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2009 일본戰 봉중근 전설, 정우영이 잇는다

[베이스볼 비키니] 도쿄돔 승리 공식, 땅볼 투수와 몸쪽 속구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ag.com

    입력2023-03-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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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돔 별명 ‘돔런(홈런 공장)’

    • ‘홈런 맛집’서는 땅볼 투수가 유리

    • 또 다른 키플레이어, 양의지

    일본 도쿄도에 위치한 도쿄돔은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이며, 홈런이 자주 나오는 구장으로도 유명하다. [뉴시스]

    일본 도쿄도에 위치한 도쿄돔은 일본 최초의 돔 구장이며, 홈런이 자주 나오는 구장으로도 유명하다. [뉴시스]

    Q. 프로 선수가 합류하게 된 1998년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이 경기를 가장 많이 치른 구장은 어디일까요?

    정답은 도쿄돔입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금까지 도쿄돔에서 총 13경기를 치렀습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프리미어12, 올림픽을 ‘톱 티어(Top Tier)’ 대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병역 혜택이 걸려 있는 아시아경기 역시 한국 야구 대표팀에는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전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 총 106경기를 치른 상태입니다. 전체 대표팀 경기 가운데 12.3%를 도쿄돔에서 치른 겁니다.

    한국 대표팀은 도쿄돔에서 치른 이 13경기에서 10승 3패(승률 0.769)를 기록했습니다. 대만, 미국, 중국(이상 각 2경기), 멕시코를 상대로는 7전 전승을 거뒀습니다. ‘숙적’ 일본을 상대로는 3승 3패 동률입니다. 같은 조건으로 따지면 일본은 도쿄돔에서 총 18경기를 치러 14승 4패(승률 0.77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3패를 당했는데 1패가 더 있다는 건 도쿄돔에서 일본이 패한 나라가 또 있다는 뜻. 일본은 2019년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때 미국에 3-4로 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일본보다 도쿄돔에서 더 적게 패한 팀입니다.

    도쿄돔을 흔히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지금껏 살펴보신 것처럼 ‘한국은 도쿄돔에서 강하다’고 주장해도 틀린 이야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021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 야구 경기를 도쿄돔이 아니라 요코하마(橫浜)에서 치른 데 대해 ‘‘한국이 도쿄돔에서 강해서 일부러 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번 WBC 때도 ‘한국은 도쿄돔에서 강하다’는 전통을 이어나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도쿄돔 홈런 비밀은 말랑한 지붕?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안방 구장이기도 한 도쿄돔을 상징하는 표현은 ‘돔런(돔+홈런)’입니다. 도쿄돔은 구장 내부 기압을 낮추는 방식, 즉 ‘말랑한’ 지붕을 위로 띄우는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이 때문에 구장 안에 상승기류가 발생해 타구가 멀리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도쿄돔에서 뛰는 타자는 홈런 개수에서 이득을 본다는 게 정설로 통합니다.



    한국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서도 뛰었던 타이론 우즈(54)는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인 2007년 “도쿄돔에서는 50%의 힘으로도 홈런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구장이니까 심지어 이승엽(47)까지도 왼쪽으로 (밀어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이제는 자기 친정팀 감독이 된 라이벌을 ‘디스’하기도 했습니다.

    구장이 선수 성적에 끼치는 영향은 ‘파크 팩터’라고 부르는 지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그 평균은 1.0(=100%)이고 이보다 숫자가 크면 타자에게 유리하고 작으면 투수에게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서울 잠실구장이 투수에게 유리하다는 건 프로야구 팬에게 상식으로 통합니다. 지난해 잠실구장 홈런 파크 팩터는 0.78 수준이었습니다. 리그 평균보다 홈런이 22% 정도 적게 나온다는 뜻입니다.

