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南 석유 1%로도 北 경제 잘 돌아가는 이유

경제 제재 불구 평양 휘발유값 L당 1달러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10-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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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출 막힌 석탄으로 발전기 돌려 경공업 생산량 증가

    • 자력갱생 경제구조가 제재에 내성(耐性) 갖게 해

    • 농업 생산량 증대로 식량 가격도 안정세

    평양 여명거리.

    평양 여명거리.

    경제난이 휘몰아쳤으나 바뀐 환경에 순발력 있게 대응한 이들은 살아남았다. 국가 배급이 끊기자 살림집 화장실에서 양계(養鷄)했다. 닭을 시장에 내놓아 곡식으로 바꿨다. 아파트에서 돼지를 키운 사람도 있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다. 

    “똑똑한 이들은 버텨냈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나가떨어졌다.”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중국 관리의 후일담(後日談)이다. 

    북한은 1990년대 경제난 때 재정이 붕괴했다. ‘계획경제’는 주민을 먹이지 못했으나 ‘시장’의 힘은 위대했다. 국가는 쌀을 못 줬지만 시장이 만든 부가가치가 주민을 살렸다.

    市場이 가져다준 경제의 역동성

    ‘국가’는 허덕였으나 적응력을 발휘한 ‘개인’은 부(富)를 쌓았다. 중국과의 무역 혹은 되넘기장사(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장사)로 자본을 축적한 이들이 도처에서 생겨났다. 국가는 가격 통제권을 잃었다. 시장이 가격을 좌지우지했다. 



    북한 원화가 가치를 잃으면서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가 교환 수단이 됐다. 외환시장(외화 암거래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식당·목욕탕·이발소 같은 서비스업 운영권은 개인에게 넘어갔다. 

    중간 상인을 고용하고 ‘가공주’(물품을 제작하는 사람)를 거느린 ‘돈주’가 등장했다. 자본가가 탄생한 것이다. 고용-재고용 관계가 나타났으며 개인들이 경제 동향을 점검해 재화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정했다. 

    재정이 고갈된 국가는 개인·기관·기업에 자력갱생(自力更生)을 요구했다. 관료에게 돈을 주며 일을 시키지 않았다. 돈은 독립적으로 벌어서 살고 정해진 돈을 국가에 입금해야 영웅이 되고 훈장을 받았다. 

    시장화의 결과로 인플레이션도 거셌다. 계획경제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은 물가 상승을 쫓지 못했다. 교수, 교사, 의사, 간호사 같은 직종이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에서 식량을 못 구한 이들이 굶어 죽었다. 살길을 찾아 압록강, 두만강을 건넌 이들도 있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시장을 허용한 것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서다. 자생적으로 돋아난 자본주의 맹아를 추인(追認)한 것으로 7·1 조치로 시장화가 일어난 게 아니라 시장화가 7·1 조치를 가져왔다. 

    7·1 조치는 북한 경제의 시장화와 자본주의적 전환 속도를 가파르게 했다. 1990년대 중후반 대기근의 비극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시장이 경제에 역동성을 가져다줬으며 부(富)를 향한 욕망을 멈추지 않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적 인간)를 탄생시켰다. 

    북한 경제구조는 “유사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대니얼 튜더, ‘조선자본주의공화국’)로 진화했다. 사랑을 나누길 원하는 남녀에게 방을 대실해주는 가내(家內) 비즈니스가 활성화할 만큼 ‘사회주의 인민’은 돈을 향해 움직인다.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성장률 年4%”

    남북 통일농구대회가 열린 7월 3일 촬영한 평양 거리(왼쪽), 7월 5일 평양시민들이 출근하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통일농구대회가 열린 7월 3일 촬영한 평양 거리(왼쪽), 7월 5일 평양시민들이 출근하며 거리를 지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중국 관리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북한 경제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북한 경제의 오늘날 상황은 7·1 조치가 뿌려놓은 씨앗이 아주 느린 속도로 열매 맺은 것이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 제재를 받지 않았다면 성과가 더욱 빠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7·1 조치는 한국에 알려진 것보다 더 파격이었다. 

    중국 조선족으로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를 지낸 조호길 박사는 “7·1 조치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보다 더 큰 개혁이다. 자영업을 포괄적으로 허용한 것은 물론이고 개인 투자까지 가능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성장률이 연간 4%에 달한다고 봤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나라는 기름과 고무 빼곤 모든 자원을 다 가졌다. 자력갱생이 가능하다’다. 북한 과학기술이 기초연구에 매달려왔는데, 과학자들을 응용과학으로 돌리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생각도 가졌다. ‘핵을 갖고 강국이 됐다, 감히 나를 못 건드린다, 경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진 상황이다.” 

    2010년 무렵부터 북한 경제가 그 나름대로 도약한 것은 자원 수출과 노동력 송출에 힘입은 바 크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전까지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던 것도 도움을 줬다.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송금한 외화가 해가 갈수록 늘었다. 러시아 극동지역 건설 현장과 농장은 북한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았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북한 노동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중국 경기가 좋았으며 석탄 가격도 폭등했다. 북한 경제에 ‘로또 같은 외화’가 들어왔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북한과 교역한 중국 기업 18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킥백(kickback·리베이트)으로 북한에 들어간 외화만 많을 때는 연간 4000억 원에 달했다. 킥백은 매출의 7%가량으로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석탄을 팔고 차액 중 일부를 되돌려 받는 형태다. 

