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제주는 크립토밸리로 간다. 암호화폐 깃발을 꽂아라”

‘블록체인 신대륙’ 개척 원희룡 제주지사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10-24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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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도 1도가 수천㎞ 차이 낳아

    • ICO(암호화폐공개) 허용

    • 제주가 샌드박스형 특구 최적지

    • 블록체인은 미래 먹거리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향한 현대판 골드러시가 뜨겁다. 광활한 영토, 평등한 관계가 새로 열린다. ‘블록체인 암호화폐 기술’은 플랫폼 생태계를 재구성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블록체인에 ‘꽂혔다’. “일자리, 먹거리를 내놓을 혁신 산업”이라며 블록체인 전도사를 자처한다. ‘제주 블록체인 특구’를 향한 외부 시선도 뜨겁다. 10월 2일 제주도청(제주시 문연로)에서 그를 만났다. 

    - 2년 전 ‘어떤 공부, 어떤 고민을 하나’라는 질문에 “초보적인 소프트웨어 코딩을 배운다”고 했다. 느낀 게 있을 것 같다. 

    “전문 프로그래머 영역이 아니라 툴을 사용해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기초 수준을 경험했다. 코딩은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잡한 문제를 부분별로 나눠 정복하고 정확한 답을 찾고자 조건별로 차근히 생각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학생들의 문제 해결력과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고자 체험과 토론 중심으로 이뤄진 ‘제주로 온 코딩(on coding)’ 사업을 진행한다. 아이들과 부모님들 반응이 아주 좋다. 어릴 적 경험하고, 자극받으면 각인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기회 생겨”

    - ‘붉은 깃발법’까지 거론할 것은 아니더라도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는데 정치와 정치인은 지체됐다는 평가가 있다. 

    1826년 영국에서 제정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은 “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다녀야 한다”면서 시속 30㎞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시속 6.4㎞ 이내로 달리도록 제한했다. 자동차 산업 주도권이 독일, 미국으로 넘어간 배경에 마부들의 기득권을 보호한 붉은 깃발법이 있다. 그는 “정치와 정치인이 지체됐다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은 불편하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의 것을 부정한다. 늘 깨어 있으려면 에너지와 비용이 소모되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기회가 생긴다. 그렇게 해야 열매가 우리 것이 된다. 남이 해놓은 결과를 따라가는 형태로는 현상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정치인들도 노력은 하는데 정체가 심각한 분야가 있다. 혁신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 지체되게 마련이다.” 

    8월 30일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청와대에서 ‘제1차 민선 7기 시도지사 간담회’가 열렸다. 단체장 17명에게 주어진 발언 시간은 각 3분이었다. 그는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달라면서 6분간 속사포처럼 구상을 쏟아냈다. 제주를 스위스 추크 같은 ‘크립토밸리(암호화폐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 청와대에서 피드백이 있었나.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했다. 토론도 했다. 제주도와 중앙정부 간 진지한 대화와 검토가 오가고 있다. 빠른 답변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답변을 바란다.” 

    - 블록체인 기술은 개념을 이해하기도 버겁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 데이터 처리 기술’이다. 기존에는 각 주체(노드)가 거래할 때 신뢰 문제를 공신력을 부여받은 제3자가 보증했다면, 블록체인은 주체 모두가 데이터를 교차 검증하며 신뢰를 보증한다. 모두가 장부를 보관하고, 주기적으로 새 블록이 생기며 새 장부가 블록에 들어간다. 새 장부가 들어 있는 새 블록은 기존 장부 블록과 연결된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노드가 많아질수록 새 블록이 생기기 전 해킹할 주체가 많아지므로 블록체인이 확장될수록 해킹이 매우 어려워 보안성이 뛰어나다. 보안성 덕분에 중앙집권적 검증 주체 없이도 주체 간 데이터 공유 및 거래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각광받는 것은 이 같은 특징 덕분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까지 전 세계 총생산의 10%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되리라고 예측한다.”

    “도박 산업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어”

    - 제주도를 블록체인 특구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어떻게 나왔나.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블록체인을 두고 각축하는 까닭이다. 제주도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현재 정책 방향으로는 블록체인 잠재력을 온전히 살려내기 어렵다고 봐서다. 블록체인이 활성화하려면 규제를 명확히 해줘야 한다. 마음껏 활동할 울타리를 세워야 합법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제주는 특별자치도라는 점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또한 블록체인은 출발부터 글로벌 사업이다. 국제자유도시라는 지향을 가졌기에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꽃피우기에 적합하다. 또한 두뇌 산업이므로 제주의 청정 환경과 조화·공존이 가능하다.” 

