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은 고객으로부터…고객과 동반 성장하는 맞춤 영업
- 서브프라임 비켜난 비결은 충성도 높은 우수 고객
- 직원들도 신용카드 발급 못 받아, 미국 은행 중 유일한 AAA 등급 유지
- 내부에서 블루오션 찾아라…새로운 수익의 80%는 기존 고객에서
- 글로벌 IB업무나 인수·합병 중개하지 않고도 고속 성장한 비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웰스파고은행의 본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하기 정확히 2개월 전인 7월17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충격이 본격화하면서 연일 폭락하던 뉴욕 증시가 276포인트 넘게 상승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미국 양대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이가 무너지면서 싸늘해진 투자심리를 일순간 되돌려놓은 이날의 주인공은 웰스파고(Wells Fargo)였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의 은행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 은행이 이날 순익 17억5000만달러, 매출 115억달러를 올렸다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뉴욕 증시가 급반등한 것. 276.74포인트(2.52%)는 하루 상승폭으로는 3개월여 만에 최고치였다. 웰스파고의 주가는 이날 하루에만 32%나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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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10월10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웰스파고의 와코비아은행 인수 계획을 승인할 방침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와코비아은행 인수를 놓고 웰스파고와 경쟁했던 시티그룹이 인수를 포기한 다음날 미 정부가 웰스파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시티는 웰스파고에 앞서 와코비아의 은행 부문을 22억달러에 매입하겠다고 제안, 인수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웰스파고가 와코비아의 비은행 부문을 포함해 151억 달러의 인수가격을 제시, 시티를 제쳤다.
두 장면은 ‘월스트리트의 이단자’로 취급받던 웰스파고가 월가의 구원투수로 인정받으며 미국 금융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히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말한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위기”를 웰스파고는 완벽한 도약의 찬스로 만든 것이다.
10월 중순 현재, 9월15일(현지 시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내고 미국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 2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미국 내 상위 10위 상업은행(CB) 중 와코비아(4위), 워싱턴 뮤추얼(6위), 컨트리와이드 내셔널(9위) 세 회사가 간판을 내렸다. 5위권 투자은행(IB) 중에선 메릴린치(3위), 리먼 브러더스(4위), 베어스턴스(5위) 등 3곳이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을 처지에 놓였다. 이보다 더 놀라운 뉴스는 세계 금융사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던 시티가 굴욕스럽게도 1위에서 4위로 추락했고, 웰스파고가 JP모건체이스와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일요일에도 문 여는 지점 있어
해외지점이 런던과 홍콩, 타이베이 3곳에 불과하고, 해외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은행. 미국 내에서도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가량인 26개 주에서만 영업하는 은행. 그러면서도 파죽지세의 성장을 기록하는 웰스파고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의 웰스파고를 만든 리처드 코바세비치 전 웰스파고 회장이 ‘은행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 짤막한 답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고객중심 사고를 견지하는 데 실패할 경우 어떤 은행도 살아남을 수 없다.”
웰스파고는 이 단순한 원칙을 일선 창구에서 어떻게 실현하고 있을까. 기자는 올여름 웰스파고 본점이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금융타운에서 북쪽으로 20여km 떨어진 노스비치(North Beach) 지점을 찾았다. 5명의 뱅커(banker)와 6명의 텔러(teller·창구 출납직원)를 거느린 소규모 지점이다.
“매월 700개 이상의 신규 계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뱅커 한 명당 100개가 조금 넘죠.”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밀집한 이 지역의 영업을 총지휘하는 32세의 한국계 교포 조안나 박 지점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실제 업무 강도는 상당하다. 오전 9시 영업시간 전에 미팅을 갖고 하루 영업계획을 세세하게 점검한다. 전날 영업 결과와 함께 이날 하루 동안의 고객 면담 횟수와 상품 판매 계획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오후 2시에는 오전 실적을 평가한 뒤 마케팅을 독려한다. 오전에 고객과 만난 내용을 점검하고 추가적인 영업 방향을 조언하기도 한다.
영업 성과에 대한 측정도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인당 상품 판매 수, 1인당 수익, 교차판매 실적 등 개인 성과를 바탕으로 지점당 수익을 월 단위로 점검한다. 게다가 지역본부에서 수시로 창구영업의 서비스 수준을 점검하기 때문에 일선 영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객이 창구를 방문해 3분 이상 대기할 경우 아무리 다른 서비스가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만점을 받을 수 없다.
