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공정무역의 옷을 입고 자유무역을 부르짖지만 그 이면을 보면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일본 EU 중국도 마찬가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마다 자국 보호에 나섰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활로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위기와 보호주의가 기회와 자유주의의 길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전직하하면서 씨티그룹, AIG 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파산위기에 몰렸다. 11월 들어서는 금융부문의 신용경색 위기가 실물부문으로 전이돼 미국 자동차 ‘Big3(포드·GM·크라이슬러)’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위기가 본격화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 통상정책의 기조를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상징적인 조치를 하나 취했다.
공공부문에서 정부조달 물품에 대해 자국산 물품의 의무 사용을 강제하는 소위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이 그것이다. 이 조치는 지난 수십년간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아오던 세계 경제에 대공황 당시 무역전쟁의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당시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한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이른바 인근 궁핍화(Beggar-my-neighbor) 효과를 유발, 국가 간 무역전쟁을 유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국을 맞는다.
꼭 이런 어두운 기억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자유무역을 통한 자국 경제의 성장과 그 혜택을 입어왔던 각국은 세계 교역의 보호주의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컸다. 이에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권역별 20개 대표 국가의 정상회담(G-20)이 11월15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여기서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의 조속한 합의 도출에 힘쓰고, 향후 12개월 동안 어떠한 무역장벽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공식 천명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와 인도가 각각 수입 자동차 및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인상조치를 취하고, 이에 대응해 다른 나라들이 연이은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G-20의 굳은 맹세는 말뿐인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당초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자임하려던 유럽연합(EU) 또한 프랑스의 자동차산업 지원을 필두로 연이은 보호무역 조치들을 발동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의 서막을 올리는 데 가세했다. 이처럼 실물 부문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전염되고 있는 초기 각국의 정책공조는 실패한 상황이다.
되풀이되는 과오
기실 국제 통상 환경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국익 차원의 명분이라면 말 바꾸기가 뭐 대수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인(私人)도 아니고 지명도와 책임 있는 대표 국가들 정상 간의 합의조차 이토록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심각성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과거 세계대전 발발 원인을 파시즘, 나치즘 등 이데올로기적 대결에서 찾는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야 그랬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원인은 정치군사적인 면보다도 경제사회적인 면에 있었다.
19세기 말 세계는 급격한 생산력 팽창의 시대로 진입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가 상징하는 대량생산체제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생산·소비되는 상품의 양이 늘어났으니 경제적 후생 관점에서 볼 때는 인류가 이전보다 후생 수준 향상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도 개인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어두운 상황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국가 간 빈부격차 심화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나라마다 처한 경제사회적 편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리카도(D. Ricardo)의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각국은 생산의 비교우위가 있는 부문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역을 통해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후생수준 향상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 간에는 경제 발전 즉, 산업화의 단계가 상이했다. 이는 균형 잡히고 잘 안분된 비교우위 산업부문들이 각국에 골고루 퍼져 있지 못했었음을 의미한다.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부문들이 당시 선진국들에만 상대적으로 몰려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후발국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외국 상품수입으로부터 자국 경쟁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적 규제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물량 자체를 제한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국 기업에 다양한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자국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열을 올렸다. 소위 보호무역주의의 불길이 타오른 것이다.
세계 교역에서 보호주의는 시장 중심의 자율경쟁 구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몸의 혈관이 막히듯 상품과 서비스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제약하게 되었다. 이에 선·후진국 할 것 없이 외국 기업의 활동과 상품 및 서비스 이동에 차별적인 제한이 경쟁적으로 가해졌고, 결국 이는 보호무역주의적 규제의 악순환 현상을 유발, 세계가 무역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미국 대공황기 수출 크게 줄어
1930년 6월 미국의 스무트-할리(Smoot-Hawley Tariff Act)법으로 상징되는 외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역사상 최고 수준의 관세율(40%) 부과 조치는 이러한 무역전쟁의 대표 사례다. 후버 대통령이 서명한 이 고관세법에 따라 약 3200여 개 품목의 관세율이 기존보다 4배 이상 올랐다. 수입이 줄어들었다지만 수출은 더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5억달러에서 본격적 대공황기인 1933년에는 21억달러로 크게 줄어든다. 나머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당시 후발 개도국이던 독일과 일본의 경제난이 가중되었다.