    평양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솟은 마천루와 마식령스키장, 원산 개발은 로또 같은 외화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2014년부터 지하자원 가격 하락으로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이 감소했으나 이후에도 북한 경제는 그 나름대로 성장했다. 6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석탄 수출과 인력 송출을 막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석탄 중심 에너지 소비 구조

    북한은 한국 석유 소비량 1%로 1년을 산다(2016년 기준 한국 석유 소비량 9억2000만 배럴, 북한 석유 소비량 추정치 900만 배럴). 

    북한에서 주유소는 ‘연유판매소’로 불린다. ‘휘발유’와 ‘디젤유’를 판다. 연유(燃油)는 연료로 쓰는 기름을 뜻하는 한자어다. 연유판매소를 운영하는 회사로는 ‘유성’ 등이 있다. 석유가 거래되는 시장이 존재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은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했다. 50만 배럴은 한국 정유회사가 하루에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의 16%에 불과하다. 중국, 러시아의 숨통 틔워주기와 밀수를 통해 북한이 실제로 확보한 원유는 50만 배럴보다 훨씬 많으리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에너지는 북한이 자력갱생 원칙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 분야다. 북한이 보유한 지하자원 활용도를 최대로 높이면서 에너지 수입을 최소로 억제했다. 북한 에너지 소비는 석유가 아닌 석탄 중심이다. 민간 석유 소비는 자동차 연료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수송에서도 철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화학 산업도 석탄을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 

    고체연료에서 액체연료로의 에너지 혁명은 세계 에너지 소비 구조를 석유 중심으로 바꿔놓았으나 북한은 석탄 중심 정책을 고수했다. 상시적으로 경제 제재를 받아왔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에너지 자력갱생은 한계가 분명한 정책이며 석유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선박을 비롯해 해외에서 들여온 기계 설비를 돌리려면 석유가 필요했다. 소련 붕괴 이전에는 소련의 지원으로 충당했으나 1990년대부터 그 자리를 중국이 대신했다. 

    제조업도 자력갱생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국내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 목표였다. 2010년대에 들어와 중국 기업 하도급을 받아 공장을 돌리는 형태의 봉제 산업이 급성장했으나 경공업 산업 또한 수출보다는 내수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공산품 품질 개선됐으며 생산량도 늘어”

    핵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수위가 날로 높아졌는데도 북한 경제가 현재 그 나름대로 돌아가는 것은 이 같은 자력갱생 경제구조 덕분이다. 앞서의 중국 관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제재가 이어지다 보니 내성이 생겼다. 자력갱생 구조로 경제를 짜놓았기에 빠르게 발전은 못 해도 그 나름대로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유엔 제재로 석탄 수출이 막히자 남아도는 석탄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 생산을 늘림으로써 경공업 생산량을 늘렸다. 제재의 역설이다.” 

    물론 석유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 북한은 버티지 못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인도적 차원에서 석유 완전 금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북한 각지의 종합시장은 2010년 200개에서 2017년 468개로 늘어났다. 시장 활동에 지속적으로 자유를 보장해준다. 2012년 6·28 조치의 농업 개혁도 후퇴 없이 이어진다. 6·28조치를 통해 집단농장 경작 단위를 사실상 농가 단위로 나눴다. 10~25명 단위의 분조를 4~6명으로 축소한 것이다. 

    최근 2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크게 강화됐는데도 북한의 식량 가격은 매우 안정돼 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농업 개혁으로 생산량이 늘어 북한 내 식량 공급이 원활하다”고 했다. 

    공산품 품질도 개선됐으며 생산량도 늘었다. 생활용품 겉모습도 깔끔해졌다. 한국 공산품 포장 디자인을 참조한 듯한 제품이 늘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따르면 과거에는 시장에서 팔리는 공산품 90%가 중국산, 10%가 북한산이었는데 최근엔 북한산 80%, 중국산 20%로 역전됐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20년 가까이 북한 시장조사를 해왔다. 

    김영환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6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 수위가 높아진 올해 초 북한 휘발유값은 L당 2~2.5달러를 오갔다. 9월 휘발유값은 L당 1달러 수준이다. 한국 돈 1100원가량인데 국제 시세로 볼 때 완전한 정상 가격이다. 제재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현재 북한 상황은 제재가 이어지면 경제 발전은 어려우나 그렇다고 경제난으로 가는 상황은 아니다. 가난하되 경제는 제재 속에서도 돌아간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9월 2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내놓은 발언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경제 제재로 우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모르는 망상이다.” 

    북한의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과 군축 협상을 벌이거나 핵 능력을 유지한 채 제재 해제를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 나름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협상 국면을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이 평화라는 당위(當爲)만 외치면서 국면을 관리하면 원하지 않는 지점으로 끌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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