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고급 캐주얼, 명품 구두, 강남 살면 “어서 옵쇼!”

‘부의 상징’ 수입차를 파는 사람들

  • 글: 진희정 한경자동차신문 기자 jhj@hancha.com

    입력2003-04-28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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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입차의 국내 판매가 시작된 지 16년.
    • 하루 60여 대씩 팔려나가는 이 ‘달리는 돈덩어리’를 파는 이는 누구이며 사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 수입차 판매왕들이 털어놓은 영업 노하우, 부자들만의 남다른 소비세계.
    고급 캐주얼, 명품 구두, 강남 살면 “어서 옵쇼!”

    도산대로에 있는 벤츠 강남전시장 내부

    토요일 오후. BMW, 벤츠, 아우디, 포르쉐, 볼보, 포드 등 수입차 전시장이 몰려 있는 서울 도산대로가 바쁘다. 아이들에 노부모까지 모시고 매장을 찾은 가족단위 고객이 넘치는 데다, 가족이나 연인과 주말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출고한 차들로 전시장 앞이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꽤 피곤할 만도 한데 오히려 영업사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세일즈맨들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상사에게 혼나는 게 아니란다. 바로 영업할 고객이 없는 날이라는 것이다. 내방고객이나 계약 및 출고 고객이 많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게 도산대로가 바빠진 것은, 수입차업계가 지난 1996년 1만315대로 처음 1만대 판매를 달성한 이후, 지난해엔 1만6119대를 팔았고, 올해엔 2만대 이상의 판매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라크전쟁이나 북핵 문제 등 대내외적 상황이 좋지 않고 장기 불황에 대한 불안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련의 문제들이 잠잠해지면 다시 판매에 불이 붙으리란 것이 업계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국내에서 수입차 판매가 시작된 것은 16년 전.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뀐 셈이다. 더구나 하룻밤 자고 나면 또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가 몰려오는 요즘이고 보면 변화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당연하다.

    사과 궤짝에 담긴 1억원

    1987년 1월, 정부는 2000cc 이상 대형차와 1000cc 이하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했다. 이듬해 4월에는 배기량 규제를 풀어 완전 개방했다. 당시 수입차에 대한 인식은 이제 갓 성장기로 들어선 국내 자동차산업을 위축시키고 외화낭비, 과소비와 사치풍조를 불러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판매실적도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 첫해 수입차 판매를 시작한 업체는 한성자동차(벤츠), 효성물산(아우디/폴크스바겐), 한진(볼보), 코오롱상사(BMW) 등이었고 판매실적은 벤츠 10대가 전부였다. 또 따로 판매사 없이 수입업체가 직접 차를 팔았으며 영업사원은 업계를 통틀어 4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현재는 고진모터임포트(아우디/폴크스바겐)와 한성자동차(포르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업체들이 한국 법인을 세웠으며 70여 개의 판매사가 운영되고 있다. 전체 영업사원 수도 초기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1000여 명 수준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볼보가 업계를 주도했으나 중반에 접어들며 벤츠, 포드, 사브가 강세를 보였고 4년 전부터는 BMW로 주도하는 형세로 바뀌었다. 고객층이나 영업방법 역시 변천을 거듭해왔다.

    시장규모가 작았던 초기의 주 수요층은 기업체 회장이나 사장, 재일 교포, 연예인 등으로 아주 제한적이었다. 이들은 노출을 꺼려 영업사원들이 열심히 차를 팔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대기업 회장의 경우 전시장을 방문해 차를 사는 게 아니라 영업사원을 직접 회사로 불러 각 차종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영업사원에 대한 대접도 VIP 수준이었다. 회사 정문에 도착하면 비서실장이 영접(?)을 나올 정도였다 한다.

    또 고객이 차를 인도하는 영업사원에게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시 벤츠 판매 영업사원이던 K씨는 “과거에는 구매자들이 자신의 귀중한 차를 갖다주는 영업사원에게 AS 등 계속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용돈을 주거나 선물을 줬다”며 “나도 최고 100만원까지 돈을 받은 적이 있고 한번은 십전대보탕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한 때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공공기업 관련회사에 있거나 남의 이목이 두렵고 세무조사가 걱정되는 사람들은 수입차를 사지 못했다. 또 지금처럼 할부제도가 없어 차량 대금을 전액 한꺼번에 내야 했다. 수표번호 조회로 본인의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시 소비자들은 1억원 이상 되는 차량 대금을 만원짜리 현찰로 지불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쇼핑백이나 사과 궤짝 같은 데 넣어온 돈을 세는 것도 일이었다.

