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호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냉소·깐죽·비굴·어리버리 …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11-03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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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인자는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1인자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반면 2인자는 늘 출연 분량에 전전긍긍이다. 1인자와 게스트를 놀리면서라도 웃겨야 ‘예능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 과거 1:1 토크쇼의 자리를 대신한 토크버라이어티쇼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 군상이 모여 옥신각신하다가 서로 어깨를 다독여주는 토크버라이어티쇼의 권력학.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어김없이 그 이야기가 들려온다. 출근길 버스 뒷좌석에서도, 점심시간 옆 테이블에서도, 회식모임 저편에서도 그 이야기 일색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다.

    “어제 ‘놀러와’에서 이무송-노사연 부부 때문에 뒤집혔잖아.”

    “봤어. 부부싸움하다가 노사연이 옷을 잡으면 찢어진다는데. 크하하.”

    “박형준은 택배 아저씨 초인종 소리가 제일 무섭다잖아. 김지혜가 ‘인터넷쇼핑 신’이라 물건이 하루에 7개도 배달된다고.”

    “재밌었겠다. 난 ‘미수다(미녀들의 수다)’ 봤는데….”



    버라이어티쇼의 시대다. 둘 이상 모이면 최근 버라이어티쇼의 화제 인물이나 발언이 수다의 도마에 오른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 버라이어티쇼를 분석한 기사가 줄줄이 올라온다. 주요 채널마다 5개 이상의 버라이어티쇼를 방영한다. 케이블 채널과 외국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수십 가지가 넘는다.

    버라이어티쇼는 1962년에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짧지 않은 역사지만 요즘처럼 국민적인 관심을 받은 적은 없다. 먼저 불을 댕긴 건 MBC의 ‘무한도전’. 각본 없이 출연진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리얼리티쇼’ 콘셉트로 전국에 ‘무한도전 붐’을 일으켰다.

    예능 고수에게는 시시한 얘기겠지만, 초보자를 위해 용어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토크쇼’는 말 그대로 이야기 위주의 쇼다. 과거 게스트 한 명을 불러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자니윤 쇼’가 정통 토크쇼에 해당한다. ‘버라이어티쇼’는 문자 그대로 다양한 장르가 한데 뒤섞인 쇼를 뜻한다. MC와 게스트들이 코미디 음악 게임 퀴즈 등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 세월 MBC 간판 프로그램으로 군림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대표 격이다. 엄밀히 따지면 ‘퀴즈쇼’ ‘게임쇼’ 등의 장르가 있지만, 보통 버라이어티쇼의 범주에 넣는다.

    그렇다면 ‘토크버라이어티’는? 토크쇼와 버라이어티쇼가 한집 살림을 차려 탄생한 장르다. 이야기를 위주로 각종 퀴즈, 게임, 코미디를 가미한 하이브리드형 토크쇼다.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같은 리얼리티쇼를 제외한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이 토크버라이어티에 속한다.

    토크쇼도 ‘리얼’ 체제로

    토크쇼 전성기이던 1990년대에는 미국식 토크쇼 일색이었다. ‘자니윤 쇼’ ‘이홍렬 쇼’ ‘이승연의 세이세이’ ‘주병진 쇼’는 모두 스튜디오에서 한두 명의 스타를 초청해 각본에 따라 문답을 주고받는 식이었다. 요즘 이런 토크쇼는 드물다. 출연자 숫자는 기본적으로 5명에 많으면 10명을 넘는다. MC와 게스트를 양축으로 하는 정통 토크쇼는 언제부터, 왜 TV에서 사라진 걸까.

    패션과 재테크만 유행을 타는 건 아니다. 버라이어티쇼에도 유행이 있다. 현재 그 흐름을 주도하는 건 MBC ‘무한도전’,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 등. 세 프로그램 모두 주말 저녁에 방영되는 리얼리티쇼다.

