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개봉한 블록버스터 ‘백투더퓨처2’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미래가 바로 올해, 2015년이다. 입체영화, 구글 글라스, 화상전화 등 영화 속 상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도 있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아직 요원한 것도 있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은? 영화에서처럼 정말 우리 앞에 나타날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던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도 내게 관심이 있어서 선물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지키지 못할 게 뻔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1990년 1월 우리는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약속대로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다.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연애 경험 없는 내가 그때 할 수 있었던 ‘이벤트’라고는 영화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2’를 같이 보러가는 거였다. 영화는 재미있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상황이라면 내 인생 최악의 영화를 봤어도 행복했을 거다.
영화가 끝나고 KFC에서 그때 인기를 끌던 크리스피 치킨을 뜯으며 약속했다. 10년 뒤 오늘 꼭 다시 만나자고. 지금 헤어졌다가 10년 뒤 다시 만나자는 게 아니라, 10년 뒤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2000년 1월 과연 우리가 다시 만났을까.
현실이 된 영화 속 상상
10년 뒤의 일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100년은 어떨까. 20세기의 문이 열리던 1900년대, 프랑스 화가 장 마크 코테와 빌마르는 21세기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비록 100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책을 분쇄기 같은 것에 넣어 돌리면 그 내용이 소리로 변해 학생들의 귀에 들린다든지, 날개를 단 소방관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끄는 모습이 그것이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그 개념은 이미 구현됐다고 볼 수 있다. 기계장치가 이발을 해주는 그림도 있는데, 날카로운 가위와 칼을 든 기계에 자기 머리를 맡길 사람은 2050년에도 없을 거 같다. 현대의 100년은 기나긴 시간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예측이 쉬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결국 바라는 것을 이뤄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영화 ‘백투더퓨처2’에서는 30년 뒤의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1985년의 30년 후, 그러니까 2015년, 바로 올해가 ‘백투더퓨처2’에서 떠난 미래의 시점이 된다. 2015년이 다가오자 SF ‘덕후’(마니아을 의미하는 인터넷 속어)들은 이미 영화 속의 예측과 실제 세계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예측이 그럭저럭 맞은 경우를 추려보면 3D영화 광고, 구글 글라스, 자동으로 끈을 묶어주는 운동화, 로봇 팔, 수백 개 채널을 갖는 TV, 화상전화 등이다.
‘미스터 퓨전’의 정체
영화에서는 길거리에 서 있는 마티(마이클 J 폭스) 앞에 거대한 죠스의 입체영상이 나타난다. 지금 3D 영화를 보려면 특별한 안경이 필요하지만, 뭐 이 정도는 봐주기로 하자. 구글 글라스 같은 웨어러블 컴퓨터는 이제 대세다. 조만간 스마트폰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거 같다. 자동으로 끈을 매주는 운동화는 나이키에서 2011년 판매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흔하지 않은 걸 보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성공한 예측보다 실패한 예측이 더 흥미롭다. 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했는지, 어떤 기술적 문제가 있어서 실현되지 못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로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타임머신이다. ‘백투더퓨처’ 1편에서는 타임머신 작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번개에서 얻는다. 번개가 지상에 떨어지는 순간의 정확한 장소에 있기 위해 정말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진다. 2편에서는 ‘미스터 퓨전’이라 불리는 에너지원이 나오는데, 음식 쓰레기를 넣으면 작동한다. 핵융합을 영어로 ‘뉴클리어 퓨전(nuclear fusion)’이라고 하니까, 영화 속 ‘미스터 퓨전’은 핵융합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핵융합 에너지는 인류가 갖게 될, 그러나 아직 갖지 못한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핵’이라고 했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원자력발전과는 다르다. 원자력은 우라늄 같이 질량이 큰 원자의 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이때 방사능을 띤 부산물이 발생해 문제가 된다. 하지만 핵융합은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를 결합해 에너지를 얻고 그 부산물로 헬륨을 얻는다. 한 모금 마시면 목소리가 이상해지는 그 헬륨 말이다.
핵융합의 원료는 수소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해 얻을 수 있으니 거의 무한한 에너지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나 삼중수소를 써야 하므로 주변의 아무 물이나 연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수소 가운데 0.0156%만이 중수소이고, 삼중수소는 0.00000000000000001%에 불과하다.
