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 동조화 현상
세계 각국에 주택 투기 버블이 공통적으로 형성된 이유를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이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과잉공급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실물경제 자산을 유동화하는 금융경제화 현상도 주택 버블 형성에 기여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금융권에서는 주택모기지 대출을 유동화하는 금융상품을 통해 부동산 투기 레버리지(leverage)를 극대화했다.
9·11테러 이후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미국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지한 저금리 기조도 주택 버블 형성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됐다. 여기에 1999년 유로화 국가들의 시장통합에 따라 역내 금융기관들의 저금리 여유자금 유입과 역내 직접투자가 확대된 것도 유럽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른 원인이 됐다.
이 같은 경제적 동인들을 배경으로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의 집값은 급격히 상승했다. 예를 들어 쉴러-케이스(Shiller-Case) 주택가격지수 추이에 따르면 미국 10대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약 2.25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주택 버블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붕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6월 현재 미국 10대 도시의 경우 정점 대비 주택 가격이 17.8%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더구나 물가가 하락한 대공황 때와는 달리 현재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집값 하락폭은 대공황 때보다 더 크다.
미국보다 조금 늦게 거품이 걷히고 있는 영국의 경우도 집값 하락세가 완연하다. ‘이코노미스트’ 7월5일자에 따르면, 영국의 집값도 6월 현재 지난해 동기 대비 6.3% 하락했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등 상당수 국가의 집값이 빠른 속도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함께 오르던 전세계 집값이 이제는 함께 떨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전 지구적 동조화 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주가 등락 그래프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세계 증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시장도 1990년대 말 이후 동조현상이 뚜렷하다. 다른 나라와 함께 오른 국내 집값이 다른 나라가 내릴 때에도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있을까? 전세계적인 동조현상에서 한국만 벗어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국토가 좁고,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한국인은 주택 소유욕이 강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한국은 다르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980년대 말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에 있던 일본에서도 거의 똑같은 이유를 들먹이며 ‘부동산 불패론’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주택수급 불균형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택수급 상황이다. 이 같은 오해를 바탕으로 한 언론 보도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엉터리 주장도 많다. ‘아직 주택보급률이 100%에 이르지 않았으니 집이 모자란다’거나 좀 더 국지적으로는 ‘강남 같은 여건을 갖춘 아파트는 모자란다’는 식의 주장이 그렇다. 이런 주장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는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1990년대 초·중반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 거품이 발생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수요는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want)만 있다고 수요라고 할 수 없다.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유효수요가 된다. 많은 이가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35% 전후의 주택 미소유자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