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직진·대담·강철멘털… 탐구할 만한 정치인
대선 패배 후 염치없이 3개월 만에 출마
기존 정치판 관례 어떻든 자기 마음대로
대통령 私黨으로 전락한 보수… 총선 압승 불투명
李 기사회생할지도… 보수, 낙관은 금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뉴스1]
작년 이맘때 실시된 대통령선거 과정을 돌아보건대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했던 장면은 이 대목이었다. 그동안 숱한 정치인을 봐왔고, 정치적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여러 수법을 봤지만 ‘내가 하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네가 했잖아’ 수준으로 받아치거나 덮어씌우는 유형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정치인 이재명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칼럼에서는 직함이나 존칭은 가급적 생략하기로 하자. 결코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삼국지나 무협소설을 읽는 듯 읽어도 되겠다. 이재명은 문제적 정치인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탐구할 필요가 있는 정치인이다.
대선 패배자의 몰염치 행보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인천 계양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 당시 후보는 대선 패배 후 3개월 만에 출마해 논란이 됐다. [뉴스1]
대체로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측은 자숙하는 시간을 갖거나, 직책을 내려놓거나,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김대중은 그렇게 영국에 갔고, 문재인도 칩거하며 당시 대통령(박근혜)에 대한 비판마저 한동안 삼갔을 정도다. 그런데 이재명은 선거에 지자마자 대통령선거보다 훨씬 체급이 낮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곧바로 출마했다. 그마저도 원래 선거가 예정된 지역이 아니라 기존 지역구 의원(송영길)이 자리를 비워준 지역에서 승계받듯 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대표이던 송영길이 현역 의원직을 내려놓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도 기존 정치 문법과 맞지 않고, 정치적 격조에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둘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었던 건 아닌지, 항간에 소문이 돌았을 정도다.
이재명의 변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갖고 있던 직책마저 내려놓아야 할 판국에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대선이 끝난 지 만 4개월 8일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77.8%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렇게 나선 이재명도 놀랍고, 그를 당선시켜 준 민주당 당원들 또한 놀랍다. 만에 하나 나중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일등 공신은 송영길이 아닐까 싶다. 당대표로서 선거를 제대로 이끌지 못해 패배한 책임이 송영길에게 있다면, 자신의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이재명에게 내줘서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준 ‘문제적’ 인물 또한 송영길이다.(송영길은 지금 프랑스에 있다. 가야 할 사람은 가지 않고 대신(?) 간 셈이니 이 또한 어쩌면 정치적 희극이다.)
이재명이 이렇게 ‘직진’하는 이유는 그가 지닌 이른바 사법 리스크에 있다. 이재명의 처지로서는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역대 다른 후보들처럼 외국에 가거나 칩거한다고 이재명의 리스크가 사라질까. 일반적인 정치적 리스크가 아니라 자칫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사법적 사안이기 때문에 그로서는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상대는 검사 출신 윤석열이다.
이재명式 무오류 신화
최근 이재명에 대한 검찰 조사가 결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른 어떤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벌어질 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재명이 혹시 현직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밝힐 것은 밝혀야 하는 일이다. 물론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면 검찰의 수사는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방식대로, 사건을 깔아뭉개는 형태로 유야무야됐을 것이다.이재명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비통할 것이고,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정면 돌파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재명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지금처럼 대응하리라고 보지만, 그 또한 생각은 그렇더라도 쉽사리 행동에 옮기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은 굉장히 대담한 정치인이다. 기존 정치와 도덕의 문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흔들어 버린다.
앞에서 썼던 몇 가지 표현을 복기해 보자. 이재명은 ‘변칙’을 잘 쓴다. 기존 정치판의 관례가 어떻든 자기식대로 뒤집는다. 그렇게 ‘직진’을 한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 맘대로 살겠다는 태도다. 비난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강철 멘털’ 또한 엿보인다. ‘대담’하다. 일반적(?) 정치인이라면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면서 도의적 사과라도 할 텐데 그런 것이 일절 없다. 이재명이 무언가를 직접 사과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사과하더라도 진솔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사과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이런저런 세월의 때는 묻었을지 모르되 정치인 이재명 자체는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재명식 무오류 신화다.