핵융합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사람은 맑은 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된다. 태양의 에너지원이 바로 수소 핵융합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융합 발전을 하겠다는 것은 지구에 작은 인공 태양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태양과 같이 뜨거운 것을 담아둘 그릇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핵융합 물질을 공중에 띄우는 방법이 사용된다.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물질을 빙빙 돌려 도넛 형태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덕연구단지의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열한시’라는 국산 SF 영화에 거대한 타임머신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핵융합로 KSTAR다. 핵융합로를 타임머신이라 했다고 당시에 과학자들끼리는 낄낄거렸는데, ‘백투더퓨쳐2’의 타임머신을 보니 그때 낄낄거린 거 취소한다.
핵융합 발전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과연 언제쯤 상용화되느냐고 물으면 ‘30년 후’라는 답을 듣게 될 거다. 30년 전에도 답은 같았다.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영화에서처럼 쓰레기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음식 쓰레기를 먹은 동물이 자동차를 끌면 모를까. 그렇다면 초광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루돌프 사슴이 필요할 거다.
호버보드야, 로켓이야?
자동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화에서는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늘에는 표지판들이 떠 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친숙하다. 미래 도시는 언제나 하늘을 가득 메운 비행선들로 묘사되니까. 장 마크 코테와 빌마르의 그림에도 날아다니는 수많은 비행체가 2000년의 하늘을 채우고 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첫 비행을 한지도 110년이 지났지만, 아직 개인 비행기는 갑부들만의 전유물이다. 이착륙에 거대한 활주로가 필요해 자동차같이 운용되기도 힘들다. 활주로 부속건물만한 집 한 채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활주로가 필요 없는 수직 이착륙기는 아직 군에서만 쓰이는 첨단 장비다. 헬기는 너무 비싸서 일반인은 무선조종 헬기 장난감 정도나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더구나 공중비행은 육지주행보다 많은 연료를 소모한다. 지금의 에너지 비용을 고려해보건대,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지금의 기술 및 경제력으로 조만간 실현될 일이 아니다. 당분간 비행 자동차보다는 무인자동차가 이슈일 듯하다.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것은 아직 먼 미래 이야기라고 해도, 영화에서 날아다니는 호버보드는 아주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2014년 그렉 핸더슨이라는 발명가가 만든 호버보드는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원리를 사용한다. 쉽게 말해서 호버보드 아래에 자석을 달고 땅바닥에도 자석을 달아, 자석 사이의 반발력으로 띄우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기력은 영구자석이 아니라 전기를 흘려 생성되는 전자석에서 얻는다. 즉, 아무 곳에서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금속판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언뜻 생각하기에 공기를 분출하는 호버보드가 가능할 것 같지만, 자칫 로켓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그만한 분사력을 얻으려면 등에 어마어마한 장비를 짊어져야 할 것이다.
가장 잘못 예측한 미래
영화가 잘못 예측한 미래의 모습에는 기술적인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로봇은 우스개로 넣은 것이지만,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럴 바에야 뭐하러 애완견을 키우겠나. 더구나 기계가 오작동하는 날엔 그야말로 ‘개판’이 될 것이다. 비스킷만한 건조피자를 하이드레이터란 기계에 넣어 패밀리 사이즈 피자로 만드는 기계도 나오는데, 크기를 얻되 맛을 잃는다면 무용지물일 듯하다.
개그콘서트의 ‘우주라이크’는 알약 음식에 지친 우주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알약이 실제 우주비행사들에게 지급되기는 하지만, 사람은 알약만으로 살 수 없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치아와 위장이 적당히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음식을 알약 몇 개로 만드는 것은 SF에 종종 등장하는 아이템이지만, 음식 씹는 기쁨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다. 삼겹살맛 나는 알약과 상추맛 나는 알약을 삼키며 소주 한잔 찾을 사람은 없을 거다. 차라리 가상현실을 이용한 음식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인다.
1988년 6월, 권위 있는 물리학 저널에 SF 같은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저자는 마이클 모리스, 킵 손, 울비 유어새버트, 논문 제목은 ‘웜홀, 타임머신, 작은 에너지 조건’이었다. 킵 손에 의한 그 유명한 타임머신 논문이다. ‘백투더퓨처2’가 개봉되기 9개월 전이니까, 이 논문이 ‘백투더퓨처2’에 영감을 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문의 아이디어는 ‘인터스텔라’에서 대박을 터뜨린다. 타임머신에 대해 심각하게 쓰인 정통 물리학 논문이 이것 말고 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타임머신은 원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백투더퓨처2’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서 결정적으로 실패한 예측은 다름 아닌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이 정말 미래에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날아온 시간여행자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물리학에서 시간은 대단히 이상한 존재다. 누구나 시간을 느끼며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과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지금은 분명 시간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 흐른다는 것인지, 정확히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다. 1초 전과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만큼 물리학자를 당혹하게 만드는 질문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물리학자들은 아직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수학적이며 진리적인 절대시간은 외부의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흐른다”라고 썼는데, 그에게 시간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였다.
