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대마도에서 사라지는 ‘한국 흔적’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입력2013-12-19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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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도는 한국 땅’ 이라는 말을 부쩍 자주 듣게 된다.
    •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 그런데 일본 정부의 반응이 흥미롭다. 일본 정부는 요즘 대마도에 남아 있는 한국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쁘다. 그 현장을 찾았다.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붙어 있는 표지판. 최근의 반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독도 외에 한국과 일본 간 또 다른 영토 다툼의 대상으로 대마도(對馬島·쓰시마)가 주목받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지켜야 할 자존심이다. 반면 대마도는 쓰시마란 이름의 일본 땅이라는 걸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은커녕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을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2009년 일본의 극우단체와 언론이 대마도에서 “조센징은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지난 11월 16일 대마도를 방문한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한국 기업의 쓰시마 토지 구입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대마도 곳곳에 남아 있는 한국 관련 흔적들을 지우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그 현장을 찾았다.

    부산에서 배를 탄 지 2시간 남짓 만에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도착했다. 남쪽에 있는 이즈하라 항은 대마도를 끼고 돌아가기 때문에 부산에서 2시간 정도 걸리고, 북쪽 히타카쓰 항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는 49.5km로 부산에서 제주도까지보다 가깝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 최북단 후나고시 근처에 있는 한국전망대에서 부산이 보일 정도다. 대마도에서 후쿠오카까지가 138km라고 하니,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 한국과 더 가까운 셈이다. 하지만 거리가 아무리 가깝다 해도 대마도는 한국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다. 현재 대마도는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 현(縣) 쓰시마 시(市)에 속해 있다.

    문화재 한국 관련 문구 삭제

    이즈하라 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눈길을 끈 것은 “쓰시마 도민은 일한 친선을 소중히 하는 한국인을 환영합니다.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라고 쓰인 표지판이었다. 단순한 환영인사라고 하기엔 무언가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해까지 환영 표지판에는 “대마도를 방문한 한국인을 환영합니다”라는 짧은 문구만 쓰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샌가 ‘대마도를 방문한’이 ‘일한 친선을 소중히 하는’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대마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는 문구가 추가됐다는 것이 이번 여행길을 함께한 임영주 창원시 대마도의날추진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겸 마산문화원장의 설명이다.

    임 위원장은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경계하고 있으며 나아가 “대마도를 재정비하면서 한국과 관련한 역사적 흔적들을 없애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안내판을 바꾸면서 한국과 관련 있는 내용을 삭제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히타카쓰 항 근처 가미쓰시마 읍(邑)에 있는 1500년 된 은행나무를 한 예로 들었다.

    “가미쓰시마의 1500년 된 은행나무 옆에는 원래 ‘백제로부터 유래했다’는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안내판으로 교체되면서 ‘백제로부터 유래했다’는 문구가 쏙 빠졌어요. 대마도가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꼼수인 거죠.”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한국 관련 자료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상당량이 사라졌다. 조선통신사가 일본 본토 방문을 위해 대마도를 경유할 때마다 숙소로 사용하던 서산사(西山寺)는 최근 유스호스텔로 사용되면서 유적지 관광 목록에서 삭제됐다.

    대마도는 섬 전체 중 농경지가 3%에 불과한 척박한 땅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주로 관광수입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대마도를 찾는 한국 관광객은 연간 15만 명에 달한다. 워낙 가까워 당일치기로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고, 등산과 낚시를 즐기러 대마도를 수시로 찾는 한국 관광객도 많다. 이렇다보니 마트나 음식점 등의 안내판이나 메뉴판에서 한국어를 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한국어 간판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대마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일본 정부에서 대마도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관광객이 줄면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는 대마도 주민에겐 일본 정부의 한국 흔적 지우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일본의 옛 그림.

