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강남, 동아·조선일보, 법조계, 재벌은 新五賊, 그중 핵심은 서울대…” ● 가장 비효율적인 ‘공무원 조직’과 ‘대학 조직’이 모여 있는 곳 ● 하버드 발전기금 25조, 예일 14조, 프린스턴 12조, 서울대는 3500억 ● 도쿄대, 칭화대에도 밀리는데 서울대를 폐교하라고? ● 370년 역사의 하버드 총장은 27명, 60년 연혁의 서울대 총장은 23명 ● 숙명여대의 성공, 서울대의 답보. 총장·학장 나눠먹기론 대학 발전 요원 ● 한국 현실 외면한 文·史·哲, 그틈 파고든 운동권 ● 공대생 15%가 의과대로 다시 진학, 인문사회계열엔 고시 열풍 ● 모두가 잊어버린 서울대의 교육 이념 ‘弘益人間’ ● 서울대 교수 봉급, 고려대 교수의 70% ● 교수 봉급 차별제 도입하고, 조교수 탈락률을 30%까지 끌어올려라 |
서울대 개혁을 주도한 정운찬 총장(작은사진).
근대 교육 역사가 일천한 우리로서는 세 자릿수 연혁을 가진 학교의 등장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진국의 근대 교육 역사는 훨씬 길다. 영국의 옥스퍼드대는 하도 오래돼서 정확한 개교 연도를 알지 못한다. 1096년 옥스퍼드에서 교육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900년은 넘었다”는 게 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1209년 설립된 케임브리지대는 개교 800주년을 맞는 2009년까지 10억파운드(약 1조7000억원) 기금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는 미국 건국보다 140년 앞선 1636년 개교해 370개의 성상(星霜)을 넘겼다. 예일대는 1701년, 프린스턴대는 1746년 개교함으로써 역시 미국 역사보다 긴 305주년과 260주년의 연륜을 쌓아왔다. 서울대와 자주 견줘지는 일본의 도쿄(東京)대는 1877년 출범해 올해 129주년을 맞게 되었다.
한국 학교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것은 성균관대다. 성균관대는 조선 건국 직후인 1398년 세워진 성균관을 뿌리로 하므로 608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나 ‘세기’는 서양적인 가치 기준이다. 동양에서는 60년마다 돌아오는 ‘갑자(甲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올해 8월22일 국립서울대학교가 설립 6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서울대는 10월15일을 개교기념일로 삼고 있어, 60주년 행사는 가을학기인 10월 중에 주로 펼쳐진다. 세기와 갑자를 맞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국은 근대 교육의 출발이 늦은 만큼 두터워진 연혁에 안주할 수가 없다. 신흥 경제강국답게 신흥 명문학교를 배출해야 한다.
서울대는 ‘新五賊’의 핵심?
서울대는 그간 30주년을 주기로 큰 변화를 맞았다. 서울대가 출범할 때 ‘국대안(國大案) 파동’이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뒤의 상자 기사 참조). 1946년 서울대는 경성제대의 후신인 경성대 등 10개의 학교가 통합해 출범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1975년부터 4년에 걸쳐 의대, 치대, 간호대를 제외한 모든 단과대를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옮겼다(농업생명과학대는 가장 늦은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 그리고 또 30년이 지난 지금 서울대는 ‘한국 속의 국립대로 남아 있을 것이냐’ ‘세계 속의 서울대로 나아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변화는 발전을 전제로 할 때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서 서울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변화를 요구받았다. 이 정부 초기 우리 사회에서는 “노 정부는 서울대와 강남, 법조계, 동아·조선 등 보수 언론, 삼성·현대차 등 재벌을 ‘신오적(新五賊)’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나온 것이 ‘서울대 폐교론(廢校論)’이다. 서울대 폐교론은 신오적의 핵심이 서울대라는 데서 비롯됐다.
서울대 출신들은 돈을 잘 벌므로 주로 서울 강남지역에 산다. 법조계와 보수 언론, 재벌회사에도 많이 진출한다. 이들의 자녀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만큼 서울대에 진학해, ‘서울대 패밀리’를 형성한다. 서울대 출신이 한국의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노 대통령은 한 모임에서, “기득권층의 모순을 혁파해 사회를 변혁하자는 운동권까지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어…”라며 혀를 찬 바 있다. 이른바 ‘서울대 싹쓸이’가 서울대 폐교론을 불러온 핵심 원천이다.
권력의 매질은 오히려 견딜 만했다. 서울대가 진짜 아파한 지적은 학문의 세계에서 나왔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인데, 왜 서울대의 경쟁력은 세계 32위이냐”는 것. “밥값 좀 해라”는 말처럼 따가운 야단도 없다. ‘대한민국 수재를 뽑아 범재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 지적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들은 괴로워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가 서울대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민족사관고와 대원외고, 한영외고, 서울과학고, 과학영재학교 등 특목고에서는 요즘 서울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미국의 명문대 입학을 노리는 유학반을 운영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해외에 주재하는 한국인의 자녀 가운데 똑똑한 아이들은 현지 명문대학에 바로 들어가고 있다. 재력과 재능을 타고난 일부 한국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 해외 명문대학에 입학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가 서울대에 입학한다고 단언하기 힘들어졌다.