이게 뭐 대단한 생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에게 시간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었다. 봄이 되면 한 해가 시작되고,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된다. 계절에 따라 해가 뜨는 시간이 바뀌니 시간도 바뀌는 셈이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 정도 돼야 천체의 운동을 기준으로 객관적 시간을 생각할 수 있었다. 뉴턴은 자신의 절대시간을 지구의 자전, 공전을 바탕으로 하는 천문학적 시간과도 구분한다. 하루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고, 1년이 정확히 365일도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뉴턴은 시간을 수학적인 존재로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의 개념을 무너뜨린 것은 유명하다. 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라, 그 의미를 알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는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물론 실제의 세상에서 일정한 속도로, 즉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KTX를 탔을 때, 열차가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일정한 속도가 아닌 거다. 진정한 등속운동을 느끼려면 우주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 우주비행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드니까, 간접체험이라도 하려면 영화 ‘그래비티’를 보시라.
등속운동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상대적인 거다. 내가 우주 공간에 서 있다고 하자. 내가 보기에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친구 우주인이 있다. 그 친구 처지에서는 자신이 정지하고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으로 둘 다 옳다. 여기까지는 갈릴레오도 알았다.
자, 이제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내가 보기에 친구의 시계가 느리게 가고, 친구가 보기엔 내 시계가 느리게 간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대개 이쯤에서 멘붕이 온다.
결국 우주에 표준시 같은 것은 없다. 시간이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관측자가 지나온 과거 전체가 시간을 결정한다. 모르는 사람을 그 출신 학교나 학위, 이전 직업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거랑 비슷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과거를 알아야 한다. 시간도 그렇다는 거다.
시간여행 설정의 오류
이런 관점에서 시간여행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여행이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시간에는 절대 기준이 없는데, 한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물리적으로 시간여행은 서로 다른 속도로 시간이 진행된 관측자들이 만나서 서로 시간을 비교하는 행위일 뿐이다.
두 사람이 처음에 시계를 맞추고 출발했을 때, 나중에 다시 만나서 보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서로 다르다. 시계가 느리게 간 사람은 시계가 빠르게 간 사람의 처지에서 과거에 해당하고 그 반대는 미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교해서 나온 결과일 뿐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시간이 올바른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성이론은 시간이 관측자에 따라 다른 속도로 진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속도만 다를 뿐 진행방향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증가하기만 한다. 즉 관측자가 시간을 되짚어 돌아가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투더퓨처2’에서처럼 마티가 30년 후의 미래로 가는 것은 가능하다. 마티가 탄 타임머신 내부의 시간은 1초 흘렀지만 타임머신 밖의 세상은 30년이 지났다. 여기까지는 물리적으로 괜찮다.
물론 이런 엄청난 시간 차이를 얻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지구의 모든 자원을 다 끌어와도 이런 속도를 얻기는 불가능할 거다. 아무튼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백투더퓨처2’는 과학영화인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시간여행과 관련해 큰 오류가 하나 있다. 30년 뒤의 세상에는 마티가 없어야 한다. 마티는 타임머신을 탔고, 그 상태로 시간이 느리게 흐른 뒤 타임머신에서 내렸다. 결국 마티는 30년 전에 행방불명됐어야 한다. 영화 후반부에 과거로 돌아가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니 논외로 하겠다.
1990년 우리는 ‘백투더퓨처2’를 SF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하지만 불과 30년 만에 영화 속의 많은 내용이 현실이 됐다. 물론 상상으로 남은 상상도 많다. 당시의 상상이 주로 물리학적인 내용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이제 다시 30년 후를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이 예상되는가. 아마 생명과학적인 예측이 많을 것 같다. 물론 지금과 같은 기술 발전 속도라면 10년 뒤도 예측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2000년 1월, 나는 그 여학생과 다시 만나지 못했다. 1993년 여름,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10년은커녕 3년 후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2000년이 됐을 때, 그녀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녀의 행방은 알 길 없었고, 이미 나도 이 세상 최고의 여자와 결혼한 다음이었다. 지금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 1월로 돌아가서 데이트를 하더라도,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다시 할 것 같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지만 말이다. 시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영원히 남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