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 감국.
요즘은 국화주, 국화차 등이 식국의 예가 되겠다. 조선 순조 때 편찬된 부녀자 생활 지침서 ‘규합총서’에 보면 국화주 담그는 법이 나온다. 국화꽃 말린 것 2되쯤을 주머니에 넣어 한 말들이 술독에 담가두면 향내가 술독에 가득해진다고 적고 있다. 국화꽃은 말린 뒤에 더 향기롭다. 잘 말린 국화꽃 한두 송이를 찻물에 우려낸 국화차는 그 향기가 그윽하고 쌉싸래하며 뒷맛이 오래간다. 어린 시절 시골에선 봄에 나온 국화의 움과 어린 잎으로 나물을 하거나 국을 끓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국화꽃으로 튀김도 한다. 좀 생소하다. 사찰요리를 잘 하시는 보살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분의 손끝만 닿으면 산야와 집 주변에 널린 초근목피가 세간에 보기 드문 메뉴로 변한다. 그이가 가끔 만드시는 메뉴 중에 국화꽃 튀김이 있다. 눈과 입으로 즐기는 재미가 유별날 것 같다. 얼마 전 “국화꽃 튀김 맛 좀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혹이 달라붙어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음식궁합에 대해 주부들의 관심이 높은데 식재료의 약성과 음식궁합에 대해 한의사가 몇 마디 거들고, 국화꽃 튀김을 비롯한 참살이 사찰요리도 맛보면서 국악도 듣는 그런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한다.
동리국(東籬菊)에 말을 잊다
국화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국,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뉜다. 요즘은 계절과 무관하게 꽃이 나오니 절기 따지기가 우습지만, 아무래도 국화는 늦가을의 꽃으로 치는 게 제격이다. 그것도 겨울 초입쯤 되어야 국화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남녘의 시골집 울타리에 심은 노란 국화는 동지섣달 한겨울에도 조그만 꽃을 피운다. 세상의 꽃이란 꽃은 다 저버린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니 그 기상이 특이하다.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다. 또 모란, 작약과 함께 3가품(佳品)이라고 한다. 모진 서리가 내려 뭇 꽃이 속절없이 다 시든 뒤에도 오연히 꽃을 피우는 그 꿋꿋한 기상을 기려 옛 선비들은 ‘오상고절(傲霜孤節)’ 또는 ‘오예풍로(傲·#53659;風露)’라고도 했다. 국화에서 선비의 의기와 절개를 보았던 것이다. 세 벗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매화를 청우(淸友), 연꽃을 정우(淨友), 국화를 가우(佳友)라고 한다. 또 ‘동리가색(東籬佳色)’이라는 별명도 있다. 동쪽 울타리의 예쁜 빛깔이란 뜻. ‘가색’은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기도 하니까 예쁜 여인을 연상해도 되겠다. ‘동리(東籬)’라는 말의 연원은 동진(東晋) 때 시인 도연명의 ‘음주(飮酒)’라는 시에서 비롯한다. 이 시 속에 등장하는 동쪽 울타리 아래 핀 국화가 ‘동리국(東籬菊)’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다가 한가로이 남쪽 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저물 녘 산기운 아름답고, 새들은 날아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자연 속에서 유일자적하는 은사(隱士)의 심경을 담고 있는, 천고의 걸작으로 칭송되는 구절이다. 동리국은 국화를 읊조리는 후세 동아시아 문사들의 아키타입이 됐는데, 여기에 은사와 벗하는 예쁜 꽃, 또는 여인의 이미지를 덧붙여 동리가색이 되었다. 은사 자신의 이미지를 이입해 ‘동리군자(東籬君子)’라고 하기도 한다. 조선조의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 양화편(養花篇)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도연명이 아끼던 동리국은 자줏빛 줄기의 노란 꽃인데, 국화의 본성이 서향을 좋아하므로 동쪽 울타리에 심는다.”
이번 설에 필자도 고향에 내려갔다가 동쪽 울타리 밑에서 동리국을 봤다. 줄기가 약간 자줏빛을 띠었다. 아무렴, 도연명의 동리국이 꼭 아닌들 또 어떠랴. 늦서리도, 매서운 겨울 기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하게 핀 노란 국화의 향을 맡으며 한동안 돌 섶에 쭈그려 앉았다. 도연명의 시 후반부에 ‘이 가운데 숨어 있는 참뜻이 있나니, 이를 헤아리다 말을 잊었다(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란 대목이 이어진다. 문득 그 구절의 뜻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진속(眞俗)의 분별을 여의고 말을 잊은 그 경지를 세속의 일에 분주한 일개 범부가 감히 넘보기 어렵다.
장수 회춘의 약재 감국(甘菊)
‘신농본초경’은 국화를 상약(上藥)의 하나로 쳤고, 선가(仙家)에선 연년익청(延年益靑) 즉, 수명을 늘이고 회춘하는 약의 재료로 썼다. 한약명으로는 ‘감국’이라 한다. 신농본초경의 상약은 생명을 기르고 기를 돋우며 장수하는, 독이 없어 오래 먹을 수 있는 120가지의 약물인데, 이들은 석(石)부와 초(草)부, 목(木)부 등으로 나뉜다. 감국은 그중 초부의 랭킹 2위 약물이다. 석창포가 초부의 랭킹 1위이고, 3위가 인삼이다. 그냥 가나다 순으로 순번을 매긴 게 아니다. 선인(仙人), 또는 신선이 되는 약들의 으뜸이기에 앞자리에 올렸다.
이 감국을 먹고 신선이 된 이들에 대한 전설은 어느 약물보다도 많다. 팽조(彭祖)는 감국을 먹고 무려 1700세를 살았는데, 얼굴빛이 청년과 같았다. 강풍자라는 이는 감국과 잣을 평생 먹고 신선이 됐고, 유생이란 이도 백국(白菊)의 즙으로 단약을 만들어 1년을 먹고 500세를 살았다.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 얘기도 있다. 허난성 난양현의 어느 산중에 감곡(甘谷)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의 물이 국화의 군락지에서 발원해 국화의 자액(滋液)을 품고 흘렀다. 이 물을 먹고 사는 주민은 모두 장수했다. 평균 수명이 120~130세나 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외지인과 관리들도 그 물을 마셨는데 역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한다. 후에 풍기와 현기증의 병이 있던 남양 태수 왕창, 유관 등이 소문을 듣고 매달 이 물을 길어 마셨는데 모두 나았다 한다. 한나라 때 문헌에 나오는 얘기다.
‘옥함방(玉函方)’이란 의서에 ‘왕자교(王子喬)’가 감국으로 만든 선약 처방이 나온다. 왕자교는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숭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이라 한다. 그의 처방은 백발을 검게 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변백증년방(變白增年方)’으로, 제법은 다음과 같다.
음력 3월 일진(日辰)의 지지가 인(寅)이 되는 첫 번째 날(上寅日), 국화의 움을 채취한다. 이를 옥영(玉英)이라 한다. 6월 상인일에는 잎을 채취하는데 용성(容成)이다. 9월 상인일에 채취한 꽃은 금정(金精)이다. 12월 상인일에 채취한 뿌리를 장생(長生)이라 한다. 이들을 그늘진 곳에서 100일간씩 말린 후 취합해 가루로 만들고 꿀로 반죽해 오동나무열매 크기로 빚는다. 7환씩 술과 함께 음복하는데, 하루 3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