청춘의 집합소인 서울대엔 데이트를 즐기는 낭만도 있다(위).주정차한 차량으로 인해 도심의 도로만큼 복잡한 서울대 구내도로(아래). 이렇게 혼잡한 환경에서 면학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서울대 이공대(공과대+자연과학대)의 지위를 빼앗아가는 단계에 있다. 세 학교 사이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서·과·포(서울대, 과학기술원, 포항공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전체 예능 분야에서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발전이 눈부시고, 미술 분야에서는 홍익대 미대, 음악 분야에서는 이화여대 음대와 연세대 음대, 체육분야는 한국체육대와 연·고대 체육 관련 학과의 위상이 만만치 않다. 하버드대도 경쟁력이 없는 분야는 끌고 나가지 않는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MIT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지 하버드대에는 공대가 없다.
모든 학과에서 1등을 할 수 있어 서울대는 ‘선단식(船團)식’ 운영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 분야 1등 신화가 깨져 나가는 지금 선단식 운영을 접고 경쟁력이 있는 학과를 선택해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서울대가 포기해야 할 학과는 무엇인가?
시선을 서울대 안으로 돌려보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위기가 감지된다. 과거 서울대 인문대와 사회과학대는 ‘제2의 경영대’ 구실을 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 때 서울대 인문대와 사회과학대 졸업자들은 서류전형을 쉽게 통과했다. 그리고 실제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한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자는 “삼성 입사시험 서류전형에서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자는 통과하고 우리 과 출신은 탈락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대기업들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뽑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금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엔 고시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제2의 경영대’에서 지금은 ‘제2의 법과대’로 변모하고 있다. 그로 인해 ‘문·사·철(文史哲·문학, 사학, 철학)’의 상징이던 서울대 인문 분야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은 서울대의 모체다. 문사철은 인문학의 본류이자 민족 주체성을 찾는 국학(國學) 분야를 다룬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국학 분야도 발전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서울대의 대세는 반대로 흐르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울대 고유의 색깔이 없다는 데 대해서도 걱정을 한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자기 정체성(正體性)이 뚜렷하다. 경희대는 조영식 총장 때부터 세계화에 대비해 학교를 변화시켜왔다. 숙명여대와 고려대는 ‘힘있는 총장’을 모셔놓고 과감한 내부 개혁을 성공시키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는 무미건조한 대학으로 남아 있다.
서울대는 44개 4년제 국립대학 중 하나다. 국립대학은 국립대학끼리 동등해야 하므로, 서울대는 독자적인 발전방안을 만들기 힘들다. 과거 ‘국립대’란 타이틀은 한국 최고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지금은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서울대는 국립대라는 사슬을 벗어던질 수 있는가.
서울대는 한마디로 ‘거대한 공룡’이다. 안팎에서 닥쳐오는 거대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공룡의 말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울대는 권력이 공론화(公論化)한 ‘서울대 폐교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도태될 수도 있다. 서울대는 적응력이 강한 ‘날렵한 골리앗’이 되어야 한다.
도쿄대, 칭화대에 밀리는 서울대
서울대를 발전시키려면 그 위상부터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서울대의 세계 랭킹이 32위라는 것은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ence Citation Index)’을 뜻하는 SCI를 근거로 한 것이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는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학술지 3800여 종을 선정하고, 매년 이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을 분석해 어느 대학 교수들이 논문을 게재했고 어느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됐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2004년 SCI 랭킹 1위는 하버드대, 2위는 도쿄대, 3위는 워싱턴대, 4위는 케임브리지대, 5위는 MIT, 6위는 중국 칭화(淸華)대이고, 서울대는 32위다. ‘서울대=세계 32위’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부 서울대 교수들은 SCI 랭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첫째 이유로는 미국 기관(ISI)이 조사하다 보니 영어로 쓴 학술지만 주로 살펴본다는 것을 거론한다. 실제로 SCI 논문을 가장 많이 생산한 나라는 미국(약 28만건)이고 다음이 영국(약 7만건)이다. 이런 지적 때문에 ISI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로 쓴 학술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다.
영어는 세계 공통어이기 때문에 영어 학술지에는 영어권 국가는 물론이고, 일본 한국 중국 프랑스 독일 등 비(非)영어권 학자들도 논문을 투고한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일본, 중국, 한국의 학술지에는 대부분 그 나라 학자들만 기고한다. 따라서 비영어권에서는, ISI가 선택한 학술지의 양(量)에 따라 랭킹이 달라질 수 있다. ISI가 선택한 일본어 학술지는 100여 종인 데 비해 한국어 학술지는 5종이다. 이 차이가 ‘2등 도쿄대’와 ‘32등 서울대’라는 차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SCI는 이공계의 논문과 저술만 비교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사회계열이 강한 대학의 랭킹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하버드대 못지않은 명문인 시카고대와 프린스턴대의 SCI 랭킹은 서울대보다 훨씬 뒤에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ISI는 SCI와 별도로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 : Social Science Citation Index)’과 ‘예술 및 인문과학논문 인용색인(A·HCI : Art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도 발표한다.