    요즘에는 과거보다 수요층이 넓어졌다. 3000cc 이상 국산 대형차 소유자,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중소규모의 자영업자 등이 구매대상자다. 세무조사나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수그러들고 소비자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이로 인해 고액 연봉을 받는 영업사원이 탄생하는가 하면, 소비자 중에는 특정 브랜드 마니아까지 생겨나고 있다. 당연히 영업활동 또한 치열해졌다. 영업사원들은 불특정 수요층에게 DM발송, 전화방문, 시승차 운영 및 크고 작은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통해 가망고객을 발굴, 차를 판다. 가망고객들의 소비심리도 합리적으로 변해, 여러 전시장을 돌며 가격, 성능, 옵션 등을 비교해 차를 사므로 영업사원들의 판촉전은 점점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영업은 군대와 학교의 중간이다.’

    수입차 판매초기에 유행한 말인데, 그 정도로 영업사원들 사이에 기강이 잡혀 있었다는 얘기다. 후배가 선배 가방을 들어주는 건 보통이었고 선배보다 비싼 차를 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새로 사원이 입사하면 여러 수입차 전시장을 돌며 인사를 했고 비록 경쟁사라도 선배 대접을 깍듯이 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후배’로 찍혀 일하기가 힘들었다. 또 업계 영업사원간 왕래도 잦아 친선야구대회나 술자리 등이 많은 반면 이직률은 낮았다. 영업방법도 단순해서 고객들에게 차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주면 쉽게 차를 팔 수 있었다.

    반면 요즘 입사하는 신세대 영업사원들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법도 없고 능력이나 인센티브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 이메일, 동영상, 문자메시지, 개인 홈페이지 등 각종 신(新)기법을 동원해 차를 판다. 10년 가까이 수입차 영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요즘 후배들은 실적이 안 좋아도 선배들의 도움 받기를 싫어한다”며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서 가망고객들을 발굴해오는 걸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신세대 사원들은 고정관념이 없어 가망고객 발굴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잘 낸다. 경력 6개월의 B씨는 “수입차 마니아 고객들을 위해 해외자동차 사이트에서 사진을 다운받아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며 “남과는 다른 방법으로 차를 팔기 위해 고심한다”고 말했다.

    영업사원의 성격도 변하는 추세다. 초기 사원들은 외향적인데다 성격 좋고 말주변이 있어 고객들을 한번에 사로잡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신세대 사원들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다. 대신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고객에게 정보를 판다는 자세로 일에 임한다. 회사간 이직률도 높아졌고 능력 있는 몇몇 영업사원들은 각 판매사의 스카우트 리스트에 올라 있다.

    한성자동차에서 벤츠를 파는 장정희(43) 차장은 경력 8년차로 그동안 포드, BMW, 아우디 등 여러 차를 팔았다. 업계에서는 ‘베테랑’으로 통한다. 장차장은 “비싼 수입차를 잘 팔려면 전시장에 들어서는 고객만 봐도 차 구매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반(半)도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첫 번째 비법은 고객의 복장을 살피는 것이다. 지나치게 잘 차려입은 고객이나 힙합스타일이나 찢어진 청바지 등 지나치게 ‘불량한’ 복장을 한 사람은 차를 살 가망성이 적다. 세련된 세미캐주얼을 입은 고객이면 일단 OK다. 두 번째, 고객과 상담하는 동안 구두나 핸드백, 장신구 등을 본다. 수입차는 아무리 가격이 싸도 3000만원이 넘기 때문에 고급 브랜드를 하나 이상 갖고 있는 사람이면 그만큼 살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몰고 오는 차의 번호판을 확인한다. 52, 53, 54 등 서울 강남권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구매 가능성이 높다.