    버라이어티쇼의 트렌드 세터 역할은 줄곧 주말 저녁 프로그램이 맡아왔다. 평소 학업과 밥벌이와 음주가무로 바쁜 20, 30대도 주말 하루쯤은 저녁시간에도 집을 지킨다. 주 시청자가 트렌디한 탓에 주말 프로그램이 가장 앞선 취향과 욕구를 반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 전문가들은 정통 토크쇼가 토크버라이어티로 바뀐 것은 ‘유행의 지표’인 리얼리티쇼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리얼리티쇼의 핵심 경쟁력은 ‘현장’이다. ‘1박2일’은 매회 무대를 바꿔 바닷가, 산골 오지는 물론 백두산까지 날아가며, ‘패밀리가 떴다’는 전국 시골을 촬영장으로 삼는다. 이런 공간적 신선함은 출연진을 무장해제시켜 100%에 가까운 일상을 끌어낸다. 세 프로그램 가운데 현재 시청률이 가장 높은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는 맏형 유재석, 계모 김수로, 꽈당 이효리, 천데렐라 이천희 등이 한 가족을 이뤄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진짜 리얼’을 표방한다.

    각본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캐릭터’ ‘도전목표’ ‘게임’ 등 큰 틀만 정하고 나서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으로 촬영 분량을 채운다. ‘1박2일’의 허당 이승기는 “일찍 연예계에 데뷔해 학창시절에 즐기지 못한 MT를 매주 가는 느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런 면에서 리얼리티쇼는 감각적이고 역동적이다. 또 자극적이다.

    하지만 토크쇼는 ‘리얼’을 담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우선 ‘현장’이 없다. ‘올 화이트’ 조명의 말쑥한 스튜디오에서는 ‘촬영 중’이라는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리얼’을 살릴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아이디어가 ‘집단체제’다. 사람이 많으면 산만하고 어수선한 ‘일상’의 느낌이 어느 정도 산다. 대화에도 속도가 붙는다. 그 속에서 패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개성을 살린 캐릭터를 입게 된다. 공간적 핸디캡을 ‘쪽수’로 만회한다는 전략인 ‘집단체제’는 토크버라이어티가 리얼리티쇼를 소화하면서 체득한 최적의 모델인 셈이다.

    관계를 주목하라

    이렇게 토크버라이어티는 리얼리티쇼의 일부 속성을 갖게 됐다. 웃음의 미학도 자연히 리얼리티쇼를 따라갔다. 리얼리티쇼의 재미는 상당부분 캐릭터와 그들 간의 관계에서 나온다. ‘무한도전’의 유반장, 전스틴 브레이크, 거성, 돌아이, 음주CEO, 어색한 뚱보 등 모자란 여섯 남자, 그리고 흠집투성이인 그들의 인간관계가 시청자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1990년대를 주름잡던 1:1 토크쇼는 리얼리티쇼를 지향하는 토크버라이어티로 바뀌었다.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주병진쇼’ 의 한장면.

    거성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돌아이는 소녀 스타라면 사족을 못 쓴다. 뚱보는 누구를 만나도 어색해 고민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가 속물적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이 현실과 TV의 경계를 허문다. 시청자는 모자란 이들의 무한한 도전정신에 위안과 대리만족을 느끼며 몰입하는 것이다.

    토크버라이어티쇼도 마찬가지. 출연진의 개성과 그들의 관계가 시청자의 공감대를 얼마나 끌어내느냐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른다. “이성진씨가 고정 패널로 나와서 박명수씨와 유재석씨를 견제하고 지적하는 콘셉트도 재미있겠네요”라는‘해피투게더’ 인터넷 게시판의 글은 시청자의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방영 중인 토크버라이어티 쇼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인기 프로그램을 선정, ‘권력’을 키워드로 출연진 간 관계를 풀어봤다. 웃자고 보는 오락 프로그램인데, 해몽이 너무 거창하다고? 정색할 것 없이 그저 ‘토크버라이어티쇼’를 보듯이 따라와달라.

    [정상회담-MBC ‘황금어장-무릎 팍 도사’] 수요일 23:05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는 강호동의 힘과 열정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프로그램이다.