셋째로는 병원을 갖고 있는 대학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의학계에선 이공계보다 논문이 많이 나온다. 병원이 많은 대학에서는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도 의과대학 교수로 적을 둘 수 있는데, 이들이 쓴 논문이 몽땅 이 대학에서 생산된 것으로 집계된다. 하버드대와 도쿄대는 부속병원 외에 여러 병원과 연계돼 있다. 서울대도 국립암센터 등과 연계를 맺었다면, 랭킹이 더 올라갔을 것이다. 또 SCI 랭킹은 교수가 많은 학교일수록 유리하다는 맹점도 안고 있다. 따라서 전체 논문수보다 교수 1인당 논문수를 비교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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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대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중국의 칭화대보다 SCI 게재 논문이 적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칭화대는 베이징(北京)대와 달리 이공계가 강하다. 하지만 서울대가 어찌 칭화대에 밀린다는 말인가. 도쿄대는 물론이고 칭화대보다 못한 서울대를 도쿄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 대해 당사자인 서울대 자연대와 공과대 교수들은 고민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서울대는 교수들이 선진 대학에서 배워온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강의대학’이었지,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연구대학’이 아니었다. 그때의 서울대 대학원은 박사 학위 없는 교수들에게 학위를 주는 기능과 미국 유학을 기다리는 학생을 수용하는 역할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SCI 대상 학술지에 실린 전체 한국인 논문수는 20여 편에 불과했다.
1977년 서울대는 연구 중심을 표방하며 대학원 쪽으로 중심을 옮겼다. 그 결과 많은 논문이 발표돼, 요즘에는 서울대 교수가 SCI급 학술지에 올리는 논문 수만도 3400여 편에 달한다. 30여 년 사이에 100배, 200백 배로 늘어난 것인데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빨리 발전한 대학은 찾기 힘들다. 서울대의 몇몇 학과나 학부는 세계 20위권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공계열의 일부 학과가 세계 20위권에 진입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주장은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일까. 미국 명문대학들은 5∼10년에 한 번씩 외부 평가팀을 구성해, 자기 학교를 평가하게 한다. 외부 평가팀은 타 대학의 유명 교수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이 학교의 담당 학과나 학부에서 나온 논문의 양과 질, 연구비 실태, 졸업생의 취직 현황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강의실에 들어와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고 학생들과도 면담한 후 종합적인 실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다.
지난해 5월부터 11월 사이 서울대 자연과학대는 UC버클리, 스탠퍼드, 하버드, MIT 등 해외 명문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외부 평가팀에 의예과와 수의예과를 제외한 여섯 학부에 대한 분석을 맡겼다. 이 팀의 보고서 내용은 이러했다.
‘학생들이 똑똑하고 젊은 교수들의 강의 수준이 높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미국의 톱10 대학 수준이다. 그러나 연구 인프라가 부족하다. 공간과 시설, 연구비도 부족하고, 시설이 고장났을 때 고쳐줄 수 있는 기사(技士)도 부족하다. 행정직원이 부족해 연구에 참여해야 할 대학원생들이 행정 업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버드대는 절반 정도, 스탠퍼드대는 30% 정도의 조교수를 종신 교수로 확정하는 재임용(tenure) 과정에서 탈락시키고 있다. 서울대도 교수 승진제를 엄격히 실시하고 실력이 부족한 조교수는 과감히 탈락시키는 제도를 도입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서울대 자연대는 20~40위권으로 판단된다.…’
교수 봉급 차등제 도입해야
서울대의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게 나오자 자연대 교수들은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을 토해낼 수 있었다.
“대학 예산권을 단과대가 아닌 본부가 쥐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연대를 발전시킬 수 없다. 자연대에 배정된 예산은 자연대에서 용처를 결정해야 한다. 서울대는 국립대이다 보니 교수는 물론이고 행정직원까지 정부가 정한 규칙에 따라 공고를 내서 채용해야 한다. 이런 제도로는 외부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학자를 교수로 채용할 수가 없다.
서울대 교수의 봉급이 적은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 교수의 봉급은 고려대 교수의 70%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서울대 정교수 초임 연봉은 6000만원을 살짝 넘기나, 고려대 정교수 초임 연봉은 9000만원 선이다). 그런데 교수 채용 절차마저 복잡해 좋은 학자를 뺏기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는 모셔오려고 하던 분을 연세대 이과대에 빼앗긴 바 있다.
유능한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가 연차가 같다는 이유로 같은 액수의 봉급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력 있는 분을 서울대로 모셔오려면 다른 교수보다 연봉을 더 많이 줄 수 있어야 한다. 기성회비에서 나오는 연구보조비도 차등 지급해야 한다. 교수 봉급은 실력뿐만 아니라 단과대별로도 달라져야 한다.”
이 주장에 대해 공과대 교수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같은 학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액수의 봉급을 받는 현실을 비판해왔다. 이러한 불만은 연구 활동을 많이 하는 교수들 사이에서 주로 터져 나왔다.