    - ‘샌드박스형 글로벌 블록체인 특구’라는 게 구체적으로는 어떤 의미인가. 

    “샌드박스는 어린아이가 갖고 노는 모래판이다. 모래판 안에서 아이들은 모래성을 만들고, 모래동굴을 판다. ‘규제 샌드박스’는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규제의 최소한은 유지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공간을 뜻한다. 제주도가 추진하는 샌드박스형 블록체인 특구는 암호화폐와 관련한 시장 질서를 만들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 규제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동시에 필수적 규제와 기준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 마’라면서 무조건 금지하는 게 아니라 틀을 만들어 그 안에서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취지다.” 

    - 먹고사는 일이 급한데 뜬구름 잡는다는 시각은 없나. 

    “블록체인 개념을 이해하는 분들은 응원과 격려를 한다. 구상은 좋은데 잘 되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개념을 잘 모르는 분들은 도박 산업이라든지 카지노가 들어오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오해에서 비롯한 우려는 이해를 넓히면 된다. 블록체인은 세계적으로 미래 먹거리의 핵심 의제다. 2030년까지 블록체인 유관 시장이 3조16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다는 예측도 있다. 세계 각국이 블록체인 시장을 선점하고자 각축전을 벌인다. 기술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초기 단계라 와닿지 않다 보니 뜬구름 잡는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블록체인이 이런 거구나’ 체감할 다양한 사업 모델을 발굴할 것이다. 농축산물 이력 관리, 부가세 환급 등에 블록체인 적용을 검토 중이며 향후 더 많은 체감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토큰 이코노미’가 온다

    9월 11일 ‘제주경제와 관광포럼 100회 기념 특별세미나’에서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9월 11일 ‘제주경제와 관광포럼 100회 기념 특별세미나’에서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블록체인 특구가 제주도와 대한민국 경제와는 어떻게 연결되나. 

    “제주도 경제부터 보자. 블록체인 특구가 꾸려지면 개발 회사, 암호화폐 거래소, 규제 관련 기관, 전문 서비스 인력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한다. 제주에 법적 근거를 두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 혁신과 일자리가 창출된다. 국제회의, 연구 활동과 연결된 서비스도 흥성한다. 

    한국 블록체인 인재들이 명확하게 규제하되 합법적으로 활동할 공간에 목말라 있다. 우수한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게 현실이다. 국부가 유출되는 것을 국내로 돌리는 것으로도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한다. 또한 성공적으로 블록체인 특구가 안착하면 글로벌 흡인력을 갖출 수 있다.” 

    - 정부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ICO(암호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를 별개로 본다. 암호화폐, ICO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블록체인만 육성하겠다는 태도다. 

    “블록체인만 육성하고 암호화폐는 금지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근본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 제한적 참여자 사이의 블록체인인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암호화폐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확장성 있고 개방된 퍼블릭 블록체인 구조에서는 암호화폐를 떼어놓을 수 없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핵심 인센티브 장치다. 단순한 블록체인이 적용된 개별 탈(脫)중앙 애플리케이션 모델이 생기는 것을 넘어 암호화폐 플랫폼에 얹힌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조성되는 ‘토큰 이코노미’의 구조를 보여주는 게 블록체인 산업의 흐름이다.
     
    암호화폐를 억압하고 블록체인만 살린다는 것은 생태계 전체가 아니라 개별 애플리케이션만 구현하겠다는 시각으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 블록체인 개념의 핵심은 중앙이 독점한 데이터를 대중에게 분산하는 것이다. 근본적 혁신은 이 같은 블록체인의 플랫폼 기능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들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꾸리고 있는데 한국은 그것에서 비롯한 소프트웨어만 사다 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싸이월드는 몰락하고 페이스북은 살아남는 일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블록체인 특구가 필요하다. 블록체인과 관련해 각도 1도가 나중에 수천㎞의 차이를 낳을 수가 있다.”

    “국내 기업 해외 나가 ICO 하는 게 현실”

    그가 언급한 ‘토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경제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토큰 이코노미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토큰 이코노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시시각각 등장하고 변화하는 개별적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모델이 아니라 거대한 블록체인 플랫폼과 그에 얹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거대한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고, 코인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할 재원을 마련하고, 구상을 실현해 확산하는 매우 혁신적 생태계가 토큰 이코노미의 기본 양상이다. 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타날지는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떠오른 ICO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ICO는 사업 주체가 발행한 암호화폐 토큰(Token)을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펀딩 방법이다. ICO는 투자금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IPO(Initial Public Offering·비상장기업이 유가증권 시장이나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주식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팔고 재무 내용을 공시하는 것) 및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자금이 필요한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 블록체인 업계의 관심사는 제주도가 어떤 수위로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인지다. 그중에서 핵심은 ICO다. 

