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사기 적발 건수, 1년 새 223% 급증
가상화폐 투자에 ‘영끌’ 하는 청년층이 표적
유튜브 영상 속 가상화폐 투자자, 알고 보니 연기자
낯선 전문용어와 ‘특허’ 문구로 투자자 현혹
가상화폐 투자 빙자한 다단계 사기 기승
9월 ‘뱅크런’ 예고 “투자자 보호할 법망 마련해야”
[GettyImage]
가상화폐 사기 적발 건수, 1년 새 223% 급증
경찰이 5월 4일 거액의 다단계 사기 혐의로 가상화폐 거래소 ‘브이글로벌’의 서울 강남구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6월 들어서는 가상화폐 거래소 ‘브이글로벌’ 대표와 직원, 최상위급 회원 등 70여 명이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등 혐의로 입건됐다. 브이글로벌은 회원 가입 조건으로 수백만 원짜리 계좌를 최소 1개 이상 개설하면 자산을 3배 불려주겠다는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해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회원 4만 명을 모집해 1조7000억 원가량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가입한 회원에게 나중에 가입한 회원의 돈을 수익 명목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젊은 투자자들은 상실감에 빠졌다. 2030세대가 주로 모이는 재테크 정보 공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상에 일확천금은 없다”는 자조 섞인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처럼 ‘코인 광풍’을 틈타 ‘고수익’을 미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가상화폐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 가상자산 사기 적발 건수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사기 검거 건수는 333건을 기록했다. 2019년(103건)보다 223% 급증한 수치다. 2017년 12월부터 2021년 4월까지 경찰이 적발한 가상화폐 사기 유형은 △비제도권 금융업체가 등록·신고 없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유사수신·다단계’(427건) △투자자 예탁금을 돌려주지 않는 ‘거래소 불법행위’(40건) △보이스피싱처럼 가상자산을 대신 구매해 편취하는 ‘구매 대행 사기’(118건)가 대표적이었다.
유튜브 영상 속 가상화폐 투자자, 알고 보니 연기자
가상화폐 사기가 날로 증가하는 실정이지만,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미흡하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간주하지 않아서다. 김기홍 블록체인포럼 대표(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따르면 “정부가 2017년 말부터 줄곧 가상화폐에 손을 놓은 탓에 가상화폐를 규제할 법적 장치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라는 것. 실제 가상화폐 거래소는 5만 원만 내고 구청에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누구나 쉽게 설립할 수 있는 상황이다. 거래소들이 엉터리 가상화폐를 상장해 대량 유통시켜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제대로 된 처벌 법 조항이 없어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또는 사기죄 등으로 처벌하다 보니 피해자가 실질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사기범의 주 표적은 가상화폐 투자에 적극적인 청년세대다.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4대 가상화폐 거래소 투자자는 250여만 명. 그중 63.5%(159여만 명)가 2030세대로 집계됐다. 박수용 한국블록체인학회 회장(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은 “2030세대는 기성세대가 기존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을 선점했다고 여긴다”며 “부동산이나 주식은 적은 투자금으로는 넘볼 수 없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들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화가 몸에 배 디지털 형태의 화폐 거래에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또 적은 투자금으로도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각종 가상화폐 사기 수법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가상화폐 사기 수법은 ‘가상화폐 상장하면 수익 몇 배’ ‘수익률 200% 보장’ 같은 문구로 2030세대 투자자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사기를 의심하는 투자자가 늘어나자 수법도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앞서의 사례처럼 젊은 층이 즐겨 보는 재테크 관련 유튜브 채널 여러 곳에 투자자가 출연해 가상화폐 투자 성공 스토리를 자랑하는 경우가 그중 하나다. 동영상 채널에서 자기 계좌에 찍힌 가상화폐 투자 수익금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투자자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투자자 행세를 하며 상황을 연출하는 연기자일 뿐이다.
낯선 전문용어와 ‘특허’ 문구로 투자자 현혹
가상화폐 사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정부가 합리적인 규제책과 함께 투자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GettyImage]
또한 ‘특허’ ‘자체 개발’이라는 문구를 동원해 투자자를 현혹하기도 한다. ‘자체 개발한 가상화폐 특허 출원 예정’ ‘블록체인 기술특허 출원 준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업체의 기술력을 광고하는 경우다. 더욱이 특허 출원은 ‘특허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로, 특허를 인가받은 특허 등록과 다른 개념이다. ‘자체 개발한 가상화폐에 대한 특허 출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광고 문구에 주의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업체들이 자체 개발했다며 기술력을 과시하는 가상화폐 중에는 ‘알트코인(Altcoin·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화폐를 일컫는 용어)’이 많다. 대다수의 알트코인은 기술적 가치나 희소성이 낮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홈페이지 위조·조작 수법도 날로 고도화하고 있다. 투자금 입금 화면뿐 아니라 가상화폐 매매 화면까지 조작하는 식이다.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에 입금된 예탁금을 사기꾼들 대포 계좌로 빼돌리고, 자체 제작한 가짜 거래소 사이트에서 실제 거래한 것처럼 허위로 매매 내역을 기재해 투자자를 안심시킨다. 화면에 가상화폐 매매가 이뤄지는 것처럼 표시될 뿐, 실제 매매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투자 빙자한 다단계 사기 기승
심지어 시세를 조작하기도 한다. 특정 계정을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소 내부 계정끼리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자전거래’ 방식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해 가상화폐 거래가를 폭등시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거래를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끼리 사고팔며 가격만 올리는 방식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알트코인(잡코인) 거래소에서는 작전 세력들이 자기들끼리 코인을 사고팔면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기범들은 자전거래로 가상화폐 가격을 띄운 뒤 다른 투자자들이 새로 유입되면 고가에 팔아치우고 나가버린다”고 말했다.주식시장에서는 자전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 당국이 이런 거래를 즉각 파악해 잡아내고 처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소에는 금융당국이 개입하지 않아 자전거래를 단속하기가 힘들다. 투자자가 자전거래로 인해 피해를 당해도 구제받기 어렵다. 실명 거래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누구에게서 가상화폐를 샀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가상화폐를 빙자한 다단계 사기 수법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B씨는 보험대리점 사업과 명품직구 대행사업 등 수익사업에 투자하면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 투자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실제 수익사업을 하지 않아 이자는커녕 손해를 입히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B씨가 생각해 낸 묘안은 가상화폐 투자를 빙자한 다단계 사업. 투자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속여 투자금을 모집했다. 또 투자자가 제2, 제3의 투자자를 데려오면 추가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안내했다. B씨는 가상화폐를 자체 개발한 뒤 투자금 대부분을 이전 사업에 투자한 투자자들과 선순위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했다. 먼저 가상화폐를 산 투자자가 뒤에 온 투자자에게 손실을 계속 떠넘기며 눈덩이처럼 부풀리는 구조다. 이런 사업은 투자자가 줄어들면 끝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는 수익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 B씨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인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9월 ‘뱅크런’ 예고 “투자자 보호할 법망 마련해야”
9월 24일부터는 가상화폐 실명 거래제가 도입되면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은 가상화폐 거래소만 영업이 가능하고, 실명 확인이 안 된 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한다. 현재 은행과 실명 계좌 발급 계약을 한 거래소는 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등 4곳뿐이다. 우석진 교수는 “200개가 넘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대부분이 문을 닫아야 한다. 이들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보유해 온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가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책임져 주지 않으면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전문가들은 정부가 합리적인 규제책과 함께 투자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홍 대표는 “금융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주무 부처가 합심해 가상화폐 사기에 대응하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 가상화폐의 성격과 위험성을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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