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신도시 수출 1호… 80억 달러 규모
- 2018년까지 기반시설 포함 10만 가구 주택 건설
- 2500억 달러 걸린 재건사업서 유리한 고지 선점
“이라크에서 한국 이미지가 아주 좋아요. 놀라웠습니다. 미국에 데어선지 중국, 러시아 같은 큰 나라를 싫어해요. 한국에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식민지를 겪었으며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다 산업화를 통해 일어선 것을 잘 알고 있더군요.”
소년에게 “비스마야에 갈 것인데, 아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소년의 어머니가 “컨스트럭션(contruction·건설)”이라고 말하면서 엄지를 세웠다. 그러곤 “엔지니어로 일하느냐?”고 물었다.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비스마야는 이라크에서 ‘재건’ ‘건축’의 대명사 격이다. 60만 명이 거주하는 신도시를 7년에 걸쳐 건설한다. 누리 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밀어붙이는 100만 가구 건설의 첫 사업. 비스마야에는 2018년까지 10만 가구가 들어선다. 한화건설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총괄 개발’한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은 세계 건설 역사상 단일 기업이 짓는 최대 규모 주택 공사다. 분당 신도시 규모의 주택과 인프라를 한 회사가 도맡아 건설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형 신도시 수출 1호. 바그다드 동남쪽 10㎞ 지점에 위치한 비스마야 신도시 면적은 1830만㎡(550만 평)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6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하루 평균 2만6000명의 인력을 투입하는 대역사(大役事). 공사하는 동안 매일 6400t(레미콘 430대 분량)의 콘크리트가 사용된다.
한국형 신도시 수출 1호
2만6000여 명의 근로자가 거주할 메인캠프 공사현장.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는 “한화건설의 비스마야 프로젝트 수주 덕분에 재건사업에서 한국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는 재건사업에 2013~2017년 25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진국 건설회사는 겁이 많아요. 이라크에 아직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도 없고요. 중동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택사업은 현지 건설사가 사업권을 따낸 후 외국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방식이라 외국 기업이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이라크는 달라요. 오랜 전쟁 탓에 현지 업체가 전멸했습니다. 외국 기업이 이라크 정부와 수의계약을 맺어 수익을 낼 수 있는 ‘블루오션’입니다. 선진국 업체가 경쟁에 뛰어들면 우리가 끼어 들 틈이 없어요. 경쟁국 건설사가 겁먹고 못 들어올 때 고지를 선점한 것입니다.”
방탄조끼 입고 출근
김 부회장이 들려준 2011년 10월의 일화 한 토막. 그는 오전 8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 관료들과 마라톤 협상을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현지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터 김, 미스터 김, 괜찮아요?”
박격포 포탄이 한화건설 캠프 앞에 떨어졌다. 다른 이들은 포격 소리에 놀라 방공호로 대피했는데 잠에 골아 떨어져 포탄 터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것.
“고강 상무(해외사업실장)는 날렵하게 피했더라고요. 보통은 박격포 3발을 쏘고 도망간답니다. 그날은 한 발밖에 쏘지 않았어요. 두 발을 더 쐈다면…. 돌이켜보면 위험한 순간이었는데, 그렇듯 피곤할 때까지 일하지 않았다면 수주를 못했을 겁니다. 포격 사건 이후 ‘미스터 김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종’이라는 소문이 나 협상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1950년생인 김 부회장은 1981~1984년 리비아에서 일했다.
“30대 초반에 리비아를 경험해보지 못했으면 수주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리비아에서 주택 5000가구를 짓는 공사를 했습니다. 당시엔 5000가구도 굉장히 큰 프로젝트였어요. 그때 경험을 토대로 이라크 정부가 만족할 만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테이블에 올려놨습니다.”
2012년 11월 11일 바그다드 세일즈 센터 개소식에서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왼쪽)과 김현명 주이라크 한국대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캠프는 티월(T-wall)이라고 불리는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캠프는 직사각형 형태인데 꼭짓점에 경계탑이 세워져 있다. 경비업체 직원이 AK-47 소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한다. 이라크 경찰이 캠프 외곽을 24시간 감시한다. 12월 초 캠프를 경비하는 경찰이 단골로 찾던 인근 식당에서 폭탄이 터졌다.