    “지난해 9월 4일 정부가 증권 형식 ICO는 처벌한다고 밝히더니 같은 달 29일에는 모든 유형의 ICO 전면 금지를 선언했다. 이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으나 이제껏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모든 유형의 ICO를 금지할 명확한 법률적 근거는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한다는 선언은 있으나 엄밀하게는 법적으로 ICO가 금지된 상태는 아니다. 지금 상태로도 유사수신행위금지법, 자본시장법, 형법 등 기존 규정의 유권 해석을 통해 금지된 유형의 ICO는 처벌받는다. 기존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ICO의 경우도 기업인들은 잠재적 처벌 및 불이익 등 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내에서 ICO를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ICO를 진행하는 실정이다.” 

    - ‘제주 블록체인 특구’에서 ICO를 허용할 것인가. 


    “나는 풀자는 입장이다.”

    월드와이드웹 이후 가장 혁신적 발명품

    그가 덧붙여 말했다. 

    “개인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우려를 잘 안다. 제주도는 다음과 같이 대안을 제시한다. 1단계에서는 ICO에서 개인투자자를 배제한다. 초기 단계에는 몰라서 속을 염려가 없는 기관투자자만 참여해도 충분하다. 2단계에 가면 개인투자자가 참여하는데 총량을 규제할 수 있으며 보호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ICO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후 이를 검증해 단계적·점진적으로 ICO 허용 가능 범위를 넓히는 방향이다. 결코 무제한적 ICO 허용을 추진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ICO를 유형별로 세분화해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ICO부터 우선적으로 허용한다. 이를 지켜보며 시장이 성숙하고 검증 데이터가 쌓이면 가능한 ICO 유형을 조금씩 넓혀간다. 사기에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것이 문제지 암호화폐가 잘못인 것은 아니다. 조세 회피, 외환 도피, 자금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으나 세금을 매기는 등 규칙을 만들고 엄격하게 규제하면 될 일이다.” 

    - 블록체인을 두고 월드와이드웹 이후 가장 혁신적 발명품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한국을 달군 암호화폐 광풍 탓에 투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광풍’으로 불릴 만큼 지난해 말, 올해 초 암호화폐 시장이 극도의 불안정성을 나타냈으나 ICO 전면 금지 선언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근본 처방이 아니다. 물론 투자자를 급박히 보호하고자 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선언한 배경은 얼마간 이해하지만 단기 대증요법일 뿐이다. 명확한 기준과 규제를 마련해 새로운 기술이 만든 거대한 시장을 제도권 내로 끌어오고 잘 관리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 스위스 추크, 싱가포르, 몰타, 모리셔스, 에스토니아 등이 블록체인 선도국으로 불린다. 이들 국가는 실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나. 

    “ICO레이팅(rating)이라는 조사업체에 따르면 2017년 국가별 ICO 규모 순위는 싱가포르가 2위, 스위스가 3위, 에스토니아가 4위다(미국이 1위). 인구·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국가가 국제적 블록체인 시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전 세계 많은 자본이 실제로 이들 국가로 모여들고 있으며, 선도국들은 모집된 자본을 묶어두고 현지인을 고용하게 하는 조치를 취해 편익을 누린다. 한국 기업인 다수도 싱가포르, 스위스 등 해외에서 ICO를 한다. ICO를 하고자 현지 법인 설립, 현지인 고용, 법률 자문 등에서 기업당 수억 원대의 돈을 해외에서 쓰는 실정이다. 블록체인 선도국들이 ICO를 무차별적으로 허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핵심이다. 기존 법령으로 포섭 가능한 ICO는 기존 법령을 적용하고, 기존 법령 적용이 모호한 유형은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이 선도국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새로 등장한 ICO를 제도권 안으로 적극 끌어와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다.”

    “제주로 이전하겠다는 기업 꽤 있어”

    - 제주 블록체인 특구는 스위스 추크의 ‘크립토밸리’ 모델을 떠올리면 되나. 

