없어졌어. 우리는 상속자야. 자네는 혼자일 뿐이라는 걸 모르나? 자네는 역사 밖에 있기 때문에 자네는 이미 존재할 수 없어.)

    ‘1984’의 가상 무대는 디스토피아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오세아니아(Oceania)는 남태평양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아닌 가상(假想) 국가다. 소설 속의 설명은 ‘Oceania comprises the Americas, the Atlantic islands including the British Isles, Australasia, and the southern portion of Africa.(아메리카 대륙, 영국을 포함한 대서양 제도(諸島), 오스트랄라시아(Australasia), 그리고 아프리카의 남부)라고 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세계는 세 개의 거대(巨大)국가 - 오세아니아Oceania), 유라시아(Eurasia), 이스트아시아(Eastasia) - 로 나뉘어 지속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라는 슬로건은 오세아니아의 당이 인민(citizen)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표적 문구다. 의식과 가치가 전도된 말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라고 사탕발림한 것이다. 언어와 사고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생활이 전체주의에 지배되는 세계다.

    ※오스트랄라시아(Australasia): 남양(南洋)주(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및 그 부근 여러 섬의 총칭)

    ※유토피아 (Utopia): ‘유토피아’란 책의 정식 명칭은 ‘국가의 최선 정체(政體)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De Optimo Reipublicae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 ? Concerning the highest state of the republic and the new island Utopia)’이다. 당시 유럽 군주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영토를 늘리는 데에만 전념하는 한편, 민중은 ‘인클로저(enclosure)’에 의해 땅을 빼앗기고 심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국가나 법률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부자들의 공모’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유토피아에서는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고, 화폐도 없으며, 공유재산제가 베풀어진다. 그 뒤 유토피아는 일반적으로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고, 유토피아 문학의 장르를 창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Utopia’의 어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Utopia (from Greek: ‘no place’ or ‘place that does not exist’ as well as ‘perfect place’) is a fictional island near the coast of the Atlantic Ocean written about by Sir Thomas More as the fictional character Raphael Hythloday - from Greek hythlos (‘idle talk’) plus daiein (‘to distribute’) - recounts his experiences in his travels to the deliciously fictional island with a perfect social, legal, and political system. It may be used pejoratively to refer to a society that is unrealistic and impossible to realize. It has also been used to describe actual communities founded in attempts to create an ideal society.

    (유토피아(희랍어로 ‘이상적인 곳’이란 뜻도 되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 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도 됨)는 토머스 모어 경이 쓴 소설 제목이며, 대서양 연안 부근에 있는 가공의 섬이기도 하다. 가공인물인 라파엘 히슬로디(Raphael Hythloday) - 희랍어 hythlos (idle talk 잡담) + daiein (to distribute 재잘거리기) - 가 완전한 사회적, 법률적, 정치적 제도를 갖춘 그 섬을 여행한 기록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한 사회를 경멸적으로 언급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상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에 근거한 실제적인 공동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돼왔다.)

    사실 조작하는 오웰리즘

    그런데 ‘전쟁은 인민의 평화, 예속은 인민의 자유, 무지는 강력한 국력’이라는 이 소설의 이데올로기는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war(전쟁), slavery(예속), ignorance(무지)는 수단이고 peace(평화), freedom(자유), strength (국력)가 목적이다. 따라서 이 슬로건이 병렬식 서술관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Freedom is slavery’를 ‘Slavery is freedom’으로 바꿔야 더 적절하다(만약 필자가 ‘1984’의 출판사인 Secker & Warburg의 편집자였더라면 오웰에게 검토를 요청했을 것이다) 물론 3장(Chapter Three)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오긴 한다.

    You know the Party slogan: “Freedom is Slavery.” Has it ever occurred to you that it is reversible? Slavery is freedom.

    (‘자유는 예속’이란 당(黨)의 슬로건을 알겠지. 그것을 역(逆)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이야.)