    최근 5년(2018~2022) 기준으로 도쿄돔의 홈런 파크 팩터는 1.21로 센트럴리그 6개 팀 안방 구장 가운데 2위, 일본 프로야구 전체 12개 팀 안방 구장 가운데는 3위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쿄돔(왼쪽 100 - 좌중간 110 - 가운데 122 - 우중간 110 - 오른쪽 100m)과 구장 크기가 똑같은 후쿠오카돔의 홈런 파크 팩터가 1.23으로 도쿄돔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후쿠오카돔은 그냥 딱딱한 지붕을 덮은 개폐형 돔구장이라 상승기류가 발생하지 않는데도 그랬습니다.

    땅볼 투수가 필요한 이유

    후쿠오카돔은 2014년 이전까지는 대표적인 투수 친화적 구장으로 손꼽혔습니다. 2014년 이 구장의 홈런 파크 팩터는 0.8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외야 담장 앞에 ‘홈런 테라스석’을 새로 만들면서 좌·우중간 담장까지 거리도 118m에서 8m 줄였습니다. 그러자 바로 리그 두 번째 ‘홈런 공장’으로 변신했습니다. 요컨대 ‘상승기류 때문에 도쿄돔에서 홈런이 많이 나온다’는 이론은 어쩌면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이유가 무엇이든 도쿄돔은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이라는 사실입니다. 홈런 타자는 어떤 구장에서든 홈런을 친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뛰던 2005년에도 30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지바 마린 스타디움은 왼손 타자 홈런 파크 팩터가 0.66밖에 되지 않던 구장이었습니다.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이 지난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안방 사직구장에 설치한 ‘성담장’이 떠오르는 분도 계실 겁니다. 성담장 하나로 사직구장 홈런 파크 팩터는 2021년 1.02에서 지난해 0.83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롯데 투수진은 평균자책점 9위(4.47)에 그쳤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난해 롯데 투수진이 사직에서 잡아낸 아웃 카운트는 땅볼 695개, 뜬공 553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땅볼 아웃 대비 뜬공 아웃 비율(G/F)은 1.26이 됩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안방 또는 방문 경기 어디서도 이보다 높은 G/F를 기록한 팀은 없습니다. 또 땅볼이 담장을 넘어 홈런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사직은 ‘뜬공 투수’에게 유리한 환경이 됐는데 땅볼을 더 많이 유도하다 보니 성담장이 효과를 잃은 겁니다.

    뒤집어 말하면 홈런이 많이 나오는 도쿄돔은 ‘땅볼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이라는 뜻이 됩니다. 봉중근(43·당시 LG 트윈스)이 ‘봉 열사’라는 별명을 얻은 2009년 WBC 본선 1라운드 최종전을 보면 도쿄돔에서 땅볼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본게임’에서 일본에 2-14로 7회 콜드패를 당한 상태로 다시 일본과 조 결승전을 치렀습니다.

    한일전, 승리 키워드는 ‘몸쪽 속구’

    2009년 2월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센트럴 오하우 리저널 파크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훈련을 소화하는 봉중근(왼쪽)과 자료를 확인하는 박경완. 동아DB

    2009년 2월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센트럴 오하우 리저널 파크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훈련을 소화하는 봉중근(왼쪽)과 자료를 확인하는 박경완. 동아DB

    이 경기 선발을 자청한 봉중근은 일본 타선을 5와 3분의 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이날 봉중근이 ‘인플레이 타구’로 빼앗은 아웃 카운트 가운데 땅볼이 9개, 뜬공이 5개(G/F 1.8)였습니다. 봉중근은 특히 상대 톱 타자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50)를 세 타석 모두 땅볼로 처리하면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습니다.

