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학승가대학원 초기불교 공부 열기 후끈
- 노스님 위한 노후수행마을 조성해 연금·의료 지원
- 1500년 전통 보은염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일조
선운사 설경, 경전을 읽는 학인스님들, 초기불교 불학승가대학원 전경(왼쪽부터).
첫눈이 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을 찾았다. ‘설창(雪敞)’이라고 불릴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인지 산등성이에 아직 눈이 많았다. 때마침 대학원에서 일반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토요 열린강좌’를 여는 날이어서 청강생으로 수업을 잠시 함께했다.
“길 가운데 최고의 길은 팔정도(八正道)요, 진리 가운데 최고의 진리는 사성제(四聖諦)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경지는 해탈이요, 인간 가운데 최고의 인간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법구경’을 교재로 진행된 이날 강좌에서 대학원 학감 성륜 스님은 ‘길(道)의 장’에 나와 있는 부처님 말씀을 함께 읽고 설명했다. 전북 고창과 정읍, 전주 등지에서 온 30여 명의 재가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2시간 동안 함께 공부했다.
강좌가 끝난 뒤 대학원 곳곳을 둘러봤다. 학인스님들은 각자 방에서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수업이 끝났지만 재가자들 역시 성륜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질의응답을 이어나갔다.
‘講學과 修禪의 도량’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처님의 원음(原音)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전해지는 초기불교는 한국 불자들에게 낯설었다. 한문으로 된 대승경전에 익숙해 있고, 언어 또한 빨리어·산스크리트어 등으로 돼 있어 초기불교를 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서적으로도 ‘소승(小乘)’이라고 폄훼하는 분위기가 강해 초기불교가 한국 토양에 발붙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인도나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서 공부하는 스님과 학자가 부쩍 늘면서 초기불교가 조금씩 한국 불자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위빠사나’로 대표되는 초기불교 수행에 관심을 갖는 불자도 꽤 된다.
대학원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문을 열었다.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은 “그동안 한국 불교에서 소외되어온 초기불교를 학인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학원을 개설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앞으로 선운사가 초기 불교의 산실 구실을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선운사는 근현대 한국 불교 강사(講師)들의 ‘스승 중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석전 박한영 스님을 배출한 도량이다. 지금도 ‘강학(講學)과 수선(修禪)의 도량’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선지 대표적 대승도량이지만 대학원을 개설한 것이 어색하지 않다.
2011년 3월 문을 열어 2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대학원에서는 현재 1학년 8명, 2학년 6명의 학인스님이 원장 재연 스님, 학감 성륜 스님, 교수사 환성 스님에게서 초기불교를 배우고 있다. 2013년 2월에는 1기 졸업생 2명을 배출했다.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등 초기불교의 고수들은 외래교수로서 학인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학인스님들의 공부 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짜여 있다. 일주일 중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대념처경’과 ‘초전법륜경’을 독송(chant)하고 다른 날에는 경전을 교재로 삼아 공부한다. 1학년은 ‘불교개론1’ ‘기초 빨리어’ ‘초기불교학’ 등의 과목을, 2학년은 ‘불교개론2’ ‘주제별 빨리어 경전읽기’ ‘주석과 함께 경전읽기’ 등을 공부한다.
한문에 익숙한 학인스님들이 원전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매일 해야 하는 과제도 부담스럽다. 성륜 스님은 “2학년은 토론식으로, 1학년은 원전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수업을 한다. 언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인이나 지도하는 교수스님 모두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래선지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학인스님 모두가 각자 방에 들어가 ‘보충공부’를 한다.
보은염을 운반하는 행렬을 맞이하는 법만 스님.
大乘의 중심에서 초기불교 외치다
초기불교 연구 1세대이자 대학원장으로 후학을 이끄는 재연 스님은 “2년 과정을 마친 뒤에도 학인들이 더 공부할 수 있도록 3년 기간의 연구과정을 개설했다. 연구과정까지 마치면 강사로서 초기불교를 더 많은 대중에게 전할 수 있는 실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재연 스님은 왜 초기불교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불교는 고통의 세계를 열반의 세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단 풍토는 그렇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할 수 있어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확실한 이해 없이는 불교가 불교일 수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원형에 가깝게 유지된 것이 초기불교의 빨리어로 기술된 빨리 삼장(三藏)이지요. 경(經)·율(律)·논(論) 삼장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정견(正見)을 세우고 이를 통해 세계와 인간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출발이 바로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재연 스님 또한 여느 스님과 마찬가지로 대승(大乘)불교를 공부했다. 그러나 공부를 해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초기불교로 눈을 돌렸다.