    그러나 슬로건(slogan)이란 주의나 주장을 간결하게 나타내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볼 때 이 부연 설명은 사족(蛇足)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로 인해 ‘오웰리언Orwellian’(‘1984’의 세계와 같이 조직화돼 인간성을 잃은)이라는 의미의 신조어(형용사)와 ‘오웰리즘Orwellism’(선전활동을 위한 사실의 조작과 왜곡)이라는 의미의 신조어(명사)가 생겨났다. 서기 1984년은 이미 지나갔지만 ‘1984’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웰은 이 소설에서 ‘doublespeak’ 또는 ‘double-talk’라는 새로운 어법을 창시했다. 그리고 ‘newspeak’ ‘oldspeak’ ‘doublethink’라는 신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doublespeak’란 말도 ‘1984’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그의 사후인 195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 비슷한 의미를 갖는 ‘double-talk’란 말도 오웰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기록에 보면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46년이다.

    ‘doublespeak’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이며, 정치적 의미는 ‘국가가 선전 목적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해 일반 대중을 기만하는, 속과 겉이 딴판인 말의 기교’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용어의 번역이 통일되지 않고 중구난방이다.

    ‘겹말’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으나 적절치 않다. 겹말(tautology)은 같은 뜻의 말이 겹쳐서 된 말(예: 고목나무, 여러분)을 이르기 때문이다. ‘이중 언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적절치 않다. ‘monolingual’(1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의 반대개념인 ‘bilingual’(이중[2개] 언어를 말하는 사람)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한다면 ‘속이는 정치언어’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정치언어’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언어’라고 번역해야 본뜻에 가깝다.

    ‘전쟁 통해 평화 창조?’

    라틴어에 ‘Sic Vis Pacem Para Bellum’이란 말이 있다. 영어로 바꾸면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다. 겉으로 보면 모순적이지만 국가 안보나 국제 정세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경구다. ‘Sic Vis Pacem Para Bellum’은 영화 퍼니셔(The Punisher·응징자, 2004)에서 주인공 프랭크 캐슬(Thomas Jane분)의 대사로도 인용됐다. 가수 ‘Children Of Bodom’의 앨범 ‘Are You Dead Yet?(벌써 죽었나?)에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라는 노래가 있다.

    그러나 ‘War is peace’라는 정치슬로건은 표리부동한 정치 언어다. 오세아니아의 전쟁 상황이 끊임없이 방송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당원들은 전쟁 소식에 흥분하며 당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적대국을 향한 증오감은 높아만 간다. 전쟁은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이러한 전쟁의 역할은 이 소설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쟁은 당원들의 분노와 욕구를 상대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투사(投射)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면 당원의 저항의지는 상실되고 당의 평화적인 통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계속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오세아니아의 평화를 창조했다. 모든 인민이 전쟁을 후원하면 국가를 약화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된다. 전력의 균형이 끊임없이 변하면 더욱 그렇다. 당을 약화시키면 적국에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는 기회를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평화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면 평화 속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문제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적을 바꿔가면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행하면 국가의 평화가 유지된다. 아주 얄궂게도, 이것은 어떤 다른 유토피아적 이상보다 더욱 강한 평화다. 적이 이용하여 타도할 수 있는 허약한 체제를 갖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국내에는 어떤 강한 저항도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84’의 2장(Chapter Two)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자.

    The essential act of war is destruction, not necessarily of human lives, but of the products of human labour. War is a way of shattering to pieces, or pouring into the stratosphere, or sinking in the depths of the sea, materials which might otherwise be used to make the masses too comfortable, and hence, in the long run, too intelligent.

    (전쟁의 본질은 인간의 노동력 생산을 파괴하는 것이지 반드시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물질-전쟁이 아니라면 일반 대중을 아주 편안하게 하고, 종국에는 아주 지적이 되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성층권으로 퍼부어버리는, 혹은 바다의 깊은 심연으로 침몰시켜버리는 방법이다.)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전쟁은 내부 분열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외국과의 전쟁은 국내 문제’

    In principle the war effort is always so planned as to eat up any surplus that might exist after meeting the bare needs of the population. In practice the needs of the population are always underestimated, with the result that there is a chronic shortage of half the necessities of life; but this is looked on as an advantage. It is deliberate policy to keep even the favoured groups somewhere near the brink of hardship, because a general state of scarcity increases the importance of small privileges.