    대마도 곳곳의 한국 DNA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마도에는 아직 한국 관련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대마도 도주의 아들과 정략결혼한 고종 황제의 딸 덕혜옹주의 결혼봉축비, 옛 이즈하라 성문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기 위해 만든 고려문,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통신사비, 백제 승려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수선사(修善寺), 항일운동을 하다 붙잡혀 대마도로 압송되면서 “왜놈들이 주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며 버티다 목숨을 잃은 면암 최익현 순국비, 조선 숙종 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역관사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대마도 사찰에서는 신라 불상, 고려 불상, 조선시대 범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즈시마 흑뢰성산(黑瀨城山) 꼭대기의 금전성(金田城)은 일본의 전통적인 성이 아닌 한국식 산성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성 안에는 하나같이 우물이 없는데 금전성 안에는 우물과 인공 개울이 있다. 이는 한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토성들과 유사하다. 연구자들은 금전성이 백제가 망한 뒤 백제 부흥군과 한반도에서 퇴각한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쌓은 것으로 밝혀냈다. 이를 통해 백제계 유민들이 대거 대마도로 이주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대마도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부옥(釜屋·부산댁)’‘부산(釜山)’‘아비류(阿比留)’를 성씨로 한다. ‘부산 씨’는 일본에서도 대마도에만 있는 성씨이고, 아비류는 아사달·아직기·아사녀·비류백제 등과 어원이 같은 백제 계통 성씨다. 대마도 주민의 혈통이 한국, 특히 백제에서 유래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언어에서도 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마도에서도 지게를 가리켜 ‘지게’라고 한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쓰지 않는 대마도만의 말이다. 임영주 위원장은 “‘지게’를 비롯해 일본 본토와 달리 대마도에서만 통용되는 한국어(한국산 단어)가 300개가 넘는다”며 “대마도 주민들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소설가 이원호 씨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대마도의 유전자(DNA)는 곧 한국이라는 걸 현지에 가보면 바로 알게 된다”고 한 적이 있다. 2박3일 동안 대마도 구석구석을 돌면서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백제 승려가 창건했다는 수선사.

    이 씨는 최근 출간한 소설 ‘천년恨 대마도’(맥스미디어)에서 역사적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대마도는 엄연한 조선 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마도는 1867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사실상 버려져 있었다. 그러다 일본이 어수선한 국제 정세를 틈타 1871년 이즈하라현으로, 1876년엔 다시 나가사키현으로 편입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후 일본은 끊임없이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리와 그들 자신을 세뇌했다”며 “우리가 그렇게 조작된 일제 식민사관을 여전히 지닌 채 대마도를 일본 땅이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임 위원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땅이냐’고 묻는다면 ‘대마도는 우리의 옛 땅’이라고 답할 수 있다”면서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는 무수히 많다”고 했다. 먼저 조선 세종실록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계림(신라의 별칭으로 지금의 경상도)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들의 소굴이 됐다.”

    ‘양국의 영토’

    조선 영조 때인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 설명문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라고 쓰여 있다. 심지어 일본의 여러 고지도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으로 표기돼 있다. 1592년 일본인이 제작한 ‘조선팔도총도’와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 등이 그렇다. 특히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발견된, 1785년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만든 ‘삼국접양지도’의 원본에는 독도와 대마도가 우리나라와 같은 색깔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이 지도를 흑백으로 위조해 쓰고 있었고, 이에 대해 묻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60여 회에 걸쳐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을 통해 물자를 공급받아야 했던 한국은 더 이상 대마도 반환을 거론할 수 없었다.

    日 정부 차원 ‘한국경계령’?

    일본 천연기념물인 대마도 산고양이. 일본 본토에는 없고 대마도와 한국에만 서식한다.

    임 위원장은 대마도가 우리의 옛 땅이었음은 분명하되, 우리‘만’의 땅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영토였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 예속돼 있었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지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대마도에 한국과 일본의 행정기관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근거는 속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대마도를 우리에게 반환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속지주의 원칙상 무리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자료가 풍부함에도 일본은 독도를 그들의 땅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긴 하지만. 임 위원장은 “현재로선 우리 국민이 대마도가 우리의 고토(古土)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도에 비하면 대마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미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산시 의회는 대마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데 대응하기 위해 2005년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고, 2010년 창원시(마산·창원·진해 통합)는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했다.

    ‘한국 관광객 출입금지’

    이즈하라 시내에 위치한 한 음식점 문 앞에는 ‘NO KOREAN TOURIST ALLOWED’(한국 관광객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대적 움직임에 동조한 것인지, 단지 ‘소란스러운’ 한국 관광객을 거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관광객 때문에 먹고살기는 하지만 소란스러운 한국 관광객은 거부한다는 표지판은, 이즈하라 시내를 거니는 동안 여러 번 발견한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한국어 표지판을 생각나게 했다. 설령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영토 다툼과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이를 본 한국인의 감정은 그렇지가 못하다. 감정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대마도에서 한국의 흔적을 없애는 것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한국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이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한국 관광객들을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 흔들어주던 이즈하라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정치적이지도 계산적이지도 않은 그 아이들의 모습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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