연구 활동을 많이 하는 교수들은 외부 기관으로부터 따온 연구비에서 일부를 학교에 납부한다. 의뢰받은 연구를 하면서 학교의 시설과 인력을 활용하므로, 그 사용비 조로 일정 비율의 돈을 납부하는 것. 하지만 이들은 강의만 하는 교수와 같은 대우를 받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그렇지 못한 교수와 연차가 같다고 해서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IT 분야를 전공해 삼성전자에 근무하면 연봉이 얼마인가? 그것을 마다하고 서울대로 오게 하려면 그만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최고가 가르쳐야 최고를 배출할 수 있다. 최고가 전부 기업으로 간다면, 학교는 더 이상 최고를 배출하기 어렵다. 미국 명문대학에서는 다른 교수보다 열 배 많은 연봉을 받는 교수가 속출하고 있다. 이제 명예만으로 서울대 교수직을 유지하던 시절은 끝났다.”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의 서울 남영동 분실에서 조사받다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군 추모비.1986년 4월28일 서울 신림동 네거리에서 반미 시위를 하다 분신자살한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 추모비. 서울대생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핵심세력이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미국에서는 30대 초반에 계약직 조교수가 되고 30대 중반에 재임용 절차를 밟는데, 이때 명문대학에서는 절반 정도를 탈락시킨다. 관문이 좁다 보니 신혼인 조교수들은 가정을 포기하고 죽어라고 공부에만 매달린다. ‘재임용에 통과하고 나면 절반이 이혼을 당한 다음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30대 초반에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버릇이 돼서 그 후로도 공부 외에는 할 것이 없게 된다. 테뉴어는 미국의 명문대학을 지탱해온 힘이다.”
미국 대학은 재임용에서 탈락한 조교수들을 바로 내보내지 않고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2년 정도 머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한국 대학의 재임용제도는 도저히 교수를 할 수 없는 사람을 솎아내는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새로운 직장을 구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재임용에서 탈락하면 다른 직장도 구하지 못해 영원한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최악만 솎아내는’ 한국식 제도를 ‘최선만 남기는’ 미국식 제도로 바꾸는 것이 서울대의 경쟁력을 올리는 지름길이다.
1977년 서울대가 ‘연구대학(research school)’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강의대학(teaching school)’기능은 쇠퇴했다. 그에 따라 학부 교육의 비중은 약화됐는데 이것이 두 가지 문제점을 가져왔다. 첫째는 교수와 학부생 사이가 멀어진 것이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1960~70년대만 해도 학부생과 교수 사이는 정말 가까웠는데 지금은 학부생들에게 신경 쓸 틈조차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훌륭한 후학을 배출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서울대 교수의 대부분은 해외 명문대학에서 박사 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만으로 서울대 교수를 하기 힘들어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왜 서울대는 서울대 박사를 교수로 채용하지 않을까.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사람은 없지만 ‘서울대 박사는 실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관 때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일본에서 공부한 한 학자는 “도쿄대는 해외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교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서울대만큼 높지 않다”고 말했다. 도쿄대에서 박사가 되는 것이 하버드대에서 박사가 되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에, 도쿄대를 비롯한 일본의 명문대학은 도쿄대 출신을 교수로 영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숙사 지어 면학분위기 조성해야
그 덕분에 도쿄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대학계는 일본어로 구축된 학문 세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대학계는 한국어로 유통되는 학문 영역을 갖지 못하고, 영어로 유통되는 세계를 갖게 되었다. 학부생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지 못하면 한국은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갖기 힘들어진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이런 지적을 했다.
“하버드와 MIT는 오전 8시에 첫 수업을 시작한다. 서울대는 9시에 첫 수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먼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많다 보니 실제 첫 수업은 대개 10시에 시작한다. 하버드와 MIT는 학부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지금 서울대를 보라. 학교 안으로 시내버스가 다니고 곳곳에 차가 주차해 있다. 이것이 시내 한복판이지 대학교인가?
100등에서 30등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30등에서 10등, 10등에서 5등으로 올라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최고가 되려면 통학으로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공부하는 서울대를 만들려면 기숙사부터 건설해야 한다.”
서울대의 교육 문제를 책임진 변창구 교무처장(영문학)은 “서울대의 교육 방식엔 문제가 있다. 나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며 서울대에서 한 공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절감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연구 이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게 하고 조만간 민간자본으로 시설을 짓고 이후에 갚아가는 BTL(Build Transfer Lease) 방식으로 학생용 기숙사를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과학은 국경에 갇히지 않는다. 미국의 물 분자식이 ‘H₂O’라면, 한국의 물 분자식도 똑같이 ‘H₂O’이다. 공통된 자연현상을 다루다 보니 kg이나 cm처럼 단위와 용어도 통일되었다. 자연과학 계열은 ‘자연스럽게’ 세계화된 것이다.
그러나 인문사회계열은 국경에 의해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과학의 한 축인 외교·안보는 각국의 국익(國益)을 기본으로 하므로, ‘자국 이기주의’에 갇힐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미국에서는 영어로 기록하고 생각하므로 두 나라의 문학과 사학은 관점이 다르다. 인문사회계열은 자연계열과 달리 ‘국학(國學)’의 그림자가 강하게 남는 것이다.