    토크버라이어티의 성격은 MC에 의해 좌우된다. 유재석과 함께 예능 1인자 자리에 오른 강호동. 그는 예능계에서 힘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씨름선수라는 전직과 우락부락한 외모,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화법, ‘only 고기’를 외치는 식성이 모두 이런 캐릭터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강호동이 MC를 맡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와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게스트와 패널에게 강호동은 꺾어야 할 힘이자 넘어야 할 벽이다. 팔씨름부터 다리통 굵기까지, 개인전부터 단체전까지 종목과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를 이긴 패널은 ‘또 다른 힘’으로 인정받는다.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는 이런 강호동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프로그램이다. 점집으로 꾸민 무대에서 도사 강호동이 게스트와 단독으로 대담한다. 점집은 서민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 이런 배경은 강호동에게는‘도사로서 묻지 못할 질문이란 없다’는 절대 권력을, 게스트에게는 ‘도사와 마주 앉은 사람으로서 무엇이든 이실직고해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게스트들도 만만치 않다. ‘무릎팍 도사’의 게스트는 A급, 그것도 ‘문제의’ 혹은 ‘화제의’ 인물이 주를 이룬다. 지금까지 최민수, 신해철, 이경규, 이승철, 최진실, 박해미, 작가 이외수·황석영, 역도선수 장미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등이 다녀갔다. 예능 프로에서 좀체 보기 힘든 인물들이다.

    그래서 ‘무릎팍 도사’는 ‘정상회담’ 격이다. 도사 복장을 한 기운 찬 강호동과 음지를 아는 성깔 있는 스타가 마주 앉아 설전을 벌인다. 기선 제압을 위한 강호동의 무기는 ‘센’ 질문. 이혼경력, 음주사고, 마약, 성격적 결함 등 잊고 싶은 인생의 실수들을 ‘무릎팍 정신’으로 가차 없이 들춰낸다.

    스타들의 대응법은 다양하다. 박해미는 강호동의 질문에 “왜”라고 반문해 그를 당황케 했고, 고(故) 최진실은 여배우의 심적 고통을 솔직히 토로해 강호동을 숙연하게 했다. 탁재훈은 개그와 입담으로 강호동을 제압했으며, 이외수는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로 감탄사를 자아냈다.

    강호동은 질문 공격으로 게스트를 불편케 하고자 애쓰고, 게스트는 지적에 순종하거나 더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해 상황을 뒤집으려 노력한다. 게스트의 반응에 따라 ‘무릎팍 도사’는 갈등을 반복하다가 “고민해결! 팍팍팍!”이라고 화합을 외치며 끝난다.

    그렇다고 강호동과 게스트가 기 싸움만 하는 건 아니다. 코믹 싸움도 벌인다. 게스트와 함께 촐싹거림의 극치인 무릎팍 춤을 추기도 하고 강호동이 고의로 약한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내용은 진지하되 웃음코드를 잊지 않는 예능프로의 자세. 여기에 ‘무릎팍 도사’의 미덕이 있다.

    현재 A급 스타가 출연하는 토크버라이어티는 ‘무릎팍 도사’가 유일하다. 2000년 이후 A급 스타 사이에는 신비주의 전략이 유행처럼 번졌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스타들의 사생활 노출이 잦아졌다. 시청자는 더 이상 토크쇼에서 스타에 대한 정보를 원하지 않았다. 토크버라이어티는 자연히 여럿을 함께 출연시켜 상황적 재미를 주는 데 골몰했고, A급 스타를 보기란뮈岳幣蠻낫? 그래서 토크버라이어티의 정글에서 ‘무릎팍 도사’의 존재는 돋보인다. 정보와 이야기 없는 웃음만 넘쳐나는 다른 토크버라이어티와 달리 매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질리지 않는다.

    ‘2인자 리그’

    [내각제-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수요일 23:05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는 영화로 치면 조연급만 모인 B급 영화다.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 신정환이 공동MC를 맡았다. 넷 모두 1인자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패널을 맡던 2인자다.

    2인자는 1인자인 대통령 옆에서는 장관 노릇을 하지만 혼자 프로그램을 조직할 능력은 없다. ‘무한도전’에서 2인자 박명수는 MC 자리를 그렇게 탐하면서도 마이크만 건네면 ‘어버버’했다. 이들은 대신 자신만의 캐릭터로 황당한 웃음을 준다. 그건 1인자가 할 수 없는 2인자만의 영역이다.

    ‘라디오스타’ MC 4인방은 초기에 ‘무릎팍 도사’를 시기하고 경외하는 태도를보였다. ‘황금어장’의 다른 코너인 ‘무릎팍 도사’는 1인자 강호동 1인체제로 진행된다. 1인자의 진행 스타일은 ‘배려’다. 반면 ‘라디오스타’의 2인자들은 프로그램 내내 출연 분량에 연연하며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느라 바쁘다.