전세계 수입수요가 줄어들자 수출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공장이 하나 둘 멈추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실업자가 늘어나 미국의 실업률은 1929년 6.7%이던 것이 1933년에는 26.1%에 이르게 된다. 이후 몇 년간 회복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는 1930년대 후반 들어 각국이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전 등을 위해 다시 무역장벽을 높이기 시작함에 따라 결국 세계경기의 동반 침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 후발 개도국들은 이러한 세계 경기 침체의 파고를 1930년대 후반에 맞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국가 간 빈부격차 심화와 성장의 한계를 참지 못한 나머지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극우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입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종착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학습한 인류이기에 지금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으로 기대하나 경제위기의 진행 양상은 과거의 교훈에도 반복되는 상황이다.
2월 무역흑자는 수입감소 탓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계 교역 규모가 올해 4~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올 1월 들어 교역 규모가 전년 대비 2.1~2.8% 감소할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이렇게 되면 1975년에 있었던 1.9% 감소 이래 최대 폭의 교역 위축을 맞이하는 셈이다. WTO가 추정한 2008년 세계 교역 규모(상품 및 서비스)가 약 19조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올해 4000억~5000억달러의 교역 감소가 예상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WTO가 매년 발표하는 국제무역통계에 따르면 2007년 세계무역성장률은 2006년의 8.5%에서 6%로 떨어졌다. 경기 침체 본격화에 따른 전세계 수입수요의 급격한 감소를 반영할 경우 지난해 무역성장률은 2%, 그리고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문제는 현재의 세계경기 하강 속도가 이러한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결국 전세계 수입수요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우리 수출산업 시장도 그만큼 더 축소될 우려가 커졌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수출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우리나라 교역의존도는 76%로 중국 64%, 일본 31%, 미국 22%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출이 내수보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교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지금과 같은 급격한 통상환경 변화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올 1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가 2월 들어 다시 33억달러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수출보다 큰 폭의 수입 감소와 조업일수 증가 등에 따른 숫자놀음 비슷한 상황이어서 아직 반전을 기대하기엔 이르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증가율이 지속 하락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경기부양을 위해 연일 자국산 제품 우선 의무 구매 등 보호주의적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 산업인 자동차시장만 보더라도 중동을 제외하고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 대부분의 시장에서 수출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보자. 미국시장은 지난 1월 수출입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18%나 감소했다. 소비심리 또한 악화돼 컨퍼런스 보드(CB·미국의 대표적 경제조사기관)가 발표한 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37.7로, 1967년 지수 산정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4/4분기까지 약 6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가계의 자산 손실은 지금도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가계의 소비를 둔화시켜 향후 수입수요를 더 감소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유럽연합 주요 회원국들과 일본의 수입수요도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우선 중국은 2008년 우리 전체 수출에서 21.7%를 차지하는 최대의 수출대상국이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수입이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여 우리 경제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우리 경제 최대의 해외 생산기지로서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전체 가공품 수출무역의 약 56%를 차지하는 거대 수출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10대 수출대상국인 러시아, 인도, 멕시코 등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의 수입수요도 30~50%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다양해진 보호주의
30년 만에 세계 교역규모의 절대 크기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각국이 쏟아내는 다양한 보호무역주의적 정책들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양상만 다르다면야 큰 문제가 없지만 형식의 다양성과 내용 통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관세, 비관세 장벽 이외에 구제금융지원, 경기부양책 같은 국내 경제정책의 모습을 띤 보호주의 조치들이 급증하고 있다. 아울러 아직까지는 실제 자국 산업과 기업활동에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국가가 사전적이고 선별적으로 강도 높게 개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자유무역에 대한 지난 수십년 동안의 노력을 훼손하고 세계 교역질서를 교란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 이래 상품에 부과되는 전세계 평균 관세율은 26%에서 지난해 상반기 8.8%까지 떨어졌다(‘그림 1’ 참조). 하지만 최근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 등을 명목으로 수입관세를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WTO는 만약 153개 회원국이 서로 합의했던 현 수준의 양허관세율(Applied Tariff Rate)을 최대 허용치인 한계관세율(Bound Tariff Rate) 수준까지 인상하게 되면 교역규모 감소 폭이 전세계 무역의 8.2%, 약 1조6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십년에 걸친 각국의 자유무역을 향한 각고의 노력으로 국가 간 무역장벽은 상당부분 제거됐다. 그 결과 2000년 이래 개도국과 후진국들이 차지하는 세계 수출 비중은 이전의 2배인 42%까지 올라간 상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각국 통상정책의 보호무역주의화는 단순히 수치적 후퇴를 의미한다기보다 국가 간 합의하에 정립된 세계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신뢰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보호무역 조치 시행 국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10대 수출대상국이 모두 포함돼 있다. 지난해 10대 수출대상국은 우리 수출의 76.6%를 차지했다. 이를 우리나라 13대 주요 품목별로 보면 선박류(2008년 수출비중 9.6%), 컴퓨터(2.6%)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품목군에서 직·간접적인 무역규제조치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규제 장벽으로 우리나라 수출시장의 대부분과 상품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주요 교역대상국들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국가별 정책분석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자.