    “ICO를 허용해준 동네를 그냥 크립토밸리라고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크립토밸리는 세제 혜택이 굉장히 많다. 전통적으로 낮은 법인세를 바탕으로 금융업에 강점이 있는 곳에서 ICO를 제도권으로 끌어왔다. 법인세는 제주도가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없으며 연방제인 스위스와 법체계가 달라 추크의 규제 모델을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위스, 몰타, 에스토니아 등 국가 또는 지역마다 처한 배경이 사로 다르다. 특정 모델을 따라가기보다 다양한 모델을 분석해 제주에 가장 맞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 러시아, 베네수엘라는 국가 차원에서 ICO에 나서기도 했다. 

    “제주코인 발행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페트로’는 블록체인 육성이 아니라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국가 재정을 마련하고자 발행한 측면이 강하다. 제주도는 지역화폐가 아닌 블록체인의 혁명적 잠재력에 주목한다. 지역화폐를 통해 결제 방식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형태로서 나중에 검토될 수는 있겠지만 중심축은 아니다. 서버 중심으로, 중앙 집중으로 이뤄진 인터넷상 플랫폼을 블록체인으로 옮겨옴으로써 위조 방지, 해킹 방지, 수수료를 최소화하는 부분들이 전 방위로 연결돼 비즈니스와 생활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블록체인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암호화폐로 국가 재정을 마련한다는 베네수엘라식 접근은 재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베네수엘라처럼 극단적 모델은 아니더라도 ‘노원코인’(서울 노원구)처럼 지역화폐로서 지자체가 토큰을 발행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모델의 경우 탄소 저감 행동, 친환경적 행동에 대해 제주도 토큰을 제공하고, 이를 지역 내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노원코인의 경우도 원화와 교환 비율을 고정한 제한적 모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제주코인 역시 일반적으로 말하는 ICO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OK 하면 바로 달릴 수 있어”

    - 해외 블록체인 기업이 굳이 제주로 올까. 

    “아시아권은 제주에 큰 매력을 느낀다고 본다. 몰타만 해도 유럽연합(EU)을 겨냥한 작은 섬에 불과하다. 몰타에는 거래소와 몇몇 기관만 있을 뿐 블록체인 연관 산업은 발달하지 않았다. 한국은 다르다. 블록체인 개발회사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출시했을 때 얼리어댑터를 포함한 소비자 시장이 두텁다. 제주의 특구는 국제자유도시로서 독립된 제도를 운영할 수 있으면서 한국이라는 혁신의 잠재력을 가진 경제권과 중국, 일본을 배후에 두고 있다.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로서 무비자 제도와 같이 해외기업 친화적 제도를 갖췄다. 상하이만 해도 싱가포르보다 제주에 오는 게 더 가깝다. 제주는 서울에서 1시간, 도쿄와 상하이에서 2시간 거리다. 또한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 잠재력이 큰 국가로 인정받으며 사회제도 또한 잘 정비돼 있다. 제주로 이전하겠다는 기업이 꽤 있다. 해외 기업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기업들이 제주가 특구로 지정되면 지점을 출범하거나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다. 우리는 규제 특례만으로 기업을 유치하기보다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친화적인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자생적 블록체인 산업과 유관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면 기업이 스스로 생겨나고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이다.” 

    -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이 생겨날 수 있을까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구글, 애플처럼 플랫폼 구실을 하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플랫폼 역할을 하는 블록체인을 업계에서 메인넷이라고 하는데, 이더리움이 대표적인 메인넷 블록체인이다. 국내에서도 메인넷을 지향하는 블록체인이 등장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다양한 메인넷이 각축전을 벌인 후 결국에는 몇몇 메인넷이 과점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리라는 예측이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대다수 코인이 사라질 것이다. 암호화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향후에는 선진국이 조성한 메인넷을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유튜브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 동영상을 올리는 개별 사용자에 머무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 제주도가 떠안을 리스크는 없나 


    “리스크가 있다는데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한다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토지를 내놓는 것도 아니다. 제주도의 기존 제도를 부정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 중앙정부가 OK만 하면 달릴 준비가 돼 있나.
     
    “돼 있다. 바로 달릴 수 있다.” 

    - 대통령의 결심이나 중앙정부의 결정이 중요한 것을 보면 제주도는 아직도 무늬만 특별자치도인가 보다. 

    “무늬만은 아니지만 근본적 권한은 이양이 안 되고, 부분적으로만 이양돼 있다. 규제에 관한 것이나 재정, 조세 등이 그렇다. 자치 수준은 아주 낮은 단계다. 분권 논의가 이뤄지는데 부처 간 이견이 있으니 속도가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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