李 사법 처리와 무관할 총선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변칙, 직진, 대담, 멘털…. 이재명에게 따라붙는 이런 수식어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똑같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측에서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면서 ‘마이웨이’를 하는 것 같은 이재명에게 열광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그래서 싫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마이웨이가 그 무슨 정치적 소신이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마이웨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그는 ‘자기가 살기 위해 뭐든 할 사람’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런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좋아하고, 그래서 싫어한다.이번 칼럼에서는 이재명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생각이 일절 없다. 인간 이재명, 정치인 이재명에 대해서는 지금껏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혹자는 이재명 사법 처리를 자신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현직 야당 대표를 구속시킨 전례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현직 대통령도 끌어내려서 사법 처리했는데 야당 대표라고 못 할 일일까.
다만 사법 절차상으로 보더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혐의가 완벽하게 뚜렷하지 않은데, 기소야 할 수 있겠지만, 구속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으로 정치는 어떻게 될까. 당직자가 기소되면 당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민주당 당규가 있긴 하지만, 이재명은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릴 사람이라는 것쯤은 그동안 행보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면 또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1년 내내 이재명으로 해가 떠서 이재명으로 해가 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윤석열인데, 언론의 주목은 이재명이 더 받는 형국이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여전히 알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관심 없는 사람은 관심이 없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거나 여론을 뒤흔들 명백한 범죄행위가 추가되지 않는 이상 지난 대선 때와 비슷한 수준에서 이재명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 이뤄질 것이다. 한번 심판한 이재명을 또 한 번 심판하자는 여론은 그리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다.
핵심은 따로 있다. 집권 중반기에 실시되는 선거는 결국 ‘집권 여당’을 평가하는 선거다. 대통령을 심판했으면 했지 야당 대표를 심판하자는 총선을 본 적 있는가.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구도를 깔고 싶겠지만, 그런 것은 정치 과몰입층을 대상으로나 가능한 일이고, 다가올 총선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대 반(反)윤석열 구도가 될 것이다.
차제에 살피자. 역대 우리나라 총선 가운데 국민이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총선이 있었던가. 21대 총선이 약간 그런 경향을 띠긴 했지만, 그때는 코로나19라는 세기적 위기 상황이 겹쳐 있었다. 그만한 상황에서 발목을 잡는 야당을 선택할 것이냐, ‘미워도 다시 한번’ 하면서 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 국민은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단히 운이 좋았던 셈이다. 윤 대통령에게도 그런 운이 따를 것이라고 믿는가.
유일무이 야권 후보
요컨대 보수의 일각이 이재명을 제물로 삼아 내년 총선을 치르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낸 2년간의 ‘성과’를 갖고 국민은 평가할 것이지, ‘이재명이 미워서’ 혹은 ‘민주당이 미워서’ 국민의힘을 찍어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선거가 모두 그랬다. 집권 중반기 선거는 성격상 언제나 정권 심판 선거였다. 정부가 잘하면 집권 여당을 밀었고, 못하면 야당을 밀어줌으로써 정권에 ‘잘하라’는 자극제를 줬는데, 기실 국민의 평가는 좀 야박하긴 하다. 부정적인 평가는 쉬이 몰아주어도 ‘지지’를 몰아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내년 총선은 다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햇수로는 집권 3년 차이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일로부터 따지면 만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치러지는 총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힘 측에서는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강력한 여당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겠지만, 국민 처지에서는 3년 차라는 측면에 더욱 눈길이 갈 것이다. 이미 절반은 꺾였다고 생각할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선거는 과연 어떤 결과를 맞게 될까.
자, 앞으로 더 나아가 보자. 내년 총선에 국민의힘이 진다고 가정하자. 그것도 크게 진다고 상상해 보자. 이재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때쯤에는 검찰 조사 단계는 넘어 지루한 법정다툼을 계속하고 있을 텐데 과연 어떤 판사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정치인의 재판을 서두르려고 할까. 물론 판사들의 양심을 믿는다. 그러나 1심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2심, 3심 절차는 남아 있고, 속전속결로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차기 대선까지 ‘이재명 논쟁’은 계속되겠지. 이게 이재명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진한 발상이라고 본다. 오히려 이재명으로서는 유일무이한 야권 후보로 입지가 더욱 굳어지는 계기 아닐까. 이재명을 무너뜨리려다 도리어 돕는 꼴이다.