미국 - 명분은 자유주의
미국은 명분상 공정무역(Fair Trade)을 통한 자유무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지만 실제 정책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보호무역주의의 색깔이 짙다. 최근 미국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에 대해 비난이 높아지자 경기 부양안에 대한 상원 구두 표결에서 기존 국제협정을 맺은 나라들에는 적용하지 않을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 철강업계로서는 다행스러운 조치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앞으로 새로운 협정을 체결할 경우엔 보호주의적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협정이야 법을 새로 만들어 체결하면 되니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미 상원 민주당 일각에서는 각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바이 아메리카 조항을 인프라 관련 공산품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경우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IT, 기계류 제품 등 우리 대미 수출품목이 거의 다 영향권에 들면서 공산품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국은 공정무역이라는 명분하에 ‘2008 신무역정책’을 제시하고, ‘2009 무역이행법’을 입안 중이다. 하지만 이런 명분의 이면에는 보호주의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조치가 담겨 있다. 한 예로 지난해 9월 이후 각국 수입품목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품목별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현재는 중국이 21건으로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다. 한국산 스테인리스 철강 파이프 제품도 1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실제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 무역으로부터 고용을 지키기 위해(Safeguarding American Industries and Jobs against unfair trade)’라는 제하의 미 상무부 수입무역국의 정책 입안 및 운영지침에 반영된 내용이다.
또 미 행정부의 신통상정책 5대 핵심 내용을 볼 때도 그렇다. 공정무역 강화, NAFTA 개정, 무역조정지원(TAA) 강화, 해외고용 증대 기업 세금우대 폐지, 국내고용 창출 기업 조세혜택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은 교역 상대국들에는 ‘자유’라는 말보다 ‘보호’라는 말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미국 통상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이 자유무역에 있음을 연일 강조해도 세계가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미국의 공정무역을 명분으로 한 보호주의 정책은 자국의 근로자 고용 창출, 공정한 노동 및 환경 정책 확산 등을 이유로 각국에 대한 무역규제 조치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불황에 처한 미국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 섬유, 철강, 반도체, 가전 등 우리 주력 수출품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 수입량 규제와 같은 보호주의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의 세계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 전성기에 비해 줄어든 건 사실이나 아직까지는 엄연히 국제 통상질서의 규칙 제안자(Rule-Setter)다. 미국의 통상 관련 정책과 법률은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바마 행정부의 신통상정책(New Trade Policy)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 키워드를 빌려 표현하자면 ‘대외협력과 공존(Cooperation and Coexistence)’보다는 ‘미국 경제 우선 회생을 위한 재건(Remaking of the US for Recovery)’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내수 중심 위한 이중잣대
중국도 미국을 견제하기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보호주의로 기우는 모습이다. 중국의 30년 개혁개방정책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의 글로벌 임밸런스(미국과 그 교역 상대국 사이의 막대한 국제수지 불균형) 현상에 대한 용인이 큰 몫을 했다. 즉,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위안화 저평가를 수용해 값싼 중국산 제품을 사줌으로써 중국의 경제 발전을 뒷받침했다.
이에 중국도 그간의 무역수지 흑자 누적에 따른 외환보유액 급증에서 오는 거시경제적 압력과 미국과의 환율 갈등에서 오는 무역분쟁 해소의 필요성을 느끼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은 현실적으로 아직 그럴 여유가 없다. 아직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 8%대 성장률 사수라는 원칙에서 위안화 환율의 적정관리와 이를 통한 수출의 현상유지가 필요한 것이다.