2012년 7월 현지에 부임한 조, 이 매니저는 캠프에서 바그다드 시내의 세일즈 센터로 출퇴근한다. 국가투자위원회의 아파트 청약 및 계약 업무를 지원하는 것. 세일즈 센터로 가는 길은 고되다. 5, 6곳의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테러 위험 탓에 출근하다 되돌아오는 일도 이따금 생긴다. 무장 경호원이 탑승한 방탄차에 방탄조끼를 입고 탑승해 경호 받으면서 이동한다. 이라크의 치안 상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장갑차를 앞세우고 무장경호 차량이 뒤를 잇는 형식으로 겹겹의 호위를 받았다.
조 매니저는 “어깨가 무거워요. 회사 역사상 이런 대규모 공사는 처음입니다. 두고두고 자산이 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무겁게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개월마다 4000가구씩 완공
두 매니저가 숙식하는 곳은 임시캠프다. 한화건설은 2만6000명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메인캠프를 짓고 있다. 집 짓는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것.
메인캠프 건설현장은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메인캠프는 여의도(88만 평)보다 넓은 100만 평에 달한다. 주거 및 오피스용 건물 120동이 들어선다. 발전소, 정수장, 하수처리장, 체육·위락시설을 갖춘 ‘도시’다. 김상수 상무(비스마야 신도시 토목담당)가 웃으면서 묻는다.
“끝이 보입니까? 캠프를 한바퀴 돌면 7㎞가 넘어요. 외국인 근로자 2만여 명과 1000명 넘는 한국인이 머물 곳입니다. 작은 신도시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자동차를 타고 둘러본 비스마야 전체 부지는 ‘광활하다’는 단어 외엔 다른 낱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육안으로는 부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8개 지구 58개 단지에 10층 아파트 839개 동이 들어선다.
메인캠프는 2014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완공된다. 임시캠프는 2013년 초 메인캠프로 이동한다. 캠프 완공 후 아파트 공사에 들어가 2018년까지 50개월에 걸쳐 두 달마다 4000가구(잠실 3단지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한다.
2개월에 4000가구씩 아파트를 완공하는 비결은 PC(Precast Concrete) 공법에 있다. 기둥 보 슬래브 벽 등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현장으로 운반·설치하는 방식으로 주택을 짓는 것. 레고 블록 조립하듯 아파트를 짓는다고 여기면 된다. 대량생산 표준화가 가능해 원가절감 및 공기(工期)단축에 유리하다. 메인캠프에 건설될 PC공장에선 매일 80가구를 지을 수 있는 부자재를 생산한다.
이라크 정부는 한화건설이 2018년 이후에도 PC공장 부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앞으로 이라크에서 수주할 공사 때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자재를 사용하거나 외국 업체에 부자재를 납품할 수 있는 것.
군대 닮은 캠프 일상
비스마야 캠프의 하루하루는 군대생활이나 다름없다.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에 식사를 한다. 오전 6시 50분 전 직원이 ‘국민체조’를 함께 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 일한다. “현장은 기강이 서 있어야 한다”고 김상수 상무가 말했다.
직원들은 테러 위험 탓에 캠프와 현장 외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군대에서 이발병을 한 직원이 동료의 머리칼을 잘라준다. 수염이 덥수룩한 이가 많다.
신도시 건설현장의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진다. 이라크인 요리사가 양고기를 굽는다. 한 직원이 “삼겹살이 먹고 싶다”면서 웃는다. 쌀쌀하다. 영상 7도.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이곳에선 돼지고기와 술을 구하기 어렵다. ‘주말’인 목요일마다 터키 맥주 ‘에페스’ 두 캔씩을 직원에게 배급한다. 이슬람 국가에선 금요일이 쉬는 날이다.
60만 명이 거주하는 2018년의 비스마야는 어떤 모습일까? 이라크가 전쟁의 상흔을 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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