    봉중근이 이날 땅볼 유도에 성공할 수 있던 비결은 ‘몸쪽 속구’에 있었습니다. 김광현(35·SSG 랜더스)의 슬라이더가 난타당하면서 일본에 12점 차이로 패한 첫 경기에서도 정현욱(45·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속구는 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포수 박경완(51·당시 SK 와이번스)의 리드가 빛난 대목이었습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으로 선발된 정우영(LG트윈스)은 땅볼 유도가 특기인 투수다. [동아DB]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으로 선발된 정우영(LG트윈스)은 땅볼 유도가 특기인 투수다. [동아DB]

    이번 WBC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투수 15명은 지난해 프로야구 경기에서 G/F 1.28을 합작했습니다. 리그 평균(1.01)보다 26.7% 높은 기록입니다. 특히 정우영(24·LG 트윈스)은 땅볼 아웃 100개, 뜬공 아웃 22개로 4.55라는 ‘역대급’ G/F를 남긴 뒤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프로야구가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5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 중 이보다 G/F가 높았던 건 2021년 정우영 본인(5.22)뿐입니다.

    정우영이 이번 WBC 한일전 때 마운드에 올라온다면 분명 ‘결정적 순간’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순간 한국 안방마님 양의지(36·두산 베어스)가 어떤 리드를 선보일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WBC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단기전은 결국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리는 일이 적지 않으니까요. 도쿄돔에서 열린 첫 한일전인 2006년 WBC 1라운드 때 일본 마무리 투수 이시이 히로토시(石井弘壽·46)가 던진 속구 하나가 이승엽의 역전 홈런으로 연결되면서 구장을 가득 채운 만원 관중을 침묵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구대성에게 배울 점

    ‘한국 프로야구 전설의 좌완’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대성(54)은 2000년 9월 27일 열린 시드니 올림픽 야구 3,4위 결정전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동아DB]

    ‘한국 프로야구 전설의 좌완’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대성(54)은 2000년 9월 27일 열린 시드니 올림픽 야구 3,4위 결정전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동아DB]

    넓은 의미에서 한국 ‘대표팀’이 도쿄돔 그라운드를 처음 밟은 건 1991년 한일 프로야구 슈퍼게임 때였습니다. 한국은 그해 11월 2일 도쿄돔에서 열린 1차전에서 아키야마 고지(秋山幸二·61), 오치아이 히로미쓰(落合博滿·70)에게 백투백 홈런을 허용하면서 결국 일본에 3-8로 패했습니다.

    이 대회는 1995, 1999년에도 이어졌습니다. 1995년에도 1차전은 도쿄돔에서 열렸지만 1999년 11월 6일 1차전 장소는 나고야돔이었습니다. 한국은 이 경기 선발로 당시에도 이미 ‘일본 킬러’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한화 이글스의 구대성(54)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구대성은 4회에 일본 팀 선수로 나온 이종범(52·당시 주니치)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는 등 4와 3분의 2이닝 동안 안타 10개를 내주고 5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됐습니다. 문제는 ‘쿠세(癖)’였습니다. 일본 더그아웃에서 구대성의 투구 동작을 따라 하면서 이럴 때는 속구고 이럴 때는 변화구라고 알려주는 장면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구대성은 다음 날 일본 팀을 이끌던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1947~2018) 당시 주니치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본인 쿠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쿠세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물었습니다. 명투수 출신이던 호시노 감독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대성이 감사 인사를 하고 물러나자 호시노 감독은 “구대성이란 선수 훌륭하지 않은가? 일본 선수들도 구대성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대성은 이후 2000년 9월 27일 한일전으로 열린 시드니 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헤이세이(平成)의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大輔·43·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155구를 던지며 완투승을 거뒀습니다. 도쿄돔에서 열린 2006년 WBC 1라운드 맞대결 때도 7, 8회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 승리 발판을 놓았습니다. 그사이 구대성은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를 거쳐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로 소속 팀이 바뀐 상태였습니다.

    모르면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한국 야구 대표팀은 여전히 ‘WBC 때는 첫 경기 상대인 호주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일본도 꼭 이기겠다는 결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설령 패한다고 해도 배울 게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도쿄돔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야구의 자존심과 자부심도 걸려 있는 장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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