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이줄라이홀에 떴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였다. 보낸 이는 몇 해 전 잠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서른 살 무렵의 미혼여성 방송작가. ‘웬일이니’, 아니 솔직히 ‘웬 떡이야’, 하자니 속 보이고 하여튼 사실대로 답신을 했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밤 12시에 끝나기 때문에 “밤 12시 이후밖에는 시간이 없는데…”라고 답신을 날렸더니 곧장 답 문자가 날아온다.
“그럼 12시 지나서 찾아뵐게요.”
소싯적에야 밤 12시가 아니라 밤새 통화를 하다가 새벽 5시에 데이트 약속을 하는 일도 흔했다. 평상시 하지 않는 짓만 골라서 하는 것이 연애질의 본령으로 알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나는 그 누구의 연애 대상도 되지 못한다는 걸 깨우쳐야 했다. 나이 들어 꼬부라진 아저씨의 비애다. 여성성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개의 여성은 내게 점잖은 어르신의 처신을 기대한다. 한창 때는 그런 기대를 배반하는 것을 매력(?)의 원천으로 삼았건만 지금 그랬다가는 망신살만 뻗친다. 하, 그러나 어쨌든 밤 12시가 넘은 시각 소녀의 방문이라니….
그날의 에피소드를 길게 말하려다 짧게 줄인다. 망신 ‘어게인’이었으니까. 정확히 표현하면 망신이 아니라 분통이 치솟았다. 서른 살의 어여쁜 소녀는 정말로 새벽 1시쯤 엄청나게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나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말들을 재잘거렸다. 나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브람스 또는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가곡집류 등등 촛불 아래 분위기 잡을 곡들로만 열심히 ‘판돌이’를 했다. 시바스 리갈도 스트레이트로 제법 마셨다. 잠시 화장실에서 몸을 풀고 왔더니 소녀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선생니임, 분위기가 너어무 너어무 좋아서요, 남자친구 오라고 전화했어요. 지금 당장 달려온대요.”
“….”
그 다음부터의 상황은 그냥 이 한마디 사자후면 족하지 않을까.
“끙!”

줄라이홀의 기념 사진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찍은 기념 사진(맨 아래)도 있다.
은폐된 공간의 별일
온갖 별일이 벌어지는 내 ‘쥐라기’ 청춘의 작업실에서는 장르 불문으로 희한한 사운드의 난바다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상한 음악과 조명 아래서 멀쩡한 사람이 다중인격장애로 빠져드는 일이 무시로 생겨나고는 했다. 다중인격은 ‘해리성 정체장애’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 어쨌든 해리, 그러니까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이 그 증상의 특성이다. 변형된 다른 자아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율의 음악은 많다. 소닝유스나 존 존(John Zorn)의 음악 같은 변태적 록이 그렇고, 장르 규정도 어려운 메레디트 멍크나 안젤리크 요나토스의 기나긴 음악들이 그런 ‘별일’의 배경음악 노릇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