2008년 11월 금융위기 타개책을 논의하기 위해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결국 중국은 통상정책에서 경제성장률 유지와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과정에 발생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호주의와 자유주의의 이중잣대를 활용할 전망이다. 최근 중국 상무부는 바이 차이나(Buy China)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으나 실제로는 자국 기계설비를 사용하는 기업에 제품하자 보상을 해주고 있다. 또 지방 농민층에 1조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 지급을 통해 가능하면 자국산 가전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소위 ‘가전 하향(下鄕)정책’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한국산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며, 인도의 중국산 장난감 수입 금지조치에 대해서는 WTO 제소를 검토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중국 수출에서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중국 기업의 수출상품 3700여 개에 대한 수출세환급정책 재도입, 상하이자동차(SAIC) 등 자국 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구입보조금 지급 같은 무역규제 조치들 때문이다. 우리의 최종 소비재가 중국시장에서 외국산 제품에 비해 상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마케팅, 브랜드 인지도 등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뚜렷한 성과를 못 내는 가운데 중국이 내수중심 경제로 전환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대응이 시급하다.
유럽연합과 일본도 자유무역의 깃발을 내려놓은 모습이다. 바이 아메리카 조항이 나오고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해 최대 미국채 보유국인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2월 초 미국채 추가매입 거부 가능성을 표명하는 등 미중 갈등 개시 초기만 하더라도 유럽연합은 이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담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EU 일부 회원국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금은 보호무역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경기부양책이라는 명분을 걸고 프랑스는 르노, 푸조, 시트로앵 등 자동차 업체에 60억유로를 지원하고 외국기업의 M&A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영국, 스페인, 스웨덴 등은 자동차 업계에 채무보증을 하기로 했고 독일은 오펠에 대한 18억유로 융자 등 EU 공정경쟁법에 저촉되는 무역규제를 늘리고 있다. 일본도 자국 자동차 및 전기전자 업계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수출지원 정책, 대만 반도체 업체들과 엘피다(일본의 대표적 반도체업체) 간 합작 추진을 통한 한국 반도체 업계 견제 등 보호주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EU-일본과 신흥경제권 조정 못해
한국무역협회(KITA) 통계에 따르면 신흥경제권이라 불리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베트남, 남아공, 멕시코, 칠레 등에서도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총 121건으로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 7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설명했지만 최근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방식과 내용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우리 정책당국과 수출업계의 주목과 대응을 요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입 범위의 확대와 강도 증가’라 할 수 있다.
미국발 위기 발생 이후 발표된 각국의 보호주의 통상정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무역규제(관세 및 비관세)와 국내산업 지원책(구제금융 및 경기부양)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정책이 보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는 그 이전 정책들과 유사하다.
그런데 개입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과는 다른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개입 범위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 무역구제 수단인 관세나 비관세(수량제한 등) 조치들 외에 국제규범(WTO) 내에서 다루지 않거나 견제할 수 없는 기법을 통해 개입 범위를 확대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우회적 보호주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인위적 환율조정, 고용보호 목적의 입법과 기업 세제 혜택 부여, 수출세 환급(Export Tax Rebate) 등이다. 나아가 민간부문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 및 채무보증 등도 간접적인 보호무역 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국가 개입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WTO 상품 및 서비스 무역협정(Agreement on Goods and Services)에 의하면 국가는 외국이나 외국기업의 공정 또는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자국의 산업이나 기업이 ‘피해를 받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명시적으로 규정된 관세 또는 비관세’ 조치들을 사용해서 피해를 복구하도록 허용되어 있다. 이를 ‘WTO 무역구제조치’라 하는데, 그 유형으로는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이 있다. 이는 무분별한 무역구제조치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실제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적 조치만을 인정하겠다는 취지이다.
