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최준식 지음/ 휴머니스트/ 349쪽/ 1만5000원
요즘처럼 입춘 지나고 김장 김치에 지쳐갈 무렵 봄동을 살짝 절였다가 겉절이를 한 다음, 큰 양푼에 밥과 함께 담아서 참기름 한두 방울 쳐서 썩썩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이때 밥을 덜어먹지 않고 양푼째 놓고 머리를 맞대고 먹어야 제맛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이렇게 뒤섞고 비벼서 함께 먹는 문화가 없다. 빙수뿐만 아니라 우리의 비빔밥과 비슷한 덮밥이나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도 일본인들은 전체를 뒤섞지 않고 위에서부터 조금씩 떠먹는다.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기왕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한국식 상차림과 서양식 상차림의 차이를 알아보자. 다음은 이화여대 대학원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의 말이다.
공간형 상차림과 시간형 상차림
“왜 우리는 모든 게 두루뭉술한데 서양식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하잖아요. 그들의 문화는 모든 게 이원론적인 사고 구조에 뿌리를 박고 있어 가르고 구분하길 좋아하지요. 음식문화에도 그런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저 대충 여러 개 벌여놓고 전체적으로 먹는데(공간형), 서양 사람들은 순서로 나누어서 부분적으로만 먹습니다(시간형). 또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라 같이 먹는 것에 익숙하고, 서양 사람들은 개인주의 문화 속에 있어 자기 접시를 갖고 혼자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것에 익숙하면 저들 식대로 하는 게 불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쪽 것이 선진적이고 우리 것은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는 서양음식도 우리 식대로 먹자고 그러거든요. 수프고 샐러드고 스테이크고 죄다 벌여놓고 먹자 이거예요. 또 이태리 국수(스파게티)도 이상하게 수저에다가 포크 대서 돌돌 말아먹지 말고 그냥 젓가락으로 먹자고 주장하거든요.”(‘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휴머니스트)
몇 년 전 아버지 생신날 온 식구가 서울에서 꽤 유명하다는 한정식 집에 모였다. 한정식이어도 걸지게 한 상 차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코스별로 차례차례 내오는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먹어도 먹어도 상 위는 허전하기만 했다. 급기야 아버지는 “사람 불러놓고 차린 게 없다”며 민망해 하셨다. 그 뒤 뷔페식당에 갔다가 “돈 내고 얻어먹는 기분”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 식구는 한동안 뷔페식당에 발길을 끊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한 상 차려서 먹는 것과 조금씩 순서대로 먹는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의 문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
흐느적흐느적 보릿대춤이 정겨운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