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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가방’을 뒤지겠다고? ‘창조경제’ 위협하는 검열의 유혹

사이버 망명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생각의 가방’을 뒤지겠다고? ‘창조경제’ 위협하는 검열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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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10월 8일엔 다음카카오 측이 ‘감청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말한 사실을 번복하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47건을 발부받았다고 털어놨다. 이로써 카카오톡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텔레그램 언급량은 이튿날인 10월 9일 1만4633건으로 하루 최고치를 기록했다(앞 페이지 표 참조).

텔레그램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5만7572건을 기록한 ‘카카오톡’, 2위는 2만5555건을 기록한 ‘메신저’가 차지해 텔레그램 망명이 주로 카카오톡 메신저로부터 일어났음을 입증했다. 3위는 1만6262건의 ‘정부’, 4위는 1만3471건의 ‘검찰’, 5위는 1만3373건의 ‘한국’이었다. 국민은 사이버 망명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한국 정부와 검찰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전체 연관어 6위는 ‘정보’(1만2139건), 7위는 ‘보안(1만1222건), 8위는 파벨 두로프를 지칭한 ‘개발자’(1만902건), 9위는 ‘앱’(1만820건), 10위는 ‘사용자’(1만739건)였다. ‘망명’은 8761건으로 전체 연관어 12위에 올랐다.

텔레그램과 함께 언급된 인물 연관어 1위는 4243건의 박근혜 대통령이 차지해 대통령의 언급에서 이 사건이 시작됐음을 드러냈고, 2위는 1746건을 기록한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 3위는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였다(1692건). 4위는 팟캐스트에서 카카오톡 검열 사실을 보도한 김어준 씨다(1217건).

사이버 망명에 대한 여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리 연관어를 보면 ‘갈아타다’(5700건)가 1위, ‘안전하다’(4334건)가 2위에 올라 텔레그램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했다. ‘빠르다’(2937건), ‘치솟다’(2325건), ‘인기 끌다’(1987건), ‘반하다’(1914건) 등이 뒤를 이어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는 추이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퍼 날랐고, ‘욕하다’(2522건), ‘불안’(1828건), ‘힘들다’(1822건) 등 기존 메신저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불안한 마음도 심리 연관어 상위권에 포진했다.

‘보안성’ 최우선하는 국민



그렇다면 왜 하필 텔레그램일까. 네이버의 라인은 국내 업체이니 그렇다고 해도 전 세계 최대의 메신저인 왓츠앱을 제치고 텔레그램 열풍이 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개발자이자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의 이력 때문일 것이다.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알려진 브이콘탁테의 창업자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정보를 요청하자 이를 거부하고 브이콘탁테를 매각한 뒤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도 2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이력이 회자되면서 텔레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텔레그램을 언급한 것 가운데 파벨 두로프의 이력을 전한 @bin00000의 트윗이 3000여 회나 리트윗되며 폭넓게 퍼져나갔다.

두 번째, 뛰어난 보안성이다. 자동 암호화 기능과 삭제 기능을 가진 데다 서버도 독일에 있어 한국의 수사 당국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 많이 작용했다. 물론 일각에서 텔레그램의 보안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만, 적어도 한국 업체처럼 알아서 정보를 내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언론자유 지수가 낮은 나라일수록 텔레그램 가입자가 많다는 통계가 나와 국민의 마음을 더 씁쓸하게 한다.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무려 57위이고 텔레그램 가입자 순위는 현재 1위를 달린다. 언론자유 지수 1위인 핀란드는 텔레그램 가입자 순위 359위, 2위인 네덜란드는 285위, 3위인 노르웨이는 637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국민이 ‘보안성’을 가장 중시하게 만드는 잘못된 정책이 텔레그램 망명 사태의 본질인 셈이다.

2013년 6월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정부 3.0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개방과 공유, 소통과 공감의 원칙에 입각해 정부의 공공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고 이를 민간이 참여해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ICT 산업과 콘텐츠 산업의 융합을 기반으로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이른바 드림 프로젝트가 포함된 신선한 발표였다.

이는 G8 정상회담에서 공공 데이터 전면 공개 방침을 천명한 ‘오픈 데이터 선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어 정부 데이터 공개에 대한 기본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정부는 ‘지방 3.0’으로 이어지는 포괄적인 정보화 추진계획을 후속대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빅 데이터를 활용한 지방정부 정책에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도 추진됐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확립, 클라우드 컴퓨팅센터 건립 등 공개된 데이터가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포함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념 프레임에 얽매여 과거로 가는 정책을 자꾸 내놓았다. 특히 이번 사이버 망명 사태를 부른 검찰의 사이버 검열 방침은 정부 3.0과 같은 기존의 창조경제 육성 방안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다음카카오는 만년 2위 포털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국내 1위 메신저 업체인 카카오톡이 만나 새로운 미래의 융합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합병한 회사다. 특히 ‘공룡’ 네이버에 대항해 일정한 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국내 ICT 산업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다음카카오는 출범 초기부터 대대적인 가입자 이탈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그리고 그것을 초래한 것이 검찰이라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검찰은 반성하지 않는다. 2008년 미네르바 사건이 검찰의 총력 대응에도 무죄 판결을 받지 않았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최소한의 헌법적 가치에 대한 판단도 없이 충성 경쟁을 한다면 도대체 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사적 질서 속에서 한국의 창조기업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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