국가 개입 강도 높아져
하지만 최근 각국 무역조치들은 실제 외국과의 무역으로 인한 피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관세 등 무역구제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식의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의 형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WTO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
일례로 WTO 정보통신협정(ITA)상 무선통신기기는 무관세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EU는 TV 기능이 내장된 무선통신기기를 가전제품으로 품목 유형을 변경함으로써 외견상 WTO 규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관세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교묘한 방식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시장경쟁의 영역에 국가 개입의 강도가 세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로,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지방에 수입되는 자동차들 중 ‘오른쪽 운전석 차량’에 한해 수입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일본산 자동차 수입을 견제함으로써 자국 자동차업체를 보호하려는 의도다. 이는 매우 노골적인 국가의 시장 개입으로 역시 국가 개입의 강도가 높아진 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1월까지 조사된 각국의 무역구제 조치 중 피해가 실제 발생하고 WTO 규정에 부합하는 무역구제조치는 전체 38건 중 단 한 건(미국의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 의무화 조치)에 불과하다. 이처럼 WTO가 허용하는 관세 또는 비관세 조치가 아니고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 투입 등 한 국가의 국내 정책 형태를 띤 조치들은 비록 국민경제 회생을 위한 지난한 노력의 부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이 속에 강력한 보호주의적 장벽이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나 2000년 초 IT버블 붕괴 때에도 소위 정책금융(공적자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가 자국 산업과 업계에 대한 지원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 국가의 경제회복 조치에 대해 WTO 국제무역규범 위반이라는 등의 적극적인 반발이 크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영향이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었고 특정 산업에 해당해 피해의 파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의 자국 자동차산업 지원과 대만, 일본의 자국 전자업체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에 대해 ‘EU 경쟁법 위반’ 내지 ‘WTO 불공정 무역관행’이라는 이유로 전세계 이해 당사국 정부와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현재 뜨거운 이슈가 된 ‘Buy American’ 조항과 같은 정부조달 시장에서의 자국산(自國産) 우선 구매 조항, 부실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기관들에 대한 구제금융(공적자금) 투입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보호주의 정책은 타국의 수출 기업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음에도 이를 WTO를 통해 해결하는 데에는 피해 당사자의 입증책임 등 넘어야 할 제약이 많고, 소요기간도 길어 원만한 해결이 매우 어렵다. 해결되더라도 그간의 피해를 보상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주권국가의 국내 정책에 대해 국제기구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크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듯 최근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정책들은 개입영역 확대와 규제방식 고도화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자유무역주의의 성장 이면에서 보호무역주의도 교묘하게 탈바꿈을 해온 셈이다.
최근 쏟아지는 각국의 보호주의적 통상정책들이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업계에 미칠 영향을 산술적으로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조치들이 외국에 수출되는 우리나라 상품의 수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현지 소비수요 감소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수입량 제한(Quota)이나 일방적으로 수입을 중단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 비관세 규제 수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나 영향력은 관세와 같은 가격통제의 경우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분류되는 정책들은 대부분 이런 직접적인 규제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편 국가별로 잇따라 발표된 다양한 경기부양책 가운데 우리 수출기업들에 기회요인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자못 크다. 외국의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 등 자국산업 지원을 위한 국내 정책들이 우리 수출산업에 미칠 수 있는 정성적 영향을 살펴보면 자국 산업 보호와 고용유지, 수출산업 지원 등이 대종을 이루고 있어 우리 수출업계에 대한 기회보다는 위험요인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표 1’ 참조).
신흥경제권에는 기회
특히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부양책은 우리 기업의 해당국 정책과 연관된 사업분야 참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의 부양책은 주로 자국 내 특정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고용유지, 내수소비 진작을 위한 직간접적 세제 혜택 등이 중심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낮다. 실제 미국 정부조달 시장의 경우 지난해 1조20000억달러, 유엔 조달시장의 경우 약 250억달러 규모로 다양한 물품의 판매시장이긴 하다.
그러나 유엔을 빼고 각국 정부조달 시장의 경우 외국 기업의 참여와 상품·서비스 수입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고 절차도 복잡해 기업들 단독으로 시장을 뚫기란 쉽지 않다. 또 이러한 지원책의 직접적 수혜 기업들은 우리나라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기도 하다. 다만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경우 전체 수입수요가 살아나서 우리의 수출에도 도움을 주는 간접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다.
이에 비해 신흥경제권 국가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국가는 제조업 기반 육성을 통해 산업을 다각화하려는 정책 지향과 자원개발, 사회인프라(SOC) 구축 등 기간산업 정비가 경기부양의 주목적이어서 우리 기업들의 연관분야 사업참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공정무역을 표방하며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실리 위주의 무역규제조치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내수중심형 경제로의 이행기에 위안화 절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수출에 매진할 전망이다.