한국적인 성격이 강한 인문사회계열을 다루는 서울대의 앞날은 쾌청한가.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에서 형편이 좋은 학과를 뽑으라면 단연 법과대와 경영대, 사회과학대의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인문대의 영문과다. 법과대와 경영대는 의과대와 더불어 전통적인 인기 학과다. 경제학과는 경영학과와 유사하고 폭이 넓어 행정고시를 비롯해 진출할 분야가 많다. 외교학과는 외무고시를 노릴 수 있고, 영문과도 진출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학과의 앞날은 맑지가 않다. 아홉 개 학과가 있는 사회과학대는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가 섞여 있는 대표적인 대학이다. ‘작은 서울대’인 사회과학대는 오늘의 서울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회과학대생들은 1학년 땐 함께 배우다 2학년이 되면서 아홉 개 학과로 흩어진다. 이 대학 3학년 학생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비인기 학과로 꼽히는 사회복지학과와 인류학과 지리학과에 가려는 학생은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3개 학과는 ‘전공예약제’란 방법으로 따로 신입생을 뽑는다. 전공예약제를 택해 입학한 학생들은 2학년이 될 때 자동적으로 그 학과에 배정된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이 6개 학과를 선택하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이 경제학과다.
다음이 외무고시를 준비하기 좋은 외교학과인데,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다. 다음이 정치학과, 그 다음이 사회학과와 언론정보학과·심리학과인 것 같다. 어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남학생들은 1학년 땐 어울려 노느라 공부를 등한히 한다. 반면 여학생들은 학점 관리를 잘해 성적이 좋다. 지원자가 많으면 성적순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인기학과인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정치학과에 여학생이 많이 진학한다.
정치학과의 경우 1998년 이전에는 2년에 한 명꼴로 여학생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반이 여학생이다. 하지만 여학생 중 상당수가 전공에 흥미를 잃는 것을 보아왔다. 원하는 과에 진학하지 못한 남학생도 전공에 흥미를 잃는다. 그리고 ‘인생 역전’을 위해 고시에 매달린다. 전공 과목은 학점을 관리하는 정도로만 공부하고 법대나 행정대학원을 찾아다니는 학생이 속출한다. 수업이 끝나면 이들은 고시 학원과 고시원으로 속행한다. 그로 인해 학과의 결속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모래알 문화
사시 2차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점심식사 후 ‘팩차기’로 운동을 하고 있다. 우유팩 속에 휴지 등을 넣어 제기차듯 차는 팩차기는 서울대에서만 유행하는 놀이다(위 왼쪽). 서울대 법대 입구 옆에 있는 ‘정의의 종’. 돌보는 이가 없는 탓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위 오른쪽). 서울대 법학도서관에서 고시 공부에 열심인 학생들(아래 사진).
“서울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문의 기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문의 기여는 애교심에서 나오는데, 애교심은 학부생 시절 형성되는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에서 나온다. 미국 명문대학은 기숙사 제도를 통해 학부생에게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기숙사에서 같이 먹고 자고 놀고 공부한 것이 이 대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은 기숙사 제도를 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도 뒤처져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성공적으로 주입시키는 학교가 고려대다. 서울대는 고려대의 단결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단결력이 사라져 ‘모래알’이 된 가운데 고시에 매진하는 것이 2006년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의 모습이다. 모래알 풍경은 공과대에서도 발견된다. 고시만큼이나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의사 자격증이다. 사법시험과 외시 행시는 전공을 불문하나, 의사고시는 의과대 졸업자만 응시할 수 있다. 또 의과대를 졸업하면 대부분 의사고시에 합격할 수 있으므로 의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의예과나 의과대 입학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 공과대 정원은 800여 명. 그러나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매년 120∼130명의 자퇴자가 발생한다. 새로 수능시험을 봐 의과대나 한의과대학에 합격해 학교를 떠난 것이다. 공대 1학년생 중 상당수가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이른바 ‘반수생(半修生)’. 서울대는 편입생을 받지 않으므로, 15%의 ‘빈 자리’는 졸업할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반수에 실패해 공과대에 남게 된 학생이 이 책상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고 한탄했다.
서울대의 고시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원로 정치학자는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니냐.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의 한 교수는 뜻밖의 발상을 했다.
“법대 강의를 들어 변호사 자격증을 갖겠다는 열망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은 법학 강의를 대중 강의로 개방했다. 우리처럼 법대를 소수 정원의 학교로 두지 않고, 많은 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놓았다. 600여 명의 학생을 모아놓고 법학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는 전과(轉科)를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립대학들은 관련법에서 허가한 대로 정원의 20%까지 전과를 허용한다. 과별 정원의 20%가 아니라, 학교 전체 정원의 20%이다. 이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하는 학교가 고려대다. 고려대 법대의 입학 정원은 270여 명이다. 그런데 비(非)법대생이 고시 1차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법과대로의 전과(轉科)를 허용해, 고려대 법대 3, 4학년은 학생수가 500명에 달한다. 나는 고려대의 선택이 옳다고 본다. 소정의 성과를 거둔 학생은 법과대에서 받아주는 것이 좋다.”
이 교수는 대학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분야는 덩치를 키우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줄이자는 것이다. 대신 줄어드는 분야는 철저하게 전문화하자고 주장했다.