덧붙이자면, 이런 지루한 논란이 계속되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속된 말로 ‘분칠’하기 쉬워진다는 말이다. 지금이야 ‘이재명의 비리’로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사안 자체에 무감각해지고, “검찰이 또 야당 대표를 팬다”는 정도로 프레임을 인식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실책을 거듭할수록 더욱 그렇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라고? 정치인 이재명의 노림수는 늘 그런 곳에 있었다.
5%포인트 앞선 정당지지율, 내년까지 갈까
결국 역사상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제적 인물’ 이재명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큰 숙제가 됐다. 그를 사법 처리할 수도, 안 할 수도 없게 됐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법 처리는 순리대로 하되, 정치적으로는 그런 것에 너무 목매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 보수 진영을 보면 온통 이재명 하나에만 매달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 정의가 바로 설까. 이재명이 구속될까. 민주당이 무너질까. 운동권 586들이 대몰락할까. 아서라.
‘갬블러’ 이재명을 상대하려면 게임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게임에서는 우리가 훌륭한 패를 갖고 있는 만큼 상대도 그 나름의 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대의 패가 아무리 구질구질하고 약해 보이더라도, 일단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분명한 ‘집권 여당’이다. 그러한 지위가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더욱 또렷이 알아야 한다.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어서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라는 변명은 정치적 과몰입층이나 국민의힘 지지층끼리는 고개를 끄덕일지 몰라도 대다수 국민은 ‘글쎄’ 하면서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내각제도 아니고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어쨌든 행정부를 쥐고 있는 측에서 자꾸 의회 탓을 하는 것은 국민의 시선으로는 무책임해 보인다. 지금 보수는 지나치게 안이하다.
말이 나왔으니 두 가지를 살피자. 좋든 싫든 이재명은 야당 대표다. 양당 정치 구도에서 ‘양당’의 한 축을 이룬 거대 정당의 대표인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에게 사법 리스크가 있다 한들, 윤 대통령이 집권 2년 차가 돼가도록 영수 회담을 하지 않는 것은 비판할 대목이다. 야당 대표로 인정하기 싫다는 것인가. 재차 반복하지만 좋든 싫든, 어떤 문제가 있든, 야당 대표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감옥 가기 전날이라 하더라도 만나줘야 한다. 게다가 민주당은 의회 300석 의석 가운데 170석을 차지하는 압도적 야당이다. 이미 대선 때부터 여러 차례 “소수 여당으로서 정부를 잘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협치를 하겠다”거나 “야당을 잘 설득하겠다”고 말해 왔다. “통합정부”라는 표현도 수시로 사용했다. 그럼 지금은 뭔가. 그때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몰랐다는 말인가.
또 하나, 성급하긴 하지만 내년 총선을 예상해 보자. 보수 진영은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던데 과연 그럴까. 이긴다는 근거인즉 국민의힘이 현재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을 앞서고, 특히 수도권 지지도가 전국 평균보다 5%포인트가량 높게 나온다. 수도권 의석이 절반을 차지하니 보수로서는 고무적인 현상이긴 하다. 그렇게 수도권에서 이기고, 충청과 강원에서 이기고, 영남에서야 당연히 이겨서 호남이 고립되는 형국으로 총선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보수 인사도 있더라. 들뜬 기분은 이해하지만 꿈이 야무지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당 지지율 5%포인트 뒤집는 것쯤이야 정치권에서는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다. 몰락 직전 32%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도가 4%까지 떨어지는 데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보수 측에서는 참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당시 ‘최악’이라고 했던 박근혜 지지도가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엇비슷하다. 집권 1년 차에 박근혜 지지율은 60%를 넘기도 했으며 그때 부정 평가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약간 올라가는 것 같으니 지지자들이 반색하는데, 마냥 좋아할 일만 아니다. 지지율만 보지 말고 ‘부정 평가’도 함께 보시라.