웰스파고 본점 내부. 은행을 상징하는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stage coach)를 배경으로 직원들이 창구업무를 보고 있다.
이곳은 토요일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문을 연다. 관광객이 많아 주말에도 인근 레스토랑이 붐비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인 BOA나 워싱턴 뮤추얼의 지점은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열지만 잔돈을 바꾸기 위해 오는 식당 주인들을 위해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대형 슈퍼마켓 내 지점은 일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커뮤니티 뱅킹 비중 34%
세일즈 컨설턴트이자 지역 담당 매니저인 레이먼드 킴은 “웰스파고의 기본 영업전략은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이 창업을 하기 전 상권 분석과 대출 상담을 해주고, 실제 가게를 개점한 뒤에는 영업시간에 맞춰 잔돈을 교환해주는 일부터 세금정산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재무 서비스를 제공한다. 종업원 한 명에 대한 임금 지급과 사회보험료 납부까지 대신해준다.
지역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학교에서 여는 저축 강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주택 구입 세미나도 참가비를 받지 않고 수시로 연다. 지역 상권이 커지면서 은행도 같이 크는 식이다. 이 같은 커뮤니티 뱅킹은 웰스파고의 주요 성장 기반이 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맞춤형 서비스에 해당하는 커뮤니티 뱅킹 사업 비중이 전체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웰스파고가 다른 은행과 달리 지점을 확대해 온 것도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웰스파고의 총 매장 수는 5964개로 미국 내 1위다. 모기지 상품만 취급하는 지점도 2300여 개, 슈퍼마켓 내 매장도 537개에 달한다. ATM은 6900대로 미국 내 3위다. 강력한 서비스 마인드와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전략이 웰스파고 경영전략의 핵심인 셈이다.
웰스파고 고객담당 부서 관계자는 “우리 직원들은 고객에게 모기지(mortage)를 판매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이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뮤추얼 펀드도 마찬가지다. 고객의 노후 보장을 돕고 자녀교육과 새로운 사업의 출발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고객을 대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웰스파고가 미국은행 중 모기지 판매 순위 1위라는 점이다. 하지만 웰스파고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모기지 대출을 받은 고객이 800만명에 달하고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에서도 개인 대상 모기지가 3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웰스파고보다 많은 자산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소매금융에 나섰던 와코비아가 웰스파고에 전격 인수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웰스파고는 이에 대해 고객의 신용도가 다른 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고, 위험한 투자는 결코 하지 않는 리스크 관리 문화를 그 배경으로 꼽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모기지 신용등급 평가회사인 피코(FICO)에 따르면 웰스파고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는 725점으로 프라임(prime)급 이상이다. 660점 이하가 서브프라임 고객으로 분류되는 점을 감안하면 신용도가 월등히 높은 고객층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가계자금 대출 고객의 평균 FICO 점수도 735점일 정도로 우량고객 위주의 영업을 하고 있다. 무담보 신용대출도 신용점수가 최소한 680점은 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서브프라임급 고객은 웰스파고와 거래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상품 ‘판매업자’ 자처
이 은행 고객의 높은 신용도와 낮은 연체율은 은행의 수익성을 올리고 있다. 이는 다시 은행의 신뢰도와 신용등급 향상으로 이어져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실제로 웰스파고는 무디스의 신용등급 평가에서 미국 은행 중 유일하게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다.
웰스파고의 리스크 관리는 특히 지난해 미국 금융산업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확연히 드러났다. 미국 5위권 은행 중 웰스파고가 가장 높은 순이익 증가율(10%)을 기록한 것이다. BOA(-12%)와 시티(6%), JP모건체이스(4%) 등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탁월한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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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파고의 리스크 관리문화는 신용카드 영업에서도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신용점수가 720점 이상인 고객에 한해 신용카드를 발급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에 한해 카드 고객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웰스파고 고객의 27%만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웰스파고 직원이라도 신용기록이 충분치 않은 신입사원에게는 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총 자산에서 예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50%가 넘고 특히 비이자 예금 등 핵심 예금의 비중이 13%로 경쟁은행보다 2∼3배 이상 높은 점도 웰스파고의 강점이다. 기은경제연구소 신동화 박사는 “고객 이탈은 최소화하면서 우량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예금주를 적극 유치, 강점인 소매금융의 기반을 키워나간 것이 웰스파고의 성장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웰스파고가 보수적인 영업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웰스파고가 최근 10년간 미국 은행 중 가장 높은 연평균 17%의 자산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자산규모만 6000억달러(올 1/4분기 기준)에 달하고 순익 증가율도 연 평균 16%가 넘는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웰스파고는 최근 3년 동안 매출 증가율 58.1%, 순익증가율 14.9%, 주당 순이익 증가율 16.1%라는 기록적인 경영실적을 거뒀다. 미국의 경영전문잡지인 ‘포춘’은 웰스파고를 전세계, 전 업종에 걸쳐 매출액 기준 41위, 수익 기준으로는 17위로 평가했다.