“대학이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 따는 곳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대학을 다닌 사람은 인문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대학생에게 필요한 인문적 소양을 갖춰줄 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은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학생 몇 명에, 교수 몇 명’이라는 등식을 버려야 한다. ‘학생 수가 적은 학과는 교수 수도 적고, 학생이 많으면 교수도 많은’ 방정식을 버리라는 것이다.
순수 인문사회계열은 그 분야를 전공할 학생만 뽑아, 교수와 학생이 1 대 1로 수업하게 해야 한다. 이 제도가 정착된다면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대학자가 배출될 수 있다. 이러한 학자가 나와야 인문계열이 살아난다. 이것이 법학을 살리고 인문사회과학도 살리는 길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대학은 학생들에게 허위(虛僞)를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
2003년부터 매년 1000여 명의 사시 합격자가 탄생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교수들은 정부가 ‘법대 정원을 계속 207명으로 고정해놓으면 ‘서울대 법대 No. 1’과 ‘서울대 No. 1’ 신화가 무너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입시 전문가의 분석이다.
“지금의 사시 합격자 수는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한양대 법과대의 입학 정원과 맞먹는다. 소수의 사시 합격자를 뽑던 시절 사시 준비생은 ‘서울대 법대에 갈 것인가’ ‘서울대의 “제2 법과대(인문대 등)”에 갈 것인가’ ‘고려대 법대에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나 사시 합격자가 1000명이 넘는 지금 굳이 서울대의 제2 법대에 가서 이중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 무리하게 서울대에 도전하지 않고 안전하게 고려대 법대에 응시하는 학생이 많아질 것이므로 서울대 법대와 고려대 법대 사이의 간극이 줄어든다.
의과대학만 들어가면 의사고시에 합격하다 보니 모든 의과대의 입시 커트라인이 높아진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로스쿨 제도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대 법대와 고려대 법대의 간격이 줄어들면, 다른 분야에서도 서울대와 연·고대 사이의 간격이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는 교수 수는 그대로 두고서 법대의 학생 정원은 늘리고, 순수 인문사회계열의 학생 정원은 줄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서울대 관계자들은 ‘국립대라는 타이틀에 묶여 있는 한’ ‘총장과 학장의 권한이 지금처럼 허약한 한’ 이러한 결정은 내리기 힘들다고 단언했다.
위기의 인문학
인문학 부흥 방안과 함께 살펴볼 것이 서울대 인문대는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다. 서울대는 법문학부와 의학부로 출범한 경성제대 후신인 경성대가, 9개 전문학교와 합쳐서 탄생했다. 경성대에 있던 각 과는 9개 전문학교와 합쳐졌으나 법문학부의 문과계통과 1936년 신설된 이공학부의 이과계통은 합칠 전문학교가 없어 남게 되었다.
그래서 두 계통을 합쳐 서울대 문리과대학을 만들었는데, 1948년 의예과가 들어옴으로써 문리대는 전문학교와 섞이지 않은 ‘진짜 서울대’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학교와 통합한 법대·상대·의대·공대의 인기가 높아지고, 음대·수의대·가정대 등이 생겨나면서 문리대의 희소성이 떨어졌다.
그리고 1975년 관악캠퍼스로 옮겨가면서 인문대·사회과학대·자연과학대로 쪼개졌다. 이 세 개 대학 중에서 ‘문·사·철’이라는 순수 인문학을 담고 있는 인문대가 서울대의 모체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서울대 인문대는 국학적 성격이 강한 문사철 분야를 발전시켜왔는가? 한 시사평론가는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국학은 현재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학문이므로, 현대는 몰라도 최근세까지의 한국을 문학적·역사적·철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 인문대는 이를 외면해왔다. 최근세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석을 회피하고 옛날 것만 탐구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고루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대 인문대가 외면한 공간을 파고든 것이 소위 386이라고 하는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최근세 한국을 분석했다.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단계’ ‘신(新)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 단계’ 등으로 규정하며 이를 혁파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운동권 학생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결론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적 인문학’ ‘한국적 사회과학’을 일으켰다는 공로가 있다. 이 열정이 사라지면서 서울대에는 ‘자기만의 입신양명’을 위한 고시 열풍이 일었다. 이제는 서울대 인문학 교수들이 한국 최근세사(史)를 학문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안전한 옛것을 분석하기보다는 시대와 호흡하는 분석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고시로 돌아선 학생들이 돌아올 것이다.”
한 학자는 “서울대 인문대는 물론이고 한국학중앙연구원까지 한국적 철학, 한국적 사학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담이 되더라도 인문학자들이 현실을 분석할 때 인문학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문제는 서울대 교수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자연대와 공과대는 삼성경제연구소에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했다. 서울대 자연대·공과대를 분석한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외국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외부 평가팀이 자연대를 분석한 것보다 훨씬 더 정치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중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서울대는 학장뿐만 아니라 총장의 권한도 미미하다. 총장·학장은 물론이고 학부장 학과장도 선거로 뽑는 대학은 아마 서울대밖에 없을 것이다. △총장·학장은 행정직을 컨트롤할 권한이 없다. 총장·학장의 임기가 짧다 보니 어떠한 개혁도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단과대나 학부의 자율성보다 교수의 자율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변혁의 구심점을 만들 수 없다.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이 ‘공무원 조직’과 ‘대학 조직’인데, 서울대에는 두 개가 모두 들어와 있다. △서울대 교수 중 일부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란 관점에서 커리큘럼을 짠다. △일부 서울대 교수는 밖에서는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안에서는 평등주의를 외치고 있다. △30년 후에 활동할 학생을 가르치는데 서울대는 30년 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등등….