    (원칙적으로 전쟁을 통해 국민의 최소한의 기본수요를 맞춰주고 난 후의 잉여물자를 완전히 소모할 수 있다. 국민의 수요는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고, 그 결과 생활필수품의 반에도 모자라는 만성적인 결핍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혜택을 받는 집단들마저 의도적으로 곤궁 직전의 상태로 붙들어둔다. 왜냐하면 총체적으로 곤궁한 상태여야 작은 특혜가 더 커 보이고 그래서 한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차이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War, it will be seen, is now a purely internal affair. In the past, the ruling groups of all countries, although they might recognize their common interest and therefore limit the destructiveness of war, did fight against one another, and the victor always plundered the vanquished. In our own day they are not fighting against one another at all. The war is waged by each ruling group against its own subjects, and the object of the war is not to make or prevent conquests of territory, but to keep the structure of society intact. The very word ‘war’, therefore, has become misleading. It would probably be accurate to say that by becoming continuous war has ceased to exist.

    (전쟁이란 후술하겠지만 단순한 국내 사건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지배자들이 비록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전쟁의 파괴력을 제한하기도 하였지만 서로 싸웠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를 약탈했다. 우리 시대에는 결코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지배집단이 백성과 맞서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은 영토의 정복이나 반항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전쟁이란 단어는 잘못된 것이다. 늘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없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The peculiar pressure that it exerted on human beings between the Neolithic Age and the early twentieth century has disappeared and been replaced by something quite different. The effect would be much the same if the three super-states, instead of fighting one another, should agree to live in perpetual peace, each inviolate within its own boundaries. For in that case each would still be a self-contained universe, freed for ever from the sobering influence of external danger. A peace that was truly permanent would be the same as a permanent war. This-although the vast majority of Party members understand it only in a shallower sense-is the inner meaning of the Party slogan: War is Peace.

    (신석기시대로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인간에게 가한 압력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세 초강대국이 서로 전쟁을 하는 대신 영구적인 평화에 동의하고 타국의 땅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외적 위험으로부터 오는 영향은 영원히 없어질망정 그 자체 내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대부분의 당원들이 희미하게 이해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당의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란 말의 진의(眞意)다.)

    ‘권력은 집단적’

    You are thinking that my face is old and tired. You are thinking that I talk of power, and yet I am not even able to prevent the decay of my own body. Can you not understand, Winston, that the individual is only a cell? The weariness of the cell is the vigor of the organism. Do you die when you cut your fingernails? We are the priests of power. God is power. But at present power is only a word so far as you are concerned.

    (내 얼굴이 늙고 피로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구먼. 내가 권력에 대해 운운하지만 내 자신의 육체가 쇠해가는 것조차 막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윈스턴, 자네는 개인이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나? 세포의 쇠멸은 그 유기체의 활력을 의미해. 손톱을 잘랐다고 해서 목숨이 끊기던가? 우리는 권력의 성직자야. 신은 권력이야. 그러나 자네에게 있어서는 지금 현재 권력은 말뿐일 거야.)

    It is time for you to gather some idea of what power means. The first thing you must realize is that power is collective. The individual only has power in so far as he ceases to be an individual. You know the Party slogan: “Freedom is Slavery.” Has it ever occurred to you that it is reversible? Slavery is freedom. Alone - free - the human being is always defeated. It must be so, because every human being is doomed to die, which is the greatest of all failures.

    (이제는 자네가 권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야. 자네가 맨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권력이란 집단적이란 걸세. 개개인이 개인이 아닐 때에만 개개인은 권력을 갖게 돼. ‘자유는 예속’이란 당(黨)의 슬로건을 알겠지. 그것을 역(逆)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이야. 혼자서 자유로이 있는 인간은 언제나 패배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죽게 되어 있고, 죽는 것은 가장 커다란 실패이기 때문이야.)

    But if he can make complete, utter submission, if he can escape from his identity, if he can merge himself in the Party so that he is the Party, then he is all-powerful and immortal. The second thing for you to realize is that power is power over human beings. Over the body but, above all, over the mind. Power over matter-external reality, as you would call it-is not important. Already our control over matter is absolute.