도대체 웰스파고가 미국 내에서만 머무르면서도 고속 성장을 지속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수익의 80%는 기존 고객에게서 나옵니다.”
스티븐 배시 부행장은 웰스파고의 성장 비결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내부에서 블루오션을 찾는다는 얘기다.
웰스파고에서 처음 계좌를 개설한 고객은 2주 후 담당 뱅커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는다. 90일 이내엔 웰스파고 상품의 가입을 권유받는다. 웰스파고는 이후 고객의 라이프 사이클과 재무 상황을 파악, 지속적으로 상품 판매 기회를 발굴한다. 이렇게 해서 웰스파고는 고객 한 명당 평균 8개의 금융상품을 판매한다. 이른바 교차판매(cross selling)다.
상품의 종류는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보험, 뮤추얼펀드, 퇴직연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웰스파고의 교차판매 실적은 다른 은행의 2배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보험, 자산관리계좌 가입을 통해 장기 거래를 유도한 뒤 당좌와 신용카드, 가계대출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 상품 판매를 통해 고객을 묶어두는 것이다.
세일즈 컨설턴트인 레이먼드 킴은 “20대 미혼 고객에게도 퇴직연금에 가입할 의향이 없는지 물어본다”며 “고객들은 자산관리 상태에 언제든지 조언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를 전혀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웰스파고는 이처럼 스스로를 은행이 아닌 금융상품 판매업자로 규정한다. 상품 개발보다는 판매에 주력하면서 금융상품 백화점을 지향한다. 월마트나 홈디포와 같은 유통업체가 경쟁 상대이자 벤치마킹의 대상인 셈이다.
콜센터에 우수인력을 투입하는 것도 차별화된 경쟁 요소다. 웰스파고는 미국 전역의 13개 콜센터에 20대 우수 직원으로만 구성된 3500명의 상담원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월 2억4000만건의 전화상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웰스파고의 비(非)이자수익 비중은 47%에 달한다. 그 가운데서도 신탁과 펀드 등 자산관리 상품과 보험,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이 40%를 넘다. 예대(預貸)마진에만 의존하고 금리 변동에 따라 이익 기반이 흔들리는 국내 은행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용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웰스파고의 순익은 10%가 증가했다.
워런 버핏, 지분 9% 보유
웰스파고는 무엇보다 기업 인수·합병(M&A) 중개나 파생상품 판매 등 투자은행(IB) 사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배시 부행장은 ‘웰스파고의 전략은 일반적인 트렌드와 반대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해 “우리는 상업은행(CB)이다. 투자은행(IB)이 아니다. 그것이 심플하면서 분명한 차이다”라고 밝혔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투자은행들의 과도한 욕망을 부추긴 캐피털 마케팅, 이른바 자기자본 투자(PI)가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한국형 CIB(Commercial Investment Bank)’를 만들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글로벌 전략에 대해서도 웰스파고의 입장은 명쾌하다. 고객들이 해외 진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시 부행장은 “웰스파고의 총자산이익률(ROA) 목표는 20%다. 한국에 투자해서 그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 아는 시장에 집중해서 부가가치를 이끌어내는 것이 웰스파고의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일전에 로이터 기자가 ‘웰스파고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반 사람 10명 중 9명이 그러할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때 나는 ‘모든 고객이 웰스파고를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은행원 10명 중 대부분은 웰스파고에 대해 얘기한다’고 받아쳤다”고 말했다.
투자의 달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웰스파고 지분을 9%나 보유하고 있는 것도 웰스파고가 얼마나 본업에 충실한 은행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표 격이자 미국 금융의 자존심인 JP모건체이스도 소매 금융의 강자인 웰스파고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빌 윈터스 JP모건 IB담당 최고경영자는 “웰스파고는 상대적으로 좁은 타깃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강점에 집중해 성공한 대표적 은행”이라며 “비즈니스의 초점이 분명한 것,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