    차가 좋아 차를 판다

    장차장은 그러나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해도 수입차를 팔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내방고객 중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고작해야 10~20% 정도. 지금 사러 간다고 전화가 와 외근도 못 나가고 기다리지만 저녁 때까지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고객이나, 산다고 약속했다가도 계속 연기를 해 활동비만 날리는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턱대고 값을 깎아달라는 고객에 맞춰 자신의 인센티브를 거의 포기하는 영업맨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세대 영업사원들은 어떨까.

    “선배들의 고정된 영업 방식과 다른 길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고진모터스에서 아우디를 팔고 있는 입사 4개월의 신세대 영업사원 박홍규(28)씨의 포부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차를 좋아해 영업사원이 됐다. 그는 요즘 신입직원 중에는 자신과 같은 자동차 마니아가 많다고 귀띔했다. 고객 중에도 마니아가 많아 차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단다. 그래서 손님들과 상담할 때는 섣불리 아는 척을 해서는 안 된다.

    3주일 제품교육을 받고 업무에 투입된 지난 3개월 동안 박씨는 모두 9대의 차를 팔았다. 상당한 실적이다. 그는 나이 많은 선배들과 달리 PDA를 들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 상담 고객이 원하면 PDA를 꺼내 바로 차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의 첫 고객은 30대 초반의 임대업자였다. 아내를 위해 차를 산다던 그 고객은 상담 이틀 만에 차를 계약해버려 ‘이런 게 차 파는 것’이란 생각도 할 틈이 없었다. 의사, 자영업자, 대기업 임원들에게도 차를 팔았다. 의사의 경우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마치 환자 진단하듯 필요한 것만 조목조목 물었다고 한다. 한 자영업자는 마치 사업을 하듯 “다른 영업사원은 차 값을 깎아준다던데 너는 왜 비싸게 부르냐”며 밀고 당기기를 시도해 진땀깨나 흘렸단다.

    박씨는 고객의 외양에 치중해 구입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오는 고객, 단지 차를 구경하러 온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해 맞겠다는 것. 그러면서 “아직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판다는 재미가 커서 그런 것 같다”며 계면쩍게 웃었다.

    수입차 판매 초기에는 국산차 영업사원 출신을 많이 뽑았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고객층과 영업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미 고정관념에 빠진 국산차 영원사원 출신은 신입사원보다 적응 기간이 오히려 더 길다”고 말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DCK)의 서울 딜러 ‘렉스모터스’의 손상철(37) 소장은 “수입차 영업은 국산차와 접근방법부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손소장은 1992년 대우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1995년 병행수입업체인 국제자동차, 1997년 포드, 1998년 현대차를 거쳐 2000년부터 DCK에 몸담고 있다. 국산차 영업을 하던 그가 수입차로 옮긴 후 처음 느낀 벽은 고객이었다. 국산차 수요층은 노점상부터 기업 회장까지 다양해 발로 뛰는 일이 많았고 주로 인맥에 의존한 판매가 이뤄졌다. 그러나 수입차는 수요층이 한정돼 있고 보수적이어서 국산차 영업처럼 접근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또 고객들이 기본적으로 차에 관심이 많아, 타사 차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손소장은 “수입차 영업초기에는 그런 사실을 몰라 실적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앉아만 있을 수 없단 생각에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한 번 온 사람은 일단 리스트에 포함, DM을 발송하고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의사협회나 치과학회 등 예상 수요층의 명단을 구해 자연스레 접근했고, 잠재고객은 차를 안 사더라도 접촉해 자신이 파는 차를 알리려 노력했다. 그렇게 남보다 더 많이 활동하고 공부한 덕에 ‘렉스모터스’에서 가장 실적 좋은 영업사원이 될 수 있었다.

    손소장은 고객에게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차는 물론 각종 서비스 및 혜택에 대한 과장된 설명보다는, 고객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주로 이야기한다. 일단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차를 타보게 한다. 카탈로그를 보며 그냥 설명을 듣는 것과 차를 타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꾸준한 노력 덕에 그는 올 초 소장이 됐다.

    연봉 2억5000만원의 꿈

    포드코리아 딜러인 선인자동차 일산전시장에서 일하는 최선식(38) 소장 역시 “수입차와 국산차 고객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소장은 1990년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판매왕을 11번이나 차지했다. 그러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에 1996년 선인으로 회사를 옮겼다.