EU와 일본은 환경 분야에서 그동안 구축해온 시장구조와 첨단 기술력을 무기로 무역과 연계한 환경라운드를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신흥경제권 국가들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그동안의 다자간 합의를 뒷전으로 하고 각종 보호무역 규제조치를 양산한다. 이처럼 최근 국제 통상환경은 국가 간 무역갈등 조정과 통상질서 재편에 대한 주도적인 연출자가 없는 상태다. 최근 있었던 선진국 G-7회담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오는 4월5일에 있을 G-20 2차회담에서도 구체적인 정책 공조보다는 눈치 보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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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호전돼 앞으로 세계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보호주의적 통상정책은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한번 인상된 관세나 추가된 비관세 무역장벽들을 다시 원상회복시키거나 감축해나가는 데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국가 간 합의 도출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증유의 경기 침체를 경험한 신흥경제권 국가들은 이번 충격을 통해 시장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우선시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영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보호주의적인 통상환경이 세계 경제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앞서 봤듯이 관세만 하더라도 1986년 비교시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데 20년이 걸렸음을 상기하면 향후 여정의 험난함을 예상할 수 있다.
대응 시나리오 준비해야
이에 우리 정부는 각국의 불공정한 무역규제에 대해 당사국 간 무역분쟁 방지를 위해 사전조정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WTO 무역구제조치와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한 적극적인 대응 시나리오도 미리 수립해놓을 필요가 있다. 또 각국의 무역규제 조치에 의해 영향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출품목을 별도 관리하고, 기업에 무역규제 관련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 기업에도 보호주의 파고를 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수출대상국 정부의 무역관련 정책과 경쟁업체의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하는 가운데 각국 경기부양 과정에서 오는 사업기회에 참여할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또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장이 예상되는 신흥경제권 시장 발굴에 주력하고 유연한 생산공급망관리(SCM) 체제, 물류·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언제 생길지 모를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주의적 통상환경 타개를 위해 국제공조를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세계 FTA 추진이 눈에 띄게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EU FTA가 조기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다수 국가들과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각국 무역규제 영향을 최소화하고, 한미 FTA 비준에도 우회적인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농업부문 이슈로 난관에 봉착한 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 진행을 위해 한-인도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찾아보는 적극성도 요구된다. 즉, 과거 농업부문 협상 경험을 통해 현재 강경한 입장에 있는 인도와 미국 간 농업부문 갈등 완화를 유도함으로써 자유무역 논의가 본 궤도로 복귀될 수 있도록 전방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GCC(걸프협력기구) FTA도 활성화시킴으로써 에너지 자원 확보를 통해 세계 경기 회복 이후의 시점에 대비할 때이기도 하다.
제2의 동유럽발 금융위기, 미국 은행 등 금융기관의 국유화 논쟁, 자동차 ‘Big 3’중 일부 파산 가능성 고조 등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어느 정도나 깊은 상처의 골을 남길지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도 그 끝은 있을 것이고 그후에 다른 도전의 물결이 우리 앞을 향해 다가올 것이다.
세계 경기 회복 이후 상황도 주시
향후 국제 정치경제 질서는 다극화한 ‘샹들리에형’ 체제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미국의 약화된 위상, 중국의 강화된 입지, 신흥경제권 시장의 성장 등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전개다. 이는 미래를 넘겨 짚어볼 때, 지금 벌어지는 위기에 대한 대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대한 준비도 함께 해나가야 함을 시사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지금은 관심권 밖에 있으나 WTO 도하라운드 재개와 환경·노동라운드 등 ‘백 투 더 퓨처’의 상황 전개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주창하는 미국의 공정무역은 보호주의가 아니고 오히려 다자주의 자유무역을 심화하기 위해 그동안 왜곡된 과정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유야 어떻든, 또 보이고 해석되는 것이야 어떻든 현재 보호주의 성향을 띠는 미국의 공정무역 캐치프레이즈는 일순간 자유무역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국 산업과 고용확대를 위해 무역과 연계된 WTO 다자주의 무역라운드로 본격화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EU, 일본 등도 미국을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다자주의 체계를 통해 자국 이익을 옹호하길 바라는 입장이란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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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와 업계가 지금의 상황을 선제적 대응을 통한 체질 강화의 계기로 삼는다면 세계 경기 회복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파이는 훨씬 클 것이다.
미래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위기 발생시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움츠려듦과 동시에 과거로 회귀하는 유인이 강할 수밖에 없다. 역사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위기와 보호주의는 기회와 자유주의의 길로 연결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