윤석열 대통령이 2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준장 진급 장성 삼정검 수여식에서 진급 장성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아부하기 바쁜 보수의 민낯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추이를 보면 긍정 평가가 35%면 부정 평가는 55% 정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와 ‘평가 유보’ 답변은 자연스럽게 해도, 부정적인 견해를 그리 적극적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집권 초기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 윤 대통령처럼 초반부터 부정 여론이 압도적인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다시 이재명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정치인 이재명의 노림수는 늘 이런 곳에 있다. 자신이 딛고 설 정치적 기반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그래서 오늘도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다. 보수는 그만큼 몸부림치고 있는가.보수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 몸부림의 방향이 어째 좀 틀린 것 같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는 방향으로만 몸부림치고 있는데, 물론 그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핵심은 역시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 운영을 잘하는 것이다. 또한 국정 운영을 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책하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보수는 뭔가 번지수를 잘못 찾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몰락한 이유를 ‘응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우리는 저들(민주당)처럼 맹목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적전 분열돼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똘똘 뭉치자고 말한다. 아서라.
응원이 부족해 망하는 정권은 없다. 정권에 문제가 없는데 단순히 선전 선동으로 무너지는 정권도 없다. 어떻게 해야 과연 보수가 바라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이끌 수 있을까. 지극히 원론적 이야기 같겠지만 역시 쉼 없이 비판하고 질책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격려가 필요한 학생도 아닐진대, 뭘 그리 아부와 충성을 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윤심(尹心)이라는 봉건적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면서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이 한국 보수의 민낯이다.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칭찬은 위정자에게는 기분 좋게 들릴 것이고, 핵심 지지층끼리도 신나는 일이겠지만, 결국 긴장감을 잃게 만들어 몰락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될 따름이다.
섣부른 예상이긴 하지만 한국의 보수가 계속 이런 식으로 대통령 사당(私黨)으로 전락하고, 윤석열 정부가 국정 운영(특히 경제 분야)에서 지지부진하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수도권에서 크게 패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섣부른 예상이지만 민주당이 지금처럼 압도적 과반은 아니더라도 150~160석 정도 과반은 차지하지 않을까 내다본다. 국민이 ‘견제하는 야당’으로서의 역할은 민주당에 부여하되, 그동안의 실책에 대해서도 적절한 페널티를 주는 수준에서 의석 황금 비율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다시 이재명으로 돌아가 보자.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이후로도 이재명을 무시할 수 있을까. 총선에서 이긴다면 ‘승부사’ 이재명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이왕 이렇게 된 것, 판을 더 키우려 할 것이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는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에 담겨 있는 계산은 무엇일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대목이다. 몽상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동안에도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버린 인물이 이재명이다. 반복해 표현한 것처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렇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재명 블랙홀에 빠진 한국 정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청년위원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총선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한국에서 정당 지지율이 3~4개월 사이에도 엎치락뒤치락 출렁인다는 사실은 이 대표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흐름에 따라 내버려 뒀다가, 역시 변신의 귀재답게 총선 직전에야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질지 모른다. 모르긴 해도 ‘변화와 혁신’의 모양새를 만들어내겠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지역구 몇 군데 공천만 손봐도 “민주당이 변하고 있다” “역시 이재명”이라는 찬사가 쏟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치인 이재명은 이런 것을 영악하게 잘 알고 있고, 지금은 그저 세월을 견딘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2023년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언젠가 어느 정치인이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제는 한국 정치 자체가 속된 말로 아사리판이 돼버렸다. 문제의 핵심에 이재명이 있다. 이재명을 잘라도 문제, 남겨둬도 문제가 된 것이다. 앞에 설명한 것처럼 ‘잘라내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으니 문제이고, 자칭 보수가 잘못된 낙관에 빠져 있으니 더욱 문제다. 민주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가 이재명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판이다. 정치를 모 아니면 도의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민주당이, 혹은 진보라는 소중한 이름이 이재명과 함께 묻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재명을 어찌할꼬. 국민이 함께 풀어야 할 힘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