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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신성일 시대였다면 난 조연으로 끝났을 것”

‘살인의 추억’으로 대박 터뜨린 영화배우 송강호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신성일 시대였다면 난 조연으로 끝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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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건 몇 살 때쯤입니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배우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연극영화과로 목표를 정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학 원서를 쓰면서 친구들이 눈치작전 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친구들이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지만 고3 때까지 대학의 전공이나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니… 한심해 보였죠.”

―연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을텐데요.

“중2 때 흉내를 내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친구들이 재밌어했습니다. 친구들이 ‘와, 너 배우 해도 잘하겠다’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요. 나는 어떤 상황을 내 식대로 소화해 모사(模寫)하는 재주에 능했습니다. ‘그래, 나한테도 이런 능력이 있을 수 있어. 배우를 한번 해보자’. 그 시절부터 조금은 막연하게 배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겠군요.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랐던 곳이 경남 김해인데, 지금의 행정구역으론 부산시 강서구입니다. 당시는 농사짓는 시골이었죠. 문화적인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연극이라고는 유랑극단 작품을 한두 차례 본 게 답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동네 사랑방에서 오지명 김창숙 선배가 나오는 ‘일지매’를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서울에서 자랐더라면 수시로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었겠지만 시골에서 막연하게 꿈만 꾼 셈이죠.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서입니다.”

-송강호씨를 다룬 기사에 대학 시절 이야기가 별로 안 나오더군요.

“4년제 대학 연극영화과에 두 차례나 낙방했어요. 삼수를 하기 싫어 부산 경상전문대학 방송연예과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수험생 한 명당 실기시험 시간을 1, 2분밖에 주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끼를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수백 명에 대한 평가가 그런 식으로 이뤄졌었죠.”

송강호가 지원했던 4년제 대학들이 송강호의 끼를 발견하지 못하고 낙방시킨 것을 지금 알게 되면 후회할 게 틀림없다. 송강호는 1학년만 다니고 군에 입대하면서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전문대 1년 중퇴가 송강호의 최종 학력이다.

송강호는 대학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학교 이름을 알려주었다. 학벌 콤플렉스일까. 송강호 같은 대배우에게 학벌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어이없다. 상고 출신이 거푸 대통령을 하고 있는 시대에…. 정상의 자리에 있는 배우의 영예 앞에서 그까짓 학벌이 무엇이랴.

멜로물 “지금은 생각 없어요”

-대학에 들어가 처음 해본 연극이 무엇인가요.

“‘허생전’에서 허생 역을 맡았습니다. 아무튼 연극에 대한 맛보기를 했다고 할까요. 군에 입대하면서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1989년 스물네 살 때 제대를 하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 ‘연우무대’라는 극단에 찾아갔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갔습니까.

“네. 거기서 연극을 처음 시작한 것이지요.”

-옛날 같으면 송강호씨 같은 마스크로 주연배우 하기는 힘들었겠지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나오는 김하늘도 옛날 기준에서 보면 미인 축에는 끼이기 어렵겠더군요. 그로부터 과외지도를 받는 권상우가 인물 타박을 하자 “너같이 머리 텅텅 빈 아이들이나 얼굴 찾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정도이니….

“신성일 시대였다면 나 같은 외모가 먹혔겠습니까. 또 반대로 신성일 선배가 지금 활동한다면 그저 잘생긴 배우 가운데 하나였을 겁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관객들이 외모의 매력을 가진 배우를 선호했습니다. 배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시기가 1990년대 중반부터예요. 젊은 영화감독들, 그러니까 새로운 영화를 공부한 386세대가 감독이 되면서 그렇게 된 거죠. 실력 있는 영화감독들이 그때 다수 배출되었어요.”

-몇 명만 예를 들자면….

“그분들이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작업했던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웅 허진호 감독 같은 분들입니다. 결국 배우와 관객도 따라가면서 영화 자체에 질적인 향상을 가져오게 된 것이죠. 미남 미녀에 물린 관객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연기를 하자 더 친근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송강호씨를 멜로물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남자들끼리 노는 영화에 단골로 나오더군요. 어쩌다가 러브스토리가 끼여 들어도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아니지요. 영화사에서 그런 배역을 안 맡깁니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그런 배역을 기피합니까.

“멜로물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요. 물론 내가 멜로영화에 어울리는 마스크는 아니죠. 외형적으로 봤을 때는. 기존의 멜로영화 하면 미남 미녀들이 나와서 사랑 얘기하고 아웅다웅 다투다가 화해하는 줄거리잖아요.

그런 영화에 식상한 제작자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송강호라는 배우를 내세워 멜로영화를 찍었을 때의 신선한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기회가 오면 좋은 멜로영화를 한 편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영화들을 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습니다. 정확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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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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