    ‘라디오스타’의 정체성은 여기에 있다. 예능 초보에서 ‘레귤러(정기 출연자)’를 거쳐 2인자에 올랐지만 거기에 머무는 마이너리티들. 그들이 ‘현상유지’와 ‘성장’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캐릭터의 연기인 동시에 실제 자신의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쇼다.

    ‘라디오스타’의 토크는 주제 없이 아무렇게나 진행된다. DJ들이 게스트를 초청해 진행하는 ‘라디오쇼’ 형식을 표방하지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건 4인방의 방향 없는 대화다. 그러나 무질서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에도 희미한 질서가 숨어있다. 각자의 캐릭터를 내세워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공존하는 ‘라디오스타’는 내각제를 닮았다.

    김구라는 ‘독한 토크로 욕먹는’ 캐릭터다. 그는 독한 입담을 동력으로 변방(인터넷 방송)에서 중앙(공중파 방송)으로 진출했다. 인터넷에 직설적 표현이 넘치고 근엄주의가 깨지는 시기를 만나 단숨에 인기 예능인으로 떠올랐다. 김구라가 라디오스타에서 유행시킨 말은 “뭐야~”다. 나머지 MC는 물론 초청 게스트에게 수시로 턱을 치켜들고 “뭐야~”라고 면박을 준다.

    이런 김구라의 주 표적은 김국진. 1990년대 ‘MC 아이콘’이었던 그는 오랜 공백 기간을 깨고 라디오스타로 컴백했다. 그러나 초기 김국진은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MC들에게 밀려 기를 못 폈다. 한때 ‘국진빵’이 출시될 만큼 인기를 누리던 그가 놀림감이 되는 모습은 시청자의 측은지심을 자아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김국진을 살린 것도 김구라였다. 김구라가 김국진의 이혼경력을 들먹여 공격한 뒤 ‘이별의 아이콘이자 구라의 먹잇감’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한 것. 그때부터 김국진과 김구라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냉소, 깐죽, 어리버리, 정리자’

    둘의 관계는 언뜻 김국진이 한참 약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김국진은 오히려 체제에 순응함으로써 권력을 선점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질서가 극에 달해 난장판 직전까지 가거나 게스트에게 지나친 무례함으로 분위기가 어색할때, 김국진은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속내가 불편한 쪽은 오히려 톡톡 쏘는 발언으로 몇 차례 사과방송을 하며 일부 시청자에게 공격을 받는 김구라일지 모른다.

    신정환은 어리버리한 장난꾸러기 캐릭터다. 그리고 수다스럽다. ‘좁은 어깨’ ‘마른 몸’으로 통하는 그의 외모는 ‘약함’을 상징한다. 약한 그가 합법적으로 권위에 대항할 방법은 수다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말을 내뱉으며 김구라나 게스트를 공격하지만, 그 공격은 허술하거나 엉뚱해 되레 반격당하기 일쑤다.

    윤종신은 이들 셋을 이어주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셋 모두에게 깐죽거려 특별한 적도 특별한 아군도 없다. 필요에 따라 편을 달리해 셋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라디오스타 정글’에서 게스트는 어떨까. 게스트는 여기서 ‘손님’이 아니다. 손님은커녕 MC 4인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병풍 역할을 한다. MC들은 게스트의 답변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예능 경험이 부족한 스타들을 놀림감 삼아 웃음을 유발한다.

    시종일관 냉소적인 언사로 일관하는 김구라가 대표주자다. 스타들의 답변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했던 얘기 하지 말라”거나 “에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무안을 준다. 그의 이런 캐릭터는 연예인에 대한 시청자의 공격심리를 자극해 공감을 자아낸다.

    보통의 게스트는 이런 분위기를 웃어넘긴다. 그러나 웃음 주도권이 게스트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룹 룰라의 멤버였던 고영욱과 Ref의 멤버였던 성대현이 그랬다. 고영욱의 작전은 MC에 대한 폭로였다. 신정환과 고교 동창인 그는 “신정환이 고등학교 때 짤짤이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말해 신정환을 당황시켰다. 다른 3명의 MC가 물 만난 듯 일제히 신정환을 공격한 건 물론이다.

    성대현은 MC들과 정서적 교감에 성공해 살아남은 케이스. 과거 Ref 시절 이성욱이 솔로를 하겠다며 다른 멤버를 배신한 이야기나, 본인의 대표곡이 표절이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솔직한 발언으로 ‘솔직과 까발림’을 선호하는 ‘라디오스타’에 편입한 것.