    (그러나 완전하고 철저한 복종을 하면, 자신의 존재를 버리면, 당에 융합되어 자신이 곧 당이 되면, 그는 전능한 불멸의 존재가 된다. 둘째로 알아둘 것은 권력이란 인간을 지배하는 힘이란 말일세. 육체를 지배하는, 아니 무엇보다도 정신을 지배하는 권력이어야 해. 사물-자네식으로 말하면 외적인 실체-을 지배하는 권력은 중요하지 않아. 이미 우리가 사물을 지배하는 힘은 절대적이야.)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감시사회의 도래를 경고하는 ‘1984’에는 모든 진실이 전도돼 있다.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

    이상은 ‘1984’ 3장(Chapter Three)에서 오브라이언(O′Brien)이 윈스턴(Winston)에게 말한 내용이다. 당의 체제에 예속되면 사상경찰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예속은 자유라는 것이다. 당에 충성함으로써 비록 부족하기는 하지만 생필품을 보장받으니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지식인 윈스턴은 당의 부조리를 깨닫고 당의 통제에서 일탈하고자 한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했으나 노동자 계급을 계몽시켜 당을 뒤엎으려고 한다. 결국 그 사실이 발각되어 고문을 받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당의 사상에 굴복한다. 어느새 대형(大兄·Big Brother)만을 사랑하는, 당이 원하는 인물이 되고 만다.

    빅 브라더 얼굴과 ‘대형이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문구가 새겨진 위협적 감시 포스터는 공포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말은 감시사회(Surveillance Society)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역시 소설 3장(Chapter Three)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자.

    The Chestnut Tree was almost empty. A ray of sunlight slanting through a window fell on dusty table-tops. It was the lonely hour of fifteen. A tinny music trickled from the telescreens. Winston sat in his usual corner, gazing into an empty glass. Now and again he glanced up at a vast face which eyed him from the opposite wall. BIG BROTHER IS WATCHING YOU, the caption said.

    (‘밤나무’ 카페는 거의 비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먼지가 뽀얀 탁자 위에 노란색으로 비쳤다. 적막한 15시였다. 꽹과리가 울리는 것 같은 음악이 대형TV스크린(telescreen: 쌍방향으로 음향과 영상이 전달되는 텔레비전 막)에서 흘러나왔다. 윈스턴은 빈 잔을 바라보며 늘 앉던 구석에 앉아 있었다. 때때로 맞은편 벽의 포스터에서 그를 노려보는 커다란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He could not fight against the Party any longer. Besides, the Party was in the right. It must be so; how could the immortal, collective brain be mistaken? By what external standard could you check its judgements? Sanity was statistical. It was merely a question of learning to think as they thought. Only!

    (그는 더 이상 당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었다. 게다가 당이 옳았다. 그래야 했다. 불멸의 집단두뇌가 어떻게 오류를 범할 수 있었겠는가? 무슨 외적 기준으로 그들의 판정에 토를 달 수 있었단 말인가? 제정신이라는 것은 통계에 의한 것임을 말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생각한대로 생각하는 법을 따라 배우는 것이었다. 오직!)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 다시 보는 빅 브라더 사회
    이윤재

    1949년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현대건설 해외업무 담당

    중앙대·숙명여대·동국대·한양대 출강

    現 한반도 영어공학연구원장

    저서 : ‘고품격 영어상식칼럼 100(일반)’ ‘고품격 영어상식칼럼 100(관사)’, ‘히틀러·스탈린·헤르츨 정신분석’(역서)


    The pencil felt thick and awkward in his fingers. He began to write down the thoughts that came into his head. He wrote first in large clumsy capitals:

    FREEDOM IS SLAVERY

    Then almost without a pause he wrote beneath it:

    TWO AND TWO MAKE FIVE

    손가락에 있는 연필이 투박하고 거북하게 느껴졌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기 시작했다. 커다란 대문자로 서툴게 썼다:

    자유는 예속

    그런 다음 거의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그 아래 또 썼다:

    2+2=5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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