    국산차 고객들은 ‘정’으로 차를 산다. 워낙 수요층이 넓기 때문에 누구든 고객이 될 수 있다. 영업사원들의 친척, 친구 등 지인은 물론 옆집 사는 사람들에게도 차를 팔 수 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수요층에게 무조건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고객들은 한번 상담을 했다고 바로 차를 구매하지 않는다. 경쟁 차종이나 가격을 꼼꼼히 따져본다.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 가장 성실한 자세를 보이는 영업사원의 차를 사게 된다. 또 일반 사원보다 과장이나 팀장 등을 더 믿기 때문에 국산차 영업사원들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대외용 직급이 생긴다.

    반면 수입차 고객들은 ‘첫인상’으로 계약을 결정한다. 이들은 고소득자, 외국 유학파나 장기 출장경험이 있는 사람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수입차 영업사원들은 고객에 맞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든다. 복장이 깔끔한 건 물론이고 꼭 필요한 말만 골라 한다. 또 수입차를 타는 사람들은 이미 국산차를 운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에 대비해 영업사원들은 풍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경쟁 차종과 비교해 장단점을 확실히 알고 나름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장의 경우 차 파는 일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늦은 나이인 33세에 아내와 아이를 남겨두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I am a boy’ ‘You are a girl’만 알았던 그는 독한 마음으로 영어공부를 했다.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게 되자 폴크스바겐, 마쓰다, 도요타 등 유명 자동차회사의 세일즈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2년간 딜러로 일했다. 2000년 귀국 후 그는 미국에서 배웠던 영업을 한국에 맞게 적용해 선인에서 가장 많이 차를 파는 영업사원이 됐고 작년 초 영업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수입차업계는 사상 최다판매를 기록하는 호황을 맛봤다. 덕분에 영업사원들 역시 활기찬 한 해를 보냈다. 업계 전체로 보면 50대 이상 판 영업사원이 20명이며 100대 이상 판매한 이도 2명이나 된다(표 참조). 이들 2명의 연봉은 2억5000만원 내외다. 판매 50대, 연봉 1억원이 목표이던 영업사원들에게 더 큰 ‘꿈’이 생긴 셈이다. 이들의 판매비결을 들어봤다.

    고급 캐주얼, 명품 구두, 강남 살면 “어서 옵쇼!”

    내방 고객에게 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고진모터스(아우디) 직원

    수입차업계를 통틀어 지난해 차를 가장 많이 판 영업사원은 한국토요타자동차 판매사인 D&T모터스의 손진열(34) 과장이다. 손과장은 1년 동안 157대를 팔았다. 그의 영업비결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철저한 고객관리다. 현재 손과장이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가망고객은 1200여 명. 그는 가망고객들에게 하루 평균 40~50통의 전화를 걸어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다. 통화중에 달라진 고객 취향이나 심리를 파악, 귀가 후 아무리 피곤해도 어김없이 업데이트를 한다.

    둘째,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손과장은 달변이거나 자신을 내세우는 편이 아니다. 보수적인 렉서스 고객들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며 영업을 강조하는 사원에게는 부담감을 갖기 때문이다. 그는 고객이 선호하는 차종을 정확히 알고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로 집중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망고객의 수명을 길게 본다. 보통의 영업사원들은 당장 차를 사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 적극적이지 않지만 손과장은 2~3년 후를 기약한다. 정성을 들인 고객이 다른 수입차를 사도 포기하지 않는다. 몇 년 후엔 차를 바꿀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며 유대관계를 이어가 결국 그 고객에게 차를 팔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손과장이 수입차 영업사원이 된 것은 지난 1996년이다. 전 직장인 외국계 해운회사의 담당 업무나 고정급여제가 답답하게 여겨져 사브를 파는 신한자동차에 들어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자신의 능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 적극적으로 일했다. 처음엔 고생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2~3년이 지난 후에는 베스트 영업사원이 됐다. 2001년 초 회사를 옮기면서 렉서스를 팔게 됐다.

