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새벽 6시 10분 도착한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엔 셔터 문이 내려져 있었다. 엄경렬 김포농협 차장은 “오전 8시부터 30분간 농축산물 입고가 완료되고 9시부터 정식 판매가 시작된다”며 “일단 농가로 가서 수확 과정에 참여하자”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 북변동 아파트촌에 인접한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문을 열었다.
인근에 김포 하나로마트가 있고 농협 알뜰주유소가 붙어 있어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 주유소 옆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직매장에서 농축산물을 산 후 없는 품목은 인근 하나로마트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가까이 보이는 아파트촌과 빽빽이 들어찬 상업시설을 보니,‘아, 여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도시 주민은 아무리 싸고 신선한 농축산물을 취급하는 매장이라도 가까이 있어야 자주 찾기 때문이다.
김포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농민은 70여 명(로컬푸드 교육 이수 농가는 107개소)으로, 기자가 찾은 농가는 그중에서도 토마토와 오이를 생산하는 강찬순(58) 씨 농가였다. 김포시 양촌읍 누산리에 위치한 이 농가는 직매장에서 10여 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6시 25분쯤 도착해보니 약 1650㎡(500평)규모의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고, 강 씨 부부는 벌써 토마토와 오이 수확에 한창이었다.
“8시 30분까지 직매장에 진열을 마쳐야 해서 바쁩니다. 우리는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야 수확, 포장, 바코드, 진열 작업을 제시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늦으셨네요. 오늘 기자님이 계셔서 빨리 끝나겠어요.”
주름이 깊게 팬 강 씨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말 속엔 기자가 늦게 온 것에 대한 핀잔이 섞인 듯했다. ‘헉! 3시간밖에 못 자고, 회사에 도착해 새벽 4시 30분에 출발했는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강 씨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가위와 장갑을 건네주며 “시간 없으니 빨리 따세요”라고 채근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 난다”는 말을 뒤로하고 토마토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잘 익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새벽에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어 한입 베어 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뒤로 미루고 열심히 토마토를 가지에서 잘라 수레에 담았다. 토마토 수확이라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기자를 강 씨는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가지를 꼭지 가까이까지 자르지 않으면 나중에 포장할 때 꼭지에 달린 가지가 다른 토마토를 찔러 상하게 하니 제대로 자르세요. 품질이 나쁘면 가지가 잘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매장에서) 잘려요.”
말을 듣고 보니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을 시작하고 나서 수입이 꽤 짭짤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강 씨는 토마토 품질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30여 년 전 귀농해서 빚도 많았는데 20년 전 이 땅을 마련했고 여기서 애 둘 대학까지 다 졸업시켰습니다.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할 땐 경매 수수료 떼고, 뭐 떼고, 기름값 많이 들고 애로가 많았어요. 로컬푸드 시작하면서는 정말 좋아졌습니다. 일종의 직거래잖아요. 제가 지은 농사의 결과물을 당당하게 제가 가격을 매기고, 좀 비싸다 싶어도 소비자들이 한번 먹어보면 다른 농산물을 멀리할 정도가 됩니다. 이 지역 소비자들이 직매장 진열대에 있는 토마토와 오이를 모두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요. 정말 농사지을 맛이 납니다.”
地氣가 성패 가른다
이날 강 씨 부부와 기자가 수확하고 팔아야 할 물량은 토마토 5kg들이 상자 15개와 오이 6개들이 30봉지 정도였다. 새벽이라 밖의 온도는 영상 24도였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조금 더웠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토마토를 따는데 강 씨가 한마디한다.
“퍼런 건 따지 마세요. 예전 로컬푸드를 하기 전엔 유통단계와 기간이 길기 때문에 덜 익은 걸 출하한 적이 많았지만 지금은 진열대에 올려놓자마자 팔려나가니 잘 익은 걸로 따야 합니다. 그래야 가격도 많이 받죠. 너무 익은 붉은 것도 곧 물러 터져버리니 따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먹어야 합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나오는 물건이 왜 다른 농축산물보다 가격뿐 아니라 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있는지 이유를 알 만했다.
강 씨가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때는 5년 전. 그전엔 참외와 멜론을 주로 재배했다. 5년 전 참살이(웰빙) 열풍과 함께 토마토가 건강식품으로 떠오르자 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2월에 심어 10월에 뽑아낼 때까지 4~5차례 수확이 가능한 데다 병충해에도 강해 땅의 기운만 좋으면 열매가 튼실해진다. 강 씨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토마토는 먹어보니 당도가 높고 식감도 아삭아삭한 게 특상품임이 확실했다. 아기 얼굴만한 크기의 것도 곧잘 눈에 띄었다.
“사실 직매장에 나오는 토마토 중에서 저희 농장 것이 약간 비쌉니다. 그런데도 평균 95% 이상 팔려요. 그 이유는 맛과 식감에 있죠. 신선도야 로컬푸드는 모두 비슷합니다. 비밀은 바로 땅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간 똥거름을 절대 쓰지 않고 대신 볏짚을 써왔습니다. 똥거름을 준 땅은 딱딱하게 굳어 숨을 못 쉬고 작물의 뿌리가 못 뻗어나갑니다. 볏짚은 푸석푸석해 땅과 작물이 숨도 잘 쉬고 뿌리도 잘 뻗어나가게 하죠. 땅이 부드럽고 양분이 많으니 열매가 맛있을 수밖에요. 농협에서 납품 농산물에 대해 일일이 농약잔류검사를 하고 기준에 못 미치면 입고 거절을 당하고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면 결국 회원에서 제명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