    힘들어도 명랑한 히어로들

    [무정부주의-MBC ‘명랑히어로’] 토요일 23:45

    ‘세상사에 관심은 많으나 별 영향력 없는 사람들…그들의 본격 태클 버라이어티’. MBC ‘명랑 히어로’의 기획 의도다. 지금은 ‘두 번 살다’로 포맷이 바뀌었지만, 과거판 ‘명랑 히어로’는 시사 ‘라디오스타’ 같았다. 주제와 형식 없이 한 주간의 시사를 두고 출연진이 자유롭게 토론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명랑 히어로’는 인터넷 토론방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는 양상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명랑 히어로의 출연진은 이경규, 박미선, 김성주, 이하늘, 그리고 ‘라디오스타’ MC 4인방. 역시 2인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이 게스트 1명과 함께 시사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이들 가운데 역시 눈에 띄는 건 ‘라디오스타’ 4인방. 게스트를 놀리며 키득대던 이들이 시사를 다루는 ‘명랑 히어로’에도 어울리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어둠의 시간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구라는 20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했으며, 신정환은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김국진은 결혼 실패, 윤종신은 방송 사고의 경험이 있다. 한 번쯤 개인적 고통으로 사회에 불만을 품었을 법한 인물들이 ‘라디오스타’ 4인방인 것이다.

    이들의 캐릭터와 상호관계는 ‘명랑 히어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국진을 놀리다가도 ‘안티팬이 가장 많은 예능인’이라는 공격에 입을 닫는 김구라, 이리저리 참견하다가도 과거를 들먹이는 윤종신의 일침에 기가 죽는 신정환, 싸우는 그들에게 “조용히 좀 살자”고 애원하는 김국진, 민첩하게 나머지 셋을 약올리는 윤종신이 이번엔 다른 패널, 게스트와 더불어 정치, 사회, 문화를 논한다.

    김구라는 이곳에서도 ‘독한’ 의견을 내놓는다. 미주노 교수를 향해 “만두나 쳐먹어라”고 하는 등 속 시원한 발언으로 극적 재미를 주는 동시에 ‘명랑 히어로’의 주가를 높였다. 신정환은 초기 시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들 외에 주목할 패널은 이경규다. 초기 이경규는 ‘청와대 대변인’ 캐릭터로 출연했다. 30, 40대 패널들 사이에서 50대 보수층을 대변하는 역할로 균형을 잡을 인물이 필요했던 것. 그러나 그는 모든 사안에 몸을 사리는 비굴한 모습으로 패널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특히 ‘규라인’의 대표 후배인 김구라와의 대립각이 두드러졌다. 김구라는 이경규를 두고 “이경규씨가 우리 프로그램에 필요한 인물인지 토론해보자”라는 노골적인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1990년대 독보적인 MC였던 이경규는 실제 이 프로그램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MC가 게스트와 패널을 압도하는 성격의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해왔다. ‘명랑 히어로’는 성격이 한참 다르다. MC, 패널의 구분없이 출연진이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명랑 히어로’의 김유곤 PD는 한 인터뷰에서 “이경규씨가 가끔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답을 찾기가 막막하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서 박미선과 김성주는 이야기 흐름을 다잡는 역할을 하며, 이하늘은 ‘동거와 결혼’ 등에 대한 솔직담백한 발언으로 ‘철든 악동’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명랑 히어로’에서 패널들이 “물가 너무 비싸다” “촛불시위를 왜 못하게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동료들끼리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며 심각하지 않게 나누는 시국 토론을 연상케 한다. ‘명랑 히어로’에는 그래서 라인도 없고 출연진 간 역학구도도 없다.

    저녁 시간대로 옮긴 주부프로?

    [직접민주주의-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 일요일 17:20

    ‘세바퀴’는 과거 ‘브레인 서바이벌’과 같은 퀴즈쇼 형식이다. 20명이 넘는 출연진이 ‘남편이 싫어하는 부인 스타일’과 같은 퀴즈를 매개로 이야기를 와장창 쏟아낸다. 분위기는 왁자지껄, 통제 불능. A, B, C 3명이 동시에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 D가 끼어들기도 한다. 공동 MC인 박미선 김구라 이휘재는 “진행이 너무 힘들다”고 울상을 짓는다.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배려형 MC 유재석은 요즘 사회가 원하는 리더십을 제시한다.