서울대 교수들은 이러한 문제를 혁파할 사람은 총장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서울대병(病)을 고치려면 총장이 강력한 권위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의 명문대학은 권위주의로 대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서울대 발전을 바라는 이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주 거론하는 대학이 예일대와 숙명여대다.
1960~70년대 예일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예일대가 있는 코네티컷 주는 굴뚝산업이 발전한 곳인데 굴뚝산업이 쇠퇴하자 덩달아 예일대의 인기가 시들해졌던 것.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승승장구하며 몇몇 분야에서는 하버드대를 앞지르게 되었다.
그 첫째 이유로는 리처드 레빈 현 총장의 리더십이 거론된다. 레빈 총장은 1993년에 취임해 13년째 예일대를 이끌고 있다. 숙명여대는 ‘섬기는 리더십’을 주장한 이경숙 총장 시절 빠르게 발전했다. 이 총장은 12년간 재임하고 올해 다시 4년을 연임하게 되었다.
훌륭한 총장의 ‘장기집권’이 대학발전의 지름길인데 서울대는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는 60년 역사에서 23명의 총장을 배출했는데, 여섯 배나 긴 370년 역사를 가진 하버드대에서는 27명의 총장이 나왔다. 서울대 총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2.6년이고, 하버드대 총장은 13.7년이다.
서울대의 최장수 총장은 6대 윤일선 박사인데, 그는 5년2개월(1956. 7~1961. 9)을 재임했다. 반면 하버드대의 21대 총장인 찰스 윌리엄 엘리어트 박사는 40년(1869~1909)간 재임하며 하버드를 이끌었다. 하버드대에서는 여덟 명의 총장이 재임 중 사망해 ‘하버드에서는 총장이 죽어야 바뀐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총장을 명예직으로 인식해 나눠먹기 해온 것이 서울대의 전통이라면, CEO로 인식해 죽을 때까지 책임경영의 격무를 요구한 것이 하버드대의 전통이다.
선거로 뽑는 서울대 총장의 임기는 4년이다(학장은 2년). 형식상 연임이 가능하나 연임하지 않는 게 관례라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 4년 후 갈릴 것이 분명한 총장의 개혁 지시를 따르는 교수가 얼마나 될까.
오래 전부터 서울대에서는 세밀하게 쪼개져 있는 학부의 학과를 합쳐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를 정치외교학과로 합치고, 국사학과·동양사학과·서양사학과를 사학과로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졸업생들조차 ‘정치외교학과 동문회’라는 통합 동문회를 유지할 정도로 합병의 요구가 강했다.
그러나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합병되면 학과 규모가 별도로 있을 때보다 작아지므로, ‘학생 몇 명당, 교수 몇 명’의 원칙이 적용되면 교수의 신분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과대의 자율성보다 교수의 자율성이 더 크다’는 자조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순혈주의 택하지 않는 미국 대학
자기 학교(학부) 출신만 교수로 영입하려는 것이 한국 대학의 특징이다. 서울대는 서울대 출신 교수가 없던 초기를 제외하면 항상 서울대 학부 출신을 총장으로 뽑아왔다. 그러나 미국 대학은 능력 위주이기 때문에 그 학교(학부) 출신이라고 해서 교수나 총장 자리에 앉히지 않는다.
하버드대의 현 총장인 로렌스 서머스 박사는 MIT, 전임자인 닐 루덴스타인은 프린스턴, 그 전임자인 더렉 커티스 복은 스탠퍼드대 학부를 졸업했다. 1993년부터 예일대를 이끌고 있는 레빈 총장도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서울대는 순혈(純血)주의를 버려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서울대가 머뭇거리던 지난해, ‘대학 교원을 채용할 때는 매년 특정대학(학부) 출신이 3분의 2 이상을 넘을 수 없다’고 규정한 교육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임용령이 발효되었다. 올해 서울대가 10명의 교원을 뽑으려 한다면, 서울대 학부 출신은 6명까지만 임용할 수 있고, 나머지 4명은 다른 대학 학부 출신 중에서 선발해야 한다.
정운찬 총장이 재임하는 동안 서울대는 상당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여전히 성적순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미국의 명문대학은 성적순만으로 학생을 뽑지 않는다. 하버드대는 입학 정원의 50%만 성적순으로 뽑고, 나머지 50%는 미국판 수능인 SAT 성적 상위 1%인 학생 중에서 임의로 선발한다. 이때 에세이를 중요 평가기준으로 삼는다. 하버드대 입학관리처는 응시생이 보내온 에세이를 읽고 흥미롭다고 판단되면(매우 주관적인 결정이다) 서슴없이 합격시킨다.