“특별히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학인스님들을 지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경전의 성립과 후대에 일어난 주요 논쟁의 핵심과 흐름을 파악하고 △사성제, 팔정도, 37조도품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숙지하며 △사마타-위빠사나 수행 관련 경전을 선별해 읽고 수행체계와 내용을 숙지하게 합니다. 또한 △빨리어 및 산스크리트 사전 활용을 위한 문법을 익히고 △한역 ‘아함경’과 빨리 경전의 용어 원리를 이해하며 △불교에 관한 모든 논의의 틀과 방증의 근거를 경전에 두도록 지도하려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학인스님들과 눈을 맞춰가며 차츰 정진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학감 성륜 스님은 “대학원이 초기불전이 제시하는 부처님의 세계관과 실천체계를 연구하고, 연구와 실천을 함께하는 수학풍토를 정립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전문 역량을 갖춘 교육 교역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에 두루 밝은 조계종단의 한 스님은 “아마 대학원이 영남 지역의 대형 사찰에 개설됐다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며 “불교세가 많이 약한 호남에서, 그것도 초기불교 관련 대학원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선운사가 이렇게 대학원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주지 법만 스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덕분이다. 대학원에 지원되는 연간 공식 예산만 2억 원이 넘는다. 식비와 숙소 관리비 등 산출할 수 없는 예산까지 더하면 실질적으로 지원되는 액수는 예산의 배 이상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선운사는 혁신을 거듭하며 호남의 대표적 모범 사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일반 대중에 판매용으로 선보인 선운사 보은염.
법만 스님이 선운사 주지를 처음 맡은 것은 2007년. 당시 법만 스님은 교구본사 주지 중 최연소였다. 출가 이후 줄곧 선방에서 정진만 하던 스님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법만 스님은 주지가 된 직후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법만 스님은 먼저 노스님들을 위해 선운사 인근에 노후수행마을을 조성했다. 노후복지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불교계에서 노스님들을 위한 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덕분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노스님들은 함께 생활하며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들 노스님에겐 수행연금은 물론 의료 지원이 상시적으로 이뤄진다.
그뿐만 아니라 법만 스님은 전북지역 최대 규모의 복지시설인 고창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해 복지시설 5곳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고창군 뉴타운 내에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어린이집 인근에는 조만간 불교회관과 청소년문화센터가 들어선다.
법만 스님이 최근 들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보은염(報恩鹽)’의 상품화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 선사는 전란을 피해 떠돌던 전쟁 유민에게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굽는 방법, 즉 자염(煮鹽)을 알려줘 생계를 잇게 했다. 이에 유민들이 검단 선사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선운사에 소금을 보시하면서 보은염이 유래했고 이 같은 전통이 1500년간 이어져왔다.
법만 스님은 “오래전부터 지역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보은염을 만들게 됐다”며 “보은염 판매 수익금은 선운사복지재단이 추진하는 교육·복지 사업에 모두 쓰인다”고 전했다. 보은염 시판은 지역주민에게 공덕을 베푸는 회향(回向)의 불사다. 보은염은 지역주민과 선운사가 함께 생산한다. 사찰과 지역주민이 함께하다보니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법만 스님은 “(보은염 시판이) 앞으로는 사찰 운영을 신도와 참배객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수입 다변화를 도모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보은염은 선운사와 지역주민, 지자체가 함께 생산해 품질을 보증할 수 있고, 유통구조를 최소화해 가격 거품을 뺐다”며 “당장 수익을 낼 거라 기대하진 않지만 품질로 승부를 낸다면 2~3년 안에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찰과 지역주민, 지자체에 모두 이익을 주는 수익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원 운영과 노후수행마을 조성, 보은염 시판과 같은 혁신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복지문화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는 선운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