    하지만 상황의 우연이 빚어내는 해프닝이 눈물 쏙 빠지도록 웃긴다. 이야기와 장난이 부딪치면서 나오는 불순물이 의외로 큰 웃음을 준다. 가령 ‘누님과 누나’의 뜻 차이를 묻는 질문에 “누나는 혈연관계고 누님은 돈이 필요할 때 비비적대는 손윗여성”이라고 답하고, 호빵과 찐빵의 차이는 “호빵을 찌그리면 찐빵이 된다”고 답하는 식이다. ‘세바퀴’에는 줄거리 대신 수다가 있다.

    토크버라이어티가 ‘집단체제’가 되면서 MC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과 섞여 있되 필요한 경우에는 분명히 정리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세바퀴’의 MC들에겐 정리조차 힘겨운 일이다. 출연진 숫자가 많은데다가 연륜과 입담도 MC단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은 패널 중 1, 2인자는 없다. 코미디언, 연기자 등 예능 3인자들이 왁자하게 뒤섞였다. 그래서 ‘세바퀴’는 누구나, 언제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집단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네 아고라 광장을 닮았다. 차이점은 참가 자격요건이 ‘시민인 성인 남성’에서 ‘기혼자’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고정 패널은 양희은, 이경실, 김지선, 임예진, 이승신, 조형기, 이만기, 이광기, 성대현 등이다. 출연진은 남성 측과 여성 측으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기혼이지만, 여성출연자의 연령이 다소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남성 출연진은 뭘 해도 여성 출연진에게 밀린다.

    이만기는 “주부가 집에서 왜 바쁘냐”고 했다가 양희은에게 “오늘 옷 입은 게 홀아비 티가 줄줄 난다”는 타박을 들었다. 김지선도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라”며 거들었다. 이경실은 조형기와 이만기의 말끝마다 공격을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MC에게는 뿅망치를 날린다. 이 ‘여강남약’ 구도는 ‘세바퀴’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게스트도 여성 출연진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팬클럽을 거느리며 대접받는 미남미녀 스타도 ‘세바퀴’에서는 노리개로 전락한다. 전진은 여성패널들이 “한 번만 안아보자”며 들러붙는 바람에 당황했고, 크라운 J는 “여기 무슨 프로예요”라고 했다가 “그냥 적응하라”는 타박을 들었다. 이렇듯 여성 출연진은 때로는 막무가네를 넘어 폭력적이라는 인상까지 준다.

    하지만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쪽은 여성 출연진이다. 그 힘은 아줌마의 가식 없는 솔직함에 있다. 김구라의 ‘이혼 마일리지’ 발언에 이경실은 기분 나빠하긴커녕 한술 더 떠 “승신아, 너도 이리 와야지”라고 응수했다. 굵은 팔뚝에 고민하는 임예진에게 다른 출연진은 “좋은 수술이 있다”며 부추긴다.

    이들은 빤한 얘기를 늘어놓거나 여성만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이승신은 부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에 대해 “남편이 원하는 대로 바뀌면 인생이 편하다”고 말하며, 양희은은 생활이 행복하냐는 질문에 “연예인이 TV에서 행복하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생활의 경륜과 페미니즘이 적절히 섞인 현실적인 이야기가 세대에 관계없이 공감을 끌어낸다.

    ‘플레잉 코치’형 리더십 유재석

    [이원집정부제-KBS 2TV ‘해피투게더3’] 목요일 23:05

    KBS 2TV ‘해피투게더’의 토크 코너는 게스트의 추억담을 듣는 ‘이건 뭐’와 사우나에 온 아줌마로 분해 수다를 떠는 ‘설정토크-웃지마’로 나뉜다. ‘무릎팍 도사’가 점집과 도사라는 설정으로 ‘고백의 공간’을 연출했다면, ‘해피투게더’는 사우나라는 무대로 ‘은밀한 수다의 공간’을 만들었다. ‘설정토크-웃지마’는 찜질복을 입은 MC와 게스트 3,4인이 추억의 물건을 매개로 자유롭게 대화한다.