    GM코리아의 서울 판매사인 삼양물산에서 사브와 캐딜락을 파는 배정현 차장은 “신뢰 받는 영업사원이라면 구매고객의 주변인이 차를 살 때 꼭 다시 찾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입차 고객들이 차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점을 감안해 작은 불만 하나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점이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드코리아의 판매사인 선인자동차 손정수(32) 팀장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해온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차를 사는 사람의 취향이나 연령에 따라 가격이나 옵션, 성능 등 바라는 게 다르므로 그것을 미리 파악해 상담에 임하면 그만큼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 고객의 요구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영업사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영업비결이다.

    “영업사원은 코미디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차와 함께 자신을 상품화시켜 팔기 때문에 늘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BMW코리아 판매사인 코오롱모터스 정원창(34) 과장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항상 웃으며 고객을 대하려 노력한다. 또 구매고객의 차에 문제가 생겨 새벽에 전화가 와도 직접 현장까지 달려간다. 정과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연중무휴’라고 말한다. 그만큼 프로의식이 강하다는 뜻이다.

    마니아 고객 상대 위한 공부 필수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판매사인 한성자동차의 박원권(38) 부장도 마찬가지다. 박부장은 “바쁘고 지친 일상에도 잘 웃고 좋은 인상을 주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객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소개가 하나라도 더 들어오기 때문. 또 결혼식, 회갑연 등 아는 고객들의 대소사엔 화환도 보내고 가능하면 참석하려 노력한다.

    영업사원들의 지옥과 천국은 모두 고객이다. 지난해 아우디를 70대 팔아 고진모터임포트의 판매왕이 된 한상억(32) 팀장은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한번은 구매고객이 전화를 했어요. 아이들을 태우고 지방에 가다 큰 사고가 났는데 전혀 다친 데가 없었다고요. 안전한 차를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했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한팀장은 이처럼 차를 출고한 뒤 만족스럽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가 가장 기분 좋다고 했다. 또 여성고객이, 출고 때 그가 선물한 꽃다발에 감동을 받으면 무척 기쁘다고 했다.

    볼보코리아 서울 판매사인 두산의 신현상(36) 과장 또한 “고객들이 좋은 차를 소개해줘 고맙다는 얘기를 하거나, 차를 산 뒤 일이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할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밝혔다. 신과장은 그러나 비싼 자동차용품을 선물로 원하거나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시세보다 턱없이 높은 가격에 팔아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 조건에도 없는 무이자 할부 개월 수를 내거는 고객들을 이해시키기는 힘들다고 했다.

    수입차 판매사들은 각 전시장별 규모와 판매실적에 따라 4~20명의 영업사원을 두고 있다. 여성의 비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여성이 한 명도 없는 매장도 있다. 전반적으로 각 전시장별 여성 영업사원 비율은 10% 내외다. 이들 중 가장 판매실적이 좋은 여성은 BMW의 서울 판매사인 ‘저먼모터스’ 김은정(33) 과장이다.

    “여자라고 수입차업계 임원이 되지 말란 법 있나요.”

    가무잡잡한 얼굴에 사근사근한 말투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김과장의 포부다. 그는 지난해 월 평균 7대 이상의 차를 팔아 연봉 1억5000만원을 거머쥐며, 3년 연속 저먼모터스의 베스트 영업사원이 됐다. 그녀가 수입차업계에 발을 담근 것은 10년 전. 볼보 수입·판매업체였던 한진에 입사, 리셉셔니스트로 4년간 활동하다 영업에 뛰어들었다.



    “영업을 시작한 게 1996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여자 영업사원이 드물고 나이도 어려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수입차 고객들은 자동차 메커니즘에 밝은 마니아들이 많아 기술적인 문제까지 시시콜콜 물을 땐 난감했죠.”