SAT 상위 1% 안에 든 학생 간에는 우열이 없다고 보고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학생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하버드뿐만 아니라 예일, 프린스턴대도 비슷한 방식으로 학생을 뽑는데 이는 창조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채택한 제도이다.
노경수 서울대 대외협력본부장은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이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를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되고, 여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하버드대를 1년간 다니다 자퇴한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 졸업 후 빌 게이츠에 합류한 스티브 발머도 하버드대의 이런 분위기 덕분에 창조적인 생각을 한 사람들이다.
미국 명문대학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진도 다양하게 구성한다. 예일대학이 법과대학장에 한국계인 고흥주 교수를 임명한 것도 그러한 선택의 하나일 수 있다.
서울대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진도 한국인 일색이다. 외국인 교수는 영문과를 비롯한 어문계열에 집중돼 있다. 예일대 법대의 고흥주 학장처럼 법대나 공대, 사회과학대에도 외국인 교수가 있어야 하는데 서울대에는 전무하다. 이러니 경험과 사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교수를 받아들이는 본래 목적은 교수와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이들을 유치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대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예산 폭이 좁다. 서울대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발전기금은 3500억원에 불과하다. 그중 1600억원이 현재의 정운찬 총장 시절에 모금됐을 정도로 서울대의 발전기금 모금은 미미하기만 했다.
하버드대는 약 25조원(250억달러)의 발전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올해 한국 교육예산이 32조원인데, 하버드대는 여기에 버금가는 금액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는 3년 후 발전기금 1조7000억원(10억파운드) 마련을 목표로 뛰고 있다.
서울대의 모래알 문화가 발전기금 마련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려면 절대적으로 리더십이 강한 총장이 있어야 한다. 리더십 있는 총장이 10년 이상, 죽을 때까지 재직할 것이라는 판단이 설 때,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하던 교수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학과의 통폐합이나 선택과 집중을 할 학과의 선택, 정원 조정 같은 일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서울대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강력한 총장을 만들 수 없다.
이 한계를 깨기 위해 요즘 논의되는 것이 ‘법인화’이다. 법인화는 99개 국립대 체제를 운영해오다 벽에 부딪힌 일본에서 먼저 도입한 개혁 방안이다. 법인화란 ‘학교법인 서울대’를 만들어, 이 법인 이사회가 서울대를 운영하는 큰 틀을 잡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법인은 사립대에 있는 재단을 가리키므로, 서울대의 법인화는 곧 국립서울대학교를 사립서울대학교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명문 주립대가 서울대 모델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4년 4월부터 ‘국립대학에 지원하던 예산을 매년 1% 포인트씩 삭감해 100년 후에는 제로로 만들겠다’며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도쿄대는 법인화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국영기업도 민간에 매각하는 추세인데,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학교가 왜 국립대 체제로 묶여 있어야 하는가’라는 게 법인화를 지지하는 도쿄대 교수들의 시각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교수들은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대체로 ‘사립 서울대’로의 전환을 지지했다. 사립대학이 되어야 유능한 교수를 영입하기 쉽고, 교수 재임용제도도 강화할 수 있으며, 교수 임금도 차별화해 경쟁을 유발할 수 있고, 기숙사 건립이나 정원 조정, 발전기금 유치, 총장의 권한 강화 등이 쉽다고 봤다.
서울대가 사립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란 문제가 남는다. 서울대는 최고의 면학 분위기를 가진 학교를 목표로 해야 한다. 상당수의 교수는 현재 3300여 명인 서울대 입학정원을 하버드와 MIT의 입학정원을 더한 후 두 학교에 중복된 학과 정원을 뺀 2300여 명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이견을 제시했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서울대는 운명적으로 선단식 운영 체제를 선택했으니 이 체제 안에서 최고가 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는 재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하버드나 MIT·스탠퍼드보다는, UCLA나 UC버클리·미시간주립대 같은 주립대에 가까운 형태이다. 하버드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지원을 해주면서 하버드와 같은 대학이 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서울대는 적은 지원을 받고도 명문이 된 미국 주립대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란 문제도 서울대 법인화 문제만큼 깊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대학이 되어야 하는가. 서울대 취재를 하면서 기자는 여러 대학의 교육 목표가 무엇인지 살펴봤는데,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단국대 경희대 홍익대처럼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을 교육목표나 창학이념으로 삼은 학교가 많다는 점이다.
광복 직후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승했다. 초대 문교부 장관은 단군을 연구한 안호상 박사가 맡았다. 그리고 1945년 11월, 100여 명의 교육계 인사가 모인 조선교육심의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홍익인간’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지금도 유효하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한국의 교육이념을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해, 홍익인간 사상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선택한 후 처음 설립한 종합대학이 서울대다. 그러나 요즘 한국 교육계에서 홍익인간 개념은 완전히 잊혔다. 홍익인간 사상을 되살리는 것은 세계화시대에 국학을 부흥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법인화가 세계화로 나아가는 날개라면 홍익인간 이념은 서울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무한경쟁시대, 이제 한국사회는 대학을 평준화해 서울대 싹쓸이를 깨겠다는 서울 폐교론을 폐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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