    드라마나 시트콤처럼 리얼리티쇼와 토크버라이어티쇼도 재미의 관건은 캐릭터의 조합이다. 실효성을 기준으로 웃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들을 발굴해야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다. ‘무한도전’에 정준하가 새 멤버로 합류했을 때 “캐릭터가 겹친다”는 정형돈의 반응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미디의 영역에서는 보통 바보, 산만, 호통, 보릿자루, 비굴 등 모자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피투게더’의 MC인 박명수 유재석 박미선 신봉선의 역할과 영역도 분명히 구분돼 있다.

    강호동과 함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싹쓸이하며 MC계를 평정한 유재석. 그에게는 늘 ‘배려형 MC’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단독 개그를 하는 그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짝패를 이루는 조연이 있을 때는 200%의 재간을 발휘한다. 김원희의 말에 맞장구치고 박명수의 호통을 되받아치며 은초딩의 개념 없음을 비웃는 유재석은 익숙하지만, ‘무릎팍 도사’의 강호동처럼 홀로 스튜디오를 호령하는 유재석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그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야구의 ‘플레잉 코치’에 빗댔다. 패널과 섞여 조화롭게 공존하되 필요할 때에는 MC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반면 박명수는 “너 죽고 나 살자”는 비굴한 캐릭터다. 상하 구분없이 호통치는 호통 개그로 패널들이 꺼리는 인물이다. 공채 출신으로 비교적 일찍 인정받아 MC로 안착한 유재석과 달리 오랜 무명의 터널을 지난 그에겐 음지의 기운이 가득하다. 남보다 많이 웃겨야 하고 PD와 1인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

    박명수(박): “메뚝, 너도 한철이다!”

    유재석(유): “박명수씨는 원래 별명이 벼멸구잖아요!!”

    박: “같은 곤충과잖아.”

    권력학으로 풀어본 TV토크버라이어티 관전법

    KBS 2TV ‘해피투게더3’는 사우나에 온 아줌마들이라는 상황 설정으로 편안한 웃음을 연출한다.

    유: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요즘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당신 닮았다는 소리 들을 때예요!”

    박: “야, 메뚜기!”

    유: “왜? 벼멸구!”

    ‘해피투게더’는 유재석과 박명수의 양강 체제다. 둘은 종종 티격태격하지만 결국은 한편이다. 서로 약점을 잡아 구박하면서도 상대가 없으면 웃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상생하는 것. ‘무한도전’의 유반장-거성 구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박미선과 신봉선은 이 둘 사이의 완충지대다. 박명수에게 신봉선은 유재석에게 뺨 맞을 때마다 화풀이하는 대상이다. 끊임없이 구박을 받지만 시종 꿋꿋한데다가 가끔은 반항하는 모습도 보인다. 박미선은 철없는 만담 개그로 바쁜 유재석과 박명수를 대신해 게스트를 챙기는 역할을 한다. 넉넉한 입담으로 아줌마 시청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들 사이에서 게스트들은 체제에 순응하거나 반항하며 그날 프로그램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김대희처럼 “존경하는 선배님”을 외치는 게스트도 있고 이성진처럼 “박명수씨는 평소에 하품하더니 개편 때만 되면 열심히 한다”며 편입을 거부하는 쪽도 있다. 박해미는 연륜과 입담으로 “여기 분위기 심심한데 내가 이야기 좀 하겠다”며 두 MC를 압도하기도 했다.

    MC가 프로그램을 통제하던 군주형 토크쇼는 이제 과거사가 됐다. 그 자리를 토크버라이어티가 대신한다. MC와 패널과 게스트의 경계는 사라지고, 캐릭터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재치와 상황이 웃음의 코드가 됐다. 정보는 과거보다 덜하지만 유머의 측면에서는 훨씬 강도가 세졌다.

    다만 토크버라이어티를 보면서 상기할 점은 캐릭터와 그들 간 조합은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 출연진의 캐릭터는 콘셉트와 연예인 본인의 모습 둘 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명수가 다른 패널들의 유머를 방해하거나, 과거 영화를 누리던 연예인이 오랜만에 TV에 나와 망가지거나, 그런 그를 다른 패널들이 놀림감 삼는 것은 철저히 웃음코드를 염두에 둔 연출이다. 물론 PD나 작가 등 제3자가 지시해서 나온 상황은 아니다. 본인이 예능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잡은 콘셉트라는 얘기다. 토크버라이어티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야 서로 물고 뜯는 그들을 보며 한바탕 웃은 뒷맛이 개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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