    ‘여자라서 그렇다’는 얘기를 듣기 싫었던 김과장은 열심히 공부했고 내방 고객이나 데이터베이스 등을 통해 알게 된 고객 중심으로 가망고객을 늘려갔다. 또 구매고객들에게는 폐차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출고는 물론 애프터서비스까지 직접 해결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서 베스트 영업사원이 됐고 지난해 저먼모터스가 서울에 진입할 때 스카우트됐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영업사원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죠. 주임급 이상에게는 BMW를 내주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차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회사 지원 외에 김과장만의 노하우라면 공격적인 세일즈다. 동대문 자영업자들에게 차를 팔기 위해 자정부터 새벽까지 카탈로그와 명함을 돌리는 것은 보통이고, 고객이 있다면 지방출장도 사양하지 않았다. 또 구매고객 옆에는 늘 가망고객이 있다고 생각, 항상 관심을 갖고 대한다. 덕분에 구매고객 소개로 5대까지 차를 판 적도 있으며, 야구선수 양준혁에게는 735iL을, 가수 포지션의 임재욱에겐 525i를, god의 데니안에겐 330i를 각각 팔았다.

    “여성 영업사원의 경우 의욕만 앞세우다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있어 늘 조심해야 돼요. 전시장에 찾아온 고객이 전화를 걸어 현금으로 결제할 테니 잔액을 가져오라고 해서 돈을 들고 갔던 여성사원이 고스란히 돈을 뺏긴 적도 있으니까요.”

    초보·마이너는 서러워

    무슨 일을 하든 초보와 마이너들은 고충이 많다. 수입차 영업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베테랑인 영업사원도 대부분 초보시절엔 고객이 어떤 차를 원하는지 몰라 고생한 경험을 갖고 있다. 가령 최고급차를 구입하려는 고객에게 가장 싼 차를 권하면 관심을 끌 수 없다. 또 마니아급 고객에게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선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기초’를 모르는 초보들은 현장에서 당황하게 마련이다.

    도산대로의 한 전시장에 근무하는 입사 5개월차의 초보 영업사원 L씨의 하루를 들어봤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20분. 이어 8시 회의에 참가한다. 전날 만난 고객 이야기, 전달사항부터 신변잡기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다음은 청소시간. 선후배간 서열(?)에 밀려 L씨가 커다란 청소기를 든다. 연차에 따라 대걸레, 물걸레 담당이 따로 있다. 영업사원들은 2주일에 한 번 꼴로 골프장에서 홍보를 한다. 특히 부킹 시간을 빼기 어려운 토요일 오전에 골프 치는 사람들은 거의 VIP. 이들이 골프 치는 동안 기사식당에 모여있는 운전기사들의 마음을 얻어야 차를 한 대라도 더 팔 수 있다. L씨는 주차해 놓은 차에 명함을 꽂다 경비원에게 제지당해 머쓱해진 경험도 있다고 했다.

    골프장에서 돌아온 후에는 가망고객에게 전화해 만날 약속을 잡는다. 차가 팔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실행하고 있다. 당직일 경우에는 하루종일 전시장에서 내방고객을 맞는다. 보통 당직은 1주일에 1~2번 꼴로 돌아온다. 오후 5시30분쯤이면 외근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 하루를 마감하는 업무일지를 전산입력한다. 이어 고객에 보낼 DM을 정리하고 퇴근 후 찾아오는 고객들을 맞는다. 정작 그의 퇴근시간은 오후 8~9시 정도다.

    마이너 브랜드의 영업사원들은 차를 팔기가 더 힘들다. BMW, 벤츠, 렉서스 등 이름만 들으면 금방 아는 브랜드의 경우엔 전시장에 찾아오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가망고객을 늘리기가 쉽다. 하지만 마이너 브랜드의 쇼룸에는 내방고객 자체가 적다. 스웨덴 차를 파는 J씨는 “고객들 중 브랜드만 따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고객을 설득해 차 한 대 팔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BMW나 벤츠 경우엔 손님들이 이미 차에 대해 알고 오기 때문에 금방 차를 팔 수 있지만 자신의 경우엔 몇 번씩 설명을 해야 하고 꼭 시승까지 시켜줘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또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에 거래처나 다른 일을 볼 때도 꼭 판매용 차를 끌고 나가 즉석 시승을 시켜준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해도 잘 팔아야 한 달에 5대 정도고 적을 때는 1~2대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수입차 영업사원의 월급은 국산차와 마찬가지로 ‘기본급 플러스 인센티브’로 결정된다. 판매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신입사원의 경우 평균 80만~100만원의 기본급을 받는다. 차 1대 당 인센티브는 차량가격의 0.5~1%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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