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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분식회계·비자금 파문에 휘청거리는 SK

투톱 갈등, 어설픈 로비가 빚은‘비극’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분식회계·비자금 파문에 휘청거리는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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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 수사에 착수해 최태원 회장을 전격 구속하는 등 SK사태에 불을 붙였던 당시 서울지검 이인규 형사9부장(현 원주지청장)도 “당시 수사에서도 최태원 회장이나 손길승 회장의 정치자금 문제는 나온 적이 없다. 나도 몰랐던 문제”라며 사전기획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이지청장은 “대검의 수사에 영향을 미칠까봐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나중에 좀더 조용해지면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수백 억원대의 정치자금 파문으로 위기를 맞은 SK의 최근 사정을 보면서 세간에서는 ‘아이러니’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업을 확장하거나 다각화할 때마다 정부 소유 공기업을 인수해 발판을 삼아온 것만 보더라도 SK가 다른 어느 그룹들보다도 정부와의 관계가 매끄러울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추측이었기 때문이다.

SK그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선경직물은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53년 고(故) 최종현 회장의 형인 최종건씨가 정부 소유 직물공장을 인수하면서 태동했다. 또 SK는 1980년대 들어서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호응하듯 정유회사인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함으로써 그룹의 사업구조를 섬유 중심에서 에너지·화학 중심으로 재편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차지함으로써 오늘날 그룹내 최고 알짜기업으로 성장한 SK텔레콤의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이렇듯 SK가 사세(社勢)를 불려온 주요 고비고비마다 공기업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기업 인수전략을 그룹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관계를 매끄럽고 돈독하게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SK 관계자들은 대정부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1998년 최종현 회장 사후 최태원-손길승 회장의 ‘투톱 체제’가 출범하면서부터라고 지적한다. SK의 한 전직 임원은 이러한 원인을 최종현 회장의 사업 파트너로 동고동락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온’ 손길승 회장과,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만 하다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부장급으로 경영에 합류한 최태원 회장 간의 업무 스타일 차이에서 찾았다.

“미국에서 공부만 하고 돌아온 최태원 회장은 선대 회장이나 손길승 회장과도 인식차가 너무나 컸다. 합리적 경영과 한국적 현실 사이에서 전자만 강조했을 뿐 후자에 대한 이해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SK 경영기획실에는 경제기획원 고위 관료 출신, 안기부 간부 출신은 물론 민주산악회 출신 등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인맥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인력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은 학구파(?)

굳이 비교하자면 삼성이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재경부 등에서, 얽히고 설킨 기업 경영의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바람막이가 되어줄 만한 ‘실력자’들을 적극 영입해 포진시키는 것과 달리 SK는 기업 경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러한 인사들을 하나둘씩 정리해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태원 회장의 주요 관심사 역시 기술 혁신, 신(新) 비즈니스 모델 등 ‘기업활동 그 자체’에만 집중돼 있어 예기치 못한 외풍이 불어닥쳤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계열사가 59개나 되는 거대그룹으로 성장한 SK가 순진무구한 생각만으로 대정부 관계를 끌고 갔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과거 정권에서도 그룹 소유의 워커힐 빌라는 DJP 극비회동 장소로 제공되기도 하고, 참여정부 벽두부터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요구에 따른 10억원 시주사건이 터지는 등 SK와 정치권이 관련된 각종 스캔들도 끊이질 않았다. 문제는 ‘세련되지’ 못한 일처리 방식에 있었다.

지난 1996년 SK텔레콤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이 실시된 직후 떠밀리다시피 회사를 나온 퇴직자들이 회사 내부문서를 언론에 제공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 일로 당시 SK텔레콤이 직원들을 상대로 청와대, 정보통신부, 국가정보원 등 주요 권력기관에 있는 지인(知人)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해왔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SK 주변에서는 이런 사실을 두고 SK가 재계 서열 3위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대정부, 대국회, 심지어 대언론 등의 관계에서도 위기관리 능력이 취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다 못해 요즘 SK 주변에서는 SK에 대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 암묵적 지지세력 중 하나가 ‘장학퀴즈 출신들’이라는 점을 들어 “왜 장학퀴즈 출신들 중에는 법조나 정치권으로 진출한 사람이 눈을 씻고 봐도 없냐”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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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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